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대가리꽃밭할배, 트롤할배로 많이 까였는데

이번화로 진지하게 말해서 

평생까방권 얻었다고 할 정도의 성장과 활약, 희생을 보여줌. 

그것도 엄청 깔끔한 방식으로. (아직 살아남은 버그나라크 백성들에겐 유감이지만... 예고편 보니 또 굴려질 것 같던데)

1부 제라미 등장했을 때 기억함?

치큐 곳곳에 퍼져 있는 버그나라크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고

버그나라크가 당당히 치큐의 한 종족이자 국가로 인정받으려는 게 평생의 목표였던 할배

오랫동안 이야기꾼으로 살아오며 

자신의 킹오저 전설이 인간과 버그나라크에게 행사했던 

영향력을 봐 온 제라미는 언어의 힘을 믿을 수 밖에 없었음.

그래서 자신만만하게 자기가 나서면 쉽게 외교로 일이 잘 풀릴 거라 믿었지만

킹오저 전설이 다져 온 두 종족 간 증오 역시 만만한게 아니었음

말로 진심을 전달하면 다 평화롭게 통할 거란 믿음은 허상이었고

결국 번번히 실패하여 인간과 버그나라크는 계속 전투를 벌이게 됐지

이는 데즈나라크의 절망과 폭주로 이어졌고

이때 처음으로 '이상만으로는 안 된다'는 게로우짐의 충언을 듣고 정신 차리며

'버그나라크와 인간을 통합하자'는 모호한 목표를 넘어서

자신이 버그나라크의 왕이 되는 구체적인 목적을 확실히 함.

이 과정에서 데즈나라크의 결정을 목격하는데, 이게 또 하나의 한방이 아니었을까.

자신이 가장 바라왔던 것을 위해, 

평생 바쳐 온 사명을 내려놓고

'언젠가'를 위해 지금을 쓰는

이런 빛나는 최후를 본 이야기꾼은 더 이상 

행간에 다 정답이 있다고 믿는 이상론자가 아님.

즉위식에서 어떤 박수나 갈채도 기대하지 않았고

그저 언젠가를 기약할 뿐, 그래서 지금에 최선을 다하는 

틈새의 왕으로 다시 태어나고

대신 다시 한 번 이야기의 힘을 새롭게 쓰는데

화해했다고 어디선가 널리 전해지다 보면 

언젠가 평화는 성공할 거라고.

킹오저 전설처럼 말이야

근데 2년 만에 종족이 거의 전멸해버림

다행히 2년 간 빡세게 굴러서 어느 정도 인식 변화는 불러왔지만

더 이상 치큐라는 행성 내의 정치이념, 철학이나 의지 같은 거론 

비교도 안 되는 절대적인 힘을 목도함

이제 차원이 다른 새로운 문제가 등장한 거임

혹자는 이 부분에서 제라미가 이상마저 버릴 줄 아는 

진정한 왕으로 거듭났다고 말할 지도 모르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함.

왕들은 악했고, 측근들이 백성을 위해 암살을 자행했다는 시나리오라면

5왕국끼리, 인류끼리 서로 얽히고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한 폭력과 증오가 발생할 게 뻔했음

근데 제라미가 나서서 인류가 단숨에 하나로 단결되고

폭력과 소요도 잠잠해졌지

그토록 제라미가 강조하던 평화로운 방법으로 끝내버린 거임.

그리고

1부에서의 동기를 묻는 카구라기의 질문에 제라미가 한 대답 기억함?

여기에 오늘자 게로우짐과의 대화를 보자

그래. 제라미가 2000년동안 품은 목적의 모든 원동력은 사랑임.

치큐, 인간, 버그나라크

그 어떤 것도 버릴 수 없을 만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제라미의 이상은 시작됨.

그 마음은 여전히 들을 수록 이상적이고 막연하지만 

결국 틈새의 왕이 다시 틈새 속으로 되돌아가는 발걸음을 만들어 냄

애초에 제라미는 포기한 적 없음.

그 마음은 치큐의 왕들에게 박수 받아 마땅한 것이고

여기까지 2천 년도 기다렸는데, 앞으로 오래 걸리는 게 문젠가.

성급하게 하려다가 된통 당한 적도 있는걸.

제라미는 자기 목표를 절대 포기한 것이 아님.

지금 인류가 멸망하면, 

인간과 버그나라크의 화합은 영원히 이뤄지지 않을 테니까.

어쩌면 몇 명 남지 않은 아주 작은 왕국이 되어버린 지금이, 

다시 시작하기 좋은 타이밍일지도 모르지.

이걸로 제라미는 끝을 낸 것이 아님.

정말 제대로 된 백성과, 제대로 된 평화와 함께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 두 종족의 화합의 순간을 보려면

이런 과정을 거쳐가는 수가 가장 확실했던 거겠지

당장 겪어야 할 현실이 잔혹하지만

마음 속 이상은 여전히 단단하거든.

그렇기 때문에 제라미는 슬퍼하지도, 씁쓸해하지도 않고

계속 웃을 수 있음

진정한 이상론자가 된 틈새의 왕의 이야기였다.

무슨 사망한 캐릭터 이야기 쓰듯이 썼는데 우리 할배 다음 주에도 잘 나오니까

다들 킹라미 황라시에리 알현할 무릎이나 닦아놓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