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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후를 위한 눈물을 준비하자.

tim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5.01.06 01:28:04
조회 3129 추천 95 댓글 19
														


떠나지 않겠다던 정후를 달래는 조형사의 "정후야"에 정색하던게 생각난다.

정후야? 아줌마는 언제부터 날 그렇게 애틋하게 불렀어, 라고 반문하던 것도 생각나고.

난 이 대사에서 정후의 숨겨진 서러움 같은게 느껴져서 오래 남았다.

어른 말을 들으라는 조형사의 말에 어른? 누가 어른이냐고 반문하던 것도 그렇다.

상대적으로 쿨한 관계인 조형사에 대한 서운함만 있는게 아니라 

한때 함께 생활했고 자신을 훈련시킨 사부(그는 아버지의 친구이기도 하지.)에 대한 원망도 들어가 있지. 


차례차례 각자의 사연에 따라 자신을 떠나갔던 '어른'들을 마음에서 지워가며

정후는 어른에게도 인간에게도 자기 자신에게도 관심을 끊어왔다고 독백한다.

하지만 그건 끊고 싶다는 선언,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는 끊어야 한다는 다짐과 자기 암시에 가깝다.

영감탱이가 자기 생일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순간 아이처럼 들뜨던 그이니 말이니까.


사실, 정후를 제도권 밖의 삶, 위험천만한 힐러의 길로 이끈 것은 그 '어른'이다.

그의 아버지의 비운, 어머니의 젊음, 할머니의 수명, 학교의 무정함이 모여 만든 상황 아래에서 그의 삼촌인 기영재가 거든 결정이었다.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칭한 조형사의 시각에서도, 정후는 힐러 프로젝트를 위해 존재하는, 교체가능한 존재이다.

(물론 조형사가 '정후'의 안위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스탠스는 '힐러'의 존속만큼이나 '정후'의 안위를 위한 것이기도 하니까.)

아무튼 정후가 '어른'을 부정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고객들의 시각에서도 그는 너무도 당연하게도 소모품이다. 

위험한 물건의 배달 의뢰를 해결한 후에는, 처리 대상으로 손쉽게 전환될 수도 있는.

김문식이 그런 지시를 내린건 김문식 개인의 특성을 드러낸다기보다 그 바닥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의뢰한 갖은 어둡고 궂은 일들을 처리하는 심부름꾼에 대해 취하는 일반적인 태도일 것이다.

주연희가 말했듯이, 그들은 그런 존재들이다. 


'의뢰인 김문호' 역시 이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물론 김문호가 힐러에 대해 취하는 태도는 힐러라는 업무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비정하다 평할 수는 있어도 김문호가 택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지의 한 가지이다.

그러나 그가 92년 사건으로 잃어버린 조카인 채영신의 삼촌을 자임하고 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 사건으로 잃어버린 또 다른 조카인 서정후, 아니 힐러에 대해 그가 취하는 태도는 이 드라마를 움직이고 있는 아이러니의 핵심에 있다.

이 드라마를 움직이는 비극적 운명, 그 운명 안에서 서정후가 감당해온 몫은 '어른'의 유기이다.

그리고 유기되었는지 조차도 감추어져 있는 서글픔이다. 

(영신이 감당해온 몫은 한때 학대받고 숨겨져 있는, 우리가 잃어버린 어떤 가치라고 생각한다.

즉, 채영신은 잃어버렸음이 드러나 있는 존재이고, 서정후는 그 사실이 감춰져 있는 존재이다. 

마치 음과 양처럼 그들은 하나의 양면, 그래서 하나를 구성하는 존재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정후가 파주에서의 사건 뒤에 숨가쁘게 자신의 거처로 돌아와 

사부가 남기고 간 흔적들만을 허망하게 볼 수밖에 없었던 장면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드라마의 전개 안에서 그 장면은 서정후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사부의 답을 듣지 못하게 된 장면이기도 하지만

다가올 또 다른 삼촌 또는 '어른'의 유기를 시각적으로 잘 예고하고 있다고 본다.

대중 없이 파먹다 남은 케익, 야속하게도 여전히 김을 모락모락 피우고 있는... 남은 차.


정후는 자신이 새로이 유기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만

시청자인 우리는 이를 알고 있고 그가 느꼈어야 할 서글픔을 대신 느끼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슬픔을 안고, 내일 그가 스스로 얄궂은 운명에 갇혀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는 장면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얄궂은 운명에 어안이 벙벙한 사이, 그가 이 새로운 유기에 의해 위험에 처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물론 서정후에게는 운명으로 연결된 치유의 가능성, 즉 채영신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채영신의 존재로부터 아파할 것을 아는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채영신에 의해 그가 구원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 그 순간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우리는 그저 그를 위해 애달픈 눈물을 흘릴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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