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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갤문학/크로스오버] 얼티밋 스파이더맨-프로즌 웹 22화

차빙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3.09 23: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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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델 왕국, 수비대 사령실]


바람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밤중, 시커먼 어둠이 깔린 방 한가운데 두 쌍의 눈동자가 번뜩거렸다. 뒤이어 작은 성냥불이 어둠 속에서 피어오르자 그것을 들고 있는 뭉툭한 손의 형상이 드러났다. 흰색 장갑을 낀 손은 성냥불을 쥔 엄지와 검지손가락을 제외한 남은 손가락으로 벽을 더듬으며 무언가를 찾다가 손에 반질반질하고 매끈한 질감의 물체가 잡히자 곧장 물체의 뚜껑을 열어 성냥불을 던져넣고 뚜껑을 닫았다. 뒤이어 유리로 둘러싸인 램프 안에서 불이 확 피어오르며 방 안이 절반 정도 밝아졌다.

두 형체가 자신들의 모포를 벗어던지자 검은 천 아래에서 건장한 두 사내의 모습이 드러났다. 한 남자는 유난히 키가 크고 코밑을 중심으로 양 뺨을 감싸며 귀 아래까지 길게 이어진 특이한 모양의 수염을 기르고 있었으며, 다른 남자는 수염 남자보다 키가 반 뼘 정도 작고 수염이 없는 맨들맨들하고 긴 턱을 가지고 있었다. 짙은 레드와인색의 코트를 입은 두 사내의 허리춤에는 공통적으로 작은 석궁이 달려있었다.

수염 난 남자는 주위를 잽싸게 둘러본 뒤 재빨리 모든 창문에 커튼을 쳐 빛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게 한 후 출입문을 살짝 열어 틈새로 밖을 내다보기 시작했다. 수염난 남자가 망을 보는 동안 키 작은 남자는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 사령실 안에 놓인 엄청난 크기의 서랍장 맨 아랫칸을 열어 한참을 뒤적거렸다. 자신이 생각하던 곳에 찾으려던 물건이 없자 당황한 키 작은 남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음 서랍으로 손을 옮겼다.


"찾았어?" 수염 난 남자가 재촉하듯 물었다.


"재촉하지 마. 찾고 있잖아." 키 작은 남자는 이제 서랍 안에 가득 들어있던 서류철을 하나하나 일일히 확인하기 시작했다. "분명히 여기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너무 늦은 거 아니야? 벌써 아렌델 백성들한테 공문이 전달됐으면 어쩌지?" 수염 난 남자가 바깥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물었다. "우리가 헛고생만 하는 거면 어떡해?"


"그럴 리가 없잖아. 어제 밤에 쓰인 공문인데 제대로 사실확인도 안 해보고 이렇게 빨리 배포될 리가 없다고." 키 작은 남자는 짜증이 나는 듯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애초에 그 여왕이 아이스 몬스터의 약점을 이렇게 빨리 알아낸 것도 스파이더맨이란 놈 탓이야. 어디서 굴러먹다 온 놈인진 몰라도 우리 계획을 아주 작살내고 있어."


"거미줄 타고 날아다니고 힘은 천하장사라던 그 녀석?" 수염 난 남자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언제 한 번 몰래 성벽에 숨어들어서 보초들 대화 엿듣다가 그 녀석 얘기를 들은 것 같애. 주먹이랑 발동작이 어찌나 잽싼지 막 아이스 몬스터들이 싸라기눈처럼 우수수 흩어져버렸다던데? 그놈이랑은 마주치지 않는 게 상책이야."


"처음에는 얼음으로 만든 괴물이더니, 이제는 웬 쫄쫄이 입은 미친놈까지? 에릭 넌 애초에 이 작전 자체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은 안 하냐?" 키 작은 남자가 수염난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공작님이 아무리 왕국을 싫어하신다고는 하지만 왜 우리가 이런 촌동네에 갇혀서 이런 고생을 해야 해? 당장 우리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공작님 험담하지 마, 프란시스." 수염 난 남자가 키 작은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이렇게 멋진 작전이 어디 있어? 이렇게 숨어들어서 문서를 훔치는 것 만으로도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스파이 느낌이 나잖아. 난 어려서부터 스파이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


프란시스는 잠시 눈을 꿈뻑였다. "......우린 이미 스파이야, 이 멍청아."


"아." 에릭이 말했다. "그렇구나."


프란시스는 머리가 아픈지 이마에 손을 짚었다. 에릭은 입만 다물면 일은 제대로 하는데 말이지. 꼭 말할 때마다 한 번씩은 바보같은 소리를 내뱉는단 말이야. "여튼 그렇게 망만 보지 말고 나 좀 도와줘. 어차피 외부 순찰 시간이라 아무도 안 오잖아."


"알았어. 그럼 난 여기 오른쪽 서랍을 뒤질게. 그나저나 우리가 뭐 찾으러 온 거였더라?"


"몇 번을 얘기하냐, 아이스 몬스터의 약점을 기록한 비밀 서류라니까." 프란시스가 계속해서 서랍을 뒤지며 말했다. "아이스 몬스터들을 이용해서 왕국 하나를 궤멸시키려면 이 나라 사람들이 몬스터의 악점에 대해서 알면 안 돼. 그래서 새 정보가 들어오는 즉시 우리가 문서를 빼돌려야 하는 거야."


"맞아. 지금까지는 안 보이게 숨어서 사람들 대화를 엿듣는 걸로 정보를 모았지만 이제 그것만으로는 안 돼." 에릭은 몸을 돌려 프란시스의 왼쪽에 무릎을 꿇고 서류를 함께 검토하기 시작했다. "정보가 들어오는 대로 빼돌려야 더 많은 사상자를 낳을 수가 있지."


"아, 그렇구나. 요새 스파이더맨이 일을 잘해서 부상자는 커녕 사상자도 안 나오니까 너희들 입장에선 죽을 맛이겠네?"


"넌 또 또 당연한 소릴 그렇게 새삼스럽게 하냐. 당연하지. 무려 6개월 반을 이 작전에 쏟아부었는데 그놈 하나 때문에 일이 이 지경이 되고..." 프란시스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에초에 에릭 네가 그런 당연한 거 물을 시간에 나랑 머리 맞대고 스파이더맨을 해치울 궁리만 했어 봐. 지금쯤 일이 만사형통으로 해결될 지 누가 아냐?"


"난 아직 아무것도 안 물었는데?" 에릭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물은 건 우리 뒤에 있는 얘가 물었지."


"아, 그래? 너무 집중하다보니까 나도 목소리가 분간이 잘 안가는 경지에 오ㄹ....."


순간 두 사내는 일제히 동작을 멈추고 각자 손에 쥐고 있던 서류철에서 눈을 들어올려 서로를 쳐다보았다. 잠깐, 방금 전의 그 목소리는 누구지? 우리 팀에 한명이 더 있었나? 두 사내가 한몸이 된 것처럼 정확한 타이밍에 동시에 뒤로 고개를 돌리자, 어둠 속에서 스스로 빛을 내며 자신들을 바라보는 한 쌍의 커다란 흰색 눈이 자신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안녕!" 두 사람의 뒤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스파이더맨은 자리에 쪼그려앉은 채로 간단하게 손만 살짝 들어보였다.


"뜨아아아아아학!!!" 에릭과 프란시스는 스파이더맨을 발견하고 너무 놀라 고함을 지르며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어찌나 높이 뛰어올랐는지 에릭의 머리가 천장에 쾅 부딪힐 지경이었다. "너-너-너 뭐야?! 어디로 들어온 거야?!" 프란시스가 허둥지둥 허리춤에서 석궁을 꺼내어 스파이더맨을 조준했다. 


"어디긴 어디야, 창문으로 들어왔지. 너희들이 커텐 칠 때부터 여기 들어와 있었어." 스파이더맨은 날카로운 화살이 장전된 석궁이 자신을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도 태연한 몸짓으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하기로 유명한 아렌델 사람들이 설마 다른 집을 털 생각같은 걸 할 리가 없으니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숨어들어왔더니 역시 다른 나라 사람이었네."


"숨어드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군. 너 무슨 좀도둑이라도 되는 거냐?" 에릭이 자기 딴에는 진지한 질문을 내뱉자 프란시스의 얼굴이 팍 구겨졌다. 그럼 그렇지. 이 멍청이가 제대로 된 질문을 할 리가 없지.


"좀도둑은 무슨. 이렇게 빨강 파랑 하양 옷 입고 다니는데 잘도 좀도둑질이 되겠다. 나 여깄소 하면서 광고하고 다니는 꼴이잖아." 스파이더맨이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내 가슴에 박힌 문양 보면 몰라? 나 니들이 그렇게 마주치기 싫어하는 스파이더맨인데? 왜 거기 주걱턱 형씨가 미친놈이라고 부르던 사람 있잖아. 그게 나야."


"누굴 보고 주걱턱이라는 거야, 이 괴짜가!!" 프란시스가 열받은 듯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두 다리는 어느새 개다리춤 추듯 달달 떨리고 있었다.


"왜? 턱이 길고 매끈한게 딱 주걱턱인데. 그걸로 밥 푸면 한 두세 공기는 단번에 나오겠다." 스파이더맨은 에릭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쿡쿡 웃었다. "거기 아저씨는 수염 난 꼴이 딱 먼지떨이처럼 생겼고 말야. 나 오늘 완전 운 좋은데? 선물을 4개나 받았어. 먼지떨이 하나에-"


"억!!!" 푸슉. 스파이더맨의 웹 슈터가 임팩트 웹을 발사하자 거미줄 뭉텅이가 통째로 날아가 에릭을 포박해 가까이 있는 벽에 접착제 바른 것처럼 딱 붙여버렸다.


"밥주걱 하나에-"


"으악!!!" 촤라락. 스파이더맨은 프란시스의 머리에 거미줄을 쏘아 아래로 홱 잡아당겨 서랍장 한 귀퉁이에 프란시스의 머리를 쳐박은 후 거미줄로 그의 몸을 단숨에 묶어버렸다.


"석궁 2개까지!" 퓨웃 퓨윳. 스파이더맨은 이번에는 2개의 거미줄을 동시에 쏘아 두 사내에게서 석궁을 빼앗아들고 양손에 쥐며 멋진 포즈를(?) 취했다. "딱 내가 바라던 종합선물세트야. 얼마야? 5달러? 10달러? 돈은 내고싶은데 안되겠어. 이 석궁들이-" 스파이더맨은 빼앗은 석궁 2개를 바닥에 집어던져 발로 짓밟아 박살내버렸다. "-불량품인 것 같거든."


"어으아악. 어윽. 머리야." 프란시스는 두개골이 깨지는 것 같은 고통에 몸을 뒤척이려 했지만 끈끈한 거미줄이 몸을 완전히 휘감고 있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미친,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야?! 우린 위즐튼에서 정식 훈련 과정을 거친 정예 요원들이라고! 이런 어중이 떠중이 하나한테 이렇게 쉽게 당하다니!"


"으아아아악!! 이거 대체 뭐야!? 끈적끈적하고 기분나빠!" 에릭이 자신을 감싸고 있는 거미줄 뭉텅이 안에서 몸을 꿈틀거리며 소리쳤다. "헉헉. 야! 이거 당장 풀어! 우리 공작님 오셔서 너 끝장내버리기 전에!!"


"니들이 말하는 그 어중이 떠중이가 어떤 전적을 갖고 있는지 알면 깜짝 놀랄걸? 하도 창의적인 욕을 많이 들었더니 이젠 그런 모욕은 모욕같지가 않다 야." 스파이더맨이 프란시스의 옆에 쪼그려앉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공작이라면 그 위즐타운의 공작 말이야?"


"위즐튼이야!!" 두 남자가 동시에 소리쳤다. 잠시 뒤 에릭은 의아한 표정으로 질문을 덧붙였다. "잠깐, 근데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이 나라에서 가장 유명하고 또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공작이라고는 위즐 '타운' 의 -니들이 뭐라하던간에 난 위즐타운이라고 부를 거야. 상관하지 마- 그 난쟁이 공작밖에는 없으니까. 여왕님이 어찌나 진저리를 치시던지." 스파이더맨이 자신도 진절머리가 나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우리 공작님은 위즐튼에서 가장 높으신 분이시다. 너처럼 근본도 없는 무지렁이 따위는 공작님이 명령 한 마디만 내리면 끝장이라고! 알아?!" 에릭이 자랑스럽게 소리쳤다. "셋 셀 동안 이거 안 풀면 너 진짜로 큰일난다. 하나! 둘!"


"야 야 야. 적당히 좀 해라 정말. 무슨 빠돌이도 아니고." 스파이더맨은 한심하다는 눈길로 에릭을 쳐다보았다. "그래 뭐, 까놓고 그 양반이 높으신 분이라 치자. 그래서 뭐 어쩔건데?"


"뭐?" 에릭은 당황해서 눈을 꿈뻑였다.


"여긴 아렌델이야. 위즐타운이 아니라. 너희 공작의 권위가 여기서도 통할 거라고 생각해? 아렌델 황실을 모함하려 든 죄로 몰매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 스파이더맨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그 양반이 나보다 싸움을 잘하기를 해, 아님 우리 여왕님마냥 특별한 마법을 가지고 있기를 해? 그런 것도 없으면서 날 어떻게 끝장낼건데? 말해 봐."


"어. 음. 어." 에릭은 순간 말을 잃었다. "왜냐면 공작남은 높으신 분이니까...?"


"저 멍청이가...." 프란시스는 바닥에 얼굴을 처박은채로 창피함에 부르르 떨었다.


"높으신 분? 내가 이런 말까진 웬만해서는 안 하려고 했는데, 난 한 나라의 로열 패밀리 전체와 친분이 있거든? 공작 정도 갖고 나대긴." 스파이더맨이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그 양반은 이미 오래 전에 아렌델 입국 금지 처분을 받았잖아. 그 양반은 물론이고 걔 부하인 너네들이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범죄라고. 그러니까 아렌델의 정식 파수꾼으로서 나한테는 너희들을 잡아넣을 완벽한 권한이 갖춰진 셈이라는 거지."


프란시스는 눈을 들어 스파이더맨을 바라보며 비굴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이봐. 너무 매몰차게 굴지 말라구. 우린 아직 범죄를 저지르기 전인 데다가-"


"그러고 보니 저번에 라그나르 장군님이 올린 서류가 하나 사라졌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렇게 보니 너희들이 한 짓이라는 게 확실해 보이네." 스파이더맨은 자리에서 일어나 뿌드득 기지개를 폈다. "끙차. 모처럼 아렌델에 왔으니까 우리 여왕님께 잘 말해서 성에 머물게 해 줄게. 지하 감옥이라도 괜찮지? 아늑한 철창 안에 있으면 죄를 짓고 싶은 기분이 싹 사라질거야."


"궁시렁궁시렁..."


"응?"


순간 스파이더맨의 민감한 청각이 문 뒤로 저벅저벅 걸어오는 발소리를 감지했다. 신발 밑창이 벽돌길을 탁탁 때리는 소리가 나는 걸 보아하니 불편한 가죽 구두를 신은 모양이었다. 라그나르나 다른 수비대 대원들은 활동할 때 결코 거추장스러운 가죽 구두를 신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이 아닌 누군가 다른 사람이 사령실 건물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빌어먹을 놈들. 이렇게 간단한 일 하나를 빨리 끝내질 못해서 이 나를 왔다갔다하게 만들다니..." 문 가까이에서 가래가 끓어오르는 듯한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다 이 한심한 놈들아! 들어간ㄷ-"


흰 콧수염에 윗머리가 다 벗겨진 키가 작고 빼빼마른 노인 하나가 반쯤 열린 문을 활짝 밀어젖혔다. 노인은 가히 기형적이라고 칭할 수 있을 정도로 마른 몸에 큰 얼굴을 가지고 있어 현실판 스틱맨이라고 칭해도 될 법한 형상이었다. 큼지막한 매부리코 위에 놓인 동그란 안경이 돋보이는 노인의 몸을 감싼 도포 너머로 딱 봐도 비싼 재질로 만들어진 제복과 형형색색으로 반짝이는 휘장이 보이자 스파이더맨은 이 남자가 바로 위즐튼의 공작임을 알 수 있었다.


"........................."


방문이 활짝 열리자 사령실 안에는 쎄한 정적이 감돌았다. 스파이더맨과 위즐튼의 공작은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눈을 꿈뻑거리며 서로를 응시했다.

잠시 넋을 놓고 있던 공작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재빠른 시선으로 방 안을 0.5초만에 스캔했다. 방 한쪽을 덮은 하얗고 무성한 거미줄 더미. 우측 벽에 딱풀처럼 딱 붙어있는 에릭. 온몸이 묶인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프란시스. 뭐에 부딪혔는지 완전히 작살난 석궁 두 개. 그리고 이 난장판 중간에 우두커니 서 있는, 쫙 달라붙는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남자 한 명.

공작은 이미 멀찍이서나마 영웅의 활약을 본 적이 있었기에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자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스파이더맨. 아렌델에 떨어진 지 불과 3주만에 황실의 신임을 얻고 아렌델 전체의 파수꾼으로 등극한, 거미의 힘을 가진 정체불명의 남자. 그 남자가 지금 내 부하을 쓰러뜨리고 바로 눈앞에 서 있다. 저 두 멍청이를 부하로 두고 있는 내 눈 앞에.

공작은 오랜 세월 동안 왕실의 개로 살면서 황제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길러온 약삭빠른 눈치와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자신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을 선택해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콰앙!!


"걸음아 날 살려라!!"


바로 36계 줄행랑이었다.


공작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만큼 빠른 속도로 문을 쾅 닫고 그대로 눈앞에서 사라지자, 스파이더맨은 물론 에릭과 프란시스마저 얼이 빠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우릴.... 버린거야?" 에릭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 "지금 공작님이 우릴 버리고 그냥 도망친 거 맞지?"


"당연하지 이 멍청아! 보고도 못 믿냐?! 제기랄. 애초에 저 양반 밑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었는데!!" 프란시스가 온몸을 뒤틀며 분통을 터뜨렸다. "내가 그래서 말했잖아, 애초에 이 계획은 근본부터가 틀려먹었-우웁!!"


푸슛. 스파이더맨의 웹 슈터가 거미줄을 뿜어 프란시스와 에릭의 입을 틀어막았다. "자, 일단 닥치고 계시고. 일의 주모자를 잡을 절호의 기회인데 그냥 놓치기엔 아깝지. 조금만 기다려, 곧 너희 대장이랑 다시 만나게 해 줄 테니까."


스파이더맨은 커텐으로 가려진 창문 바깥으로 재빨리 몸을 날렸다.


~~~~~~~~~


"으헉, 헉! 헉!! 사람 살려!!"


위즐튼의 공작은 마치 심장발작이 일어난 사람처럼 숨을 급하게 헐떡이며 인적이 없는 으슥한 골목길을 헐레벌떡 달려나갔다. 그렇게 오래 뛰지도 않았는데 공작의 구레나룻과 이마에는 벌써부터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체력이 좋지 않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공작의 달리기 속도는 웬만한 사람들보다 훨씬 느렸다.

자신들을 본국으로 송환하려는 배의 선장을 매수해 아렌델에 몰래 숨어든지 어언 2년, 그동안 자신을 이 꼴로 만든 아렌델 여왕에게 복수할 날만을 꿈꾸며 수없이 많은 작전을 세우고 실패하기를 반복해왔다. 본국에서 자신을 찾으러 사자를 보내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엇다. 만일 계획만 성공한다면 황제도 자신을 다시 보게 될 테니까. 하지만 그는 나쁜 계획을 세우는 데에 재능이 전혀 없었고, 아무리 그럴듯한 작전을 생각해내도 항상 우연에 우연이 겹쳐 시작도 해보기 전에 실패한 작전들이 대다수였고, 어찌저찌 진행이 된다 쳐도 역시 마지막에는 계획이 모조리 엎어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러던 도중, 그에게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반년 전부터 시작된 아이스 몬스터들의 침공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 기회를 잘만 이용하면 손도 대지 않고 여왕의 위세를 무너뜨릴 수 있겠다고 생각한 공작은 몰래 아이스 몬스터들에 관한 중요 문서를 지속적으로 빼돌리거나 조작해 수비대 조직 내부의 손발이 맞지 않게 만들었고, 동시에 시민들에게도 아아스 몬스터들에 대한 정보가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도록 애를 썼다. 결과는 나름 성공적이었다. 느린 속도긴 했지만 아렌델 수비대는 과거의 위세를 잃고 차례차례 무너져가고 있었으며, 시민들 사이에서는 몬스터들에 관한 헛소문이 일파만파 퍼져 헛된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었다.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엘사 여왕의 얼굴에 피곤함이 가득 쌓인 것을 본 그날, 공작은 이제 아렌델의 붕괴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이대로 아렌델이 아이스 몬스터들에 의해 크게 쇠약해진다면 본국에 서신을 보내 군대를 이끌고 와서 이 나라 전체를 위즐튼의 속국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자신은 공작이라는 칭호에서 마침내 벗어나 특진을 하게 될 수도 있었다. 아주 큰 영지를 하사받음과 동시에 엄청난 양의 금화를 쥐어주겠지. 평생 놀고먹어도 거리낄 것 없는 최고의 인생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하지만...


"저기요 영감님!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세요? 얼굴이 참 선하시네. 잠깐 좋은 말씀 좀 듣고 가지 않으시겠어요?"


하지만 그 완벽한 계획은 모조리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저 빌어먹을 스파이더맨이라고 불리는 괴짜 녀석 때문에!


"으히이이익!!!"


공작은 어느새인가 근처 지붕 위에 올라가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스파이더맨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재빨리 방향을 틀어 더욱 좁은 골목길로 도망쳤다. 발에 말 그대로 불이 나도록 달렸지만, 이런 자신을 비웃기라도 하듯 어느새 스파이더맨은 조깅하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신의 뒤를 바짝 쫓아오고 있었다. 그것도 벽에 직각으로 붙어서.


"어차피 그렇게 달려봐야 소용 없는 건 아시죠? 인간적으로 달리기 너무 느리시네. 운동 좀 하셔야겠어요!" 스파이더맨이 공작의 스피드를 가볍게 추월해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저기요 할아버지? 제 말 듣고 계신거죠?"


"헥헥! 그, 그만 쫓아와 이 정신병자야!!" 공작이 아예 혀까지 내밀고 헥헥대며 소리를 질렀다. "날 가만히 내버려두란 말이야!!"


"그럴 순 없죠! 범죄자를 도망가게 냅두면 아렌델의 치안이 어떻게 되겠어요?" 스파이더맨이 슬슬 달리기 속도를 늦추어 공작의 페이스에 맞추며 말했다. "그리고 그쪽으로는 안 가시는 게 좋을 텐데..."


"남이야 어떻게 도망가든 상관하지 마!!" 공작은 젖먹던 힘까지 다 짜내어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그래요? 그럼 그러죠 뭐. 대신에 다른 사람들을 부르면 되니까요." 스파이더맨은 단숨에 지붕 위로 뛰어올라 양 손을 입 앞에 동그랗게 오므리고 매우 큰 소리로 외쳤다. "도옹네에 사람드으으을!! 위즐타운의 공작이 또 아렌델에 왔어요오!!"


"뭐-뭐야?! 억!!!"


공작의 구두가 벽돌로 이루어진 길 위에 움푹 패인 부분을 잘못 밟자 그대로 공작의 발목이 오른쪽으로 우두둑 꺾였다. 지지대 역할을 해주던 발이 무너지면서 몸 전체의 균형이 무너진 공작의 몸은 마치 중국 공장에서 대충 만들어져 관절이 온통 헐렁한 플라스틱 액션 피규어처럼 이리저리 파닥거리다가 바닥에 턱을 찧은 것을 기범으로 몸 전체가 하나의 굴렁쇠가 되어 데굴데굴 굴러가다가 맞은편에 있는 돌벽에 정면으로 부딪혔다.

간신히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선 공작은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사람들로 가득한 길거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거리는 온통 어둑어둑했지만 아직 초저녁이기 때문인지 가게들은 한 군데도 문을 닫은 곳이 없었고, 저녁 찬거리를 사러 나온 주부들과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퇴근하는 일꾼들이 아렌델의 밤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공작은 자신의 슬랩스틱 코미디같은 등장이 이들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는 것을 깨닫고 아연실색했다.


"본인이 사령실 안에 무단으로 침입하신 시간이 저녁 8시였다는 건 알고 계시나 모르겠네?" 스파이더맨이 거미줄에 거꾸로 매달린 채 스르륵 내려오며 말했다. "방금 댁이 도망치던 그 방향은 아렌델 사람들이 가장 즐겨찾는 거리라고. 나한테 쫒겨다니느라 위치 확인도 제대로 안 하고 막 도망치셨나 보네. 불쌍해서 어째?"


"어라, 저 녀석은 여왕님을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던 그 녀석이잖아?" 공작을 들러싸고 웅성대던 군중들 중 하나가 말을 꺼내자 웅성대는 소리가 더더욱 커졌다.


"정말이네! 이제는 평생 아렌델에 못 오는 줄 알았는데, 어떻게 들어온 거야?"


"그러게. 분명히 입국금지 명령을 받은 것 같은데."


"아휴, 꾀죄죄한 꼴 좀 보라지! 씻지도 않았나? 냄새는 또 왜 이렇게 지독해?"


"양심이 있으면 아렌델에 두 번 다시 발을 들이지 말았어야지! 무슨 배짱으로 또 여길 찾아온 거야?!"


군중들이 자신을 노려보는 시선에서 분노를 느낀 공작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공작은 목을 길게 빼고 이리저리를 둘러보며 혹시라도 빠져나갈 구멍같은 것은 없을까 찾아보려 했지만, 이렇게 많은 눈이 지켜보고 있는데 도망친다는 것 자체부터가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저 저 저리 꺼져 이 천한 것들아! 감히 내가 누구인 줄 알고!!" 공작은 제딴에는 위협을 주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역효과였다. 이미 공공의 적을 만난 아렌델 사람들은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그를 가만히 노려보기만 했다.


"이야, 오늘 아주 제대로 화를 돋구시네. 천한 것들이라니." 스파이더맨이 거미줄에서 뛰어내려 특유의 포즈를 지으며 공작 앞에 가볍게 착지했다. "아무래도 우리 아렌델 국민 여러분은 웬만해서는 댁을 용서 안 하려고 들 것 같은데, 어떡하실래요? 이대로 저랑 같이 가실래요, 아니면 여기서 시민 여러분들한테 집단으로 구타당하실래요? 선택은 오로지 당신의 몫입니다."


스파이더맨이 몸을 일으켜 손가락 마디마디를 꺾자 매우 위협적인 우두둑 우두둑 소리가 들렸다. 스파이더맨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포진한 아렌델 시민들의 진형을 보고 있으니 마치 어는 누구도 뚫을 수 없는 장벽을 보는 듯 했다. 아, 이런 게 바로 위협이구나. 공작은 마음 속에 피어오르는 막연한 공포심에 사로잡힌 채 침을 꼴깍 삼켰다.

공작은(다시 한 번) 오랜 세월 동안 왕실의 개로 살면서 황제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길러온 약삭빠른 눈치와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자신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을 선택해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항보오오오오옥!!!"



ULTIMATE SPIDER-MAN

FROZEN WEB

챕터 22 - 평범하디 평범한 아렌델의 하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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