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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탄] 현실과 괴담 속 세계를 이어주는 노트모바일에서 작성

ㅇㅇ(211.106) 2026.02.11 23:09:27
조회 11831 추천 5 댓글 1
														





[첫 번째 메시지]



기억이 안 나.



당신은 조잡한 손글씨를 의아하게 내려다봅니다.


막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대형 마트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당신은 언제나 펜과 노트를 들고 다닙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노트를 사용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당신은 이런 말을 남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동료나, 당신과 친해지고 싶었던 누군가의 장난일까요?


심심했던 당신은 펜 뚜껑을 열어 짧은 답변을 휘갈깁니다.



누구야?







[두 번째 메시지]



모르겠어... 그것도 기억이 안 나.

미친놈 같은 거 아는데 이상하게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



기억상실증?ㅋㅋ

무슨 장난이냐? 그리고 진짜로 누군데?







[세 번째 메시지]



기억상실증이 뭔데? 만약 지금 나처럼 아무것도 기억을 못 하는 상태를 말하는 거면 맞는 거 같긴 해. 내가 누구인지, 내가 지금 갇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여기서 어떻게 나가는 건지, 바깥에는 뭐가 있는지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 



노트 하루종일 내 사물함에 넣고 비번 걸어 놨는데 어떻게 적은거냐? 신기하긴 하네...

속는 셈 치고 말하는건데, 니가 장난치는 게 아니면 지금 좀 위험한 상황인 거 같다.







[네 번째 메시지]



장난 아니야. 그러는 너는 누군데? 너야말로 나를 비웃고 있는 거 아니야? 어디서 보고 있는건데? 감시하는거임?



내가 너를 감시하거나 하는 게 아니고...

저번부터 내 노트에 니 메시지가 그냥 생기던데? 거짓말 하는 게 아니면 지금 어떤 상황인 건지 자세히 좀 말해봐







[다섯 번째 메시지]



믿어도 된다고 생각할게.

사실 너가 누구든 그냥... 너무 절박하다 지금

맹세하는데 절대 거짓말 아니야.


나는 지금 미로같은 공간에 갇혀 있어.

한참 돌아다녔는데도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넓다.

그리고 엄청나게 추워.


빛이 없어서 주변을 살펴보는 거 자체가 힘들긴 한데, 사각형 수천개, 아니 수만개가 일정한 간격으로 쌓여 있어.

안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있는 건지 모르겠다.

근처에는 가끔씩 나타나는 그것들 말고는 나밖에 없는 것 같아. 


너는 아마 밖에 있는 것 같은데 제발 나 좀 도와주라.

여기서 나가고 싶어... 제발



방금 메시지가 나타나는? 생기는? 뭐라 해야되냐?

어쨌든 니 글씨가 갑자기 나타나는 거 봄. 아무것도 없던 페이지 위에.

잠깐 한눈 판 사이에 글씨가 적혀 있더라. 그것도 한 페이지 꽉 채워서 빽빽하게.

니 말대로 이건 뭔가 상식이랑은 다른 일 같다. 믿을게


니 말대로 내가 있는 곳은 그 미로가 아니다. 정상적인 세계야.

아마 니가 있는 곳은 흔히들 말하는 괴담 속 세계랑 비슷한 상황 같고. 내가 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긴 한데 최대한 탈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게.


우선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고, 어떤 상황인지, 주변에 나타나는 규칙 같은 게 있는지 관찰해서 말해봐. "그것들" 이라는 건 뭐야?







[여섯 번째 메시지]



도와주기로 해서 진짜, 진짜, 진짜 고맙다...

나 혼자서 진짜 돌아버리는 줄 알았는데... 너랑 얘기를 좀 하니까 그래도 살 것 같다.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꼭 보답할게.


"그것들" 이라는 건 나도 뭔지 모르는 것들이야.

하루에 세 번 정도 들어와서 헤집고 다니는 놈들인데 일단 인간이 아닌 거 하나는 확실하다. 그것들이 올 때가 여기 유일하게 빛이 생기는 때고.


한번에 하나, 많게는 셋까지도 같이 움직이는데 다행인 건 절대 미로 벽 아래는 안 살펴보더라. 미로 벽 아래에 좁은 공간이 있는데 거기 엎드려서 버티는 중이다. 그게 지나간 다음에는 바닥에 물기가 남기도 하고, 가끔씩은 사각형 구조물들 위치가 바뀌기도 함.


그리고 괴담이라는 게 뭔데?



일단 그게 뭐든 위험한 건 맞는 것 같네.

앞으로도 조심해라 그건...

이런 상황에서는 저런 건 절대 안 마주치는 게 국룰임.

괴담이라는 건 그냥... 전형적인 지금 니 상황이야.

어떤 특정한 규칙을 따르거나, 조건을 만족해야 탈출할 수 있고 실수하면 죽는 상황.


일단 지금까지 우리가 알기로는 그쪽 세계랑 이쪽 세계를 이어주는 매개체는 이 노트밖에 없어. 그리고 오늘 알아낸 건데 노트에 적힌 글은 시간이 지나면 전부 없어지는 것 같다.


지금까지 우리가 주고받은 내용을 보려고 했는데, 지워진 자국도 없이 깔끔하게 다 사라졌어. 살펴보던 중에 어제분 메시지가 없어진 걸 보면 24시간 주기같음.


최대한 하루 안에 많은 연락을 해야 되니까, 앞으로 최대한 바로바로 답장하면서 하루 안에 많이 연락할 수 있게 하자. 나도 일할 때 아니면 계속 확인하겠음. 







[일곱 번째 메시지]



나도 그러고 싶은데, 이 펜 잉크가 거의 안 남았어. 처음에는 반 정도 남아있었는데 벌써 3분의 1 정도로 줄었다. 그래도 니가 보내는 메시지는 바로바로 읽을게.


여기 들어온 지 얼마나 된 건지 이제 감도 안 잡힌다. 멀리서 계속 일정한 간격으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데, 사실 물방울인지 뭔가 입으로 내는 소리인지 잘 모르겠어. 어쨌든 이 소리 기준으로 시간을 재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



잘 하고 있네

주변에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는 건 없냐?

찾는다고 무조건 먹지는 말고







[여덟 번째 메시지]



야 너무 춥다.

식량이 없긴 한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추위 때문에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여기서 죽는 건 아니겠지?



정신 차려

식량이 없으면 종이나 어떤 형태로든 정보를 전할만한 기기같은 건 없어?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수칙서 같은 게 있는데







[아홉 번째 메시지]



종이는 이 노트 말고 못찾겠어.

그리고 말 안되는 건 아는데 멀리서 사람 목소리 같은게 계속 들리는 것 같다. 뭐라고 계속 소리를 쳐. 세 음절인데 이것들이 꼭 내 이름을 따라하는 것 같음. 그럴 리 없지만 꼭 나를 찾는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최대한 멀리 떨어져. 그 소리 계속 듣고 있지 마.

위험할 거 같긴 한데 계속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나갈 방법을 찾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열 번째 메시지]



인간 형태의 뭔가가 돌아다니는 걸 찾았어. 아마 이 장소의 관리자 비슷한 것 같다. 

생긴 건 멀쩡해. 그런데 손에는 뭔가 새빨간 걸 들고 있다. 



가까이 가지 마

혹시 몰라서 괴담 사이트 위주로 찾아보는 중인데, 관리자라는 거한테 들켜서 좋은 꼴 나는 경우가 없는 것 같다. 







[열한 번째 메시지]



날고기 찾았어. 갈고리에 걸려서 한 줄로 매달려 있어. 어디까지 줄이 이어진 건지 안 보임.

내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겠지?



그냥 지나가라. 먹을 생각은 하지도 말고. 







[열두 번째 메시지]



칼 찾았다... 미로 벽에 채워져 있는 사각형 모양 벽돌같은 것들 중에 윗부분이 열려 있는 것들이 있더라고. 하나 찾아서 피를 좀 냈어. 임시방편인건 아는데... 마시니까 따뜻하고 목도 덜 마른 것 같다...



미친놈아 하지마







[열세 번째 메시지]



고마워. 잠깐 제정신이 아니었나보다. 옷으로 지혈함. 근데 너무 추워

충분히 멀리 온건지 관리자도 안 보이고, 이제 물 소리도 안 들린다. 빛 쏘는 그것들도 이제 안 지나다녀. 그런데 가면 갈수록 이상하게 점점 더 추워지는 것 같다... 잉크도 거의 다 써가



조금만 더 버텨봐... 큰 도움 못 돼서 미안하다... 

나도 마음 같아서는 도와주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







대화는 여기서 끝났습니다.


벌써 하루가 지났습지만, 이후로는 연락이 오지 않고 있습니다.


새 메시지를 기다리던 당신은 한숨을 쉬고 노트를 내려놓습니다.


이 사람을 구할 방법이 있긴 한 걸까요?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당신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괴이도, 조건도 없이 적막하기만 한 괴담 속에 갇힌 사람을 구한다는 것은 너무나 막막한 일입니다. 


당신은 무거워진 마음으로 몸을 일으켜 창고로 향합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노트와 펜을 챙긴 채 식품 창고 문을 연 당신은 정리를 시작합니다.


대형 마트인 만큼 상상 이상으로 넓은 이곳 창고를 정리하려면 몇 시간은 추운 창고 안에서 일해야 합니다. 


하지만 내일부터는 연휴가 시작되고, 직원들은 모처럼 긴 휴가를 받습니다.


오늘 일이 끝나면 당신도 조금은 쉴 수 있겠네요.


그럼 괴담 속 친구를 도울 방법도 조금 더 깊게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창고 정리를 하는 동안 무슨 일이라도 생기진 않겠죠?


무의식적으로 당신은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바라봅니다.


잉크가 가득 차 있던 당신의 펜에는 어느새 잉크가 절반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왠지 모르게 당신은 기분 나쁜 느낌을 받습니다.


창고 안이 너무 추워서 그런 걸까요? 소름이 살을 타고 올라오는 것 같기도 합니다.




순간 당신은 친구에게 중요한 질문 하나를 묻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립니다.




물방울이 배수관을 타고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지는 소리, 멀리서 청소차가 돌아다니며 바닥을 쓰는 소리, 온갖 소리들이 잠깐 멈춘 듯 합니다.




떨리는 손으로 당신은 펜을 들어 노트에 질문을 적습니다.




너 어쩌다가 거기 갇히게 됐어?




답변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현실과 괴담 속 세계를 이어주는 노트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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