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적 잠시 몇년간 살던 자그마한 집 앞에는 고즈넉한 골목길이 놓여져 있었다.
초등학교 하교 후, 그 골목길을 따라 가는 귀갓길에는 의자를 꺼내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동네 할머니들, 줄넘기를 하는 소녀, 무릎이 새카맣게 물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엎드려 열심히 구슬치기를 하는 소년들, 세탁소의 옷들을 분주히 배달하는 동네 세탁소 아저씨 등, 그 자그마한 골목길은 XX동의 작은 삶의 터전이자 나의 유년기의 기억이 깃든 추억의 장소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유독 이질적인 한 사내가 있었다. 정확히는 현실이 아닌 꿈속에서만 볼 수 있는 사내였다.
꿈은 현실에서 보고 들은 것을 반영한다고 했던가. 직접 보거나 들은 장소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유년기였기 때문인지 그 당시의 꿈 속 배경장소는 늘 집 앞의 골목길이었다. 그리고 그 사내는 늘 그 골목길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세히는 기억이 안나지만 꿈 속에서 나는 늘 집 앞 골목길에서 친구들과 무언가 놀이를 하며 놀았던 것 같다. 구슬치기, 오징어게임, 땅따먹기, 딱지치기 등... 그렇게 한창 놀다보면 어느새 해는 뉘엿뉘엿 산자락에 걸려있었고 그때마다 친구들은 저마다 저녁을 먹으러 돌아오라는 부모님의 부름을 받고 하나둘 씩 떠나갔고 그렇게 늘 맨 마지막에 남게되는 것은 나였다.
그리고 그때쯤 그 사내는 어느새 소리 소문 없이 다가와 내 앞에 우뚝 서서는 그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내는 아무 말없이 어린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고 얼굴은 깊이 눌러 쓴 모자에 가려져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그 챙 아래에서 느껴지는 그의 시선하며 특이한 체취, 기억을 아무리 헤집고 돌이켜봐도 당시 살던 동네에 그런 특기할 만한 주민들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꿈이란 것이 본래 허황되고 예측할 수 없는 것이라지만 그런 사내가 돌연 내 꿈에 등장한 것은 지금 생각해봐도 선뜻 이해되지는 않는 노릇이다.
다만 신기한 것은 비록 꿈속이라 할지라도 어리디 어린 내게 있어서 그 거구의 낯선 사내를 두려워할 법도 하건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그로부터 어떠한 적대감도 느낄 수 없었기에 나 또한 그를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저 나 역시 말없이 그를 올려다 보았을 뿐.
그렇게 우리 둘의 침묵이 얼마쯤 흐른 뒤에는 할아버지께서 내 뒤에서 나를 부르곤 하셨다. 당시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던 우리집이라 그랬으리라. 평소에는 늘 나를 귀여워해주시고 한없이 부드러우셨던 할아버지셨으나 유독 그 꿈에서만큼은 그 분은 늘 엄숙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시는 것으로 꿈 속에서 등장하시어 손수 꿈을 마무리 짓는 장본인이시기도 했다.
고개를 돌려 보면 할아버지께서는 늘 집 앞의 대문에 서서 뒷짐을 지시고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었다. 그리고 내가 선뜻 나서지 않을 때에는 말없이 고갯짓으로 다시금 나를 재촉하셨고 그럴 때마다 나는 할아버지에게로 다가갔고 그렇게 꿈은 끝나는 것이었다.
이러한 패턴의 꿈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또한 우리 집이 이사를 가게 되면서부터 자연스레 꾸지 않게 된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렇게 꿈 속에서의 사내 또한 부지불식간에 소실되었고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나 나는 어느덧 어엿한 성인이 되었고 어느새 입영통지서를 받아들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오랫만에 이 글을 쓰며 과거 오랜 옛날 꿈 속 골목길의 사내를 떠올리게 되었다.
오랜 세월 잊고 지내던 그 사내의 특이한 체취가 오늘 따라 짙어지는 듯한 기분인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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