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용기가 안 나서 못 보고 있던 한밤개. 오늘로 자첫자막하자 하고 간 거였는데 결론적으로 나는 호.


늘보가 극의 전체를 다 이끌고 가는 원탑 주연인데 무대 위의 모든 순간이 다 크리스토퍼로 보여서 2막에서는 늘보가 서 있는 모습만 봐도 눈물이 나더라.
약셀털이지만 어릴 적 동네 친구 중에 크리스토퍼와 비슷한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결국 한국의 교육시스템에 적응을 할 수 없어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어.
김아빠나 양엄마의 모습이, 그 친구의 부모님을 보는 것 같아서 더 감정이입 하게 된 것 같아.
내 기억에 그 친구의 어머니는 늘 피곤한 모습이었고 아버지는 화를 내는 듯 무서운 모습이었거든.
늦은 밤에 혼자 놀이터에 그 친구가 나와있어서 왜 여기 있느냐고 집에 안 가냐고 물으면 엄마랑 아빠랑 싸워서 집에 있으면 안된다는 말을 자주 했던 기억이 있는데, 엄마가 토퍼의 다름을 버티지 못하고 로저와 집을 나온 것, 아빠가 침착하려 하지만 때때로 화를 참지 못하고 욕을 하는 것..그런 것들이 다 어릴 때 동네에서 봤던 기억이 있어서 더 아프게 느껴진 것 같아.
그 친구를 좀 무서워 했어서 이제와서 늘 후회하는 게 그 친구에게 더 친밀하게 대해줄걸, 진짜 친구가 되어줄 걸..하는 부분이었고 그래서 사실 연극도 보는 게 좀 꺼려졌었어.
무대 위에 어릴 때의 나 같은 사람이 많이 등장할까봐.
토퍼를 불쌍하게 여기고 무서워하고 때때로 저런 애도 있으니 나는 행복한거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등장할까봐.
그래서 특히 알렉산더 부인이 참 좋았어. 토퍼에게 친구가 되어 주려고 해서.

무대장치나 배우들의 움직임 같은 부분들은 내가 뭐라 말 할 필요도 없이 너무 좋았도 신기했고 신선했었고. 오히려 그런 신기함이 무대 위의 배우들에게 더 몰입하게 만들어 준 것 같아.

마지막 토퍼의 질문에 대답해주고 싶었어. 응. 넌 뭐든지 될 수 있는 사람이야.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될 수 있어. 넌 혼자서 런던도 갈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이제는 얼굴도 잘 기억 나지 않는 어릴 적 동네 친구에게도 얘기 해주고 싶었어. 내가 모르는 그 곳의 너도 시오반 선생님 같은 사람을 만났기를. 그래서 너도 뭐든지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를 바란다고.



후기라고 했는데 공연 내용이나 배우들에 관한 얘기는 없고 일기장에나 쓸만한 쓸데없는 셀털만 잔뜩 한 것 같아서 조심스럽고 미안해.
난 왜 이제야 이 연극을 봐서 이렇게 아쉬움만 남기는지 모르겠네. 재연이 오면 꼭 머리 풀고 달릴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