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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탄] 제가 삭제한 글이 자꾸 되돌아오는데 어떡하죠?

Nevermor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7.16 16:38:20
조회 20084 추천 228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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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하세요, 일단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라앉히세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은 저희 히프노스 클리닉의 전문 분야이므로 안심하고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결코 헛소리나 정신 질환으로 치부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어떤 문제를 겪고 계시죠?


인터넷 게시판에서 삭제한 글이 자꾸 되돌아온다고요?


실례지만 쓰시는 글이?


취미로 괴담을 창작하거나 번역하시는군요.


재밌겠네요. 저는 유감스럽게도 겁이 많아 괴담은 못 보지만 마니아들이 많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괴담이 되돌아 온다는 뜻인가요? 게시판에서 삭제했는데도?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침착하게 말씀해주시겠습니까?






.....






제가 제대로 이해했나 확인할 겸, OO씨가 겪고 있는 현상을 정리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틀린 부분이 있다면 고쳐 주세요.




첫 번째, 사흘 전 괴담 게시판, 통칭 '나폴리탄 갤러리'에 글을 하나 적으셨죠. 주제는 터진 만두...


맛집의 만두를 먹다가 만두가 터졌는데 그 속에서 사람 손가락 끝이 나왔다’는 스토리인가요? 참으로 역겹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이런 거에 좀 약해서. 네? 기쁘시다고요. 그런 반응을 원하셨군요.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두 번째, 추천 수보다 비추천 수가 많을 정도로 반응이 별로라서 글을 삭제했고요. 이런, 창작의 고통이 인정받지 못하는 아픔을 겪으셨네요. 안타깝습니다.




세 번째, 글을 삭제하고 다섯 시간 뒤, 같은 제목의 글이 OO씨의 아이디로 올라온 것을 발견하셨죠? 내용은 조금 바뀐 상태지만 큰 줄거리는 같고. 어디가 어떻게 바뀌었죠?


오, 글의 마지막 줄에 ‘주방 창문 너머로 지켜보는 주방장’ 이 등장하니까 반응은 첫 글보다 더 좋아졌다, 하지만 개념글에 갈 정도는 아니었고요.


그런데 개념글이 뭐죠? 명예의 전당 같은 건가요? 그건 또 따로 있어요? 복잡하네요. 일단 본론으로 돌아갑시다.




네 번째, 어쨌거나 자기가 쓴 글은 아니라 기분 나빠서 삭제하셨고요. 그 후 네 시간 뒤, 또 같은 제목의 글이 올라왔네요. 이번에는 내용이 이렇게 바뀌었다는 거죠?


만두소에 손가락과 머리카락까지 추가'... 으, 비위생적이네요. 등장 인물도 이걸 보고 토하는 장면이 있었다니, 충분히 그럴 만 합니다.


사람들은 그 글에 호의적으로 반응해서 드디어 개념글에 등재되었으나, OO씨는 어쩐지 무서워져서 글을 또 삭제하셨고요.




다섯 번째, 글 올라오는 주기가 점점 짧아지는군요? 세 시간 뒤 같은 제목으로 올라온 글 내용은 이런 겁니까?


주인공이 손가락과 머리카락이 든 만두를 토하니까, 주방장이 식칼을 들고 주방에서 나왔다' 로 끝났다는 거군요. 상상만 해도 무섭네요. 그 커뮤니티 이용자들도 같은 반응이었다고요. 그러게요, 자기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주방장은 때로는 두려운 존재 아니겠습니까.


이번 글이 아까 글보다 반응이 훨씬 좋았고, 독자들이 왜 자꾸 삭제하냐고 물어서 솔직히 말씀하셨는데 '컨셉질 그만 하라'는 욕만 들으셨군요. 그래서 이번엔 열받아서 삭제. 재밌었는데




여섯 번째, 이건 아예 캡쳐를 해 두셨죠. 두 시간 뒤 같은 제목으로 올라온 글의 마지막 부분이 이겁니까?


어라? 주방장만 나오네요? 만두 가게 손님은 어떻게 되었을라나? 주방장은 콧노래를 부르며 고기를 다지고 있고, 가게에는 남녀 한 쌍의 손님이 와서 메뉴판을 보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네요.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는 이런 괴담 잘 못 보는데도 흥미진진합니다. 독자의 상상력을 마구 자극하네요. 구토한 손님의 삶과 죽음이 중첩되어 어느 쪽으로도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찝찝함, 이것이 바로 나폴리탄의 맛이군요.


죄송합니다, 본인이 쓰지 않은 글이 이렇게 좋은 반응을 얻는 게 싫으시다고요. 네, 그 심정 공감합니다. 그래서 이 글도 삭제 하셨군요. 아깝네요




일곱 번째, 이게 가장 최근 글인가요?


주방장이 청소를 하고 있네요. 슬픈 표정으로 바닥의 토사물을 치우고 있는 주방장...두 번째로 들어왔던 손님들은 보이지 않고, 마지막 장면은 가게 문이 딸랑딸랑 소리를 내며 열리는데, 손님의 정체는 드러나지 않은 상태로 주방장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는 것으로 끝나네요.


과연 누가 왔을까요? 정말 궁금한데요. 이 아래쪽의 숫자가 추천수인가요? 오, 100개가 넘어가네요. 칭찬도 잔뜩 있어요. 이런 명작을 쓰려고 지금까지 되먹지도 않은 걸 썼던 거냐- 이것도 칭찬 맞겠죠?


이 글마저 삭제하셨나요? 아이고, 클리닉 방문 직전에 삭제… 어째서죠?


글이 좋은 반응을 얻는 것보다 누군가가 자신을 사칭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싫으신 거군요. 뭐, 그럴 수 있습니다. 당연히 이해합니다. 말도 안 돼



그렇다면 이 글을 OO씨 대신 누가 썼는지 알아보려는 시도는 하셨나요?







정리해 보죠.


일단 OO씨는 원룸에 혼자 살고 계십니다. 사이트 관리자한테 물어봤는데 아이피는 OO씨의 집 컴퓨터, OO씨가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에도 글이 올라온 적이 있고요. 첫 번째 글이 올라온 직후 바로 비밀번호를 바꾸셨고, 그 뒤로도 수시로 바꿨는데 이 현상은 멈추지 않는 거군요.


가택 침입의 흔적은 없고, 키보드 지문까지 뜨셨다니 철저하네요. 하긴 집에서는 OO씨 지문만 발견되었을 테니 저한테 찾아오신 거겠죠. 블루투스 기기나 유선 키보드를 연결해서 사용한 흔적도 없고. 그런 것도 알아낼 수 있습니까? 아, 직업이…. 네, 알겠습니다.


저는 완벽한 상담을 추구합니다. 섣부른 결론은 내리지 않아요. 증거가 더 필요합니다. 만약 이런 현상이 또 벌어진다면 그 때 다시 와 주시겠습니까? 오늘 상담료는 받지 않겠습니다. 들려 주신 이야기가 워낙 재미있어서요.


네,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모쪼록 일이 잘 해결되어 다음에 뵐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2.



OO씨, 얼굴이 많이 상하셨네요. 삭제된 글이 개선되어 되돌아오는 현상 때문에 여전히 고통받고 계신다고요. 그게 고통인가요?


이번에는 어떤 글입니까? ‘TV속의 상어?’ 마치 다큐멘터리 제목 같네요. 저는 자연 다큐멘터리를 아주 좋아한답니다. 어릴 때부터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한 약육 강식의 세계를 동경했죠.


이번에도 처음은 ‘TV속의 상어가 자꾸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아 TV를 껐다' 는 식상한 내용을 쓰셨군요. 식상하다고 표현해서 죄송합니다만, 환도상어와 같은 몇몇 종은 원래 눈이 그렇게 생겼기 때문에 전혀 이상한 현상이 아니에요. 모르셨다고요? 앞으로는 자기가 이야깃거리로 쓸 소재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가져 보시는 게 어떨까 합니다.


이 글도 처음에는 반응이 없어서 삭제. 그럴 수 밖에


그리고 이번에는 얼마만에 글이 돌아왔죠? 세 시간? 지난번보다 빨랐네요. 내용이 짧기 때문일까요. 그 다음 내용이 이건가요?


웃지 않는 가오리’ 와 ‘수컷 무리만 있는 흰동가리' 의 등판이라, 이거 오싹하네요. 귀여운 니모, 아니 흰동가리가 왜 오싹하냐고요? 흰동가리 무리에 수컷만 남으면 그 중 가장 큰 개체가 암컷으로 성전환을 하거든요. 인간 사회에 대입해 보면…. 으, 불쾌한 상상이죠.


그런데 나폴리탄과 다른 괴담의 차이점이 그런 거 아닙니까. 확실한 결말이 없는 상황에 대한 불유쾌한 상상이 유발하는 근본 없는 공포.


저도 그 동안 공부를 했지요. 흥미가 좀 생겨서요.


다음 글의 캡쳐를 보여 주시겠어요?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모든 해양 생물들이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군요. 정확히 말하면 카메라 너머, TV 시청자를 보는 것처럼 묘사되고 있어요. 마치 이 글을 보는 독자를 날카로운 이빨로 갈기갈기 찢어놓겠다는 의지가 충만한…


필력이 굉장한데 이것도 삭제하신 겁니까? 어쨌든 OO씨의 사칭이니 불쾌하셨다고요. 네, 그렇군요. 왜 자꾸 그런 짓을?


마지막은 이겁니까? TV가 급하게 꺼지는 것은 원본 글이랑 똑같은데, 맨 끝에 아랫집에서 관리사무소에 전화하는 장면이 추가되었군요. 윗 집에서 물이 새는 것 같고, 이상한 비린내가 진동한다…


새로운 기법이네요. 상황을 직접 보여주지 않고 주변 인물들의 대화로 상상하게 만들었어요.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만족스러울 만한 열린 결말이네요. 이것도 지우셨다니 애석하네요. 당신이 쓴 것보다 좋은데 왜


이 뒤로 새로운 글은 올라오지 않았다는 말씀이시죠. 사칭범은 일단 글을 마무리짓고 나면 글이 삭제되어도 새 글을 쓰지 않는 것 같군요. 근데 이 자가 정말 사칭범 맞나요? 혹시 OO씨가 모르는 또 다른 인격이라던가- 


하긴, 그 가설은 지난번에 제외되었죠. OOO씨가 업무중일 때에도 글이 올라온다니 이중인격은 아니겠네요.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어요.


어차피 저 갤러리 이용자들은 OO씨가 ‘저것은 내 글이 아니다' 라며 삭제하는 걸 컨셉처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오히려 잘 쓴 글을 지운다며 화를 내고 있죠. 다시 말해, 글을 쓴 사람이 OO씨가 아니라는 걸 몰라요.


그런데도, 기분이 그렇게 나쁘십니까?


저들이 지금 칭송하는 대상은 글을 쓴 자가 아니라 OO씨인데도요? 물론 순수한 자기 창작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알겠습니다만, 이 세상에 과연 100% ‘순수'한 창작물이 있습니까? 아이디어는 온 세상에 먼지처럼 떠돌고 있고, 창작자들은 그걸 붙잡아서 자기 색을 덧입혀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음악을 만드는 건데요. 이 세상에 새로운 건 없다는 말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 과정을 본인이 한 게 아니라 화가 나신다는 겁니까? 그럴 능력은 있고요?



네, 알겠습니다. 맞아요, 저는 작가가 아니니까 OO씨의 심정에 완전히 이입하긴 어렵죠. 제가 해결책을 제시해주길 원하신다는 것도 압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해 볼까요? 저에게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려주세요. 제가 쓴 글을 삭제했을 때 다시 글이 살아난다면,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봐도 좋겠죠.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원인은 OO씨 쪽에 있는 거고요.


개인 정보 유출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께름직하시다면 변호사를 대동하여 법적 효력이 있는 각서를 써 드리죠.


좋아요, 그러면 오늘 밤에 제가 글을 하나 올리고 삭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기대되네요. 과연 제 글은 어떻게 고쳐질까요.








3.




3일만에 뵙네요. 아이고, 살이 더 빠지셨네요. 그 동안 마음고생이 심하셨던 모양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제가 작성했다 삭제해도 글이 되돌아오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혹시 몰라 다른 아이디도 생성해서 글을 적어 봤는데 그 글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죠. 오직 OO씨 아이디로 글을 적었을 때 글이 좀비처럼 되돌아와요.


소재요? 마침 좀비였어요. 묻어도 묻어도 되살아나는 아내의 시체가 어느 날 옆집 침대에 누워 있더라는… 옆집 아저씨랑 뭘 하고 싶었는지는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전 글 재주가 없는 모양입니다. 더럽다는 이유로 반응도 별로 안 좋았어요. 역시 OO씨가 아니면 안 돼요



아, OO씨도 다른 아이디를 만들어 보셨어요? 새롭게 만든 아이디에서는 이런 현상이 발생하지 않았다라… 오직 이 아이디로 쓴 글만 삭제해도 되돌아오는군요. 자의적으로 움직이는 생명체와 흡사해서 섬뜩하네요.


말로는 무섭다고 하면서도 웃고 있는 이유라… 


제가 상담 일을 제법 오래 했습니다. 아마 OO씨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전부터. 그런데 인터넷에 0과 1의 형태로 존재하는 가상의 개념이 '내가 글을 쓰고 싶다' 는 염원으로 움직이는 경우는 처음 봐요. 마치 그 갤러리에서 말하는 괴이 현상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지요.


결론이 왜 그러냐고 물으셔도, 아시잖아요. 모든 가설이 소거되고 남은 단 하나의 가설은 그것이 아무리 불가능해보여도 진실이라는 거. 저는 그렇게 주장하겠습니다.


못마땅한 눈치네요. 그렇다면 OO씨에게 명쾌한 다른 해석이 있습니까? 거봐요. 설명할 수 없다면 받아들여야 하는 겁니다. 아직도 불쾌하신가요? 아예 발상을 전환해 보는 건 어떨까요. ‘글이 삭제되는 현상이 싫어서 글을 새로 고쳐가며 발버둥치는 나폴리탄 갤러리 고정닉 괴이’, 나름 괜찮지 않아요?


웃기지 말라니, 말이 조금 심하시네요.


OO씨, 어제도 새로 글 쓰고 지우고, 올라오면 또 삭제하고, 그랬던 거 알아요. 제가 썼던 좀비 글이 완전히 삭제되고, 그 뒤에 '피흘리는 인형'소재의 글이 올라왔죠. 왜 놀라시죠? 저 요즘 그 사이트, 항상 보고 있는데.


결국 당신도 쓰레기 그저 반응이 고팠던 것 뿐이에요. 정곡을 찔렸나요? 아니라는 말은 못 하시네요. 


하지만 제가 이 난감한 상황을 해결하지 못한 건 사실이니까, 오늘도 상담료는 받지 않겠습니다.




대신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앞으로도 그냥 저 아이디로 뻘글이라도 쓰고 삭제하는 행동을 반복해주시면 안 될까요? 네, 무례한 부탁인 거 압니다. 그런데 한 번 삭제되었다가 고쳐진 상태로 올라오는 글이 너무 흥미로워서요. 문자 그대로 환골탈태 아닙니까.  가둬놓고 글만 쓰게 할 수도 없고


아마 저 말고 낲갤 유저들도 비슷한 생각일 거에요. 지난번 글에 달린 리플들 봤죠? 재미있는데 왜 자꾸 지우냐고, 글 계속 쓰라고, 캡쳐본이라도 올리게 해 달라고. 명작선 보내 주겠다고. 


맞아요, 저와 그들에게 중요한 건 OO씨 본인이 아니에요. 저도, 그들도 OO씨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요. OO씨 아이디로 올라오는 완성도 높은 괴담이 중요한 거죠. 그 글을 쓴 주체가 OO씨이든 아니든 상관 없어요. 어차피 찬사는 OO씨가 받게 되는 건데, 뭐가 문제죠?




이런, 그럴 생각 없으시다고요?


거짓 찬사를 받느니, 글 쓰는 걸 그만두시겠다고요?


인간은 참 이해하기 어렵네요. 그렇게 갈구하던 관심을 이제야 얻었는데, 양심의 가책이 느껴져서 싫다니. 


아쉽게 됐네요. 당신의 아이디가 쓴 글 정말 재미있었는데


아이디 자체를 영구 삭제하시겠다니, 참으로 유감입니다. 가둬놓고 글을 쓰게 하는 게 안 될 이유가?




어쨌거나 OO씨에게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나가는 문은 저 쪽입니다.






... ... 






문이 안 열린다고요?


그렇다면 - 정상입니다.






OO씨 덕분에 나폴리탄 괴담에 빠지게 되어서요,

저도 규칙서에서 자주 쓰는 클리셰를 써 봤어요.

직접 겪어 보니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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