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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방과 후 상왕 라이프 -8-모바일에서 작성

ㅇㅇ(14.48) 2021.04.26 16:38:47
조회 1593 추천 29 댓글 10
														
모두의 우려와 달리 이방과가 6일 가까이 방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했던 것은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누운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비명횡사한 지운이 극락왕생하기를 기원하며 불공을 드리고 있었던 것 뿐이었다.



'비록 생전에는 아비 노릇 한번 제대로 못해줬지만 내가 아니면 누가 그 아이의 넋을 달래주겠는가?'



그렇게 이방과는 그 나름대로 지운에 대한 장례를 치러준 후 7일째되는 날 드디어 방 밖으로 나왔다.



"최 집사! 이리 좀 와보게!"



대상왕의 부름을 받은 최승은 헐레벌떡 달려왔다. 6일 밤낮을 내내 방에만 틀어박혀있는 이방과를 걱정했던 그는 무슨 일이라도 난건가 하고 달려왔지만 뜻밖에도 이방과는 평상시의 온화한 미소를 띤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상왕 전하, 이제...괜찮으신 것이옵니까?"



"하하! 괜찮다니, 뭐가 말인가?"



오히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웃는 이방과를 본 최승은 혼란스러워졌다. 지운의 죽음에 대해 들었을 때의 반응으로 미루어 지금쯤 슬픔에 잠겨 피폐해졌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이방과는 생기가 넘쳐보였다.



"아...아무것도 아니옵니다."



'그래도 전하께서 활력을 되찾으셨으니 참으로 다행이구나!'



얼떨떨하긴 했지만 최승은 속으로 안도했다.



"거 사람 싱겁긴. 그나저나 미안하게 됐네. 내가 그간 죽은 가아를 위해 불공을 드린다고 자네에게 소홀했으니. 자, 오늘부터 다시 격구 훈련에 매진해보도록 하세!"



"예, 예...!?"



하지만 기뻐한 것도 잠시 최승은 기겁해야 했다. 평소 너그러운 이방과였으나 격구채만 쥐면 숨어있던 제 2의 인격이 깨어나기라도 하는지 그의 격구 수업은 그야말로 강행군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6일 간 밀렸으니 오늘 점심 때까지는 쉬는 시간없이 훈련에 들어가겠군.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마당으로 오게나! 하하하하!"



'앗, 아아...'



최승은 하루빨리 주인이 방에서 나오기를 기원했던 어제의 자신을 저주했다.



******



"거기서 방미(防尾)! 방미! 채를 말꼬리와 나란히 해야지!"



"으갸갸갸갸갹!"



이방과의 호통에 최승은 젖먹던 힘을 다해 왼손으로 고삐를 쥠과 동시에 몸을 누이며 격구채를 뒤로 뻗어 날아오는 공을 받아내려 애썼다. 말을 모는 상태에서 드러눕다시피 하느라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리는 걸 느낀 최승은 평생 질러본 적도 없는 괴상한 기합소리...라기보단 비명소리에 가까운 것을 내지르며 균형을 잡고자 안간힘을 썼다.



알다시피 달리는 말 위에서 균형을 잡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하물며 채를 휘두르며 거의 묘기에 가까운 기술들을 구사하는 격구는 숙련된 기수가 아니면 불가능에 가까웠다. 최승에게 불행이었던 것은 그가 나름 말을 모는 것에 조예가 있는 '숙련된 기수'였다는 것과 기본기가 갖춰져있는 것에 주목한 이방과가 혹독한 주입식 교육 방식으로 일정을 짰다는 것이었다.



탁!



그래도 필사적인 발악을 한 보람은 있었는지 가까스로 격구채로 공을 낚아챈 최승은 다시 몸을 일으키고 말을 몰아 구문(毬門)을 향해 돌진했다.



'제발, 한번만! 한번만 들어가라!'



간절한 기원을 담아 최승은 격구채를 휘둘러 공을 날려보냈다.



"엇차!"



하지만 이방과는 무서운 속도로 말을 몰아 날아가는 공을 따라잡더니 오른발을 등자에서 빼버리곤 거의 말의 왼쪽 옆구리에 매달리다시피 한 상태로 공을 아슬아슬하게 낚아채 그대로 구문에 넣어 득점을 따내버렸다.



'세상에...저 모든 걸 전속력으로 달리는 말 위에서 다 해내다니...! 사람이 아니야...'



망연자실한 최승을 보고 이방과는 씩 웃었다.



"최 집사도 많이 늘었구만. 이제 점심 무렵이니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네."



"화, 황공하옵니다..."



탈진해서 거의 말등에서 흘러내리다시피 내려온 최승은 땀을 닦곤 이방과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는 7일 전에 그토록 비통해하던 사람과는 마치 별개의 인물인 것처럼 보이는 이방과의 속내가 궁금해졌다.



"저...대상왕 전하."



"왜 그러나, 최 집사? 한 판 더 하자고?"



"아, 아니옵니다! 그저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



"하하하, 농이었으니 그리 기겁하진 말게나. 그래, 말해보게나."



최승은 이방과의 표정이 밝은 것을 보곤 용기를 내어 말을 꺼냈다.



"외람된 말이오나...전하께서는 지운 도련님의 일을 아시고 그토록 슬퍼하셨지 않았사옵니까? 물론 전하께서 웃음을 되찾으신 건 다행한 일이오나 이를 어찌 극복하셨는지 알고 싶었사옵니다. 혹 소인의 말이 무례했다면 벌을 주소서!"



"하하하하하하! 벌이라니? 자네와 나 사이 아닌가? 궁금한 게 있으면 알아야 인지상정인 법이지."



이방과는 호탕하게 웃더니 말을 이어갔다.



"물론 나 역시 지운 그 아이의 죽음을 알았을 땐 무척 상심했다네. 잠시나마 도와 방원이까지 원망하기도 했었지. 하지만 지운의 넋을 위해 불공을 드리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고, 덕분에 초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네."



"초심이라 하심은...?"



최승이 의아해하자 이방과는 씩 웃었다.



"내 전생에 깨달았던 삶의 지혜가 하나 있다네. 바로 틀을 억지로 내게 맞추려 하지 말고, 나 스스로를 틀에 맞춰가는 것이지."



"소인이 무지한 탓인지 전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겠나이다."



최승이 아리송해하자 이방과가 급히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하하, 미안하네. 내가 생각해도 알아듣기 어렵게 말하긴 했군. 내가 말한 틀이란 것은 내 주변을 둘러싼 사람이나 장소 등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라네. 사람마다 저마다 뜻이 다르고, 하고자 하는 일도 다른 법인데 서로가 자기 주장만 내세운다면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있겠는가? 그러니 주변을 내 뜻대로만 끌고가기보다는 주위의 흐름에 몸을 맡겨 순응하며 시류에 보다 빨리 적응하는 것이 제일이라는 게 내 생각이라네."



의외로 이 말은 이방과의 인생을 한 마디로 축약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이방과는 재위 기간 동안 아버지 이성계와 동생 이방원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지킬 수 있었고, 동생과 조카가 왕위에 오른 새로운 질서에도 금방 적응하여 형제간의 의가 상하지도 않고 본인도 평화로운 노후를 보낼 수 있었다.



이방과가 한번도 상황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위치에 선 적이 없음에도 매번 그가 승자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 깨달음을 몸소 실천한 덕분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제 알 것 같다는 최승의 표정에 이방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지운 그 아이의 죽음은 실로 안타까우나 경솔한 언동으로 사직에 해를 끼치는 대죄를 범한 것이니 화를 자초한 것이지 않는가? 더구나 내가 죽은 뒤에 일어난 일이니 이제와서 어떻게 무를 수도 없는 일이고. 돌이킬 수 없는 일로 슬퍼하고 후회만 하느니 그 아이의 아비로써 그 아이의 넋을 위로해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여겼다네."



최승은 그제야 이해가 갔다.



지운은 왕실을 모독한 죄로 죽었으니 흔히 말하는 역적이었다. 이방과가 지운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고 호소해봐야 역적을 옹호한다는 역풍이나 맞을테고, 이방과 본인도 지운에 대한 부정과는 별개로 그의 어리석은 행실을 좋게 여기진 않았다.



따라서 그는 혼자서 지운을 위해 불공을 드리는 것으로 아버지로써의 최소한의 도리를 다했고, 이는 공과 사의 균형을 이룬 것이니 비로소 마음의 평안을 되찾은 것이었다.



"따지고보면 내가 34년만에 되살아났음에도 그런대로 지장없이 살고 있는 것도 틀에 나 스스로를 딱 맞춰나가는 이 성향 덕분일지도 모르지. 하하하!"



이방과가 후련한 표정으로 웃자 최승은 감탄했다는 표정으로 끄덕였다.



"대상왕 전하의 말씀이 실로 지당하시옵니다! 틀에 자신을 맞춰나간다... 정말 훌륭한 말씀입니다. 소인 역시 전하의 가르침대로 살아야겠사옵니다."



최승은 정말로 깊이 감명받았는지 혼자서 되뇌어 보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다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이방과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오면 전하, 소인이 격구를 못하는 것 또한 전하께 있어서는 하나의 틀이라 할 수 있으니 거기에 맞춰주실 수 있으신지요...? 헤헤."



"아니, 그건 별개지. 자넨 이 인덕궁에서 살고있지 않나? 그리고 인덕궁의 주인은 나고. 어느 쪽이냐면 자네가 틀에 적응하는 게 순리 아니겠나?"



"......"



******



다음날 저녁이 되자 대상왕의 거처에서 열리는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종친들이 속속 인덕궁에 모여들었다.



"백부님을 뵙습니다."



"오, 용과 유도 왔구나! 허허, 잘들 지냈느냐?"



"예, 백부님."



효령대군 이보는 조카 안평대군 이용, 금성대군 이유와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너흰 이번이 대상왕 전하를 처음 뵙는 것이겠구나."



"예. 사실 그때문에 좀 긴장이 되는 게 사실입니다."



까마득한 종조부를 생전 처음으로 뵙게 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을 가진 조카들을 이해한다는 듯 이보는 허허 웃었다.



"그분은 태조대왕의 용안을 쏙 빼닮으신 분이라 나도 소싯적 그분 앞에 설 때는 까닭없이 긴장이 되곤 했느니라. 하나 매우 인자하신 분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예, 백부님."



이용과 이유는 그 말을 듣고 약간 안도했는지 미소를 지었다. 세 사람 말고도 다른 종친들이 모여 삼삼오오 인사를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하하하, 아우님도 와계셨구만! 오, 우리 용이랑 유 아니냐? 오랜만이구나."



양녕대군 이제가 들어서자 이용과 이유는 안색이 살짝 굳어졌으나 금방 접대성 미소를 짓고 인사했다.



"양녕 백부님도 오셨군요."



"종친의 큰어른이시자 무려 34년만에 되살아나신 이적을 행하신 분을 위한 잔치인데 내 어찌 빠질 수가 있겠느냐? 바로 곁에 있는데도 코빼기 한번 비추지 않는 누구들과는 달리 말이다."



"......"



"......"



평소 자기에게 인사드리러 오지도 않는다고 은근히 책망하는 이제의 말을 들은 이용과 이유는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이제는 평소 수양대군이 왕위를 차지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지지를 표명해왔었고, 당연히 금상을 지지하는 이용, 이유와는 정치적으로 대립했기에 그리 사이가 좋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와서 버르장머리 없이 찾아오지도 않는다고 뭐라 타박하는 그 뻔뻔함에 이용과 이유는 백부고 나발이고 한 대 날려주고 싶었으나 그냥 상대하지 않기로 했다.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이보가 급히 끼어들어 중재에 나섰다.



"하하, 형님. 모처럼 이리 한데 모였는데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용과 유도 어찌 형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없겠습니까? 그간 서로가 바빠서 자주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 탓에 오해가 생긴 듯 하니 조만간 자리를 마련해 푸는 게 어떻겠습니까?"



"듣고보니 아우 말도 일리가 있구먼. 알겠네. 그러도록 하지."



이제는 못 이기는 척 물러났으나 속으로는 동생 이보를 비웃으며 같잖게 여기고 있었다.



'흥, 멍청한 놈! 넌 언제나 그렇게 혼자 착한 사람인 양 행동하지. 그런다고 네가 돋보이기라도 할 것 같으냐? 이것도 하나의 정치란 말이다!'



수양을 포함해서 금상에게 반기를 들었던 종친들이 쓸려나갔으니 그들을 공공연하게 지지하던 이제는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몰린 상황이었다. 반면 그동안 금상을 지지해왔던 조카 이용과 이유는 현재 종친들 중에서도 상당한 발언권을 갖게 되었다.



이제 입장에서는 조카들에게 아직 자신이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해 일부러 시비를 건 것이었는데 눈치없는 동생놈이 훼방을 놓은 셈이니 어찌 짜증이 나지 않겠는가?



물론 그저 형과 조카들이 원만한 관계를 회복하길 원해서 개입했을 뿐인 이보가 형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았더라면 억장이 무너졌겠지만.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대상왕 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서둘러 달려나온 최승의 안내를 받으며, 현재 이방과를 제외하면 종친의 최고 어른인 이제를 선두로 종친들이 인덕궁에 차례차례 발을 들였다.



바야흐로 연회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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