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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해서 수련원에서 살아남기 : 2일차(1)

Nevermor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7.27 20:12:49
조회 10300 추천 85 댓글 16
														




[시리즈] 해서 수련원에서 훌륭해지세요
· 해서 수련원에서 살아남기 : 1일차




1. 수련원에서의 첫날 밤



난 타고난 운이 없는 편이다.



- 파란 모자가 주사위 게임 시킬 때 '이거 왜 해요?'라고 물으면 딴 거 할 수 있음. 단 두 번은 안 통함!



야간 프로그램 종료 후, 욱신거리는 손가락을 교관이 준 붕대로 대충 감고 기숙사 방에 들어왔다. 넣을 것도 없는데 습관적으로 열어 버린 옷장 문 안쪽에서 선배 수련생이 남긴 팁을 발견했을 때는 헛웃음만 나왔다.


이런 거였다. 생각할 가치도 없는 문제였다.

파란 모자가 주사위 게임을 요구했을 때,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려서 낸 답은 처참한 오답이었던 거다.



'저녁 식사 시간이 끝났다. 야간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내 곁으로 날아온 교관은 사람의 형태조차 갖추지 않았다. 키가 나만 한 거대한 흰올빼미가 파란 모자를 쓰고 말을 한다. 난 칼날처럼 날카로운 발톱과 거기 묻어 있는 벌건 살점 따위를 쳐다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따라와라. 주사위 게임이다. 일종의 레크리에이션이다.'



그는 강당 쪽으로 날 안내하며 말했다. 레크리에이션이라는 단어의 가벼움과는 반대로 내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런 건 젬병이다. 주사위의 저주라도 붙었는지 던지면 3 이상의 숫자가 나오는 법이 없어 친구들이랑 부루마불을 하면 늘 1호 파산이다.


그래서 잃을 것 없는 도박을 걸어 보았었다.

원장 왈, 파란 모자의 지시는 단 한번 되물을 수 있다고 했다.


사람들이 상대의 지시에 반문하는 원인은 대략 세 가지다.

못 들었거나, 못 믿겠거나, 못 하겠거나.


이 셋 중 어느 경우도 아니라면,

또는 세 가지 모두 해당한다면 교관은 어떤 식으로 반응할까.

난 강당까지 가는 동안 끊임없이 생각하며 자신을 세뇌했다.



주사위는 무엇인가, 주사위 게임은 무엇인가, 주사위 게임은 게임인가 주사위 게임이 아닌가, 주사위 게임은 실재하는가 허상에 불과한가, 주사위 게임은 교관이 일으킨 감각적 착각인가, 이 허구의 세계에 있는 주사위 게임도 허구라면 실존하는 나는 허상뿐인 주사위를 던질 수 있는가-



'교관님.'



파란 모자가 강당 문손잡이에 날개를 갖다 대었을 때 그를 정중히 불러세웠다.



'제가 해야 하는 프로그램이 정말로 주사위 게임 맞습니까?'



올빼미, 아니 파란 모자는 바로 대답했다.



'그렇다.'



결과는 당연히 나의 패배였다. 두 번을 내리 패했다. 그나마 '교관님 같은 깃털 부자는, 머리카락이라는 가느다란 털이 나약한 인간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모릅니다'라고 냉철하게 설득해서 왼쪽 약지 손톱과 머리카락으로 때운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내 머리카락을 가져가면서 파란 모자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인간치고 제법 똑똑하구나. 하지만 잊지 말아라, 언젠가는 네 오만이 네 목에 올무를 걸지도 모른다는 것을.'





[1일차 야간 훈련 특이사항]


+ 수련생 4번 '고깔 오래달리기' 1위 +100

- 수련생 9, 11번 프로그램 3회 연속 실패, 탈락

- 수련생 1번 '자아 찾기'도중 □■□□, 탈락




-----




"째깍, 째깍"



죽도록 피곤해서 방을 조사할 기운도 없었다. 화장실에서 대충 씻고 침대에 드러누웠더니 천장에서 돌아다니는 까만 형체가 보인다. 냉면 대접만 한 타란툴라 등에 시계가 붙어 있다. 저것이 생물인지, 정교하게 만들어진 기계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의심하고 있는데, 그것이 갑자기 허공에 글씨를 띄운다.



[소등 5분 전]



혹시 의사소통도 가능할까? 질문을 하나 던졌다.



"시계야, 다른 수련생들도 이 기숙사에 같이 있어?"



삐- 경고등이 울리며 허공에 글자들이 만들어진다.



[규칙 위반, 벌점 1점.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자유 시간에 기숙사 밖으로 나가면 어떻게 돼?"


[규칙 위반, 벌점 1점. 에슬라프와 마주치지 마라]



- 발견한 규칙 : 알람 시계와 대화 가능, 대가는 벌점 1점



벌점 10점은 특별 교육 이수라고 했다. 그러나 9점까지는 별다른 페널티가 없는 것 같다. 벌점을 잘 관리하면서 이 녀석에게 유용한 정보를 끌어내야겠다.


푹신한 베개에 머리를 묻었다가 모로 누우려고 고개를 돌렸다. 침대 헤드로 가려지는 벽에 까만 글씨 같은 것이 보였다. 읽어볼까 하고 눈을 가늘게 뜨는 순간, 취침나팔 소리와 함께 모든 등이 꺼졌다. 아침에도 자유시간이 있으니 선배들이 남긴 메시지는 그때 확인해야겠다. 나는 거미가 불러 주는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바로 잠이 들었다.


그래서 밤새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우리들 중 오직 나 뿐이었다.





{2일차}




2. 숫자 놀이



- 빠빠 빠빠라빠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군대 기상나팔 소리가 들리기 직전 눈이 떠졌다. 6시 20분이 되자마자 얼굴로 뛰어들 준비를 하던 거미 알람은 내가 데카르트의 명제를 읊으며 몸을 일으키자,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몸짓으로 책상 위에 풀썩 떨어졌다.


어제는 피곤해서 방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다. 여기도 조사할 것이 많은데 아침에 주어지는 여유 시간이 고작 30분이면 너무 빡빡하다. 난 남은 벌점을 대강 계산해본 후 거미 알람에게 물었다.



"시계야, 만약 기상 시간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면 어떻게 되지?”



삐- 벌점 1점 추가. 거미는 앞다리를 몇 번 움직이더니 허공에 글자를 띄웠다.



[밤에 일어나면 너도 밤이 된다]


“밤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해?"



삐- 어느덧 벌점 4점째. 거미는 곧 응답했다.



[6시보다 빨리 일어나지 마]



너무 일찍 일어나도 곤란해진다. 빡빡한 수련원 같으니. 거미에게 혀를 내밀어 준 다음 5분 만에 씻고 나와 새 수련복을 입었다. 소중한 자유 시간 동안 방에 적힌 메시지들을 확인하고 싶었다.


가장 먼저 책상 옆 책장을 살폈다. ‘억압으로 얻는 진정한 해방’ ‘생각의 자유는 안식의 끝’ ‘모호함 속의 명확함’따위의 이중사고 제목이 적힌 검은 책 일곱 권이 꽂혀 있다. 그중 제일 수상해 보이는 ‘모든 진실은 거짓이다’ 책을 꺼내 펼쳤다.



“이게… 뭐지?”



세계사 교과서에서 봤던, 상형문자와 쐐기 문자를 섞은 듯한 알아볼 수 없는 글자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계속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매직아이처럼 둥둥 떠오른 글자들이 머리를 내려찍는 것 같다. 속이 울렁거린다.


본능적으로 책을 덮고 속표지를 살폈다. 책 껍데기의 날개 부분을 열어 보니 과연 볼펜으로 적힌 몇 개의 단어가 있었다.



:: 삶과 경계의 죽음

:: 진실 바탕의 거짓

:: 창조 저편의 종말



마치 어떤 암호처럼 보인다. 해석할 시간은 없어 단어 조합들만 유인물에 옮겨 적었다. 내친 김에 다른 책도 후루룩 넘겨 확인했으나 글귀가 적힌 건 이 책 뿐이다.


그때, 천장의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나왔다.



[아침 체조 시간 30분 전입니다. 수련생 여러분께서는 7시 10분까지 운동장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 새로 알아낸 사실 : 원장이 안내하지 않은 프로그램이 있다



아침 식사까지 시간이 붕 뜨기에 무슨 일이 있을 것 같긴 했다. 하필 체조라니, 끔찍한 아침 식사를 입에 넣기 전 배라도 고프게 하려는 최소한의 배려인가. 한숨을 쉬면서 물기가 남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었다. 맨들맨들한 두피를 만지며 절망하고 있을 때 지직거리는 스피커가 몇 개의 숫자를 말한다.



[8과 5, 4와 9, 12과 1]



더하면 13.


아침마다 생존자의 숫자를 안내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몇 번째 조합이 생존자와 사망자의 비율일까. 잊기 전에 종이에 옮겨 적었지만 아무리 들여다봐도 모르겠다.


유인물을 수련복 주머니에 넣고 손가락의 붕대를 다시 감다가 중요한 할 일을 생각해 냈다.



“맞다, 침대에 글자 있었지…?”



기숙사 문은 7시에 닫힌다고 했다. 시계를 확인하니 6시 45분, 10분 가량의 여유가 있다. 글을 가려 놓은 베개를 치우고 침대 헤드 옆에 빼곡히 적힌 글을 확인했다.



[7일 차다. 날짜 잘 확인해.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어서 몇 자 적어 본다. 방법은 없어. 여기서 살아 남으려 발버둥 쳐도 혼자 있는 상태로는 아무 것도 못 해. 살아 있는 애들이랑 정보 공유 열심히 해. 남아 있는 수련생들과 협력하는 미션도 있어. 탈출의 열쇠 같은 거야. 훈련도 빼먹지 말고 열심히 받아.]

[가짜 사감이 문 두들긴다, 저 새끼가 진짜-]



글은 여기서 끊겨 있다. 뒤로 갈 수록 급히 휘갈겨 쓴 걸 보니 이 사람은 여기까지가 끝이었던 모양이다. 더 자세히 읽어 보려 하는데 거미 알람이 눈앞으로 기어와 알짱댄다. 06:57분, 더 이상 지체할 여유가 없어 일단 아래층으로 뛰었다.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기숙사 문이 등 뒤에서 철컥 잠겼다. 이 문은 앞으로 12시간 30분 동안 열리지 않을 것이다.






3. 소통 - 2



체조 시간에는 놀랍게도 진짜 국민 체조를 했다. 교관이 진행하지도 않았다. 운동장 한 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TV에서 나오는 체조 영상을 보고 혀를 끌끌 차다, 몸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 했더니 상점 1점을 받았다. 거미에게 정보를 얻고 접근 금지 구역을 조사하다 보면 벌점은 반드시 쌓인다. 특별 교육을 피하려면 상점을 잘 모아두는 것도 중요하다.


부글부글 끓는 녹색 수프에선 괴상한 비린내가 나고 구운 버섯은 입 안에 넣고 씹을 때마다 비명을 질렀다. 그래도 여기 와서 먹은 것들 중 가장 사람 음식에 가깝다. 깔끔하게 비웠더니 상점 +1. 아무래도 요리사는 내가 몹시 마음에 드는 것 같다.


식당 앞, 게시판 옆 깨끗해진 칠판에 새 글자들이 토독토독 적힌다. 오늘은 저들끼리 떠들게 놔둬 봐야겠다.



안녕 신입들? 난 5일 차에요. 첫날 밤에 잘 잤나요? 이제 앞 숫자가 2로 바뀌겠네요!

   ㄴ 6-7 우리 기수 나 하나ㅋㅋ 망함ㅋㅋ 수료 당할 듯

      ㄴ 5-3 니가 제일 빨리 뒤질 줄 알았는데 까비

      ㄴ 얘 ㄹㅇ 생존왕이야ㅋㅋ 근데 나날이 훌륭해지는 게 좋은 건지 모르겠음.


2-3 밤새 이상한 소리 들려서 잠을 못 잤어요.

   ㄴ 2-5 어, 저도 들었는데 바로 잤어요.

   ㄴ 2-4 소생도 들었소. 부끄럽지만 약간 두려움을 느꼈소.

   ㄴ 2-10 .

   ㄴ 6-7 무시하셈 지가 사감인 척 하는 놈임


2-7 …x고 싶다

   ㄴ 그거 마음대로 되는 거 아니다.

   ㄴ 2-12 저도 밤에 그 소리 듣고 x고 싶어졌어요…

   ㄴ 2-8 이러지들 마십쇼! 살아 나가야 함다! 그깟 소리는 정신력으로 이겨낼 수 있슴다!!



소리? 무슨 소리?


아무 것도 못 들었는데? 라고 적으려다 다른 내용을 썼다.



■ 2-13 정말 무섭더라고요. 방에서 당장 나오라고 하지 않았어요?

   ㄴ 2-5 아뇨? 전 노크 세 번이었는데 규칙 떠올리고 그냥 잤어요.

   ㄴ 2-8 방 밖에서 누가 흐느껴 울지 않았슴까?

   ㄴ 2-12 까마귀가 친구 목소리로 계속 울었어요...

   ㄴ 2-4 허허, 모두 다른 소리를 들은 것 같소. 소생은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를 들었다오.


매일 그러진 않으니까 너무 걱정 말아요. 소리에 이끌려 방 밖으로 나가지만 마세요.

   ㄴ 6-7 ㅇㅇ 안 들리는 날이 더 많음



나 빼고 전원이 다른 소리를 들었다. 아침 일찍 수련원 측에서 방송한 마지막 숫자 조합의 정체는 이것일까. 밤에 '소리'를 들은 자와 못 들은 자. 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어 머리가 아프다.


아침 휴식 시간 종료를 1분 남긴 시점이었다. 수련생들의 대화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점만 찍던 10번이 드디어 칠판에 뭔가를 적었다.



□ 2-10 거짓말. 못 들었잖아.



등줄기에 차가운 물이 확 끼얹어진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오전 체력 단련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야외 훈련장으로 이동하여 밧줄 타기부터 시작!”



내 앞에 빨간 모자가 나타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 쥐고 있던 분필을 칠판 밑에 던지고 교관을 따라갔다. 손안에서 두 동강이 난 분필은 먼지투성이 땅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2일차 오전 훈련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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