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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 카페인 - 20

불멸에관하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1.05 21:09:44
조회 183 추천 16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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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복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구체를 번쩍 치켜들었다. 그러자 구체에서 나오는 불빛이 방 안을 훤히 비춰주었다. 


  “... 이건?”


  “자동차잖아?”


  꽤나 커다란 방 안에는 자동차 여러 대가 가지런히 주차되어 있었다. 하나같이 대충 봐도 비싸 보이는 차들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자동차에 가까이 다가갔다. 


  오, 이런… 


  그중 한 자동차의 트렁크 부분에 이상한 얼룩이 남아 있었다. 아마도 내가 얼굴을 박았던 흔적이 아니었을까? 


  “... 아닌가?”


  하지만, 데이지가 엎어졌었던 그 옆은 몹시 깨끗했다. 


  화악-


  내가 별 시답잖은 고민으로 생각에 빠져 있던 사이, 벽에서 어느새 전등 스위치를 찾아낸 데이지가 불을 켰다. 그제야 방 안이 환해지고, 그 구조가 한눈에 들어왔다. 


  “여긴 차고였구나.”


  “... 뭐, 일단 차 걱정은 없어졌네. 안나, 너 운전할 줄 알아?”


  옆에서 데이지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마지막으로 운전해봤던 게 언제더라?


  “어… 아마도?”


  데이지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니 어딘가 귀여웠다. 친구가 아니라 동생이었다면 바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을 정도로. 


  “괜찮아, 비싼 차잖아. 자동운전 있을 거야.”


  데이지는 내 말을 듣고 나서야 납득하고는 긴장을 풀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작게 웃었다. 


  삑-


  내가 운전석에 가까이 다가가자 문이 스르르 접히면서 위로 올라갔다. 감탄하면서 운전석에 앉자, 시트의 푹신푹신함이 나를 반겨주었다. 


  “어? 브루니?”


  순간 브루니가 내 머리 위에서 폴짝 내려왔다. 브루니는 한쪽에 놓여 있는 공간에 들어갔다. 고개를 뻗어 그 안을 보자, 나는 브루니가 그 안에 놓인 쿠션에 몸을 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엘사와 함께 다닐 때마다 저기서 잠을 청하기라도 한 걸까?


  [어서 오십시오.]


  “!?”


  갑자기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자동차의 시동이 켜졌다. 나는 깜짝 놀라 데이지를 불렀다. 


  “데이지!”


  “응? 무슨 일이야?”


  어느새 내 옆의 동승석에 올라탄 데이지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 언제 탔어?”


  나는 당황스러움에 말을 조금 더듬었다. 데이지는 그런 나를 눈을 크게 뜬 채로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탔지. 뭐, 어쨌거나 차도 구했고, 다행이네!”


  데이지는 손뼉을 가볍게 치며 말했다. 아야. 그러다가 화상 입은 부분을 쳐서 신음 소리를 내기도 했다. 


  “어, 열린다.”


  저 앞에서 차고 문이 스르르 열리고 있었다. 이대로 나가기만 하면 될 듯 보였다.  


  “... 데이지, 근데 말이야.”


  “응?”


  나는 얼굴에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물었다. 


  “이거 자동운전… 어떻게 하지?”


  “어…”


  데이지도 그것까지는 모르는 것 같아 보였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핸들을 냅다 잡았다. 차의 앞유리 한쪽 구석에 걸린 내 사진이 반짝였다. 옆에서 데이지가 깜짝 놀라며 나를 말렸다. 


  “안나! 괜찮겠어?”


  “일단 황궁으로 한번 가 보지 뭐. 당장 여기서 할 수 있는 것도 없잖아.”


  “... 그러다 총이라도 맞지 않을까? 가뜩이나 요즘 세상이 흉흉한데…”


  “...”


  데이지는 불안한지 손을 손으로 감싸 쥐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니, 나는 섣불리 황궁까지 가 보자고 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 그러면, 그 근처까지만 가 보자.”


  “황궁 근처까지?”


  “응.”


  “끙…” 


  데이지는 잠시 눈을 감고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래도 얼마 지나지 않아 데이지는 그렇게 하자고 내게 말했다. 


  “... 안나, 근데 너 운전할 줄 아는 거 맞지?”


  “아마도?”


  나는 그 말과 함께 엑셀레이터를 꽉 밟았다. 부와아아앙- 굉음이 치솟았다. 


  “이거 왜 안가?”


  “세상에…”


  옆에서 데이지가 손으로 이마를 부여잡고 있었다. 나는 민망한 나머지 애꿎은 엑셀레이터만 마구 밟아댔다. 


  부와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앙-


  “... 안나, 운전해본 거 맞지?”


  “음, 아마도?”


  데이지는 손 끝으로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아, 맞다. 나는 그걸 보자마자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딸깍, 나는 주차 브레이크를 풀고 다시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그럼에도 차는 앞으로 나아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 아, 맞아.”


  다시, 이번에는 제대로 기어를 넣고 출발했다. 그제야 차가 설설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살아서 도착할 수 있는 거 맞지, 안나…?”


  “... 열심히 해볼게.”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털털털, 잘못 건드린 탓에 차에서 이상한 진동이 새어 나왔다. 그러자 데이지의 얼굴은 금세 흙빛으로 변했다. 


  “... 장난이야, 장난. 제대로 할게.”


  난 아직 죽으면 안 된다고.


  그제야 차가 제대로 나아갔다. 울퉁불퉁하게 돌무더기가 솟아 있는 길을 지났다. 여전히 서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지나치고, 수도관이 터진 건지 마구 솟구치는 물기둥을 피하고,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는 회오리바람을 지나쳤다. 


  “안나, 진짜… 세상이 끝나기라도 하려는 걸까?”


  “그러게 말이야. 분명히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잠잠했는데…”


  데이지와 한참을 달리다 보니 어느새 자신이 살던 4지구의 경계까지 올 수 있었다. 저 앞에 2지구와 3지구로 가는 갈림길이 있었다. 


  “2지구… 데이지, 2지구가 통제부가 있는 곳이었지?”


  “응. 황궁에 들어가려면 먼저 거기를 거쳐야 돼.”


  “통제부를?”


  “응. 무조건 거기서 먼저 조사를 받아야 하거든. 음…”


  “으… 복잡하네. 예전에 갔을 때는 그런 게 없었던 것 같은데.”


  나는 괜스럽게 투덜거렸다. 데이지는 내가 웃긴 건지 짧게 웃으며 대답했다. 


  “일단 가 보자. 하암…”


  그녀의 목소리는 아까보다는 확실히 졸린 듯 싶었다. 나는 한 손으로 그녀의 등받이를 쭉 내려주었다. 


  “피곤하면 눈 좀 붙여.”


  “어, 그래도 될까? 하아암…” 


  데이지는 멀쩡한 손으로 눈을 비볐다. 그리고 이내 반듯하게 눕혀진 의자에 몸을 뉘고 단잠을 조금 청했다. 


  “... 잘 자.”


  흐흥.


  나는 조심스럽게 데이지를 토닥여 주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데이지는 기분이 좋은 듯 콧소리를 내고는 잠에 빠져들었다. 


  “...”


  그렇게 한참을 달리고 또 달렸다. 창 밖의 풍경이 여러 번 바뀌고, 괴상한 기계 장치가 가득한 곳을 지날 무렵이었다. 길은 오로지 앞으로 길게 뻗어 있기만 했다. 굽은 길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될지도 몰랐다. 나는 잠시 핸들에서 손을 떼고 기지개를 쭉 켰다. 


  끄응. 


  굳어 있던 몸이 쭉 늘어나자 몸의 마디마디에서 괴상한 관절 소리가 났다. 


  한결 낫네.


  그다음으로 내가 본 것은 자기 공간 안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브루니였다. 동그랗게 몸을 만 채로 미동조차 없이 잠에 빠져 있었다. 나는 브루니를 손가락으로 곤히 쓰다듬어주고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데이지.”


  데이지도 브루니처럼 곤히 잠에 빠져 있었다. 무슨 바람이 들어서였을까? 나는 데이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번 둘러보았다. 


  어라?


  그러다 보니, 나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을 찾을 수 있었다. 


  이건… 너무 비슷하게 생겼는데?


  이상하리만큼 데이지는 엘사와 너무 닮아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가족 관계라고 착각할 정도로 흡사했다. 


  왜 몰랐지?


  엘사를 안 지 얼마 안 돼서, 익숙하지 않아서 그랬을까? 그렇다기엔 다시 보니 누가 봐도 닮았다 할 정도로 비슷했다. 


  나는 섣불리 그녀의 정체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게 데이지는 그저 나와 비슷한 사람일 뿐이었다. 일을 해가며 겨우겨우 벌어먹고사는, 죽지 못해 살아가는 그런 존재들이라고. 그러나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도저히 그녀의 정체를 종잡을 수가 없었다. 


  아니, 잠깐만. 


  그 순간,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설마 데이지가 엘사의 동생인가?


  혹시나 하는 생각은 어느새 그 크기를 부풀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아귀에 맞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나는 복잡하게 돌아가는 머리를 손으로 툭툭 쳐댔다. 이렇게 상상해 봐야 나오는 답은 없을 것이 분명했다. 


  너는 도대체 누구니?


  질문이 입 끝까지 차올랐다가 다시 내려갔다. 나는 두통을 참아내며 다시 핸들을 붙잡았다. 여전히 길은 끝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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