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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테라 공성전 : 종말과 죽음] 1: viii 파편들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3.02 11:08:36
조회 990 추천 25 댓글 5
														


1: viii

파편들



온 사방에 크레이터가 깊이 파였고, 프로메슘이 고여 호수를 이루었다. 그중 일부는 격렬하게 타오르며 그을음을 뿜어 공기의 주름 하나하나를 흐릿하게 적시는 화염의 석호로 화했다. 일부는 냉각수와 화학물질, 또는 박살난 저수지에서 쏟아진 물이 고인 호수가 연료로 뒤덮여 무지갯빛으로 물든다. 타오르는 연료가 거의 투명한 화염을 일구며 나부끼는 곤충의 형상을 일군다. 구리 찌꺼기가 들어간 웅덩이는 섬뜩한 분홍빛으로, 청산가리가 들어간 웅덩이는 청자빛으로 물들었다.



상투스 장벽의 그늘에서 화이트 스카 군단의 소죽이 후위대를 소집한다. 화이트 스카 군단병들과 근위장의 주먹들, 그리고 일부 블러드 엔젤 군단병들이 비척대며 합류한다. 소죽은 기진맥진했고, 슬픔으로 지쳐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 그는 쓰러진 카간의 시신을 안치한 뒤 그 곁에서 무릎을 꿇고 애도하며 보내게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대성벽은 이제 무너졌고, 위대한 카간의 시신을 안치한 성소마저도 더 이상 안전한 곳이 되지 못했다. 전쟁은 더욱 가까워졌다. 그래서 소죽은 일어섰고, 슬퍼하고 있는 여주인 일리야 라발리온에게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다시 전장을 향해 달려왔다. 스스로를 찾기 위한 길이었다.


영원의 문은 폐쇄되었다. 이제 후퇴할 기회 따위는 없다. 소죽에게 남은 운명은 전장에 남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다가 닥쳐올 파멸을 맞이하는 것뿐이다.


본래 후위대를 지휘하던 것은 돈의 혈손이자 훌륭한 중대장이었던 모르텐 린츠(Morten Lintz)였다. 그는 지휘 도중 헤비 볼터 사격에 맞고 머리가 부서져 쓰러졌다. 린츠가 전사한 이후 소죽은 차선임자인 으로서 지휘권을 확보했다. 이제 이 전선은 그의 것이었다. 가늘고 얇은 전선, 그 뒤로 비틀려 있는 데스 가드 군단의 군세가 밀려오고 있었다. 초원에서 여름을 맞으면 모피를 내려놓듯이, 소죽은 슬픔을 떨쳐냈다. 그리고 이제 같은 본능으로 사냥매의 날카로운 초점을 유지한다. 미끄러지듯 날아 내려가 살육을 일삼고자 하는 그 집중력. 평원에서 키우는 매들에게 주어지는 먹이는 오직 찌꺼기에 불과하다. 그 발톱만큼 날카로운 식욕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다.


이곳이 그의 탁 트인 평원이다. 그는 곧 매다. 날아오르기 위해 긴장을 갖추고, 다른 매들이 함께 날도록 호출한다.




뻣뻣하게 굳어 영원한 미소를 짓는 시체가 진흙더미에 갇혀 우뚝 서 있다. 준엄하게 든 팔이 가리키는 것은 없다.




군중은 도망치기 바쁘다. 그들은 울부짖고 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이들은 눈이 멀고 먼지로 숨이 막힌다. 소리를 치고, 손에 든 종을 울린다. 서로를 듣고, 볼 수 있도록. 홀로 남게 되면 길을 잃을 것이 분명하다. 한때 자랑스러웠던 거리를 따라 도망치는 제국 신민들의 뒤로, ‘황제는 죽어야만 한다’고 새겨진 핏빛 글귀, 카오스와 대역의 외설적인 상징이 따라붙기 시작한다.


어디로 도망쳐야 할지조차 알 수 없다. 돈이 준비한 참호와 대피소는 이미 가득 찼다. 무너진 도시는 제 시민들을 지키려 하겠지만, 마그니피칸의 생존자들은 안테리오르로 향했었고, 안테리오르가 불탄 그때 안테리오르의 생존자들과 함께 다시 팔라틴 구역으로 탈출했다. 최후의 요새가 그들을 지키리라 생각했지만, 그 수백만 명을 피신시킬 공간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참호는 가득 찼고, 군령과 전술적 필요성에 따라 생텀의 광대한 지하로 통하는 모든 출입구 역시 봉쇄되었다.


거리에 갇힌 채, 군중들은 어딘가로 도망치려 애쓴다. 죽음의 공포가 군중들의 심장을 뒤흔든다. 벽 위에 쓰여진 ‘황제는 죽어야만 한다’는 글귀를 보며, 그 최후에 자신들도 함께할 것임을 깨닫는다. 의심의 여지조차 없다.




안전한 피난처는 없다.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건드리지 않을 대상 따위도 없다. 살해당한 건물이 흩뿌리는 파편이 쏟아지며 거리로 도망치는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다. 유리가 칼날처럼 비가 되어 내린다. 핏빛 비와 화염의 진눈깨비, 재로 이루어진 눈이 내린다. 숨쉴 공기조차 부족하다. 숨을 헐떡이며 연기, 먼지, 폐를 갉아먹을 바위와 자갈 미세입자까지 한없이 들이킨다. 박테리아 증기와 화학 무기, 독성을 지닌 생물학적 폐기물까지 끝까지 들이마신다. 목이 막히고, 잇몸에선 출혈이 인다. 혀는 썩어들어가고, 혈관이 터지며 눈물이 뺨을 붉게 물들인다. 맨눈에 모래가 뿌려지고, 폐는 거품으로 굳어진다.




아퀼라 가도(Via Aquilla) 위, 누군가가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항상 누군가가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누구도 없을 때조차도.




일리야 라발리온/소죽 등장.


가급적 매일 올리려 하는데, 빨간날/주말은 어려울 수도 있음. 양해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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