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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몽골 테메레르] 송나라의 멸망 (1)

ㅁㄴㅇㄹ도사람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05.10 02:36:07
조회 1835 추천 22 댓글 36
														

온 세계에서 모인 수많은 군세가 몽골의 깃발 아래 송의 수도, 임안을 공격했다. 몽골 장군들의 지휘 아래 비잔티움의 기술자들이 소이탄에 불을 붙이고, 이슬람교도들의 투석기가 소이탄을 쏴 도시를 불바다로 만들었으며 고려의 병사들이 성벽으로 정란차와 사다리를 성벽까지 끌고 가자 한인 보병대는 그것들을 타고 성벽 위로 올라가 난전을 벌였다.


“몽골 놈들을 살려두지 마라!”


“끝까지 버텨라!”


“송을 위하여! 천자 폐하를 위하여!!!”


임안을 지키는 송군은 온 세계에 맞서 싸웠다. 성벽 위의 수비병들이 올라오는 보병들을 창칼로 쓰러트렸고 이어 망루에 설치된 화차와 대포가 불을 뿜었다. 화약 연기가 푸른 하늘을 가리며 불의 비가 내리자 드높았던 몽골군의 사기는 순식간에 꺾였고 송군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아졌다.


“송이여, 너희들은 대체 무엇이냐?”


한 노인이 몽골군의 막사에서 전장을 지켜보며 혼잣말했다. 곧 멸망을 앞둔 나라건만 어찌하여 이렇게 찬란하게 빛날 수 있는가? 노인은 아름다움마저 느껴지는 전장을 계속해서 바라보았고 막사에 한 장군이 들어오자 그제 서야 전장에서 눈을 뗐다. 막사에 들어온 장군이 노인에게 한쪽 무릎을 꿇어 예를 갖추자 노인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몽골의 칸이시자 중화의 천자이신 쿠빌라이여, 상장군 장홍범입니다. 장군 회의에서 있었던 모의전 결과, 송의 수도 임안은 오늘 내로 함락되리라는 결과가 나왔음을 폐하께 보고하러 왔습니다.”


노인은 몽골의 칸이자 중화의 새로운 천자 쿠빌라이였고, 그에게 보고를 올리는 자는 송의 장군이었으나 몽골에 귀순하여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 오른 명장 장홍범이었다. 장홍범의 보고대로 몽골군의 공성포들이 포격을 시작하자 임안의 성벽과 망루들이 차례차례 무너졌고, 쿠빌라이는 고개를 끄덕인 뒤 한숨을 쉬었다.


“폐하, 무엇이 아쉽습니까?”


장홍범은 쿠빌라이에게서 아쉬움을 엿보고 물었다. 쿠빌라이는 쓴 웃음을 지었다.


“수십 년간 싸워온 긍지 높은 적이네, 어찌 슬프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송과 몽골의 전쟁이 시작 된지 70년, 칸은 두 번 바뀌고 수십만 병사가 송에게 죽었다. 마침내 서로는 잉글랜드, 동으로는 왜까지 정복하여 온 세계를 몽골의 깃발 아래 두었으나 송은 굴복하지 않았고, 멸망을 눈앞에 두었음에도 그들이 보여주는 기개는 드높았다. 쿠빌라이는 탄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몸의 이와 발톱이 날카로웠을 때부터 저들과 싸워와 마침내 지금에서야 저들의 멸망을 바라보는군.”


쿠빌라이는 발을 들어올렸다. 발톱은 모두 썩어 떨어져 나갔으며 말할 때마다 엿보이는 이는 모두 비틀리고 무뎌져 있었다.


“송을 쓰러트리기 위해 그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였고, 또한 그들을 이해하려 했네. 누구보다 그들의 멸망을 바라며 싸워왔으며 동시에 그들을 이해하려고 수십 년을 보냈으니,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쿠빌라이는 살짝 젖은 눈으로 전장을 바라보았다. 무너져 내린 성벽 사이로 몽골 기병들이 랜스와 활을 들고 돌격했고, 성벽 위에서 내려온 송의 병사들이 그들을 막으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창을 치켜든 전열의 병사들은 화살에 머리가 꿰뚫려 죽고 후열의 병사들이 빈자리를 채우기 전 랜스가 여러 보병들을 꼬치 꿰듯 꿰어 죽였다.


“적은 적입니다. 그뿐입니다.”


쿠빌라이와 달리 장홍범은 그저 차가운 눈으로 전장을 바라보았고 그의 목소리는 딱딱하고 무심했다. 쿠빌라이는 젖은 눈을 손수건으로 닦고 그에게 물었다.


“다른 생각은 들지 않는가? 자네가 한때 몸담았던 나라의 멸망이 아닌가.”


“저는 검입니다. 검에겐 의지가 없으며, 적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휘두르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 움직입니다. 저는 이제 송의 장군이 아니라 몽골의 장군이며 저의 책무는 송을 쓰러트리는 것이니 어찌 잡념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장홍범의 대답에 쿠빌라이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고 둘은 말없이 전장을 바라보았다.


“이제 칼을 뽑아라!”


“목표는 황궁이다! 황궁으로 달려라!”


임안 시가지로 진입한 기병들은 칼을 뽑아들고 황궁으로 내달렸다. 급히 시가지에서 달려 나와 그들을 막으려던 병사들은 추풍낙엽처럼 죽어나갔고, 마침내 기병들이 황궁의 앞까지 도달하자 기병대장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칼을 치켜들었다. 그는 황궁을 노려보며 돌격하라 외치려 했다.


“너흰 지나갈 수 없다!”


그 순간, 한 남자의 외침과 함께 건물기둥 같은 화살이 날아와 기병대장을 말과 함께 꿰뚫고 짓이겼다. 화살의 끝에는 불이 붙은 도화선이 달려 있었고, 기병들은 그것을 보고 경악하여 도망치려 했으나 곧 화살에서 일어난 거대한 폭발이 그들을 휩쓸었다. 살아남은 기병은 한 명도 없었다.


“송의 대장군, 이 장세걸의 시체를 밟지 않는 한 너희는 천자께 다가 갈 수 없다!”


화전을 쏜 거구의 남자는 송의 대장군 장세걸이었다. 장세걸이 궁궐에서 대궁을 들고 걸어 나오자 그의 모습을 본 몽골군은 모두 공포에 질렸고, 송군은 힘을 얻고 함성을 질렀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죽지 않았으면, 한 놈이라도 더 황천으로 끌고 가라!”


정예중의 정예인 몽골의 기병들이 송군의 창에 찔려 하나 둘씩 낙마하기 시작했고, 뒤따르는 고려인과 한인 보병대들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포탄과 화전에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뒷걸음질 쳤다. 막사에서 전장을 지켜보던 장홍범은 눈을 감았고 쿠빌라이는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송의 대장군, 저자가 자네의 조카라 들었네. 맞는가?”


“맞습니다.”


“무슨 생각이 드는가?”


장홍범은 눈을 뜬 뒤 쿠빌라이와 눈을 맞추었다. 그의 눈빛은 건조하고 차가웠다.


“저는 폐하의 검입니다.”


“그런가.”


쿠빌라이는 앞발을 들어 장세걸을 가리켰다.


“그럼, 쓰러트릴 수 있겠는가?”


쿠빌라이의 물음에 장홍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오겠습니다.”


장홍범은 막사 밖으로 나가 등에 돋아난 검은 날개를 쫙 폈다. 검은 용, 장홍범은 가볍게 으르렁거리며 날개를 접었다 펴기를 반복하고 돌풍을 일으키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붉은 용, 장세걸도 그를 보고 포효하며 대궁을 내던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검은 용과 붉은 용은 입에서 폭풍을 토해내고 발톱을 번뜩이며, 하늘에서 한데 어우러져 싸웠다.


---


천자의 의복을 갖춰 입은 늙은 용이 송의 옛 수도, 임안의 궁궐로 들어왔다. 그의 발톱은 모두 썩어 떨어져 나갔으며, 이는 모두 무디고 비틀렸다. 허나 그에게 천자의 의복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울렸고,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은 좌중을 압도했다. 그는 바로 새로운 시대의 천자, 쿠빌라이였다.


그는 송의 천자가 앉았던 옥좌에 앉고 어전에 모인 자들을 바라보았다. 유럽, 아라비아, 남만, 고려, 왜,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모인 수많은 왕들과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의 사제들이 그에게 무릎을 꿇었다. 쿠빌라이는 앞발을 들어 그들을 일으켜 세웠다.


“그대들의 황제는 누구인가?”


왕과 사제들은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몽골의 칸이시자 중화의 천자, 세 번째 사제왕 요한이시며 새로운 시대의 칼리프, 이번 시대의 미륵, 그리고 시바의 아바타라인 쿠빌라이님이 우리들의 황제입니다!”


쿠빌라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어전의 문 앞에서 그를 바라보던 인간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자의 행색은 추레하였으나 자세는 꼿꼿하며 눈빛에선 힘이 느껴졌고, 그의 기백이 어찌나 강렬한지 쿠빌라이는 온 세계에서 모인 왕과 사제들을 다 합쳐도 그에 비하면 그저 개미떼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송의 재상, 육수부여. 이제 그대들만 남았네.”


그 자는 송의 재상, 육수부였다. 육수부는 허리를 숙여 가볍게 예를 표한 뒤 입을 열었다.


“잘 알고 있습니다. 몽골의 칸이시여, 여러 대륙에서 수백만의 생명을 죽여 그 자리에 오르셨으니 그 명성이 온 세계에 가득합니다. 그것을 제가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육수부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쿠빌라이는 살짝 위축되었으나,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대들에게 몇 번을 권고하는지 모르겠으나 한 번 더 묻겠네, 이제 무의미한 저항은 그만 두고 짐의 날개 아래에 무릎 꿇겠는가?”


“이번으로 네 번째 권유군요. 거절하겠습니다.”


육수부의 대답은 단호하였고, 그의 목소리는 온화하나 힘이 느껴졌다.


“임안이 함락되고 그대들의 천자가 죽은 지 4년이 지났네. 한 뼘 밖에 남지 않은 땅에서,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를 천자로 삼고 패잔병을 모아도 소용없네. 그대들의 나라는 멸망했어.”


임안이 함락되고 대장군 장세걸이 장홍범에게 패배하여 천자가 죽은 지 4년이 지난 지금도 송은 몽골에게 항복하지 않고 저항을 이어갔다. 그들은 중화 남부의 애산이라는 조그만 땅에서 어린 아이를 천자로 삼고 패잔병들을 모아 마지막 일전을 준비하여, 20만에 달하는 병사와 수천척의 배를 송의 깃발 아래 모았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들이 온 세계를 정복한 몽골을 이길 확률은 없었다.

쿠빌라이가 보기엔 그저 무가치한 행동이었기에 그는 계속하여 항복을 권유하였으나, 이번에도 육수부의 대답은 단호하였다.


“송은 멸망하지 않았고, 멸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쿠빌라이가 항복을 권유할 때 마다 들은 말이었다. 육수부는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송을 기억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살아있는 한, 송의 이름이 역사 속에 남아있는 한, 송은 멸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육수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어전을 울리자 온 세계의 왕들이 그에게 압도당했으나, 쿠빌라이는 침착히 그를 설득했다.


“새로운 시대의 천자로서 그대들을 온후하게 대접 하겠다 약속하겠네.

그대들의 태조를 본받아 충후함으로 전조의 자손들을 돌보고, 관대함으로 사대부들의 바른 기풍을 진작하며, 다스림으로 백성들의 삶을 부양하겠네. 이것으로도 부족한가?“


그것은 송을 세운 태조, 조광윤이 비석에 새겨 후대의 천자들에게 남긴 유훈이었다. 쿠빌라이는 송태조의 뜻을 따르겠다고 천명하였으나, 육수부는 뜻을 꺾지 않았다.


“당신은 새로운 시대의 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대들을 제외한 온 중화가 짐의 날개 아래에 무릎 꿇고, 짐을 천자로 인정했네.”


“수백만을 죽이고, 그 백골로 쌓아올린 계단을 밟아 올라 중화를 내려다보시는데 어찌 천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덕이 아닌 백골로 쌓은 계단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질 것이고, 당신은 몽골의 칸도, 사제왕 요한도, 칼리프도, 미륵도, 아바타라도 될 수 있으나 천자는 될 수 없습니다. 중화를 최초로 통일한 진나라의 황제조차 수백만을 죽이고 그 자리에 올랐으니 천자가 될 수 없었는데, 당신이 어찌 천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쿠빌라이는 쓴 웃음을 지었다.


“송의 재상, 그대의 뜻을 잘 알겠네. 그럼 송의 패잔병들을 모두 포로로 잡아, 그대의 눈앞에서 하나씩 목을 치면 짐을 천자로 인정 하겠는가?”


“송의 자식들은 모두 죽음을 각오하였습니다.”


“...”


육수부의 말은 담담하였고 마치 아침에는 태양이 뜨고, 밤에는 달이 뜬다는 투로 말한 그 말에 쿠빌라이는 압도당하여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육수부는 쿠빌라이를 똑바로 응시하며 한마디 더했다.


“송의 자식들은 절개를 지키기 위하여 싸우다가 죽음을 맞이할 터인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절개를 지키기 위해, 사서에 남을 기록 몇 줄을 위해, 수십만 백성을 죽음에 몰아넣는 것이 옳은가?”


“칸께서 그동안 중화에서 명멸하였던 수십 왕조의 역사를 보시면 알 수 있을 테지요, 무엇이 옳고 그른지 말입니다.”


쿠빌라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몸이 어렸을 때부터, 그대들을 멸하려 했으나 또한 그대들을 이해하려 했네. 마침내 지금, 그대들의 멸망을 눈앞에 두었으나 아직도 그대들을 이해 할 수 없군.”


“이해 하셨다면, 당신은 천자가 되었을 겁니다.”


쿠빌라이의 눈이 빛났다.


“세계를 정복한 강대한 제국에 수십 년 동안 맞서 싸운 최고의 적, 송이여. 그대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쿠빌라이는 발톱이 빠진 앞발을 들어 올려 육수부를 가리켰다.


“그러니 그대들의 마지막 불꽃을 꺼트려, 그 최후를 짐의 눈에 새기겠네.”


“알겠습니다.”


육수부는 고개를 끄덕이고 등을 돌려 어전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를 제지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


육수부가 임안의 황궁 안에서 쿠빌라이와 회담을 갖는 사이, 그를 수행하러 온 장세걸은 장홍범과 회담을 가지기로 하였다. 임안 바깥에 세워진 막사에 장세걸이 들어오자 안에서 기다리던 장홍범은 예를 표하며 그를 맞이했다.

검은 용과 붉은 용은 탁자에 둘러 앉아 서로를 노려보았다.


“조카님, 오랜만입니다.”


“역적은 내 숙부가 아니다.”


장홍범의 말에 장세걸은 싸늘하게 대답했다. 장홍범은 발톱에 깊게 베인 흉터가 남아있으며, 안대를 쓴 그의 눈가를 가리키며 물었다.


“제가 뽑은 눈은 괜찮습니까?”


“괜찮다.”


“그렇습니까.”


장홍범은 고개를 끄덕이고 침묵했고 장세걸도 침묵했다. 침묵은 막사 안에 전령이 들어와 장홍범에게 무릎을 꿇고 두루마리를 받쳐 올리기 전까지 이어졌다. 장홍범은 전령이 건넨 두루마리를 읽고 침묵을 깼다.


“조카님, 바둑 좋아하십니까?”


“나는 네 조카가 아니라, 송의 대장군이다.”


“...송의 대장군이시여, 바둑 좋아하십니까?”


“어느 정도는.”


“그럼 두시겠습니까?”


장세걸은 탁자를 내려다보았다. 그 위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바둑판과 돌이 없는데, 어떻게 바둑을 둘 수 있겠는가?”


장홍범은 자리에서 일어나 막사 밖으로 걸어 나가고는, 등 뒤의 장세걸에게 말했다.


“나와서 확인 하시지요.”


장세걸은 장홍범을 따라 나와 그가 준비한 바둑판과 바둑돌을 보았다. 그 순간, 장세걸은 역겨움을 숨기지 않고 장홍범에게 쏘아붙였다.


“네 녀석과 같은 피가 흐른다는 게, 이렇게 역겹기 그지없을 줄은 몰랐다.”


장홍범은 병사들에게 명하여 땅에 나무판자를 늘어놓아 바둑판을 만든 뒤, 몽골의 병사들에겐 검은 옷을 입히고 임안 전투에서 사로잡은 송의 대신들에겐 흰 옷을 입혀 그 옆에 세워두었다.


“조카님을 흔들고 싶었는데, 성공한 모양입니다.”


“...”


장세걸은 이를 악물었고, 장홍범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두지 않으실 겁니까?”


“그렇다.”


“그럼 모두 죽이겠습니다.”


“미쳤군.”


“항복하지 않는 포로를 살려둘 이유가 있겠습니까?”


장세걸은 장홍범을 노려보고 송의 대신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송의 대신들은 하나같이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물고 있었고, 그 모습에 장세걸은 그들이 품은 뜻을 알 수 있었다. 장세걸은 바둑판 앞으로 걸어갔다.


“흑은 네 녀석인가?”


“맞습니다.”


“두겠다. 움직여라.”


장홍범은 고개를 끄덕이고 장세걸의 반대편으로 건너갔다.


“대국을 시작하겠습니다.”


장홍범의 말과 함께 대국이 시작되었다. 몽골군 병사들이 바둑돌 대신 사람을 움직이고, 돌이 따일 때 마다 그 대신 사람의 목이 따여 양 편에 쌓였다. 장홍범은 3개의 돌을 잃고 나서야 하나의 돌을 딸 수 있었다.


“쳐라.”


죽음을 앞둔 송의 대신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그녀의 목을 치려던 병사는 그 기세에 누렬 머뭇거리며 장홍범을 바라보았지만 장홍범이 눈을 가늘게 뜨자 그녀의 목을 단칼에 베어 죽였다. 병사는 떨리는 손으로 잘린 머리를 장홍범에게 가져갔고, 장홍범은 무심하게 머리를 자신의 옆에 내려놓았다.


“계속 두겠다.”


장세걸은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갔다. 돌을 처형하던 병사들은 처음에는 무심한 표정으로 일관하였으나 대국이 종반에 접어들자 그들은 공포에 질렸다. 검은 돌은 죽을 때 마다 비명을 질렀으나, 송의 대신들은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대국은 백의 승리로 끝났고 장홍범은 눈을 감고 말했다.


“결국 조카님을 흔들지 못했군요. 행마가 이렇게 침착하고 날카로웠으니, 이것은 흔들리는 사람의 행마가 아닙니다.”


“만족하나?”


“어느 정도는요.”


장홍범은 눈을 뜨고 장세걸을 노려보았다.


“당신이 침착하고, 희생을 치룰 각오가 충분한 명장이라는 것을 이 대국으로 깨달았습니다. 당신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최고의 명장이 될 수 없겠습니다. 다행히, 실전은 바둑이 아니니 조카님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홍범이 손을 들어 올리자, 몽골군 병사들은 살아남은 송의 대신들을 전부 처형하기 시작했다. 장세걸은 말없이 그 참상을 바라보았고 처형이 끝나자 장홍범은 입을 열었다.


“임안이 무너졌을 때처럼 온 힘을 다해 조카님을 쓰러트리겠습니다.”


“해볼 테면 해봐라.”


---


송의 마지막 불꽃이 타오르는 땅, 애산. 몽골군의 추격을 거치고, 애산을 둘러싼 포위망을 뚫고 수천의 군세가 애산에 도달하였다. 육수부가 그들을 맞이하자, 군세의 맨 앞에 선 푸른 용은 그에게 무릎을 꿇고 입을 열었다.


“以忠厚養前代之子孫 (충후함으로 전조의 자손들을 돌보고.)

以寬大養士人之正氣 (관대함으로 사대부들의 바른 기풍을 진작하며.)

以節制養百姓之生理 (다스림으로 백성들의 삶을 부양하라.)“


태조가 비석에 새겨 후손들에게 남긴 유훈. 송의 천자들은 그 말을 충실히 따라 옛 왕조의 황족들을 보살폈고, 구 황족들은 지금 의리를 지킬 때가 다가왔음을 깨달았다. 애산에 모인 수천의 군세는 송의 태조에게 선양한 구 황족들이 이끌고 온 군세였으며 그들은 망설임 없이 죽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푸른 용은 말을 이었다.


“태조께서 저희에게 불씨를 주셨으며, 송의 천자들께서는 저희들의 불꽃을 계속해서 보살펴 주셨습니다. 그 보답을 하러 왔습니다.”


“모두 죽을 겁니다. 괜찮겠습니까?”


절개를 지키기 위한 구 황족들의 각오는 찬란히 빛났으나, 그 끝은 죽음이었기에 육수부는 침통하게 물었다. 푸른 용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송의 역사 3백년간 이어져 온 의리를 지킬 때가 왔습니다. 송이 저희의 불꽃을 꺼트리지 않았으니, 저희 또한 송의 불꽃을 지키기 위해 죽겠습니다.”


육수부는 잠시 눈을 감고 침묵하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구 황족들은 육수부의 허락을 받고 전열에 서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육수부는 홀로 남자 눈을 뜨고 젖은 눈가를 소매로 훔쳤다.


“하늘이시여, 듣고 계십니까?”


육수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그를 비웃듯이,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르렀고 그는 비참한 심정으로 한 맺힌 응어리를 토해냈다.


“수만 명의 사대부들이 송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내던졌습니다. 수백만의 백성들은 온 목숨을 걸고 몽골과 맞서 싸웠습니다. 이것으로도 부족한 겁니까?! 어찌하여 송을 저버리시는 겁니까?!”


육수부는 그를 내려다보는 하늘에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저 잔인한 몽골과는 달리, 송은 덕으로 중화를 통일하여 덕으로 통치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어찌하여 우리에게 남은 것은 절개를 지키기 위하여 죽는 길 밖에 남지 않은 것입니까?!”


육수부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흘러내렸고 목은 잔뜩 쉬었다. 그럼에도 하늘은 여전히 푸르렀다.


“도망칠 곳이 정녕 없는 것입니까?! 수십만 병사들이 죽어 흘릴 피로 송의 역사를 새롭게 쓸 수는 없는 겁니까?! 그저 절개를 지키며 죽었다는, 사서의 기록 몇 줄을 위하여 죽는 길 밖에 남지 않은 것입니까?!”


육수부는 입에서 피를 토했다. 입을 손바닥으로 틀어막자, 손은 피로 흥건히 젖었다. 한 말의 피를 토하고, 옷이 피로 물들자 그의 피가 멎었다.


“하아...하아...”


힘을 잃은 육수부는 자리에 앉아 축 늘어졌고, 그의 등 뒤로 한 새끼용이 다가오는 것도 눈치 채지 못했다. 새끼용은 육수부의 등 뒤에서, 말없이 그를 끌어안아 주었다.


“폐하...!”


“...재상, 아무 말 말게.”


천자는 재상을 끌어안아 주었고, 재상은 울지 않으려 했으나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이내 천자도 재상과 함께 울었다.


푸른 하늘은 무심히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

* 쓸까 말까 엄청 고민 많이 했는데, 쓰지 않으면 도저히 뽕이 빠지지 않을 것 같아서 일단 쓰기로 함.

* 뭐...사실 볼 사람도 얼마 없을거 같긴 한데, 그래도 뽕을 빼기 위해서. 나름 열심히 써보기로 함, 결과가 어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 송나라 멸망 다룬 신불해님 글 보고 뽕 맞았는데 뽕이 가시질 않더라. 내가 쓴 글보다 훨씬 잘 쓴 글이니, 관심 있으심 함 보시는거 추천.


* 이 세계관에선 몽골이 진짜 전 세계를 정복했음, 잉글랜드랑 일본까지 싹 먹고. 진짜 남은게 송나라 하나뿐임.


* 대포랑 화차는 이때 없었다는데. 대체역사고, 대포가 없으면 그림이 안사니 좀 너그러이 봐주심 감사하겠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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