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아직도 오래전 그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의 모성이 전우들의 손에 잿더미가 되어 오직 한줌의 바위 덩어리만을 남기고 우주의 티끌이 되어버린 날, 오해로 얼룩진 나머지 결코 씻을 수 없는 낙인이 찍힌 순간, 매 순간 도망만을 쳐야만 했던 나날들, 그는 그 어떤 것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쉬지 않고 도망치던 무의미한 삶을 살던 와중에 그는 이상하게도 잠깐이라도 쉬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기 시작했다.

잠시라도 멈추면 백골의 갑주를 입은 자들이 자신을 잡으러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의 머릿속에는 쉬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순간 그의 눈에 나무 그루터기가 보였다.

수평으로 잘려있으며, 앉는 순간 뭉친 다리가 풀릴 것 같은 그루터기였다.

그는 지친 몸을 이끌고 그루터기에 걸터 앉아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편안했다. 마지막으로 앉아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지금 그것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는 지쳤기에 쉬고 싶었고, 단지 그 뿐이었다.

순간 덤불 사이에서 무언가 부스럭거리자 그의 몸은 반사적으로 볼트 피스톨을 꺼내들어 덤불을 향해 겨누었다.

자신을 단죄할 자가 아직도 남아있었는지 두려워하던 그는 곧 덤불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슴을 보자 천천히 무기를 내려놓았다.

사실 그도 더 이상 자신을 단죄할 형제들이 거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두려운 나머지 모든게 다시 시작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망만을 택한 것이었다.

이제 도망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계속해서 그루터기에 앉아 있었다.

그는 더 이상 배신자가 아니었다. 그는 그저 쉬어가는 방랑자일 뿐이었다.

---------------------------------------------------------------------------------

멸망 후 살아남은 뽈른 글을 한번 써봤습니다. 모자란 필력이라 죄송할 뿐입니다

뽈른 만세 루서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