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박수남 기자] 명동 거리를 걷다 보면, 한국인보다 올리브영 쇼핑백을 든 외국인이 더 많아 보일 때가 있다. 오늘날 CJ올리브영은 단순한 화장품 가게가 아니다. K-뷰티 트렌드의 시작점이자, 전 세계 관광객이 반드시 거쳐야 할 '성지'가 되었다. 이선정 대표의 탁월한 리더십 아래, 올리브영은 연 매출 5조 원을 바라보는 거대한 산업 생태계 그 자체가 됐다.
하지만 이 눈부신 성공 신화 앞에서 우리는 불편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올리브영은 유망한 인디 브랜드를 발굴해 스타로 키워낸 따뜻한 '키스톤'인가? 아니면, 압도적인 힘으로 시장을 좌지우지하며, 한때 자신이 키웠던 새싹들마저 위협하는 거대한 '도미네이터'로 변모하고 있는가?
게임은 끝났다, 이선정의 올리브영이 곧 시장
데이터는 명확하다. 국내 헬스앤뷰티(H&B) 시장에서 올리브영의 점유율은 90%를 넘어섰다. 랄라블라, 롭스 등 한때 거리를 밝혔던 경쟁자들은 모두 사라졌다. 독점은 이미 완성됐다.
성과는 경이롭다. 2024년 연 매출 약 4조 8000억 원. 2025년 2분기에는 1조 4619억 원으로 분기 최대 실적을 또 갈아치웠다. 전국 1,371개 매장과 '오늘드림' 즉시 배송 서비스는 온·오프라인을 완벽하게 장악한 철옹성이다.
이 압도적인 지배력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제 막 시작하는 인디 브랜드에게 선택지는 단 하나다. '어느 매장에 입점할까'가 아니라, '올리브영의 조건에 따를 것인가, 아니면 시장을 포기할 것인가'이다. 올리브영은 시장의 선수가 아니라, 규칙을 만드는 심판이 된 것이다.
K-뷰티 국가대표팀 주장
독점이라는 비판에 올리브영은 '상생'과 '동반성장'을 강조한다. 가장 강력한 증거는 '100억 클럽'이다. 올리브영에서만 연 매출 100억 원 이상을 달성한 브랜드가 100개를 넘었다. 라운드랩, 닥터지 같은 국내 중소 브랜드의 성공 신화는 분명 올리브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아가 올리브영은 스스로를 '글로벌 K-뷰티 게이트웨이'로 정의한다. 폭증하는 외국인 매출을 앞세워, "우리가 커야 K-뷰티 전체가 세계로 나갈 수 있다"는 논리를 편다.
하지만 이 주장은 정교한 방어 논리이기도 하다. '팀 K-뷰티'의 리더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국내 시장에서의 독점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즉, 올리브영을 규제하는 것은 K-뷰티 성장을 막는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두 얼굴의 올리브영...착한 건물주인가, 악덕 건물주인가?
올리브영의 역할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비즈니스 생태계의 두 가지 리더 유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마르코 이안시티 교수는 이를 '키스톤(Keystone)'과 '도미네이터(Dominator)'로 구분한다.
쉽게 말해 '키스톤'은 '착한 건물주'다. 안정적인 상권을 만들고 입점 업체들이 공정하게 돈을 벌도록 도와 상권 전체를 살린다. 반면 '도미네이터'는 '악덕 건물주'다.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임대료를 과도하게 올리거나, 잘되는 가게를 쫓아내고 직접 그 자리에 똑같은 가게를 차려 이익을 독식한다.
'키스톤' 이선정...인디 브랜드의 등용문을 열다
올리브영은 분명 '키스톤'으로서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2,400여 개 브랜드에 안정적인 판매처를 제공했고, 마케팅을 지원하며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경쟁할 발판을 마련했다. '100억 클럽'의 탄생은 그 가시적인 성과다.
'도미네이터' 올리브영...이선정이 묵인한 체계적 '갑질'의 증거들
하지만 왕좌를 차지한 올리브영은 점차 '도미네이터'의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시장 지배력을 이용한 체계적인 '갑질' 패턴이 나타난 것이다.
"경쟁사 행사? 꿈도 꾸지 마"
공정위 조사 결과, 올리브영은 납품업체들에게 랄라블라, 롭스 등 경쟁사에서 동일한 행사를 진행하지 못하도록 강요했다. 경쟁사를 고사시키려는 전형적인 전략이다.
"감히 다른 플랫폼에?"
2024년 9월, 경쟁 플랫폼인 무신사 뷰티 행사에 참여하려는 브랜드들에게 "참여 시 매장에서 철수하는 것으로 알겠다"며 압박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공정위가 다시 칼을 빼 들었다.
"깎은 납품가, 돌려주지 않겠다"
판촉 행사를 이유로 납품가를 깎은 뒤, 행사가 끝나도 가격을 정상으로 돌려주지 않고 부당이득을 취했으며, 모든 업체에게 '정보처리비'를 징수했다.
결정적 실책...19억 원짜리 면죄부
이러한 갑질이 반복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2023년 공정위의 결정적인 판단 때문이다. 당시 공정위는 올리브영의 불공정 행위를 인정하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시장지배적 사업자'로는 지정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수천억 원대 과징금 부과가 가능했던 사안이 고작 19억 원의 과징금으로 마무리되었다. 연 매출 5조 원에 육박하는 올리브영에게 19억 원은 그저 사소한 '사업 비용'에 불과하다. 이 결정은 올리브영에게 '갑질을 해도 치명적인 처벌은 없다'는 신호를 준 셈이며, 규제의 실패가 오늘날의 상황을 만들었다.
이선정이 구축한 데이터 제국
현대 플랫폼 기업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은 '데이터'다(닉 스르니체크, '플랫폼 자본주의'). 이 관점에서 올리브영은 화장품 가게가 아니라, 고객 데이터를 추출하는 거대한 플랫폼이다. 당신의 모든 클릭, 검색, 구매 이력은 정제되어 시장의 흐름을 예측하는 '새로운 석유'가 된다. 올리브영은 시장 전체를 내려다보는 전지적 시점을 갖게 된 것이다.
PB라는 이름의 복수... 올리브영이 파트너를 베끼는 방법
플랫폼이 데이터를 무기화할 때 '아마존 효과'가 나타난다. 아마존이 입점 판매자들의 데이터를 보고 잘 팔리는 물건을 직접 만들어 파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올리브영은 웨이크메이크(WAKEMAKE), 필리밀리(fillimilli) 등 강력한 자체 브랜드(PB)를 운영하며 전체 매출의 7~10%를 차지한다. 여기서 치명적인 이해상충이 발생한다. 올리브영은 시장(심판)인 동시에 선수로 뛰고 있다. 입점 브랜드들의 판매 데이터를 통해 뭐가 잘 팔리는지 정확히 파악한 뒤, 직접 경쟁 제품을 출시하는 것이다.
실제로 법원은 올리브영의 PB 마스크팩이 한 중소기업 제품을 모방했다고 판단하고 판매 금지 결정을 내렸다. 이는 올리브영이 정보 우위를 이용해 파트너의 혁신을 베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다.
PB는 단순한 돈벌이를 넘어, 입점 브랜드를 통제하는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다. 특정 브랜드가 더 나은 조건을 요구하면? 유사한 PB 제품을 만들어 가장 좋은 자리에 진열하고 더 싸게 팔면 그만이다.
알고리즘의 독재... 이선정표 'K-뷰티 획일화' 프로젝트
더 큰 위험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바로 '알고리즘'이다. 올리브영의 정교한 추천 알고리즘은 무엇을 위해 최적화되어 있을까? 소비자의 다양한 선택일까, 아니면 올리브영의 이익 극대화일까?
알고리즘은 필연적으로 올리브영에 마진이 높은 제품, PB 상품을 더 많이 노출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장기적으로 초래할 가장 큰 위험은 K-뷰티 혁신의 *획일화'다.
새로운 브랜드들은 소비자의 숨은 니즈를 찾기보다, 올리브영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기 위해 기존의 성공 공식을 답습하게 된다. 그 결과, K-뷰티의 역동성은 사라지고, 올리브영이 정한 기준('올리브영 스탠다드')에 맞는 비슷한 제품들만 남게 될 수 있다.
K-뷰티의 미래 = 올리브영의 미래
올리브영이 K-뷰티의 오늘을 만든 핵심 설계자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들은 '키스톤' 전략으로 제국을 건설했다. 하지만 절대적인 지배력을 확보한 지금, 그들은 점차 가치를 착취하는 '도미네이터'의 길을 걷고 있다.
현재 K-뷰티 생태계의 가장 큰 위협은 올리브영의 지배력을 견제하지 못하는 '규제의 공백'과 누구도 감시하지 않는 '알고리즘의 불투명성'이다.
더 강력한 규제와 투명성 요구가 없다면, K-뷰티 혁신의 요람은 결국 화려하지만 자유는 없는 '황금빛 새장'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K-뷰티의 다채로운 미래는, 이 강력한 거인이 완전한 지배자로 변모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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