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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건너의 여인

프랑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29 11:3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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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성찰, 사랑, 추모 등 사람은 각기 다른 방식과 목적으로 일기를 쓴다.


누구도 보지 않음을 알고 진실만을 기록하는 이가 있는 반면


누군가 보게 될까 거짓을 기록하는 이도 존재한다.


이 사람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3월 1일


당히 대학교에 입학하고 오늘부터 독립하게 됐다. 계약한 집은 ’목화 아파트‘라는 이름의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다.


베란다 맞은편은 다른 동 아파트가 서 있고 그 뒤로는 푸른 산이 솟아 있다. 산의 전경이 아파트에 가로막혀 아쉽다.


그래도 없는 형편에 이 정도의 집이면 대만족이다.



※결혼 후 매일 남편의 폭력으로 힘든 날을 보냈다. 그러던 중 일하는 식당의 단골손님과 눈이 맞아 바람을 피우게 됐다. 그땐 괴로워서 도피할 곳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로 나는 사랑하는 아들과 떨어져야 했고, 빈 가슴의 시린 통증을 달고 살아야만 했다. 귀여운 아이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아들, 엄마는 우리가 15년 넘게 떨어져 살았지만 결국은 다시 만날 거라고 믿는단다.




4월 1일


기하게도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뚝뚝한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혼자 나가서 사는 내가 조금은 걱정이 된 모양이다.


사춘기 때 몇 번 다툰 후로 사이가 소원해진 것도 독립의 이유 중 하나인데, 떨어져 지내니 비로소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 같다.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아들이 되어야겠다.



※폭력의 고통보다 상실의 고통이 더 크구나.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뢰했던 흥신소에서 마침내 아들의 주소를 알아냈다.


아들, 네가 너무 커버려서 나는 너를 못 알아볼 테지만, 너는 나를 알아봐 줄 수 있겠지?




4월 21일


어붓는 비를 막기 위해 베란다 문을 닫으면서, 또 빨래를 널면서, 맞은편 아파트 복도에 서 있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럴 때마다 겸연쩍어져서 곧바로 눈을 피했다. 그 여자는 복도에서 뭘 하는 걸까.



※창문을 통해 본 그 아이는 내 배 앓아 낳은 내 자식이 분명했다. 천륜에 이끌린 덕인지 나는 아들을 알아봤다.


아들, 눈이 마주친 순간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를 말해주고 싶구나.




4월 28일


름칙하게 하루도 빠짐없이 맞은편의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우연으로 치부하려 했지만 더는 그럴 수 없다.


이젠 확신한다. 그 여자는 매일 복도에 서 있다. 빨간 드레스를 입은 채 가만히 우리 집 베란다를 응시하고 있다.



※다가가야 하는데 용기가 안 나서 매일 바라보기만 했다. 아들이 내게 여왕님 같다고 말해줬을 때 입고 있던 그날의 빨간 드레스를 입었지만, 아직 나를 못 알아보는 것 같아 쓸쓸하다.


아들, 엄마를 기억해 줘. 그리고 다시 만나줘.




5월 3일


리워진 커튼을 걷고 베란다로 나갔다. 그 여자의 목적 파악을 위함이랄까. 나는 손을 흔들어 보였다. 나를 보는 이유가 무엇이든 내 행동에 반응을 보일 것이었다.


여자는 내 손 인사를 보자, 입이 찢어질 듯 입꼬리를 올리고 나를 쳐다봤다. 기분이 나쁜 나머지 소름이 끼쳤다. 그런 불쾌한 표정 따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드디어 나를 알아봤다. 너무 기뻐서 날아갈 듯하다. 아들은 내게 손을 흔들어 줬지만, 표정은 무덤덤했다. 오랜만에 본 엄마가 아직은 낯설게 느껴지겠지.


아들, 그리움에 잠겨 숨도 쉬기 어려웠지만 오늘 네 손 인사만으로도 숨통이 트였단다.




5월 6일


케’는 애인을 위해 장미를 모으다 가시에 찔려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내게도 그런 납득하기 힘든 모순이 다가오고 있다.


오늘 집을 나서는데 그 여자가 맞은편 아파트 1층에 나와 있었다. 시간이 흘러 집에 돌아올 때도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그 기분 나쁜 표정을 지은 채로.



※아들을 더 가까이서 보고 싶어 오늘은 1층으로 내려갔다. 가까이서 보니 눈물을 참기 힘들었지만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들, 내일 보러 갈게. 만나서 인사를 건네고, 따뜻한 밥 한 끼라도 차려주고 싶구나.




5월 7일


을 넘었다. 그 여자는 선을 넘어 버렸다.


등교를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가 정말이지 심장이 멎을 뻔했다. 엘리베이터 앞에 그 여자가 서 있었다.


애써 모르는 척 그 여자를 지나쳤지만 내 심장 소리를 들었을까 겁이 난다. 집에 돌아올 때는 그 여자가 없었다.


아니, 나는 봤다. 우리 집이 있는 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비상계단으로 향하는 나풀거리는 빨간 드레스 자락을 말이다.


그 여자가 점점 다가온다. 내일은.. 그래. 용기를 내자.



※어제 그렇게 결심했건만, 막상 마주하니 심장이 멎을 것 같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들이 집에 돌아올 때라도 말을 걸려 했으나 두려운 나머지 도망치고 말았다.


내일은 기필코 마주할 것이다.. 그래, 용기를 내자.


아들, 내일은 꼭 너에게 갈게. 문이 열리면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너의 이름을 부르고 안아줄 테니, 너무 오래 걸렸다고 엄마를 미워하지 말아줘.




5월 8일


론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그 여자를 기다리며 초조해하던 때에 초인종이 울렸다. 끝내 올 것이 왔구나.


문을 열자마자 그 여자를 낚아채고 가슴에 깊은 자상을 안겨줬다. 끊이지 않고 두 번, 세 번...


그 여자는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뻥긋댔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이건 모두...



당신들이 자초한 일이야..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이 순경이 낯선 사람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낯선 사람이 횡설수설하고 있어 알아듣기 힘들지만


그가 입고 있는 땀에 젖은 셔츠가 그를 대변해 주고 있다.



그는 사건 현장에 들어오려 애쓰다가 힘이 빠졌는지 이내 주저앉는다.



윤 경위는 일기를 챙겨, 복도 바닥에 앉아 절규하고 있는 중년의 남성에게 건네준 뒤 서로 향한다.



가족과 선물을 주고받는 이달은



화목한 가정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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