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수 밖에 없던 사회 현실이
대다수의 가난한 서민들 집에서는
공부 많이 시켜줘도 고등학교이고
그 보다 많은 숫자에 경우는 중학교까지 집에서 시켜주고
낮 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야간에는 야간고등학교 다니게 해준다는 조건으로
섬유공장이나 사출공장 가서 공원 생활하는 것이
처해있던 현실이었고
그렇게 겨우 고등학교 졸업장 받고 계속 공원생활하는
그 것 보다는 전망이 좋아 보여서 특전사 아니라
타 직업군인으로 입대 한 사람 많았다...
당시 나의 경우도 대학교를 집에서 보내준다는 건 경제적으로 불가능했다.
물론 공장 작업복 보다는
민무늬 군복 입던 시절
베레모나 얼룩무늬 군복가 있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선택 한 사람이 더 많았겟지만...
(대부분 얼마 안 있어 후회 죽어라고 하지만서도)
입대 후
당시
비슷한 연령대 군인들이 민무늬 전투복 입고 다닐때
나에 베레모 특전복 특전화는
내가 타인보다 우월해졌다는
심리적 우월감를 가지게 하기에 충분했던것도 사실이고.
당시의 상황을 벗어나서
그당시 비슷한 처지의 남들보다
특별한 사람이나 좀 여건이 좋은 상황이 될수 있을거란 기대도 했고....
실제 군에서 그것이 가능했고....
개인적으로 나는
프로스펙스 나이키 아디다스 같은
비닐레드 같은 인조 가죽이 아닌
진짜 소가죽으로 만든 신발 한번
집에서 얻어 신지 못하고 중고등학교 졸업하고
이후
특전사 가서 월급 받고
처음으로 경기도 모 읍내를
고참들을 따라 나가서
어린 시절 수 없이 사고 싶어서 스포츠 용품점 쇼 윈도우를
몇번이고 보기만 하면서 집으로 와야 만 했던
당시 2만원 조금 넘은 흰색 나이키 테니스화를
몇십만원 안되던 월급에서 과감하게 떼어서
사고 신어보고 박스에 넣어서 쇼핑백에 넣어서
너무 좋아라 하고 좋은 고참들이 사주는
막걸리에 오징어/파전을 먹고 영내에 복귀 했다.
그날 그 신발 끈을 이리도 묶어보고 저리도 묶어보고
어떻게 묶으면 예쁠까 하면서 하다가
신발을 가슴에 품고 잠이 들었다.
친구들이 몇년 전 많이 신어서 부러워서
사지는 못하고 바라만 보고
하던 그 신발을 지금 나는 내 침상에 펼쳐 놓고 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이제서야 내돈으로 사서
신었다는 생각과
나는 왜 부모님이 이걸 사 주실 형편이 안 되는 집에서 태어 났을까 등등
당시 만감이 교차했던 것 같다...
척박했던 그때까지의 인생 개척하고 사업 출발에 도움 주는 좋은 인연도
거기서 만나서 경제적으로 여유로와 졌다는 좋은 기억과...
일과 외 영내에서 사심을 가지고 무자비한 구타를 하던 일부선배들에 좋지 않은 기억과...
애증이 교차 되던 곳..
얼마전까지
나이 먹고도 예비군가서도 만나면 멱살잡고 싸우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인간과
언제 어디서라도 만나면 친형제 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과거에 공존하던 곳이라고 할까...
얼마전
라디오를 듣다보니 현재 지원자들 인터뷰에서
요즈음은 공짜로 익스트림 스포츠 즐기기 위해 특전사 지원 한다고 하던데....
예전과 달리 요즈음은 특전사에서 초식동물을 키우지 않는 이상 예전이나지금이나 혹독함이 똑 같다고 본다...
예전 보다 훈련이 편해 졌느니 뭐니 하는건 20년 30년전에도 하던 이야기이고
요즈음 애들 버릇 없다는 것은 석기시대 동굴 벽화 에서도 요즈음 애들 버릇이 없어서 화가 난다는 당시 연장자들이 벽화에 불평을 남긴다.
예전보다 어쩌니 저쩌니하고
시간이 수십년이 흘러도 동일 연령대 다른 사람이 겪지 못한 불합리를 넘어라 할것이고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마그마를 분출하지 말고 억누르라고 강요 할 것이다...
입대전 정신이 건강 하지 못하면 정신에 장애를 입고
육체가 건강하지 못하면 육체에 장애를 입는 곳이 특전사이다.
얼마전 라디오에서 들은 입대 희망자가 말한
특수전부대에서의 익스트림 스포츠를 무상으로 무한정 즐길수 있다는 건 그저 허황된 그 분들에 생각인 듯..
본론으로 다시 돌아 오면
얼마 전 운동 하러 다니던 주차장에서 주차 아르바이트 하던 당시 19살 된 사람이
군입대에 심각한 고민을 하더군요..
집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성적 보다 훨씬 낮은 대학을 지원해서 지방대 전면 장학을 노렸으나
반액정도 겨우 학비 면제 받을수 있는 상황이라 대출받아서 어떻게 등록은 했는데 앞으로 답이 없더랍니다..
그래서 먼저 군대부터 해결 하라고 했습니다.
그 몇 달후
동네형이면서 동네유지인 건물주는 저보다 더많이 내어서 저와 함께 얼마간에 돈과 떡을 보내고
하면서 그에 친구에게 들어보니
육군 부사관학교 가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더군요.
물론 동년배가 아니니까 힘이들고 적응이 안되어도
내심을 이야기 못하고
적응 잘 하고 열심히 하고 있다고 속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친구에게는 군복무 라는게 좋은 여러 선택중 하나 였다고
확신합니다.
비록 수 없는 선택중 가장 바람직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이 글을 읽고도 입대 당시 경제적 상황때문에
부사관/특수전부사관을 선택한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하냐?
진정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은
군입대 당시 많이 가지고
권력 가진 좋은 부모님 만나서 군면제 받던지
사단이나 군단에 이름만 올리고
1년에 한두번 검열관과 함께 출근해서 복무 증거 사진 치즈날리면서 함께 찍고
다시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부끄러워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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