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녀는 정신기생체가 바꾸어놓은 세상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가 바꾼 세상은 원래와는 제법 많이 달라졌지만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옛날 송나라의 이름을 끌어온 나라였다.
  
'와... 처음부터 패기넘치게 사방에 시비를 걸고 시작하네. 우리 기생체와는 다르게 화끈함이 있어!'

100년 가까이를 삼면전선을 꿋꿋이 버텨내는 마초스러움에 감탄을 했다. 하지만 이리저리 뒤에서 흑막놀이만 하는 재석이 때문에 지루해져서 조형서 시대는 대충 보고 넘어갔다. 진짜 재미는 그 다음이었다. 땅을 내려다 보려 하니 남쪽의 (탐보라) 화산재 때문에 뿌얘서 잘 보이지 않았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함성소리가 들렸다. 서양에서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이상한 것들만 배워온 놈들이 일으킨 난리였다.

"조가의 돼지들을 주살하라! 혁명정신에 대항하는 반동분자다. 더욱이 고려봉자들에게 도망가 군대를 끌고 오려 했으니 죽어 마땅하다!!"

"아니... 군대를 바라지도 않았고 난 그냥 목숨만..."

성난 군중들이 유약해보이는 남자를 향해 고함을 질렀고 그는 이내 목이 잘렸다.
  
"이제 우리는 우리 손으로 황제를 뽑는 새로운 나라를 만들 것이다!"

그리고는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끼리 서로 죽일듯이 싸워댔다. 그러면서도 외적이 쳐들어올 때는 잘 막아내니 신기했다. 그러나 10년이 못가서 정권이 바뀌니 머리가 아프고 짜증이 나 오스만의 장렬한 최후를 보러갔다. 돌아왔더니 새로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고 조선도 슬슬 위험해지는 것 같아 재석이에게 새로운 몸을 주어 내려보냈다.

"쫓아라. 쫓아서 혁명을 전파하고 오랑캐를 쫓아내어 진정한 중화를 이뤄내라!"

병사들을 진두지휘하는 땅딸막한 남자가 키 큰 병사들 사이에서 호령하고 있었다. 혁명 후에 일어난 전쟁에서 인기를 얻은 끝에 스스로 황제가 된 남자였다. 기가 막힌다고 밖에 말하지 못하는 몇번의 대승 끝에 황하까지 청나라를 몰아붙였지만 재석의 지원을 받은 끝에 청나라는 마지막 회전에서 승리하고 그 남자는 퇴위 당했다. 하지만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야말로 오랑캐들을 전멸시켜라!"

"황제 폐하 만세!"

그를 광신적으로 따르는 병사들이 분전을 벌였다. 그러나 조선이 300년동안 육성한 군대에는 당해내지 못했고 재석은 송나라의 옛 조씨를 데려와 제관을 머리에 얹어주었다. 그러나 그 조씨는 얼마 안가 쫓겨나고 새로운 중화민주공화국은 조선과 잘 지내나 싶었지만... ...

다음은 1,2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타이밍이었다. 중화를 부르짖던 장씨의 지도 덕에 민국은 주산진을 공격하며 일을 냈다. 처음에는 파죽지세로 공격했다.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살려만 주시면..."

"오랑캐 북적들에게 부역하던 이들은 모두 열등인자다. 죽여라!"

피를 보는 걸 좋아하는 천녀지만 장씨의 학살은 뭔가 꺼림칙했다. 정신을 못차리고 어버버 하던 한국도 재석이의 선동에 본격적으로 힘을 내 묵사발을 내주었다.
  
그런데 독일의 콧수염을 손봐주러 간 사이에 이변이 일어났다. 웬 빨갱이들이 혁명을 일으켜 간판을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바꾼 것이다. 그 후에 중공은 서나라에도 혁명을 퍼뜨렸고 자신감에 가득찬 모씨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8년 내에 영국을 따라잡고 15년 내에는 한국을 따라잡아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건설할 것이다!"

마을마다 용광로를 만들어 농기구를 녹였고 '저 새는 해로운 새'를 외치며 참새와 전쟁을 벌였다. 그러다가 대기근을 일으켜 수백만이 굶어죽었다. 그러자 모씨는 반동 탓을 하며 봉건(?) 잔재를 모조리 때려부쉈다. 그후로도 숱한 삽질을 반복하다가 결국에는 등모씨가 개혁개방을 하면서 사정은 나아졌다. 하지만 한국은 중공을 끊임없이 경계했고 감시를 당하면서 사육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에이 뭐야. 뭐가 있는 줄 알았는데 조형서 때랑 다를 게 없네."

천녀는 중국의 장대한 전쟁과 혁명의 시대를 그렇게 한줄로 평하고는 자러 들어갔다.


* 자유주의->나폴레옹 송나라 버전->파시즘->공산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