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그 : 이 장면은, 우리의 현실에 대한 관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부당한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은 존재하고, 그에 맞서 대항하는 사람들 역시 존재합니다.
버드 : 그럼 수도사가 구텐버그를 결사적으로 막으려고 했던 이유는 뭘까요?
더그 : 왜냐하면 그는 권력을 원했기 때문이죠. 남들이 모르는 걸 아는 것이 바로 권력이니까요.
구텐버그가 원했던 게 바로 이겁니다. 모두가, 공평한 권력을 갖는 것.
버드 : 저희는 여러분들이 이 작품을 통해서 현실적인 공감을 얻길 바랍니다.
더그 : 저희도 아주 현실적인 사람들이거든요.
<구텐버그>를 보다보면 두 사람이 끊임없이 하는 말 중 하나가,
"이 이야기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얻은 영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야.
도대체 미국의 양로원과 스타벅스는 뭘 하는 곳이기에(...)
사람들을 선동해서 젊은이 하나를 불에 태워죽이는 수도사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쓰게 만든 걸까...
무려 4대보험 되고 퇴직금까지 나오면 엄청 좋은 직장 같은데...
하지만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죠.
저렇게 극단적으로 부당하고 악랄한 직장은 없지만 세상에서 가장 부당하고 악랄한 곳은 내가 일하는 직장이라는 걸... (아 눈에서 왜 땀이 나지)
저렇게 극단적인 범죄행위는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매일매일의 일상 속에서 부당한 권력을 만나게 돼.
예를 들어... 퇴근 10분 전에 급한 건 아닌데 내일 아침 회의 때 볼 수 있게 자료를 만들어달라는 상사라거나? ^^
사실 인간이 모두 다 똑같을 수는 없기 때문에 다들 조금씩 다른 스탯(?)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고,
그럼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보다는 더 강하고 힘센 사람이 될 수밖에 없어.
예를 들어 돈이 더 많다거나, 더 잘생겼다거나, 더 키가 크다거나, 더 힘이 세다거나.
이런 힘을 앞세워서 원칙과 규율을 무시하는 것, 그게 부당한 권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런 의미에서 수도사는 부당한 권력의 화신 같은 사람이야.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 방해가 될 것 같은 인쇄기도 엉망으로, 그리고 그걸 고쳐달라는 여자도 엉망으로,
마지막으로 그걸 만든 구텐버그까지 훈제 쏘세지(...)로 만들어버렸지.
뿐만 아니라 일주일에 세번씩 자기 밑에서 일하는 젊은수도사에게 연필을 집어던지는 등 온갖 학대를 하고 있지.
(딱히 극에서 얘기가 나오지는 않지만 분명히 온갖 집안일부터 자기 잡시중은 다 들게 했겠지...)
도대체 이 사람의 어디에서 이렇게 부당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하는 힘이 나오는 걸까?
우선 첫번째로, 이 사람 본인이 정말 대단히 머리가 좋기 때문이야.
헬베티카에게 인쇄기를 망가뜨리도록 살살 꼬실 때도,
구텐버그에게 인쇄기 따위는 잊어버려! 라면서 유혹할 때도,
마지막에 구텐버그를 전염병 유발자로 몰아서 죽여버릴 때도
말을 정~~말 잘한다는 걸 알 수 있어.
아무리 교육을 못받았어도 어느 정도 인생경험이 있는 성인들을 내 뜻대로 움직인다는 건 정말 쉽지 않거든.
노네들만 해도 너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저렇게 선동하거나 설득한다고 생각해봐. 쉽지 않지?
그런데 수도사는 아주 교묘하게 말을 잘해.
헬베티카에게는 "이 인쇄기가 있으면 더이상 구텐버그는 포도주를 만들지 않을거고,
그러면 그가 널 데리고 있을 이유가 사라지니까!" 라고 그럴듯한 이유를 즉석에서 만들어내고,
구텐버그에게는 "자 봐봐, 나와 함께라면 이렇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어. 그런 뜬구름 잡는 것같은 꿈 이야기하다가 괜히 고생만 사서 하지 말고.
자, 나와 함께라면 니가 바로 신이 될 수 있다고." 라면서 유혹해. 실제로 구텐버그도 심하게 흔들리지.
마지막에 마을 사람들에게 "자, 이건 전염병을 옮기는 흉물이다! 저 악마에게 홀린 자를 신의 이름으로 심판하라!" 라고 함으로써
마을에서 나름 사랑받고 잘나가던 모두의 친구 구텐버그를 한순간에 죄인으로 몰아 죽여버리지.
게다가 머리회전이 정말 좋고 사람을 간을 잘 본다고 해야 할까.
자기가 강하게 나가서 눌러버려야 될 때는 세게 나오고, 자기가 약하게 굽히고 들어가야 할 때는 또 살살 굽혀주는 것도 볼 수 있어.
헬베티카를 설득해서 인쇄기를 부술 때나 구텐버그를 처음 유혹할 때는 달콤한 말로 꼬여내면서,
헬베티카가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러 오거나, 젊은 수도사가 등장할 때는 인정사정 없지.
뭐, 젊은 수도사도 나름의 이유가 있긴 했지만 결국 그렇게 학대당하면서도 수도사 곁을 떠나지 않잖아?
마을 사람들도 수도사가 그렇게 폭력적인 사람이란 걸 알지만 그의 선동에 또 홀라당 넘어가기도 하고.
(이 정도로 머리가 좋으면 이런 시골마을에서 마을 사람들 데리고 장난칠 게 아니라
수도회 본부에 가서 수도원장도 하고 나중에 엄청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서 왕이나 귀족들하고도 대등하게 놀 수 있었을 거 같은데...
아무래도 일코를 못했나봐... 악마 숭배하는 거 들킬까 봐 무서워서 못갔는가봉가...)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사람의 권력은, "남들이 알지 못하는 걸 안다는 것"에서 온거야.
바로 <성경>이지.
중세의 교회는, 오늘의 교회와는 조금 달랐어.
오늘날의 교회는 "신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세요. 여러분, 신을 믿으세요. 우리 다 함께 천국으로 갈 수 있어요!" 라는 꿈과 희망과 사랑의 교회라면,
중세의 교회는 "너희는 모두 죄인이다. 지옥에 가면 이러저러한 무시무시한 고통 속에서 영원히 살게 되지!" 라는 공포의 교회였어.
(헬베티카가 그러잖아. "엄마가 해준 끔찍한 지옥 얘기, 고양이도 없는 너무 외로운 곳..."
당시 중세 사람들이 생각했던 지옥의 모습은 단테의 <신곡>의 지옥편에 아주 잘 나오는데,
무려 지옥이 9개의 층으로 나누어져 있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큰 죄를 지은 죄인들이 더 큰 고통 속에 살고 있다고 묘사되어 있어.
참고로 <신곡>은 지옥편이 가장 재미있다고들 하는데, 내용이 욕망을 따라간 죄인들의 이야기라 좀 더 인간적이어서...기도 하지만
엄청나게 잔인한데다 묘사가 그로테스크 하기 때문이야.
살아 생전에 끊임없이 싸우던 두 라이벌이 지옥에서도 얼어붙은 상태로도 끊임없이 상대의 머리가죽을... 이로...(이하 생략)
즉, 중세 사람들이 생각하던 지옥이 그렇게 끔찍한 곳이었다는 거지.
덤으로.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보면, 주인공 단테(작가 본인ㅋㅋ)가 처음으로 지옥문에 도착했을 때 지옥문에 쓰여 있는 시가 정말 유명하거든.
그 시를 보면 대략 중세 사람들이 지옥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조금 느낄 수 있을 거야.
나를 지나는 사람은 비탄의 도시로,
나를 지나는 사람은 영원한 고통으로,
나를 지나는 사람은 망자에 이른다.
(중략)
나보다 앞서는 피조물이란
영원한 것뿐이며 나 영원히 서 있으리.
여기에 들어오는 그대, 모든 희망을 버려라.
그러고보면 그런 곳으로 가겠다고 노래하는 걸 보면, 헬베티카 본인의 죄책감이 엄청 컸다는 걸 알 수 있지.
덤으로 중세의 교회에서는 "감히 신께서 주신 생명을 건방지게 포기해?" 라면서 자살을 매우 죄악시했기 때문에,
자살한 사람의 장례는 교회에서 치뤄주지도 않았고 죽은 사람은 죄인이 됐어. 당연히 지옥에 떨어질 거라 믿었고...)
아주 어릴 때부터 교회에 꼬박꼬박 나가서 저런 무시무시한 지옥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거야.
생활 속에서 아주 사소한 실수 하나만 저질러도 지옥에 떨어질 거라는 협박(?)을 받으면서.
사람들은 평생을 그런 죄들과, 그것에 대한 속죄에 얽매여서 살았고,
(가톨릭에는 천국과 지옥 외에도 연옥이라는 개념이 있어.
살아 생전에 지은 죄를 속죄하면서 천국으로 갈 준비를 하는 곳인데, 단테의 <신곡>에도 연옥편이 있어.
그래도 천국에 갈 희망은 있는 거지만, 살아 생전 그렇게 속죄를 하고도 죄가 남아서 죽어서까지 갚아야 할 정도로
중세의 교회는 굉장히 엄격했고, 죄와 벌과 속죄의 교회였던 거지.)
그랬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죄를 안짓고 어떻게 하면 지옥에 안떨어질까... 두려움에 떨면서 살았어.
대체 그걸 누가 결정해주고 누가 알려줬을까? 바로 교회의 사제들이었지.
극중극 <구텐버그>에서는 슐리머 마을의 수도사.
마을 사람들 중에서는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고,
<성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아예 없으니까.
그저 수도사가 "엎물담없이라네. 성경에 나와!" 라고 말하면 믿을 수밖에 없는거야.
헬베티카처럼 '아닌 거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어도 반박을 할 수가 없지.
<성경>도 없고 글도 못읽으니까. 근거가 있어야 아니라고 반박할 거 아냐.
수도사는 <성경>을 인질 삼아서 마을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권력을 누렸던 거야.
그야말로 슐리머 마을의 신이 된거지.
하지만 이런 권력은 정말 쉽게 무너뜨릴 수 있어.
더그와 버드가 말한대로, 모두가 알게 되면 의미가 없어지거든. 모두가 알고, 모두가 공평한 권력을 갖게 되는 거지.
슐리머 식으로 말하자면
헬베티카 : 수도사님!! 뭐예요! 성경에 "엎물담없" 같은 말 안나오잖아요!
수도사 : 뭐 내가 한두개 정도는 헷갈릴 수도 있었나 보지 뭘 그런 거 가지고.
헬베티카 : 그럼 이제 보니 수도사님 하신 말도 다 다시 확인해 봐야겠어요! 어머나! 이것 봐요, 이건 저번에 수도사님이 말씀하신 거랑 정 반대잖아요!
수도사 : 아니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그런 거 가지고 일일이 따지면 안돼! 너 지옥 가!
헬베티카 : 수도사님이 하신 얘기 확인해본다고 죽어서 지옥 간다는 말 성경에 없거든여!! 맨날 거짓말이나 하고!!
수도사의 말이 신뢰를 잃게 되면 아무도 수도사의 협박을 믿어주지 않게 되고,
그러면 수도사의 절대적인 권력도 끝날 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수도사 본인도 그걸 너무 잘 알고 있어.
그래서 혹시나 누가 인쇄기를 만들어서 성경을 대량으로 배포할까 봐 걱정을 하지.
실제로 인쇄기를 만들어냈다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쫓아가서 부숴버리고.
아마 수도사는 이 일을 되게 쉽게 생각했던 것 같아.
구텐버그를 우습게 봤다고도 할 수 있을 거고.
인쇄기를 너무 쉽게 부숴버려서 우쭐했을 수도 있고, 거기다 구텐버그는 아직 젊잖아.
그래서 1막 피날레 <오늘밤 이순간>에서 두 사람이 각각 자신만만해져서 노래하는 걸 보면 참 기분이 묘하더라고.
구텐버그에게 인쇄기는, 나같이 평범한 사람의 손으로 세상이 바뀔거야! 라는 꿈과 희망의 상징이었어.
구텐버그 본인에게도 드디어 아무 의미없는 일상에서 벗어나 나도 위대한 사람이 될거야! 세상을 바꿀거야! 라는 감격에 찬 밤이었겠지.
그걸 부숴버린 수도사는 창조의 불꽃을 미리 짓밟아버렸다, 꿈깨! 세상은 절대 바뀌지 않아. 라고 말하지.
내가 버티고 있는 한 너같은 애송이는 절대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정말로, 구텐버그가 밤새 인쇄기를 만들고 다시 그걸 수도사가 몰래 부숴버린 그 밤은
세상을 바꿀 인쇄기와 그걸 막기 위해 애쓰는 부당한 권력이 부딪친 밤이고, 정말로 역사의 운명이 갈리는 밤이었던 거야.
그 뒤에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만났을 때도 수도사는 여전히 구텐버그를 우습게 보고 있어.
그래서 구텐버그가 아직 인쇄기가 파괴되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걸 알자마자 데리고 놀아볼까? 라고 말하잖아.
사실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 생각도 없으면서 구텐버그를 유혹하기 시작하지.
귀여운 고양이, 맛있는 빵과 생선, 레알 중국산 실크 가운 으로.
(참고로 사실 중세 때까지만 해도 고양이는 악마와 마녀의 상징처럼 여겨져서 박해를 받았대.
심지어 중세 말에 흑사병이 크게 돈 이유도, 이렇게 고양이를 하도 잡아서 죽여대니까 쥐가 늘어나서 그런 게 아니냐는 말이 있을 정도.
그런 상황에서 집에서 고양이 이름을 사탄이라고 붙여놓고 애지중지 키우면 그냥 일코 포기 인데...? 악마숭배자 커밍아웃....
덤으로. 이 시절 레알 중국산 실크 가운이면 엄청 귀한 사치품이야.
실크, 그러니까 비단은 지금도 엄청 고급천이잖아. 가볍지, 아름답지, 부드럽지, 잘 해지지도 않지, 따뜻하지...
그런데 비단은 만드는 데 손이 진짜 많이 가거든. 누에를 키워서 그 고치에서 실을 뽑아내서 짜야 되니까.
이렇게 손이 많이 가니까 원산지인 중국에서도 비싼데,
서양에서는 그걸 인도 상인이 사서 > 페르시아 상인이 다시 사서 > 이탈리아 상인이 다시 사서 > 독일 상인한테 팔아야 얻을 수 있는 거니까.
오고 가는 거리도... 그걸 걸어서, 낙타 타고, 배 타고 옮겼다고 생각해봐. 그 와중에 삭거나 불타서 못파는 걸 생각하면...
15세기 영국 기준으로 비단 한 필이 고급 자가용 말 두마리. 기사의 갑옷 풀셋 값의 1/4. 군용검 4자루. 노동자의 반년치 봉급. 이었다 카더라.
요즘으로 치면 옷감 하나로 자가용 한대, 프랑스 최고급 브랜드 오뜨꾸뛰르 드레스 한벌, 직원 월급 6개월치인 셈이랄까...
그런 귀한 옷감으로 땀이나 닦는 유부더그 라니... (절레절레))
실제로 구텐버그는 이런 유혹에 크게 흔들려.
이 곳에서 머무는 건 왠지... 라면서도 엄청나게 고민을 하지.
그걸 보면서 왠지 씁쓸하더라구.
너네들도 뭔가 옳은 일을 해야 하는데 막상 먹고 사는 문제에 부딪치게 되면 고민하게 되잖아. 난 그게 생각나서 씁쓸했어.
하지만 구텐버그가 선뜻 넘어오지 않으니까 그 다음에 꺼낸 유혹이 바로, "너도 나와 함께 신이 되자!" 였지.
본인도 인정한거야. 사실 진짜 신의 가르침을 전하는 게 아니라, 신의 이름을 팔아서 부당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걸.
사람들은 어차피 글자, 단어, 책을 줘도 그걸 믿지 않아. 내가 하는 신에 대한 이야기를 믿지. 그러니 너도 헛된 망상은 버리고 나와 함께 신이 되자.
그런데 구텐버그를 꼬시려고 한 이 이야기가 오히려 구텐버그가 정신을 차리게 만들지.
아마 이상에 가득찬 젊은 구텐버그에게 수도사의 저런 모습은 엄청나게 혐오스러웠을 거야.
그럼 지금까지 신의 이름을 팔아서 부당한 권력을 휘둘렀단 말인가요, 하고.
그래서 "당신과 난 달라요! 난 세상의 사람들의 가능성을 믿지만, 당신은 신을 내세우죠. 그 둘은 절대 만날 수 없는 길이에요." 라고 하잖아.
구텐버그는 자신이 책들을 많이 찍어내서 사람들의 생각이 깨이면 세상이 변할 거다,
세상은 충분히 희망찬 곳이고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런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에너지와 가능성이 있다. 고 생각한거야.
수도사는 절대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니 어리석은 말 그만하고 내 말에 순종해! 넌 천국에 가고 싶지 않나? 라고 협박하자
난 그런 천국은 가고 싶지 않아요. 난 조각상으로 남고 싶어요. 라고 대답하지.
조각상 이라는 건 사람들이 두고두고 존경하는 인물을 기리기 위해서 세우는 거야.
그럼으로써 사람들이 오며 가며 볼 때마다 그 사람의 노력과 업적을 기억하고,
그 사람의 뜻을 계속 이어가겠다고 결심하고 계속 기억을 되살리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거지.
만화 명대사...긴 한데. 이런 말이 있어.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심장 깊숙이 총알이 박혔을 때? 불치병에 걸렸을 때? 독버섯으로 만든 스프를 먹었을 때? 사람들에게 잊혀졌을 때다."
역으로, 사람들이 계속해서 그 사람을 기억하고 그의 뜻을 이어가는 한 그 사람은 영원히 살아있는 거야.
아마 구텐버그가 원한 게 이런 게 아니었을까. 누군가 나를 이해하고, 내가 죽을 뒤에도 계속 나의 뜻을 이어가주길.
그런 의미에서 구텐버그의 꿈은 반정도 이루어졌어.
그의 인쇄기는 다시 만들어졌고, 많은 것들을 인쇄하는 데 쓰였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글을 배우는 데는 큰 역할을 하지 못했지만,
이미 글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고,
그 덕분에 사람들은 교회의 가르침만 따라다니던 상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어.
-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바꾼 세상 :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theaterM&no=1111736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읽지 못하고 (대략 전세계 성인+청소년 인구 중 20%는 문맹이라고 해)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를 차별하고, 싸우고, 전쟁을 계속하고 있지.
하지만 저렇게 부당한 권력이 유혹하고 협박하는 속에서도 굽히지 않았던 구텐버그의 꿈은,
구텐베르크가 죽은 뒤 매년 그의 탄생일을 기념하고 그의 동상을 세우고 그의 이름을 딴 대학교를 지은 마인츠 사람들처럼,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동상이 되어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뭔가 해야겠어!" 라고 되새기게 만들어 줄거라고 생각해.
마지막으로. 엔딩에서 구텐버그를 산채로 화형에 처하잖아.
중세시대의 화형은, 주로 이단이나 마녀 같은 사람들에게 집행되던 사형방식이야.
일단 화형 자체가 엄청 끔찍하거든.
산 사람이 죽을 때까지 불에 태우는 건데... 사람이 쉽게 죽지 않는다고.
몇십분동안 고열과 연기, 유독가스로 인한 질식으로 인해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다가 죽게 된대.
그래서 화형을 시키더라도 죄질이 좀 가볍다면 미리 사형을 한 다음에 그 시체를 불에 태우는 경우도 꽤 많았다고.
굳이 이렇게 불에 태워서 죽이는 이유로는 몇가지 가설이 있는데...
1. 불의 힘으로 추악한 죄를 태워서 없애버린다.
우리나라에도 부정한 것은 불에 태움으로써 정화한다는 개념이 있잖아. 서양도 마찬가지라서.
완전히 다 불태워서 재로 만들면 이런 사악함이 사라진다고 생각한거지.
2. 부활할 때가 되어도 부활할 육신이 없도록 한다.
기독교의 주요 가르침 중 하나는 심판의 날이 오면 죽은 자들이 모두 무덤에서 일어나서,
심판 뒤에 그 육신을 가지고 각자 죄의 결과에 따라 천국과 지옥에서 영원히 살 거라는 믿음이 있어.
그런데 육신 자체를 불에 태워버림으로써 아예 부활조차 할 수 없게 하자는 거지.
3. 불로 태워서 영혼조차도 태워 없애버린다.
그러니까, 마을 사람들이 보기에는 구텐버그가 불에 태워서 소각시켜야 하는 부정한 것...으로 보였던 거야.
전염병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악마에게 홀린 죄인으로 봐서 그랬을지도 모르지.
왠지 그렇게 보니까 마지막 엔딩이 참 마음이 아프더라.
정말 순수하게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 노력했는데, 정작 그 사람들에게 이렇게 오해받고 죽어가면서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 쓰고 나니 새벽 세시네...
짧게 쓰는 게 길게 쓰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법이야... 난 안되나봐... (털썩)
홀로코스트와 인종청소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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