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트 1
큰 상자와 작은 가방이 언덕을 이루며 님프의 집 문을 가로막았다. 가방 사이로 지팡이 하나가 튀어나와 현관문을 두드렸다.
“크라우니 씨, 이건...... 당신 짐이에요?” 님프가 문을 열고 눈을 비비며 물었다.
“작별 인사를 하러 왔어요, 님프.” 크라우니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저는 그곳을 찾아가 보기로 결심했어요."
‘서술자’ 일행이 프레몬트에 의해 혼령 용광로에서 쫓겨나고 원래의 삶으로 돌아온 뒤, 그들은 어느정도 적응할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은 무슨 일에도 무기력했고, 어떤 사람은 문을 열 때마다 몸서리쳤으며, 어떤 사람은 장작 위에 냄비 얹어두고서, 불 피우는 것을 잊고 “밥이 다 됐다, 밥이 다 됐다.”라고 중얼거리기만 했다. 바벨의 의사는 그들을 진찰한 뒤, 이 증상들이 약물 치료가 아닌 심리 상담이 필요한 일종의 ‘용광로 후유증’이라고 요약했다.
크라우니의 증상은 가장 심각했고, 그녀는 전설 속의 땅속 깊이 가라앉은 카즈델이 줄곧 신경쓰였다.
“이번에는 정말 결심했어요.” 그녀가 눈시울은 붉었다. “저는 그 구체적인 방향을 꿈꿨어요. 눈을 감으면 그 거대하고 깊은 구덩이가, 제 영감의 우물이 보여요...... 저는 잊을 수 없어요, 잊을 수 없다고요!”
“네, 그 길이 순조롭길 바랄게요.” 님프는 하품을 하고 문을 닫으려 했다.
“잠깐만요! 더는 안 말리는 건가요?” 크라우니가 지팡이로 문을 막았다.
“오늘은 늦었어요......” 님프는 비틀거리며 자신의 침대로 걸어갔다. “공중 도시의 파티를 놓치겠어요. 이미 밧줄이 내려왔으니까 어서 올라가야 된다고요.”
그렇다. 님프의 증상은 졸음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이 잠들지 않고 카즈델이라는 이름의 공중 도시에 갔다고 주장했다.
“문제 없어요, 당신은 그들이 카즈델을 큰 구덩이 위로 운전하게 할 수 있으니까, 우리가 바로 뛰어드는 것도...... 큰일이에요, 리치가 왔어요. 어서 도망쳐요!” 크라우니는 계속 님프를 설득하고 싶었지만, 노드 용광로 옆을 지나가는 무서운 모습이 그녀에게 보였다.
“어라, 당신이 왜 여기에? 마침 잘 됐네요, 당신도 님프랑 같이 저를 따라오세요.” 에르망가르드는 크라우니의 손목에 아츠의 실을 묶어서 그녀가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고 님프는 중얼거렸다. “친절한 부인...... 저는 치료가 필요 없어요. 어서 그 파티에 가야......”
“그만 자고 일어나요, 님프!”
에르망가르드가 손가락을 튕기자, 님프는 곧 눈을 뜨고 그 자리에 멍하니 일어났다. 그 다음 리치가 손을 흔들었고, 문을 가로막고 있던 짐들이 모두 그녀가 들고 있는 큐브에 들어갔다.
“따라오세요. 다른 사람들은 다 왔으니까 당신들 둘만 남았어요.”
“에르미, 또 이러기야! 거의 다 됐는데...... 나는 그냥 한번 돌아가보고 싶은 거라고! 무슨 일이 있으면 나중에 얘기하면 안 돼?”
“제가 아니라 선생님이 당신들을 만나려고 하셔요.”
“선생님...... 프레몬트 씨가? 그, 그 사람이 또 뭘 하려고!” 방금 잠에서 깬 님프는 약간 짜증을 냈다. “그 사람이 우리를 안 쫓아냈으면 나는 이미 카즈델을 따라서 하늘 위로 놀러 갔을 거라고!”
......
“걱정 마라, 이번에는 실컷 놀게 둘 테니까.” 30분 뒤, 혼령 용광로 밖에서 에르망가르드의 보고를 들은 프레몬트는 님프에게 이렇게 말했다.
프레몬트의 얼굴에 드러나는 노여움의 기색에 님프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입을 삐죽거렸으며, 그저 팔짱을 끼고 발을 구르면서 몸을 따듯하게 했다.
“왜 이렇게 춥죠? 난방이 또 멈췄나요?” 크라우니가 물었다.
냄비를 들고 있는 펄이 생각해본 뒤 말했다.“어젯밤에 멈춰서 지금까지 회복되지 않고 있어. 이렇게 오래 멈춘 건 처음이야.”
“용광로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걸까?”
사람들의 시선이 프레몬트에게 쏠렸고, 이 덕망 높은 지식 성전의 관리인은 참지 못하고 그들을 꾸짖었다. “다 너희들이 들려준 이야기 때문 아니겠느냐?!”
“너희들이 용광로에 들어가서 함부로 건드리거나 괴상한 이야기를 했던 건 됐다고 쳐. 꼭 레버넌트들이 그렇게 재밌어하게 만들었어야 됐어?” 프레몬트의 입꼬리가 살짝 떨렸다. “지금 그 녀석들은 들을만한 이야기가 없다고 난리를 피우고 있어. 아침부터 밤까지 난리를 피우는 데다가, 감히 파업으로 나를 위협하기도 하다니...... 됐어, 내가 너희한테 설명해서 뭐해?”
그가 옷 소매를 흔들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곧 밧줄에 묶인듯이 용광로의 코어로 날아갔다.
“이번 한 번만 레버넌트한테 약속했지. 마지막으로 한 번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말이야!”
님프의 눈빛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그 말은...... 저희가 다시 탐험할 수 있다는 거예요? 다행이야, 공중 도시가......”
“큰 구덩이...... 님프, 들었나요? 제 꿈은 역시 이뤄질 거예요!” 크라우니는 펄의 어깨를 계속 흔들었다.
펄은 냄비를 껴안고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준비해두길 잘했어. 이야기 속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든 따듯한 밥을 먹을 수 있을 거야.
“저번처럼 이야기 속에서 허튼소리를 할 생각은 관둬라.” 프레몬트가 님프의 머리를 쳤다. “이번에는 내가 너희를 따라다니면서 지켜보겠어. 괜한 소리를 하는 녀석이 있으면 내가 바로 내쫓아버릴 거야.”
님프는 한 대 맞은 뒤에도 더욱 흥분한 것 같았다. “저는 저번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어요.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들떠있는 ‘용광로 후유증’ 환자들을 프레몬트는 자신도 모르게 째려봤다.
“마지막으로, 이야기가 끝나면 바로 나와. 레버넌트들이 너한테 뭐라고 하든 다음 이야기를 약속하지 말라고!”
파트 2
틴맨이 카즈델을 떠나던 날, 님프와 '서술자'들은 그를 배웅하기 위해 도시 밖으로 달려왔다.
그때는 모두가 아직 그 괴상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 같았고, 누구도 이런 자리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들은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성벽으로 돌을 나르다가 쉬던 일꾼들은 그들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저 바보들 좀 봐, 덥지도 않나봐. ”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역시 틴맨이었다. 그는 자신이 새로 산 스웨터를 자랑했는데, 가슴 부분에 작은 혼령 용광로가 수놓아져 있었다. 님프는 금속 몸체의 방열 성능은 역시 훌륭하다며 감탄했고, 크라우니는 그 스웨터가 자기 가게의 상품임을 알아봤다. 이 작별의 마지막에 님프는 모두를 대표해 틴맨에게 선물을 줬다. 그것은 이철로 조각된 '감자튀김'으로, 대형 용광로를 개축하며 나온 고철로 만든 것이다. 틴맨은 이 선물을 받고 웃음을 터뜨리며, 언젠가 적당한 몸을 찾을 수 없다면 감자튀김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그럼 안녕히 계시죠. 컬럼비아의 일이 끝나면 다시 와볼 텐데, 그때 카즈델이 저를 못 알아보지는 않았으면 좋겠균요." 틴맨은 말을 마친 뒤 파이프에 불을 붙이고 황야 쪽으로 걸어갔다. 그의 어깨에 기대 있던 세 명의 '틴프렌드'가 그의 모자를 빼앗아서 공중에서 던지며 놀았다.
한 달 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칼라이샤가 떠났다.
판잣집이 있던 공터에는 나무상자와 편지 한 통이 남아 있었다. 상자 안에는 작은 병에 담긴 연고 여러개와 화관 하나가 있었다. 화관의 주술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장신구였다. 칼라이샤는 편지를 통해 님프에게 그 연고들을 도시 바깥에서 새로운 이동 섹터를 확장하고 있는 나흐체러르 병사들에게 부내줄 것을 부탁했다. 칼라이샤는 죽은 동료들의 장례를 주관했으며, 이 연고는 살아 있는 이들의 피부가 짓무르는 고통을 덜어줄 것이다.
편지 말미에서, 칼라이샤는 틴맨을 배웅했을 때 같은 어색한 장면을 더 이상 겪고 싶지 않았다며 님프에게 용서를 부탁했다. 더 많은 나흐체러르들의 고통을 덜어줄 방법은 아직 사미에 숨어서 그녀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녀는 눈보라 속에서 카즈델 방향을 멀리 바라볼 것이다.
당시 님프는 용광로에 돌아가서 레버넌트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용광로 후유증도 가라앉았지만, 그 편지를 들고 있으면 코끝이 찡해졌다. 크라우니는 그녀를 위로하며, 괜찮다고, 적어도 선조들이 아직 있으니 그들 찾아가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 이야기 속에서 사미에게 달려갈 수 있다고 말했다.
얼마 뒤, 혼령 용광로의 개축 공사가 마침내 완료되었고, 레버넌트들이 그 용광로를 떠났다. 크라우니도 다시 짐을 쌌고, 이번에는 정말 떠나려 했다.
도시에 남아 있던 서술자들은 다시 성벽 아래에 모여서 동료를 배웅했다. 이때 성벽은 이미 새로운 방어 아츠 유닛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더 이상 그들을 비웃는 일꾼들도 없었다. 그래서 님프는 거리낌 없이 울음을 터트리며 크라우니의 소매를 붙잡고 외쳤다. “선조님들도 떠났는데, 당신도 떠난다니요!”
크라우니는 장미꽃 모양의 머리핀을 님프의 머리카락에 꽂아주고 가넷 목걸이를 걸어준 뒤, 몇 걸음 물러서서 자세히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 “울지 마요. 이건 제 최고의 최근 작품인데, 웃음과 함께해야 더 예쁘니까요.”
크라우니는 더 이상 그 전설 속의 사라진 도시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디자인 도면을 가지고 그 스포츠 의류 브랜드의 디자이너 자리에 지원하기로 했다. 그녀는 카즈델에서 기념품 사업도 하고 있기 때문에 실패해도 문제 없다고 했다. 하루가 다르게 도시가 변하고 있기에, 어쩌면 곧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질지도 모른다.
크라우니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카즈델에는 새로운 얼굴들이 많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들은 관광객이 아닌, 도시 밖 집거지에서 옮겨온 여러 종족의 감염자들이었다. 카즈델에는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빈 공간이 많으며, 넓어진 입체 농장은 더 많은 사람들을 먹여살릴 수 있다. 노드 용광로의 잿더미에도 전보다 더 많은 고구마와 감자가 묻혀 있다. 펄은 님프에게 번영하는 도시에는 언제나 이렇게 오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지금의 카즈델은 아직 번영한다고 할 수 없지만, 내일, 모레의 카즈델은 아직 알 수 없다.
님프는 머드락을 찾아서 언제 떠날 것인지 물어보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머드락의 뒤로 늘어선 집들, 벽돌로 둘러싸인 작은 채소밭, 그리고 흙 속에서 막 머리를 내민 채소 모종을 보았다. 님프는 결국 아무 것도 묻지 않았고, 커다란 상자를 그녀에게 건네주기만 했다. 그 안에는 크라우니가 펭귄 로지스틱스를 통해 전해온 최신식 작업 보호복이 있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지? 여기 머무를까? 아니면 떠날까?” 님프가 펄에게 물었다. 그녀는 펄을 도와 당에 있는 물건들을 손수레에 싣고, 로도스 아일랜드 사무실 옆에 새로 건설된 직원 숙소로 옮길 준비를 했다.
펄은 님프의 질문에 직접 대답하지 않고, 대신 수레에서 숫자가 적힌 노트를 꺼내 그 위의 표시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씨앗을 새로 심은지 얼마 되지 않았고, 지난 시기의 곡식도 아직 수확하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도시의 노인의 수는 크게 줄지 않았다. 이것은 적어도 그들이 밥과 따듯한 물을 먹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전체 인구에서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다소 줄었는데, 그것은 점점 더 많은 젊은이들이 카즈델에 몰려들며, 자신이 먹고 사는 것 외에도 도시가 더 나아지도록 도왔다는 것이다.
그녀는 레버넌트가 떠난 용광로를 바라보았다. 용광로의 겉모습은 예전과 다를 것이 없어 보였지만, 그 속에서 ‘아난나’가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에너지가 큰 용광로의 파이프를 흘러 각각의 노드 용광로에 도달한다. 님프는 약동하는 화염에서 도시의 숨결을 느꼈다. 이곳은 성장을 결코 멈추지 않는 도시다. 그 피는 오래됐지만 완강하다.
그리고, 도시에는 즐겁고 새로운 이야기가 이렇게나 많다.
파트 3
현관을 연 순간 틴맨은 한숨을 쉬었다.
엎어진 스탠드. 볼륨이 최대로 높여진 라디오. 공중에 떠 있는 감자칩 봉지. 욕실의 문틈으로 넘쳐흐르는 물. 묶여 있는 커튼. 눕혀져 있는 TV. 카펫 위의 책으로 만들어진 젠가. 뒤집힌 탁자. 구멍난 소파. 소파 구멍 속의 감자칩 부스러기.
틴맨의 얼굴에 표정이 드러나지는 않았다. 그는 문을 열기 전부터 자신이 직면할 일을 알고 있었다.
“어디를 갔다 온 거야?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내가 원하던 요구르트는? 고수 맛 맞지?” “뭔가 또 재밌는 게 있나?” “심심해! 놀러 가야겠어!” “이런 것도 음악이라고? 빨리 꺼!”......
“진정 좀 하시죠!” 틴맨은 꽉 찬 종이봉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한 명씩 말하세요!”
올드 콜리가 말했다. “말도 안 돼, 이제 요구르트를 사도 빨대를 안 준다니? 세상 풍조가 갈수록 나빠지고 있어!”
스몰 무어가 말했다. “모자 좀 빌려줘, 낙하산을 만들 거야!”
틴맨은 소파로 걸어갔고, 몇 번 망설인 끝에 앉지 않았다. “당신들은 그거면 충분할 텐데, 빅 래리처럼 조용히 있을 수는 없습니까?”
소파 위에서 쪽쪽이를 물고 있던 빅 래리가 째려봤고, 이어서 어둡고 웅장한 목소리가 틴맨의 머릿속에 울렸다. “입에 뭐 물고 있는 거 안 보여?”
“레버넌트는 말할 때 입을 벌릴 필요가 없잖아!” 올드 콜리가 화를 내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컬럼비아에 온지 며칠이나 됐다고 말하는 방법도 잊어버렸나봐? 못된 녀석!”
빅 래리의 우렁찬 목소리가 다시 울려퍼졌다. “레버넌트는 고수맛 감자칩을 먹지도 못하는데, 너는 적지 않게 먹었지.”
“뭐?!”
“그러니까...... 올드 콜리 바보 녀석! 나는 고수 맛 음식이 질렸다고! 리틀 무어, 너도 고수 안 좋아하잖아. 우리는 같은 편이야. 올드 콜리의 목을 묶어버리자!”
“문제 없어...... 잠깐, 도넛한테 목이 어딨는데?”
“그러면 구멍을 묶어버려!”
“하아——!”
“이 바보가! 눈(眼睛) 말고 구멍(眼儿)을 묶으라고!”
올가미가 공중에서 갑자기 틴맨의 모자를 향해 날아왔다.
“이봐요......” 틴맨이 손을 들어 올가미를 막았다. “이 가구들을 다 배상해야 될 텐데, 제 지갑을 생각해서라도...... 아니, 여러분의 감자칩을 생각해서라도 조금 평화롭게 있을 수는 없습니까?”
“이런, 위험했어!”
"들켜버렸나! 교활한 컬럼비아인!”
“낙하산 모자를 내놔라, 그러면 지갑은 살려주겠다!”
방금 전까지 몸싸움을 벌이던 세 사람은 순식간에 협동 전선을 이뤘다. 아니,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셋은......
핫도그 하나, 도넛 하나, 그리고 치즈버거 하나였는데, 그들은 모두 틴맨처럼 금속으로 되어 있었다.
“교활한 컬럼비아인이라면...... 당신들 말입니까?” 틴맨이 소파의 팔걸이에 걸터 앉았다. “여러분의 신분증 처리가 끝났습니다. 보시죠...... 어라, 어디 갔지? 빅 래리, 또 제 물건을 훔쳤군요!”
빅 래리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컬럼비아 여권 세 장을 공중에 던졌다. “네가 조심하지 않아서 잃어버린 것도 내 탓이야?”
“언젠가 주머니를 다 꿰매버려도 당신이 어떻게든 물건을 빼갈지 보도록 하죠.” 틴맨이 손짓하자 신분증이 다시 그의 손으로 돌아왔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아십니까?”
올드 콜리가 손에 든 지팡이로 틴맨의 무릎을 찔렀다. “그러면 우리 이제 당당히 길거리에서 놀아도 되는 거지?”
“그건 아직입니다. 당신들의 안전성 검사가 아직 진행중이에요.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마세요...... 제가 요즘 얼마나 많은 보증서와 설문지를 작성했는지 모르잖습니까.”
개척차 차림의 리틀 무어는 실망하며 허공을 걷어찼다. “하루 종일 이 폐가에 있으려니 답답해 죽겠다고! 나는 버든 비스트를 타고 다니면서 태양 아래의 결투를 할 거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곳은 폐가가 아니라 특별 보호 조치된 수용 기지입니다. 이곳의 물건들은 모두 많이 비싸죠...... 수도꼭지를 안 잠근 건 누굽니까? 어서 가서 잠그세요.” 틴맨은 눕혀진 TV를 힐끗 보고는 플러그를 뽑았다.
“개척자 영화랑 유치한 코미디 프로그램도 적당히 좀 보세요...... 여러분들은 모두 몇 천 살 된 늙은이들 아닙니까.”
“너는 안 그래?” 빅 래리가 바로 반박했다.
“거리는 저렇게 시끌벅적한데......” 리틀 무어가 블라인드 틈새로 한밤중의 거리를 둘러봤다. “우리는 이 폐가에 틀어박혀 있지.”
“......차라리 카즈델에 돌아가는 게 낫겠어. 용광로는 적어도 난방이 잘 돼서 따듯한 물이 끊기지는 않았잖아!” 올드 콜리가 말하면서 소파에서 뛰어오르자 욕실의 물소리가 그쳤다.
틴맨은 손등으로 피곤한 관절을 두드렸다.
“우리가 너를 따라나섰던 건, 콜롬비아는 정말 재밌을 거라고 네가 약속해서였다고!”
틴맨은 모자를 벗어서 자신을 부채질했다.
“돌아가서 녀석들한테 네가 사기꾼이었다고 알려야겠어!”
“누구에게 알리죠?” 틴맨은 모자를 빅 래리에게 씌웠다. 모자가 너무 커서 빅 래리는 두 손으로 챙을 받쳐야 했다.
“프레몬트에게 알릴 건가요? 위샤델에게 알릴 건가요? 아니면 그녀의 어깨 위에 있는 자에게 알릴 겁니까?”
틴맨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지금 카즈델은 새로운 삶을 맞이하고 있어요. 낡은 것들은 모두 새로운 벽돌로 주조될 것이죠. 당신들이 돌아가면 누가 당신들을 상대해주겠습니까? 그리고 당신들이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레버넌트들이 침묵에 빠졌다. 라디오의 경쾌한 소리가 유난히 귀에 거슬린다.
누군가가 혀를 차는 소리를 냈고, 라디오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에 잡힌 것처럼 순식간에 고철 덩어리로 변했다.
“150수표입니다. 당신들 용돈에서 깎도록 하죠.”
빅 래리는 손을 놓고, 모자가 흘러내려 자신을 완전히 덮어버리게 했다.
낮은 목소리가 다시 모자 안쪽과 방 바깥의 차원에서 점점 울려퍼지며 근심을 더해가기만 했다.
“......폐가, 폐가......”
올드 콜리와 리틀 무어도 박자에 맞춰 외치기 시작했다. “폐가! 폐가! 폐가 폐가 폐가!”
틴맨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쓰러진 TV를 일으켜 세우고, 플러그를 다시 꽂은 뒤 다이얼을 돌렸다. 호들갑스러운 코미디 트리오의 목소리와 과장된 효과음이 다시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모자 챙이 살짝 올라와서 천천히 TV 방향을 향했다. 틴맨은 모자를 집어서 다시 머리에 썼다.
“래리, 콜리, 그리고 무어.” 틴맨은 화면의 이름을 읽었다.
금속으로 된 핫도그, 도넛, 그리고 치즈버거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사실 그 용광로 위에 앉았을 때는 당신들을 데리고 나올 생각이 없었습니다. 용광로의 밖은 또다른 용광로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여러분과 나누던 중,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죠. 저는 제가 보거나 만났던 그 아름다운 것들을 모두 여러분에게 나눠주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보상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요? 아니요, 저는 당신들에게 빚진 게 없죠. 하지만 당신들은 분명 그만한 가치가 있어요.
과거의 기억은 이미 거의 다 타버렸으니, 없던 일로 치고 또 한 번, 새롭게 살아보는 게 어떻습니까.
이게 제가 그때 한 말이었죠. 말을 마친 뒤 기다렸는데, 용광로에서 나온 것은 당신들 뿐이었고요.” 틴맨이 웃었다. “당신들이 알아들었던 것일지는 모르겠지만요.”
“알아들었어.” 빅 래리가 말을 마치자, TV에서 갑자기 딩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래된 새로운 컬럼비아인들은 급히 고개를 돌려 화면을 바라보았다. 특색있는 세 명의 등장인물이 장엄한 재판에서 갑자기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첼로를 활처럼 써서, 첼로 활을 발사해 서기의 입에 집어넣었다.
“하하하, 저 사람은 너잖아, 올드 콜리! 또 사고쳤네!” 빅 래리의 굵은 목소리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닥쳐! 무례하기는! 나는 저렇게 바보같지 않아!” 올드 콜리는 화를 내느라 수염이 비뚤어졌다.
“네가 졌어! 돈 내놔!” 리틀 무어는 로프를 휘드르며 가차없이 위협했다.
올드 콜리는 화를 내며 중절모 밑에서 지폐 뭉치를 꺼낸 뒤, 몇 장을 주변의 레버넌트들에게 나눠주고 나머지를 모두 틴맨에게 건넸다.
“라디오 값이야. 남는 건 귀찮겠지만 고수맛 감자칩으로 바꿔줘...... 너희가 무슨 말을 할지는 아니까 입 다물어! 빅 래리, 리틀 무어, 고수가 금속과 닿으면서 생기는 그 놀라운 맛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너희 손해라고.”
틴맨은 웃으며 지폐를 받았다. “제가 일단 보관해 두죠. 며칠 후에 여러분을 데리고 가게에 갈 테니, 그때 직접 사면 됩니다.”
“네가 보관할 거면 이자는 하루에 0.5수표야.” 올드 래리가 고개를 돌려 화면을 바라봤다. “그래, 내가 드디어 이자가 뭔지 알아냈거든. 네가 알려주지 않으려 해도 소용 없어. TV로 뭐든지 배울 수 있다고.”
“문제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아직 저에게 청소비 200수표를 빚지고 있어요. 으음, 빚에도 이자가 붙죠.”
“폐가.” 빅 래리가 고개도 돌리지 않은채 재빨리 한 마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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