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력 M41.444.

흔히들 펜리스의 주민들은 차가운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그 말의 어디까지가 시적인 표현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알지 못했으나, 그 혹독한 추위가 펜리스인들의 가슴 속에 깊게 남아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좋든 싫든, 우리들 모두는 고향 행성의 특성을 품고 자라난다.

아니카 야를스도티르는 신기할 정도로 주어진 권위를 쉽게 다루었다. 나는 내 형제들처럼 말주변이 좋은 편은 아니어서 그녀가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아마도 갈레오의 평가가 가장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그는 그녀가 최소한의 언행으로 최대한의 복종을 이끌어내는데 재능이 있다고 했다. 마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상대방이 복종하길 요구하는 것처럼.

Cheth 행성에 진입했던 날 저녁, 나는 싸이킥 링크를 통해 갈레오의 생각을 다시 한 번 전해들었다. 그때 나는 아니카가 그녀의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역시 내 마음을 읽은 갈레오는 천천히, 내가 보고 있는 것에 대한 정보를 건네주었다. 언제나 그랬었지만, 갈레오는 나의 형제 중 가장 거슬리지 않는 이였다.

아니카는 일반 인간의 기준으로 봤을 때 키가 굉장히 큰 여성이었다. 펜리스인들은 큰 키에 강건한 육체로 이름 높았고 그녀 역시 그 명성에 누를 끼치지 않고 있었다. 

갈기처럼 풍성하고 검은 머리카락은 펜리스인들 사이에서는 보기 힘든 색으로, 그녀의 경우처럼 실크처럼 부드럽고 긴 머리카락은 특히 그러했다. 그녀는 그 머리카락들을 잘 정돈하여 한쪽 어깨로 늘어뜨려 놓았다. 아니카의 피부색은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희었는데, 표백제처럼 창백하기보다는 겨울철 절벽에 소복히 쌓인 흰 눈처럼 생기가 넘쳤다.

그녀의 눈동자는 이질감을 느낄 정도로 새파랗다. 많은 것을 봐왔던 나조차도 그와 같은 푸른색을 본 것은 딱 한 번, 내 고향 행성에서 유달리 거세게 휘몰아쳤던 태풍을 맞닥뜨렸을 때 뿐이었다. 

위성 타이탄의 산봉우리들은 용암 대신 냉기가 넘실대는 액화 암모니아와 질소를 내뿜었다. 태풍을 타고 대기 중으로 떠올려진 그것들은 다시 결정화돼서 지상에 돌아왔고, 이때 몸을 숨기지 못한 이들은 태풍과 파편의 희생양이 될 뿐이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그 얼음 결정들을 가져다 박아넣은 것 같았다. 깊고 푸른 눈동자는 저녁 그늘을 맞아 세룰라인 블루색처럼 짙게 물들어가는 액화 수정 결정들을 닮았다.

물론 그녀의 특이한 눈동자는 인공적인 의안이었다. 색을 제외한다면 사람의 눈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정교하게 제작되었긴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안에서 움직이는 모터 소리와 그녀가 의안으로 사진을 찍을 때 조그맣게 들리는 ‘찰칵’ 소리를 뚜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가끔 그녀가 일부러 의안의 색을 그렇게 골랐는지 궁금해하곤 했다. 알게 된 지 조금 시간이 흘렀으나, 우리는 대화 그렇게 자주 나누는 사이가 아니었기에 물어볼 기회는 없었다.

어엿한 이단심문소의 요원인 그녀는 더 이상 펜리스의 전통적인 전투 복장을 착용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여느 제국 요원들처럼 몸에 맞는 바디 슈트와 쟈켓을 선호했다. 물론 그렇다고 그녀가 부족의 전통을 완전히 등한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엉덩이 부근에는 여전히 백목과 조잡한 청동으로 만들어진 투척용 도끼가 매달려 있었다. 나는 그녀가 왜 그런 유물같은 무기를 사용하는지 알 수가 없어 물어본 적이 있지만, 그녀는 과거에도 잘만 사용했다고 답할 뿐이었다. 나는 굳이 마음을 읽어 그 말의 진위여부를 확인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등에 볼터를 메고 있었는데 볼 때마다 항상 신기한 광경이었다. 흥미롭게도 그녀는 보통 인간에 맞춰 크기가 조정된 볼터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녀의 볼터는 스페이스 마린 사양의 Mk-5b형 고드윈 패턴 볼트건이었다. 그녀가 그것을 손에 쥘 때면 마치 총이 아니라 핸드캐논을 쥔 것처럼 보였다. 흑철로 만들어진 몸통에 크레타시아인들의 룬문자가 암금으로 장식되어 있는 그 볼터는 한눈에 봐도 장인의 작품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궁금증은 더 커져만 갔다. 나는 크레타시아어는 물론이고 거기서 갈라져 나온 세 가지 방언들도 구사할 수 있었다. 크레타시아의 언어는 현 제국 언어의 뿌리가 되는 600개의 언어들 중 하나였고, 그레이나이트의 교육 과정에는 이들을 배우는 것이 포함되었기에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볼터 측면에 새겨진 문장은 무기가 그녀를 위해 주문 제작된 물건이라는 점을 증명하고 있었다. 대체 그녀가 크레타시아를 모행성으로 삼고 있는 플레시 티어러 챕터와 무슨 관련이 있기에 저 볼터를 얻을 수 있었을까?

스페이스 마린들이 사용하는 볼터는 그 자체로도 보통 인간이 들기 어려울 만큼 무겁다. 따라서 그녀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조그마한 반중력 코인 3개를 부착하여 무게를 줄여야 했다. 그녀는 두꺼운 가죽끈으로 그 볼터를 등에 단단히 고정하고 있었다.

“섭정 각하. 긴히 드려야 할 말이 있습니다.”

그녀가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Cheth 행성을 다스리는 제국 섭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는 관대함이 가득 차 있었다. 마치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녀의 제안을 언제라도 거절할 수 있다는 것처럼.

“그렇게 하지, 이단심문관이여. 할 말이 있다면 해야 하지 않겠소.”

그의 몸집은 비대하다 못해 징그러울 수준에 근접해 있었다. 내가 아는 그녀의 성격대로라면, 그의 목숨은 이제 약 30초 정도 남았을 것이다. 아니면 더 짧으려나.

오후에는 퍼헤가 올라갈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