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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트북 2 기밀문서 4. 냉전시대 유적무기 개발사 - 3/3

익금불산입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07.21 23:06:51
조회 1626 추천 8 댓글 13
														

안젤리아 파트는 전에 다른갤럼이 핫산했던거 이용했음ㅎ



제5 장: 유적무기 개발 시대의 종결 (1981~1983)


E.L.I.D.──저복사 광역성 감염증. 이는 유적무기가 초래한 가장 위험한 부산물이고 인류 문명을 파멸시킨 극악의 질병이다. 일찍이 1976년부터 미국은 몇 번에 걸쳐 시행된 유적기술 실험인 '자유의 여신' 실험에서 최초의 ELID 사망자를 냈지만, 1981년 아프가니스탄에 스피라에나가 처음으로 등장하기 전까지 해당 실험을 계속하였다. 미-소 양국은 이 치명적인 질병에 대하여 논의하기 위해 원치 않는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했다. 유적무기를 사용하는 이상 ELID의 발병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은 명확했다. 미국이 베트남에 투하한 붕괴액 폭탄 때문에 10만 명 이상이 ELID로 사망하였으며,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 투입한 스피라에나 때문에 위생조건이 열악한 중앙아시아와 중동에 ELID 창궐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서로에 대한 의심을 잠시 접어둔 미-소 양국은 허심탄회한 회담을 수 차례 진행하였다. 양측은 유적무기의 사용과 유지로 발생할 ELID 확산에 대해 서로가 공포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호확증파괴능력 유지' 정책이 이미 서로를 확증파괴하고 있다는 현실을 인식한 양측은 서로의 유적무기 개발과 비축 상황을 공개하기로 합의하였다. 더이상 손쓸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쌍방은 1981년 <유적무기 제한 조약>을 체결, 유적의 연구와 유적무기의 군사적 배치 일체를 중단하며 이미 배치된 유적무기 역시 단시일 내에 해체할 것을 선언하였다.



마치며: 한 시대의 종결과 새로운 시대의 시작


ELID는 전세계를 휩쓸었다. 초강대국들조차 사태 수습에 실패하자, 정치인들은 가능한 모든 역량을 하나로 모아야만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세계적 ELID (저복사광역성감염증) 확산과 유적무기 전면 금지에 따른 제2차 군비경쟁이 시작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1983년 7월 1일 안드로포프와 레이건은 제네바에서 <제네바 성명> 을 발표하여 35년 간의 미-소 대립이 종결되었음을 선언하였다.


평화와 번영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유적무기 역시 전쟁과 혁명 시대의 종말과 함께 땅 속 깊이 묻혔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진짜 엔딩인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 야심가와 음모가들이 판도라의 상자를 또다시 열여젖힌다면, 유적무기는 언제고 이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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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건 번호: ■■■■

문건 출처: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공개 자료

문건 제목: <제네바 성명>

문건 일시: 1983년 7월 1일


"우리는 이 자리에서 한 시대의 종결을 선언하고자 합니다. 냉전이라 불리는, 양 진영 사이에서 벌어진 전면적인 군사, 경제, 정치적 대립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우리는 현재 민족과 국가를 초월한 범세계적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편견과 이념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뭉쳐야 합니다. 단결만이 전 인류의 존속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양측은 이러한 정신으로 본 성명에 공동으로 서명합니다."

──<제네바 성명>


유리 블라디미로비치 안드로포프

로널드 윌슨 레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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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무기 유출 평가 - 회의 브리핑

기록 일시: 1992년 4월 29일

유엔 유적과학기구


1991년 8월 19일, 소련에서 쿠데타가 발생하였습니다. 같은 해 12월, 러시아 연방이 수립되고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이 연이어 독립하였습니다. 중앙아시아 5국은 이전 소련 중앙아시아 지역의 중요 군사 허브로, 막대한 재래식 무기와 약간의 전략·전술 핵무기가 배치되어 있었으며 스피라에나 시스템도 보유 중이었습니다.


1990년 소련 정부가 밝힌 <유적무기 배치상황 보고> 에 서술된 대로라면 해당 중앙아시아 국가들에는 최소 4개의 스피라에나 운영 기지가 있었으며 최소 5천 세제곱미터의 붕괴액이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현재 이 유적무기는 정국이 불안정한 중앙아시아 5국의 손아귀에 있습니다. 신생 5개국의 정부가 <유적무기 제한 조약> 을 위반하리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들이 테러리스트의 공격이나 부패한 정부 인사에 의한 밀반출 등의 상황에 대처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일단 유적무기가 국제 암시장에 나돌기 시작한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스피라에나의 유출 위험은 높지 않습니다. 유적무기는 이목을 너무 집중시킵니다. 무기 암시장은 보통 그런 눈에 띄는 물건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스피라에나 시스템에 필수적인 제어 버스는 일찍이 소련에 의해 봉인되거나 소각되었습니다. 현재 예멜리아-M을 복원할 수 있는 기술은 러시아 정부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붕괴액의 통제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붕괴액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너무 위험합니다. 이런 위험한 물질이 연쇄 폭발이라도 일으키는 날엔 그 특성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스크바에 적합한 인재를 파견하여 우리의 작업을 돕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새로운 러시아 연방은 중앙아시아 독립 이후의 유적무기 관리 책임을 승계받을 의무가 있습니다. 앞으로의 작업에 그들이 더욱 협력하도록, 먼저 그들의 신임을 얻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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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건 번호 "소련-N2-K"

분류: 정치인물자료

등급: [기밀]

출처: [■■■■]


내무군 대위

"안젤리아" 안나 빅토르브나 최

(2032.8.22.~)


러시아 고려인.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출생. 아버지는 평범한 철도 엔지니어였고 어머니는 중학교 교사였다. 7세 때 아버지가 소련 교통부로 전근하면서 가족을 따라 모스크바로 가서 살았다. 평온하고 원만한 삶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였다.


2045년, 모스크바 시간으로 3월 2일 오전 2시, 정세가 긴박해짐에 따라 빅토르 최는 직장에서 임시로 야근을 했다. 30분 후, 모스크바의 방공망을 뚫은 단 한 발의 미니트맨 III 미사일의 탄두 하나가 빅토르 최가 있는 철도 허브역 근처를 명중시켰다 (완전히 계획한 방식대로 기폭되지 못함). 빅토르 최를 차로 마중나갔던 스베틀라나 신도 함께 실종, 이후 소련 내무부의 전시 전몰·실종·전상자 통계위원회의 조사로 사망이 확인되었다. 이역만리 우즈베키스탄 출신으로 몸을 의탁할 친척도 없었던데다 핵폭발 이후 모스크바의 질서가 혼란스러워진 통에, 교통부 제3주택지의 주민 대표는 어쩔 수 없이 그녀를 교통부 인원에게 넘겨 내무군 제36 여단의 한 분대에 맡겨 철수시켰다.


미리 수립한 매뉴얼에 따라 소련 정부가 서둘러 대도시의 민간인을 대피시킨 후, 안나는 같은 해 3월 29일에 교통부 인원들에 의하여 근처의 여러 거리와 학교에서 모인 난민 행렬과 함께 움직이게 되었다. 이들은 북오세티야 - 알라니야 공화국의 수도 오르조니키제 (舊 블라디캅카스) 로 소개되었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서 안나는 난민을 호송하는 내무군 36여단 9중대의 병사들과 점차 친숙해졌고, 곧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오르조니키제에 도착한 후 한 달만에 그녀는 자신의 부모가 이미 변을 당하였다는 소식을 정식으로 알게 되었다. 13살의 안나는 곧 말수가 줄어들었다. 이를 알게 된 9중대 병사들은 그녀의 기분을 돋우고 그녀를 몰래 장갑차에 태워서까지 함께 놀아 주려 애썼다. 안나는 결국 36여단 주둔지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베슬란 시에서, 아버지의 전 동료이자 절친한 친구 이스마일 이브라히모프의 4인 가족 (15세의 남자아이 두 명) 과 함께 살게 되었다. 바깥에서의 전쟁은 아비규환의 도가니였지만 오르조니키제는 평소 시장의 공급 상황이 좋지 않고 부식거리가 부족한 것 외에는 질서 있는 일상 업무가 진행되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토요일 오후에는 극장과 예술관 등 문화 생활을 즐겼고 안나도 학업을 계속하였다.


2047년 4월 어느 날, 소련 내무부 장관 젤린스키는 현장 시찰 도중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등교 중이던 당시 7학년의 안나를 만났다. 그녀는 9중대의 부메랑 장갑차 (291호차) 에 올라타 있었던 것이다. 9중대장 츠비타예프는 이후 당연히 대대장에게 불려가 호된 질책을 들었지만, 젤린스키가 장갑차에 탄 안나와 악수를 나누는 장면을 찍은 수행기자의 사진은 신문에 실려 전쟁기간 내내 유명세를 끌었다. 훗날 젤린스키와 안나는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물론 현실적인 여건상 고위공무원과 일반인의 이런 교류는 오래가지 못하였다.


전쟁은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11학년제 학교를 막 졸업하려는 안나에게 2050년 9월 1일은 인생의 분수령이 되었다. 러시아 연방 시대에 세를 떨치던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조직들은 2030년 이후로 크게 약해졌지만, 자캅카스의 40년 동안 누렸던 독립과 현재의 혼란 상태는 그들의 활동에 안성맞춤인 환경을 제공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연방안전국은 2050년 초반 자캅카스의 모든 민족주의와 종교극단주의 주요 단체들을 때려잡았다. 그러나 마스하도프가 이끄는 20명 가량의 핵심 "무하지룬 행동조" 만은 끝내 명줄을 끊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전후 소련이 서유럽 각국에서 자신들의 형제 단체들을 소탕한 것의 보복으로, 마스하도프는 자신의 모든 영향력을 동원하여 9월 1일 연방안전국 알파 그룹과 내무군 36여단이 최후의 소탕 작전을 벌이기 한 시간 전, 두 차례에 걸쳐 베슬란 부근의 은신처에서 나와 곧바로 베슬란 제1 중등 학교로 달려들었다.


경찰과 함께 알파 그룹, 비탸지 부대, 그리고 내무군 36여단 9중대가 동시에 현장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테러범들은 1천여 명의 교사와 학생, 학부모를 인질로 잡고 유적의 전원 공급기를 개조한 폭탄을 공개하였다. 그들은 소련 정부가 즉시 서유럽 각국과의 대테러 공조를 중단할 것과 수감 중인 용의자들을 석방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여성 테러범 일부가 인질 대다수가 어린아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후 인질을 사살하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하였다. 대치가 시작되고 11시간 뒤, 테러범들 사이에서 심각한 내분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현장 지휘관은 즉각적인 전면 공격으로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테러범들이 전원 공급기를 폭파시키는 것을 저지하고자 하였다. 공격 도중 테러범들의 유적 설비가 용해되면서 통신을 방해하기 시작하였고, 모든 특수부대, 내무군, 경찰, 테러리스트, 인질과 무장 군중이 장님에 귀머거리가 되고 말았다.


체육관에 갇혀 있던 안나는 혼란한 와중 테러범들이 체육관 한복판에 그 '커다란 폭탄' 을 방치해둔 것을 발견하였다. 그녀는 침착하게 상황을 지켜보다가 모든 테러범들이 창가에서 반격에 여념이 없을 때 폭탄으로 달려들어 모든 전선을 뽑아버렸다. 카운트다운이 멈췄다. 그러나 망연자실한 테러범들은 총부리를 학생들에게로 돌려 마구잡이로 난사하기 시작하였다. 학생들이 차례차례 쓰러져 갔지만 안나는 폭탄 옆으로 몸을 숨겼고 폭탄이 실린 방탄 박스가 총알을 막아주었다.


피비린내 나는 전투는 곧 끝났고 20명의 테러리스트는 전원 사살되었다. 그러나 이미 186명의 학생과 더 많은 수의 학부모들이 피웅덩이에 널브러진 후였다. 안나의 반에서는 절반이 넘는 학생들이 숨졌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이스마일 이브라히모프는 교전 중에 부상을 입었고, 장남 아흐민은 불행히도 사망, 차남 람잔은 혼전 중에 왼팔을 잃었다. 36여단 9중대에서는 네 명이 희생되었다. 그 중 두 명은 교문을 들이받아 돌파하는 임무를 맡은 291호차의 차장과 운전수였다. 2일 후 안나는 상심한 이브라히모프 부부와 함께 아흐민을 안장한 후 방 안에 혼자 6시간 동안 틀어박혀 있었다. 이스마일이 놀라서 문을 부수고 들어갔을 때, 그녀는 자신의 머리칼을 잘라서 젤린스키에게 보내는 편지와 함께 봉투에 넣던 중이었다.


1년 후, 오르조니키제 제2 중등 학교를 졸업한 안나는 오르조니키제에 있는 C.M.키로프 내무부 고등 지휘학교로 진학하여 곧 모스크바로 옮겨갔다. 그 후로 그녀는 3개월에 한 번씩 이브라히모프와 타계한 부모의 친척 및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낼 뿐 그 밖의 모든 연락을 끊어버렸다. 이브라히모프 부부가 가장 최근에 접한 안나의 소식은 2059년 11월 그녀가 보낸 소포였다. 그 내용물은 타지에서 보기 힘든 고가의 일용품과 부식거리들이었으며, 짧은 편지와 함께 동봉된 사진에서는 군복을 입고 대위 계급장을 단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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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건 번호 "소련-N2-Z"

분류: 정치인물자료

등급: [기밀]

출처: [■■■■]


내무부 장관 겸 연방안전국 국장,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 정치국 위원

빅토르 파블로비치 젤린스키

Зелински,Виктор Павлович (폴란드어: Victor Zieliński)

(폴란드 - 벨라루스 태생, 벨라루스) (2000~)


포즈난에서 나고 자랐다. 모친은 폭스바겐의 세일즈 매니저, 부친은 폭스바겐의 조립라인 직원이었다. 마르고 큰 키 (192). 생활은 매우 검소하며 어린아이를 매우 좋아한다. 미혼. 동성애자일 가능성이 있다.


바르샤바 대학 수학과 졸업. 졸업 후 포즈난 폭스바겐에 돌아와 설계기술자가 되었다. 그러나 불과 1년만에 포즈난 폭스바겐의 파업 기간 중 비밀 무장단체를 조직하였다가 어머니와 함께 해고당하였으며, 아버지는 의문의 만취 후 동사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어머니의 친가인 브레스트로 돌아온 후 러시아 연방 공산당 활동에 참여하였고, 이후 러시아 연방 공산당 개혁파의 내부보안과 비밀활동을 책임지게 되었다. 치밀한 계획 수립에 능하다. 혁명 후에는 브레스트 보안활동처 처장과 벨라루스 보안위원회 주석, 벨라루스 내무부 장관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2034년에는 연방안전국 상무부국장 자리에 올랐다.


혁명의 횃불이 올랐을 때, 이 30세의 전 폭스바겐 설계기술자는 이미 당의 비밀 전선 공작에 6년간 투신하고 있었다. 그는 소련공산당의 정치보위 및 정보위원회 주석이 되어 가공할 만한 정보공작 재능을 선보였다. 러시아 연방보안국은 그를 감시하면서 그 어떤 실마리도 얻어낼 수 없었다. 물론 그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2031년 8월의 어느 날, 그 감시대상이 지명수배자 패거리들을 이끌고 당당히 루뱐카 대로 11번지 FSB 본부로 걸어들어가 FSB를 접수하러 왔노라고 선언한 사건이었다. 이 코미디 같은 사건은 사실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연방보안국 내에도 소련공산당에 동조하는 자들이 있었고, 사회의 여론과 이미 돌아선 군부, 그리고 내부의 압력으로 연방보안국은 바짝 긴장하고 있었던 터였다. 결국 연방보안국은 유혈사태 없이 권한을 이양하였고, 소련공산당 역시 그 답례로 과거의 용도불명의 예산에 대하여 묻지 않는 등 상당한 양보를 해 주었다.


연방보안국이 소련공산당에 항복한 이후에도 국내의 정치상황은 여전히 팽팽한 긴장이 유지되었다.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는 결국 전통적인 레퍼토리를 꺼내들었다. 국가의 안보 기능 대다수를 포괄하는 거대한 내무부를 창설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이 발의는 내무부, 연방보안국, 대외정보국, 그리고 국방부의 광범위한 반대에 직면하였다. 심지어 최고 소비에트의 전체회의에서조차 부결되고 말았다. 대중이 지금 소련공산당을 지지하고는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에게 이들은 여전히 구 소련공산당의 어설픈 짝퉁에 불과했다. 젤린스키 역시 2031년 곧바로 FSB 국장이 되지는 못하고, 연방보안국 부국장이라는 덜 유명한 직함으로 임시 조정기구인 '국가안전기구 부서간 조정회의'의 주석을 맡았다. 그러나 2034년 최고 소비에트가 <국가안보, 법 집행, 정보기구의 개편에 관한 법률> 을 통과시키고 거대한 내무부가 극적으로 재출현하면서 세간의 갑론을박도 부쩍 늘어났다. 그러나 이 조직은 마치 베리야 시절의 내무부를 연상시키기는 했지만, '신 NKVD' 로 개명하지는 않았을 뿐 아니라 산하의 연방안전국과 대외정보국, 연방내무법집행국 모두 따로 움직이고 군복도 입지 않았다 (이는 현재까지도 그대로이다). 일설에 따르면 젤린스키는 내무부 내 각 파벌의 약점을 잡고 미하일과의 관계를 이용하여 이들을 조종하거나 숙청하고, 연방보안국의 당과 관련된 연줄을 통하여 전체 조직을 꽉 휘어잡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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