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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테라 공성전 : 종말과 죽음 3부] 9:xiv 탈출 전략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2.15 13: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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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xiv 탈출 전략



“현재로서는 탈출이 불가능하오.”


아몬이 그녀에게 입을 연다.


“보시다시피 말이오.”


마치 보충하듯 말이 덧붙는다.


안드로메다-17은 거의 웃음을 터뜨릴뻔한다. 파수대원이 뱉은 말 중 가장 농담에 가깝게 들렸기에. 아몬은 늘 그렇듯 무뚝뚝한 표정이다. 그렇기에 그 발언이 더 우스꽝스럽게 들린다.


반역자 워마스터가 최후의 요새에 가한 침공은 마침내 안식처의 문턱까지 도달했다. 순환호 너머, 영원한 도시는 광활한 독성 스모그로 뒤덮인 채, 불길에 휩싸여 타오를 뿐이다. 아이게우스 천공교 너머의 중앙 광장 위로 잔해가, 그리고 점점 늘어나는 시체들이 쌓인다. 반역자 정규군 병력들은 호기심 속에 중앙 광장을 가로질러 무너지지 않은 이 낡은 탑으로 향한다. 저들에게는 약탈하고 훼손해야 할 또 다른 건물로 보일 것이다.


놈들을 아몬이 막아내고 있다. 아몬이 자리한 곳은 주랑 현관 바로 바깥의 장갑화된 콘솔이다. 플라스틸 바닥으로부터 이음매조차 보이지 않게 튀어나온 콘솔에서 아몬은 안식처의 방어 상태를 설정하기 시작했다. 아몬은 무한히 침착한 표정으로 반격 시스템의 상태를 살피는 중이다. 융기부의 가장자리와 다리의 하부에 내장된 보이드 쉴드 생성기가 작동하면서 아이게우스 천공교와 융기부 전체, 그리고 탑의 하부를 완전히 엎은 채다. 4연장 라스 캐논과 아드라틱 니들건이 장비된 부속 포탑도 다리 머리에서, 융기부의 가장자리 끝에서, 그리고 탑의 낮은 테라스에서 솟아오른 뒤다. 인장관의 안식처는 그 자체로 작은 요새나 다름없다. 아직 불을 뿜는 것은 교두보의 포탑들이고, 가장자리의 경계와 탑의 측면에 설치된 것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안드로메다는 쉴드가 깨져 나가는 때에 그 포탑들도 불을 뿜게 될 것임을 알고 있다. 만약 깨져나간다면, 이 아니라, 깨져 나가는 때에 말이다.


고형탄과 라스 볼트들이 방어막을 난자하며 파문을 일으킨다. 아몬은 적을 바라보지도 않고 있다. 오직 차분한 손놀림으로 콘솔의 화면을 보며 대응과 사격 지점을 설정할 뿐. 교두보의 포탑들이 연기가 피어오르는 지점에 경제적인 집중 사격을 퍼붓는다. 안드로메다는 전진하는 반역자 분대가 정확한 라스 사격에 쓰러지는 것을, 그리고 아드라틱 병기가 발하는 얇지만 밝은 광선이 개개인을 소멸시키는 것을 본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그녀가 묻는다.


“전력만 버텨준다면.”


아몬은 손가락으로 콘솔에 표시된 다른 목표물을 향해 포탑을 지향하며 대꾸한다.


“그러니까 얼마나 오래요?”

“불확실하오.”


그가 대꾸한다.


큰 폭음이 들리며 안드로메다가 움찔한다. 로켓 추진 유탄이 보이드 쉴드에 정면 충돌하며 전율이 있다. 아몬은 포탑 방향을 다시 바꾼다. 400미터 떨어진 중앙 광장의 반역자 유탄병 분대가 중 라스의 급속 집중 사격에 그대로 녹아내린다.


“사격도 절약이 필요하지.”


아몬이 덧붙인다.


“보이드 쉴드는 보병의 공세에는 견딜 수 있소. 하지만 더 심각한 위협이 이른다면, 보이드 쉴드를 약화시키거나 부숴낼 수 있겠지.”

“심각한 위협이라면…”

“기갑부대가 대표적인 경우겠군.”


아몬이 답한다.


“그리고 아스타르테스.”


그 이상의 명단을 완성할 필요조차 없다.


“포가 작업을 끝냈어요.”


안드로메다가 입을 연다.


“그리고 그는… 다소 덜 협조적이 되었죠. 그를 이송해야 합니다.”

“말씀드렸듯이, 불가능하오.”

“탑을 빠져나갈 다른 길이 있을 거예요, 아몬.”


그녀가 입을 연다.


“인장관이 도시를 다니는 데 사용한 우회로들이 있었겠죠. 지하라거나-”

“설계도에서는 출구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소.”


아몬이 답한다. 그와 동시에 다른 포탑을 재정렬하고, 보이드 쉴드 너머에서 라스가 짖어대며 딱딱대는 소리가 들린다.


“안식처는 보안이 확보된 장소였으니.”

“하지만 당신은 이 도시에 대해 알잖아요!”


안드로메다가 끝까지 우긴다.


“당신들 쿠스토데스들은, 끝없이 피의 시합을 하면서 모든 지하 통로와 좁은 공간 하나하나까지-”


갑작스럽게, 아몬이 그녀를 직시한다.


“더 이상은 모르겠소.”


아몬이 답한다. 마치, 그가 인정할 수 없는 사실을 내뱉는 것처럼 느껴진다.


“도시가 변화했소, 셀레나르. 워프가 도시를 재구성했단 말이오. 게다가 인장관의 안식처는 우리에게조차 비밀로 유지된 곳이었지. 비밀 탈출 수단이 있을지도 모르오. 섭정께서 그런 준비를 하셨으리라는 것에 한 점 의심도 없지. 하지만 나는 알지 못하오. 크산투스가 알고 있었다면 나에게도 공유했을 테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태일 가능성도 있소. 설령 아직 존재한다 해도, 나는 그것들을 탐색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지.”


콘솔로 돌아선 그가 교두보의 포대를 조작한다. 거의 냉정하기까지 한 손길로 그의 센서에 설정된 전술 영역으로 새로 등장한 네 개의 적대적 아이콘을 향한 사격을 지시한다.


안드로메다는 답하려 하지만, 짧고 맹렬한 포성이 그녀의 넋을 빼놓다시피 한다. 보이드 쉴드가 풍기는 오존의 악취가 목을 따끔거리게 한다.


“그래서, 이제 어떡하죠?”


소음이 잦아들자 그녀가 입을 연다.


“도움이 오기까지 버틸 수 있기를 바라면 되나요?”

“도움은 없을 거요.”


아몬이 답한다.


“아몬-”

“가능한 변수들을 신중하게 검토해 봤소.”


인내심 어린 표정으로 아몬이 화면을 바라보며 말한다.


“도움이나 구조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오. 옥좌실이나 그 어떤 상부 기관에 연락할 방법도 없소. 탈출할 수도 없소. 공격을 영원히 막아낼 수도 없소. 이제 선택지는 하나뿐이오. 당신도 같은 결론에 이르렀을 것이라 생각하오만.”

“지금 그러니까-?”

“그렇소.”


그가 답한다.


“무기를 배치해야 하오.”


안드로메다는 답하지 않는다. 아몬이 그녀를 바라본다.


“내가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에 당혹스러울 줄 아오.”


아몬이 입을 연다.


“결코 가볍게 내린 결정이 아니오. 나는…”


잠시 말을 멈춘 그가 침을 삼킨다.


“내 직무에 충실해야 할 따름이오. 나는 내려온 지시를 따랐소. 추가 명령이 내리기를 최대한 오래 기다리기도 했고. 이것은 결코 내가 원한 선택이 아니었소. 더 나은 이들이 내려야 할 결정이지. 하지만 그 더 나은 이들이 이미 모두 죽었을 가능성도 있고, 추가 명령이 내려오지 못하거나 인증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소. 우리가 지탱해 온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단 말이오. 지금 행동할 수도, 행동하지 않을 수도 있소. 하지만 나는 아직 기회가 있는 동안 행동하지 않는 것보다, 잘못된 결정을 내려 심판을 거쳐 처형당하는 쪽을, 그리고 후대의 수치를 직면하는 쪽을 택하겠소. 나는 내 자신, 내가 받을 처벌, 내가 짊어져야 할 죄책감 따위에는 신경쓰지 않소. 나는 황제 폐하를 섬기오. 나는 제국을 섬기오. 제국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오, 셀레나르. 다른 증거나 정보가 없다면, 포의 무기를 사용해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생각하오. 더 이상 지체하면, 그럴 기회조차 사라지겠지.”

“이것이 XX등급 종착점 윤허에 해당한다는 것은 알고 있겠죠.”

안드로메다가 입을 연다.


“그 책임을 지겠다고요?”

“그래야만 하오.”

“제 조언에 반해서?”

“당신의 조언은 현재 적절하지 못하오. 제국의 생존은 레기오 쿠스토데스의 책임이며,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쿠스토데스는 나 뿐이지.”

“그래서… 지금 하자는 건가요?”


안드로메다가 묻는다.


“도시는 불타고 있소, 안드로메다. 최후의 요새는 함락당했고.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겠소?”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몬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작은 감정적인 균열은 지금껏 그녀가 들었던 것 중 가장 고통스럽고 가련하다.


“포에게 윤허 병기의 즉각적인 준비 태세 발령을 지시하시오.”


아몬이 말한다.


“특정 목표로 삼을 유전정보는 레기오 아스타르테스와 프라이마크요.”

“그러니까… 반역자 말이죠?”


안드로메다가 묻는다.


“우리를 여기까지 몰고 온 것은 프라이마크들과 그 아들들이오.”


아몬이 답한다.


“우리는 누구도 믿지 않소. 무엇도 신뢰하지 않고. 우리는 어떤 감정이나 약점이 스스로의 판단을 흐리게 하거나 손길에 남는 것을 허락하지 않소. 오직 확신이 있을 뿐. 내가 지시를 반복해야 하겠소?”


안드로메다-17은 고개를 젓는다. 돌아선 그녀는 서둘러 탑으로 돌아간다. 아몬은 콘솔을 응시한다. 여덟 개의 표적아 새로 중앙 광장에서 사거리 내로 이동하고 있다. 그 중 한 표적은 여단 규모에 달한다.


아몬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포대들을 정렬한다. 교두보의 포탑들이 다시 토염하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잠시간 이어지는 포격도, 혹은 경제적인 포격도 아니다. 맹렬한 포격이 반복되기 시작한다.






안드로메다는 구불구불한 계단을 따라 오른다.


“크산투스!”


안의 공기는 서늘하다. 저 밖에서 들려오는 꼼꼼한 대학살의 소음은 탑의 두꺼운 벽과 제습 역장에 가로막혀 먹먹할 뿐이다.


“크산투스!”


말카도르의 연구실은 텅 빈 채다. 여전히 작동 중인 숙고기와 유전자 접목기의 윙윙대는 소리를 들으며 그녀가 걸음을 옮긴다.


“크산투스? 선택받은 자?”


아마 저 윗층에 있을 것이다. 인장관의 서류들은 여전히 책상 위에 어지러이 널브러져 있다. 많은 서류와 메모들이 바닥에 널려 있다. 그 조그마한 개자식은 항상 일을 어수선하게 처리했다. 그녀는-


그녀가 멈춘다. 저기, 철제 작업대 가장자리. 핏방울이다. 단 한 조각이지만, 갓 흘린 자국이다. 시험용 플라스크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흘려진 피다. 뚝뚝 흐른 피.


그녀는 주위를 살핀다. 쪼그려 앉은 채, 작업대 아래를 들여다본다. 의자를 밀어내자 바닥 위로 더 많은 혈흔이 보인다.


웅크린 자세를 유지한 채, 천천히 몸을 돌린 안드로메다는 조심스럽게 벤치 아래를 살핀다. 낮은 각도이기 때문에, 탑의 계단 아래 공간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오 제기랄.”


그녀가 중얼거린다.


크산투스는 벽에 등을 기대고서 계단 아래에 다리를 뻗고 쓰러진 채다. 고개는 숙여져 있다. 목을 움켜쥔 상태다. 그 손에 피가 묻은 것이 보인다.


“크산투스? 놈은 어디 있지?”


안드로메다가 크산투스를 일으키려 하자 크산투스는 그대로 축 틀어진다. 손이 느슨하게 떨어지고, 목의 상처에서 피가 솟기 시작한다.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바닥에 크산투스를 내린 그녀는 손으로 출혈 부위를 압박한다. 안드로메다가 그의 손을 잡는다.


“크산투스! 일어나! 꽉 잡고! 마음 단단히 먹어!”


크산투스는 거의 의식이 없는 채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손을 붙들고 억지로 상처에 꽉 매단다. 서둘러 벽에 묶인 응급 처치함을 가져온 안드로메다는 거의 던지다시피 상자를 뜯고 내용물을 뒤적여 가지고 돌아온다. 크산투스의 머리와 목 주위로 선혈의 웅덩이가 고인다.ㅏ


“크산투스, 이 머저리 같으니.”


안드로메다가 으르렁거린다. 손을 치우자 목에서 피가 약하게 흐른다. 소독제로 상처를 씻어낸 다음, 유사육신 반창고를 목에 붙인 뒤 열 접합봉으로 피부에 접합한다.


“크산투스-”


그녀의 손도 피에 흠뻑 젖은 채다. 크산투스의 눈꺼풀이 떨리고, 느린 신음이 토해진다.


“크산투스? 크산투스, 일어나. 크산투스! 놈은 어디 있지?”

“날 공격했소…”


선택받은 자가 속삭인다.


“나도 그건 알아.”

“메스로…”

“크산투스, 놈이 어디 갔냐니까?”


크산투스가 눈을 뜬다. 충격과 혼란 속에, 아직도 의식은 온전하지 못한 채다.


“그 늙은 개새끼 어디로 갔어?”


크산투스가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다시 말해!”


안드로메다가 거의 짖다시피 한다.


“윗층…”


크산투스가 중얼거린다.


일어선 안드로메다는 자기 위의 천정을 바라본다. 계단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크산투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말할뻔하지만, 그 생각이 어리석었음을 곧 깨닫는다. 크산투스는 어디에도 가지 않을 테니까.


그녀는 황궁 경내에서 무기 소지를 허가받은 바 없다.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는 작업대에서 멸균 작업용 봉을 집는다. 무게를 가늠하기 위해서다. 곧 그녀는 봉을 내려둔 뒤 쓰러진 크산투스에게 다가간다. 안드로메다의 손이 열 접합봉을 쥔다. 그저 응급 처치 도구일 뿐이지만, 최대치로 설정하면…


안드로메다는 열 접합봉 손잡이 하단의 다이얼을 최대치로 돌린다. 마치 단검처럼 봉을 쥔 그녀가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중앙 광장의 남쪽에서 표적 군집 세 개가 사거리 안으로 진입한다. 북쪽에는 두 개의 표적 군집이 포착된다. 아몬은 표식자를 따라 반역자 아스타르테스가 이끄는 것으로 보이는 가장 큰 무리가 우선시되도록 포격 구역을 재설정한다. 두 문의 라스캐논 포대에 대해서는 적 대형을 갈아엎도록 하는 동시에, 아드라틱 바늘총은 아스타르테스를 조준하게 설정한다. 보이드 쉴드의 번쩍이는 장벽 너머, 원격 조종되는 무장들이 윙윙대며 서보 프레임에 정렬된다. 4연장 포가 전진하는 놈들의 바깥쪽 가장자리를 겨누고 화력을 쏟아낸다. 화력 투사 지점은 놈들의 중심부에 원뿔형 사격 범위가 겹치기까지 서서히 움직인다. 그와 함께, 아드라틱 바늘총이 뿜어낸 눈부신 섬광이 반역자 정규군 부대를 이끄는 뿔 달린 아스타르테스를 강타한다. 놈을 죽이는 데에는 긴 시간과 많은 동력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아몬은 다른 표적을 겨눈다. 포대가 뻗어나가 회전한다. 짙은 연기 너머로 화력이 쏟아지며 적 화력조 두 놈을 그대로 박살낸다. 몇 놈은 엄폐물로 도망치려 한다. 하지만 널찍한 중앙 광장에는 엄폐물이라곤 찾을 수 없다. 어떤 놈도 성공하지 못한다.


그 사이, 북쪽에서 선견대 2개 분대가 전진해 불길이 치솟는 천공교의 난간에 도달하려 한다. 아몬은 포좌 두 개를 조작해 놈들을 처리하도록 지시한다. 한 분대는 중화력을 쏟아 부어 전멸시키고, 한 놈은 급속 후퇴하도록 유도한다. 그때 세 번째 소규모 부대가 남쪽에서 접근하는 것이 포착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용한 포대보다 더 많은 표적이 등장할 게 분명하다. 그 시점에는 반응 속도와 우선 순위가 최우선이 될 것이다.


아몬은 포대 하나를 재설정해 남쪽에서 접근하는 소부대를 겨눈다. 그 순간, 아몬은 그 뒤에서 밀려드는 적의 대군을 포착한다. 아몬은 빠르게 더 많은 수의 포대를 투입해 살상 구역을 구성하는 동시에, 광장 중앙에서 갑자기 나타나 빠르게 접근하고 있는 반역자 아스타르테스에게 아드라틱 니들건을 겨눈다. 남쪽의 표적들을 힐끗 바라본 아몬은 공격하기 직전 표식지를 식별한다. 선두에 선 소부대는 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다시 살핀 아몬은 센서에 탐색을 지시한 뒤 콘솔을 떠나 다리 끄트머리로 나아가 직접 시각 식별을 시작한다.


아몬은 소용돌이치는 연기 사이로 다가오는 형체들을 바라본다. 그저 형체만 보일 뿐이지만, 대규모 부대는 분명 호르트 루퍼칼리다. 작은 무리를 뒤쫓으며 충격을 퍼붓는 중이다.


아몬은 잠시 더 지켜본다. 그에게서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다. 콘솔로 돌아온 아몬은 재빨리 포대를 재조정하고, 루퍼칼리 병력들에 대해 치명적인 포격을 퍼붓는다. 작은 무리에 대해서는 포격이 닿지 않는다.


연기의 장막을 뚫고 비틀대며 작은 무리가 다리 머리 쪽으로 접근한다. 아몬은 그들이 제 사격각 내에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포대에 자동 조준과 그들 배후의 모든 것에 대한 자유사격을 지시한다. 다가오는 형체들을 향해 아몬이 서두르라는 뜻을 담아 손짓한다. 적의 사격이 보이드 쉴드에 맞아 계속 튕겨 나간다. 계속 기다리던 아몬은 마지막 순간 다리 끝에서 보이드 쉴드를 해제한다. 다섯 형상이 아이게우스 천공교를 가로질러 그를 향해 달려온다. 뒤에서 날아든 사격이 탑의 전면부를 강타한다. 새로 온 이들이 다리의 경간에 오름과 동시에, 아몬은 다시 보이드 쉴드를 재점화하여 틈을 메운다.


콘솔에서 물러선 아몬은 다가오는 이들을 응시한다. 그의 손이 수호자의 창을 쥔다. 지금조차도,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파수대원 아몬.”


이오스 라자가 융기부에 발을 디디며 말한다.


“헤타이론 동행대원 라자.”


아몬이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탁월한 전사인 라자가 이렇게 상처받고 깨진 모습이라니, 생전 처음 보는 형상이다.


라자 뒤에는 초췌한 기색의 화이트 스카 군단병, 유령처럼 속삭이는 침묵의 자매단원 두 명, 그리고 헐떡이며 비틀대는 인간 남성이 보인다.


“바실리오 포로 통하는 개인의 신병을 확보하고 있나?”


라자가 묻는다.


“그렇소.”

“그리고 그의 장치는?”

“확보했소. 천공의 이치에 맞게 수정과 개선을 거쳤고, 배치 준비도 끝냈지.”

“배치를 승인했나?”


라자가 다시 묻는다.


“그랬소. 하지만 아직 취소할 수 있는 상황이오. 구원군으로 온 거요?”


라자는 허리를 접다시피 한 채 몸을 구부리고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 예복 차림의 남성을 바라본다.


“그는 그 목적을 위해 왔지.”


하산은 몸을 곧추세우고서 아몬을 바라보며 호흡을 조절하려 애쓴다. 그의 얼굴은 그을음으로 더럽혀진 채 피가 범벅이 되어 있다.


“저는 섭정공이신 인장관의 권위로서 여기 왔습니다.”


하산이 여전히 헐떡이며 말한다.


“여기 라자가 저의 말을 보증할 것입니다. 저의 요청을 존중하십시오.”

“무기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알고 있습니다. 그 기능과 수정 지점을 확인해 줄 수 있습니까?”

“포는 제 작품을 수정했소, 선택받은 자여.”


아몬이 답한다.


“이제 윤허 병기는 유전자 인자에 따라 특정 표적이나 대상 그룹에 맞게 유형화된 조준을-”

“그리고 그걸 사용할 작정이었습니까?”

“그 상황에서는 그것이 유일한 선택지였소.”


아몬이 답한다.


“커스토디안.”


하산이 조용히 말한다.


“이것은 20등급 병기입니다.”

“임무 기능에 따라 판단을 내렸을 뿐이오.”


아몬이 단호하게 답한다.


“나도 동의한다.”


라자가 답한다.


“그 상황에서라면, 나 역시 그 지시에 따라 움직였겠지.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우리는 구출을 위해 여기 왔다.”


다음 순간, 보이드 쉴드 밖에서 거대한 폭발이 연이어 터지며 모두가 뒤흔들린다. 아몬과 라자는 곧바로 콘솔로 향한다. 센서는 첫 번째 반역자 아스타르테스와 기갑 부대가 중앙 광장으로 진입하고 있음을 감지한다. 손상된 식별자에 따르면 제16군단 소속이다. 포탄이 중앙 광장 상단과 다리 머리를 향해 보이드 쉴드 위로 쏟아진다. 신호음이 울린다. 자동 포대가 비활성화되었음을 의미하는 소리다. 또 다른 신호음이 울린다. 방어막의 무결성이 깨지고 있음을 알리는 소리다.


라자는 화이트 스카 군단병 이벨린 쿠모, 그리고 침묵의 자매단원 두 사람을 돌아본다.


“준비하라.”


그가 말을 시작한다.


“방어막이 깨지면, 이 다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우리 맨손뿐이다.”

“출구 전략은 있소?”


아몬이 선택받은 자에게 묻는다.


“그는 우리보다 이 탑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겠지.”


라자가 대꾸한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를 대변하기 위해 말할 수 있습니다, 동행대원이여.”


하산이 쏘아붙인다. 낡은 코마그 돌격포를 가슴에 꽉 붙든 하산이 아몬을 본다.


“전 안식처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인장관께서 사적으로 이곳에 대한 광범위한 접근권을 허락해 주셨지요. 탑 상부에는 개인용 격납 갑판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인장관의 개인용 페리선이 항상 그곳에 대기하고 있지요.”

“크산투스는 아무 말도-”

“크산투스는 몰랐습니다. 선택받은 자들 중에서도 소수만 알고 있는 내용이지요.”

“그래서 하늘로 탈출하자는 말이오?”


아몬이 묻는다.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데.”

“오늘 이미 해 봤습니다.”


하산이 답한다.


아몬은 그런 하산을 응시한다.


“보이는 걸 봐선 썩 잘 풀리지 못한 것 같구려.”


아몬이 말한다.


“이것은 토론할 거리가 아닙니다, 커스토디안.”


하산이 으르렁거린다.


“경의 말씀은 이해하오.”


아몬이 입을 연다.


“토론의 여지가 없을 수 있겠지. 하지만 포와 그의 병기를 공중을 통해 운송할 수 있을 확률은 높지 않소. 그 무기를 잃어버릴 수도 있지. 여기서 지금 당장 병기를 배치한다면, 사용은 물론 결과까지 보장할 수 있소.”

“토론할 거리가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커스토디안.”


하산이 말한다.


“저는 불칸 전하께 직명을 받았습니다. 현재 테라의 최선임 명령권자이자 사실상 제국의 섭정을 맡고 계신 분입니다. 그분께서 내린 명령은 이 무기를 옥좌실로 가져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 임무지요. 저는 명령에 불복종하는 습관 따위는 없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그런 습관은 없소.”


아몬이 답한다.






인장관의 연구실 상층에도 포는 보이지 않는다. 생체 조정기의 용기들이 차갑고 푸른 빛 속에서 조용히 중얼거릴 뿐이다. 안드로메다-17은 의료 폐기물 소각기의 낮은 으르렁거림을, 그리고 소각기가 토해내는 희미한 열기를 느낀다.


안드로메다는 열 접합봉을 꽉 쥔다.


“포?”


그녀가 외친다.


“갈 곳은 없어. 숨을 곳도 없고.”


대답은 없다.


“포?”


역시 답은 없다. 다만, 저 위에서 가느다란 웃음의 울림이 전해질 뿐. 사실 구분하기 어렵다. 바로 밖에서 들려오는 전쟁의 노호는 이제 상당히 커졌고, 탑 자체도 조금씩이나마 흔들리고 있지 않은가.


안드로메다는 다음 층의 계단으로 가로지른다. 위층은 어둡다. 조명이 약하게 설정된 것 같다. 그녀는 올라가기 시작한다.


“포? 내 말 들어. 이러지 마. 탈출을 시도하면 바로 당신을 죽이려 들 거야. 의심의 여지도 없지. 지금껏 당신을 보호한 건 나라고. 내가 당신을 살려서 여기까지 오게 했다고. 포? 나한테 이러지 마. 당신을 좋아하는 척을 할 생각은 없지만, 난 당신 작업을 믿었어.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그냥 여기 모습을 보여. 항복해.”


안드로메다는 몇 계단을 더 오른다.


“포? 들려? 포기하라고. 아직 내가 당신을 지킬 수 있어. 이런 일을 저질렀어도, 처형해서는 안 된다고 설득할 수 있다고. 그치들은 당신이 필요해. 당신이 얼마나 필요한지, 내가 그치들에게 보여주겠다고.”


안드로메다는 계단의 정점에 오른다. 다음 층은 개인 연구 공간이다. 정돈되지 못한 소파를 겸하는 침대, 책과 장신구가 늘어선 선반이 보인다. 푸른 어둠 속에서는 세부사항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차크라 집중점이 박힌 양식화된 인간의 형상, 날개를 펴고 조류의 발을 단 테라코타제 여신의 조각상, 그리고 의식용 아엘다리 가면으로 보이는 것이 보인다. 벽에는 전쟁용 방패들, 낡은 전리품과 기념물들이 걸려 있다. 상처 투성이의 빛 바랜 방패 위에는 긴 세월 전에 잊혀진 통합 전쟁 시절의 라스라이플 여단의 휘장이, 그리고 썬더 워리어 부대의 무리 상징들이 새겨져 있다. 낡은 검과 도끼가 각각의 아래에 쌍으로 교차하여 붙어 있다.


“포?”

“그치들은 항상 날 죽이려 들었네, 유전자 마녀. 항상 그랬어. 이 이야기는 이렇게 끝날 운명이었을 뿐이지.”


안드로메다가 주위를 둘러본다. 어디서 그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걸까?


“내가 그 이야기에 다른 결말을 지을 수 있다니까.‘


그녀가 말한다.


”무슨 결말 말이지, 유전자 마녀? 감옥에서의 종신형? 그러면 내 육신을 새로이 빚어내 수많은 인생을 누릴 수 있을까? 그럴 것 같진 않은데. 난 저 커스토디안 개자식들의 죄수가 되는 건 이제 질렸어. 절대 그런 꼴을 다시 보지는 않을 걸세. 난 이미 그치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고. 이제 내 기회를 잡아야지.“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새어나오던 지점이 바뀐 것 같다. 서서히, 조심스럽게 그녀가 몸을 돌린다. 그림자, 냄새, 깜빡이는 움직임, 메아리치는 목소리까지, 그의 위치를 알려줄 작은 단서나마 찾기 위해.


”멀리 갈 수는 없을 텐데, 포. 지금 여기에선 더더욱. 탑을 어떻게 빠져나갈 생각이지?“

”저기 비행체가 있거든, 유전자 마녀. 비밀 격납고가 있지. 찾는 데 조금 걸리기는 했지만, 그의 기록에 남아 있더군. 친절하게도 그 기록을 내 손에 쥐여준 건 자네였지.“


다시, 목소리가 움직였다. 움직임이 남긴 자취일까? 스탠드에 전시된 스밀로돈의 두개골 옆의 탁자로 그녀가 움직인다. 벽이 스친다.


”이러지 마, 포!“


안드로메다가 외친다.


”도망치면 죽을 뿐이라고. 내가 도와줄게. 당신이 유용하다고 설득할 수 있어. 단순한 죄수 이상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니까. 난 아주 설득력이 뛰어나잖아.“

”그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네, 유전자 마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쿠스토데스에게 설득력을 발휘한 것은 나를 제외하면 자네뿐이니까. 그 비선형적인 윤리적 추론 말인데, 정말 대단했네, 유전자 마녀. 놈들은 너무 냉정하고 계산적이지. 하지만 자네도, 제국의 냉담한 합리성 앞에서는 한계가 있네. 셀레나르가 정말 그렇게까지 효과적이었다면, 이 문화권의 권력 구조 내에서 여전히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 않겠나? 한번 하고 싶은대로 마구 약속해 보게, 하지만 자네가 내게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드디어, 그녀는 생각한다. 목소리가 나오는 지점을 잡았다. 그녀는 포가 외모와 달리 얼마나 위험ㅎ나 존재인지 잘 알고 있다. 한 걸음, 안드로메다가 걸음을 옮긴다. 저 멀리 벽에 호르트 아프리카누스의 방패가 걸린 모습이 보인다. 그 아래는 통합 전쟁 당시 휘둘러지던 전기 레이피어가 고정되어 있다. 그 쌍둥이 한 쌍이 사라진 뒤다. 원래 검이 걸려 있어야 할 곳에, 텅 빈 받침대가 보일 뿐이다.


”포-“


안드로메다는 종이 작업복이 바스락대는 희미한 소리를 듣는다.


그는 지금 그녀 뒤에 있다. 어둠 속에서, 그는 그저 동력이 공급된 노란 칼날과 악마 같은 미소일 뿐이다.


레이피어가 그녀를 향해 내찔러 들어온다. 미친 듯이 몸을 비틀어 검을 피해낸 그녀는 두 번째 일격을 피하려고 접합봉을 간신히 제때 들어 올린다. 열기를 발하는 끄트머리가 충전된 칼날과 맞닿은 순간 쉿쉿대는 소리가 난다.


포가 퍼붓는 욕설은 거의 따갑게 느껴질 지경이다. 안드로메다는 뒤로 몸을 날린다. 놈이 그녀를 향해 달려든다. 또 다른 찌르기다. 안드로메다는 봉으로 칼날을 옆으로 쳐낸다. 하지만 이미 칼날이 그녀의 손등을 찢어내며 득점을 기록한 뒤다. 고통은 지독하다.


안드로메다는 그대로 몸을 뒤로 홱 던진다. 서두르다 침대에 부딪혀 균형을 잃을뻔한다. 그리고 포의 낄낄거림이 들려온다.


칼날이 그녀의 어깨를 베어낸다.






”최대한 버티다 철수해야 합니다.“


하산이 지시를 내리며 열주 회랑을 거쳐 안식처로 들어선다. 집중 포격의 운동 에너지와 열 에너지를 집어삼키며 보이드 쉴드가 끓어오른다. 아몬은 보이드 쉴드가 작동 중단에 임박한 상황에 어떤 꼴이 되는지 잘 알고 있다.


라자는 비질 커맨더 이레. 기사 백부장 리디에게 융기부 끄트머리의 다리 양끝에 자리잡을 것을 지시한 뒤, 화이트 스카 군단병 쿠모와 함께 교두보에 자리를 잡는다. 모든 것이 뒤흔들리고, 소음은 귀를 멀게 할 지경이다. 검은 연기로 뒤덮인 보이드 쉴드 너머로 보이는 것이 없다. 하지만 아몬은 콘솔 디스플레이에 표시된 식별자들을 알아본다. 수백여 개의 룬 꼬리표가 화면을 가득 메운 뒤다. 정규군 소속 부대. 기갑 부대. 그리고 선 오브 호루스 군단의 병력들이다. 인장관의 안식처는 아직 방어가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에, 특별히 취해야 할 상급으로 보이는 지점이다.


대부분의 룬 식별자는 일그러지고 깨져 있어 판독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아몬은 한 식별자를 읽어낸다. 보루스 이카리. 제4중대의 중대장. 처음 발견된 이의 가장 잔혹한 새끼 중 하나다.






하산은 서둘러 계단을 오른다.


”크산투스!“


하산은 계단을 오르며 외친다.


”죄수 이송 준비를 하게! 크산투스!“


하산은 저층의 실험실에 닿는다. 자란첵 크산투스는 그 바닥에 널브러진 채다. 목과 가슴은 피로 흠뻑 젖어 있다.


하산은 욕설을 중얼거린다. 맥이 약하다.


”크산투스? 하산일세. 죄수는 어디 있지? 셀레나르는?“

”윗층.“


크산투스가 쌕쌕인다.


”윗층에…“


하산은 벗의 머리를 부드럽게 바닥에 내려놓는다. 다시 그는 계단을 오른다. 몸에 새겨진 전투 훈련이, 근육의 기억이 되돌아온다. 진입로를 확보한 하산은 휘어 있는 탑의 벽에 등을 기대고 언제건 무장을 쏘아낼 채비를 갖춘다. 낡은 무기의 탄약 장전 상태를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남은 것은 30발이다. 오늘 하루 동안 벌써 탄창의 반을 비운 채다. 코마그가 아니었다면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이다. 만약 이카로의 작별 선물이 실용성보다 상징성을 담은 것이었다면, 그는 오늘 여섯 번은 죽었을 것이다.


검지를 방아쇠울에 기댄 채, 하산은 그대로 유전자 작업실로 올라간다. 저 윗층에서 소리가 들린다.






인장관의 침대 쪽에 몰린 안드로메다 17은 몸을 돌리려 한다. 베어오는 칼날이 거의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접합봉을 휘둘러 다음 공격을 막아내지만, 너무 짧은 도구라 싸움을 벌이기에는 모자라다.


다음 일격은 받아내지 못한다. 전기 레이피어가 그녀의 왼쪽 쇄골 아래를 꿰뚫는다. 칼끝이 어깨뼈 위로 튀어나온다. 꿰뚫린 육신이 뒤흔들린다. 고통이 극심하다.


검을 움켜쥔 채 포가 낄낄거린다. 놈의 왼손이 레이피어의 끄트머리를 보다 꽉 쥔다.


안드로메다는 고통 속에 입조차 열지 못한다. 동력이 들어간 칼날이 그녀의 피를 불태우는 냄새가 느껴진다. 검에서 몸을 뽑아낼 수 없다. 그래서 안드로메다는 오히려 검에 꽂힌 몸을 바짝 당기고, 열 접합봉으로 포의 뺨을 후려친다.


빗나간다. 대신, 놈의 오른족 눈에 가 맞는다.


포는 고통 속에 비명을 지르며 비틀대며 뒤로 물러선다. 검을 쥔 놈의 손에 힘이 빠진다. 안드로메다는 쓰러진다. 한쪽 무릎을 땅에 짚고 일어서려 하지만, 검은 빠져나오지 않는다.


”썩 친절한 짓은 아니군그래.“


망가진 눈을 가린 포의 손 사이로 연기가 흘러나온다.


”엿이나 먹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안드로메다가 말한다. 하지만 포는 무엇을 꺼내는지 기다릴 생각이 없다. 지금 포 역시 쓸 물건이 있으니까. 에어로졸 분사기가 달린 작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된 실험용 병이다. 그대로 포가 그 병을 안드로메다의 얼굴에 분사한다.


너무 가까이 있으면 곤란하다. 늙은이는 곧장 물러선다. 안드로메다-17은 바닥에 쓰러진 채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른다.


포는 거기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항상 스스로의 작품에 자부심이 대단했으니까. 이 녀석은 특히나 끔찍한, 생명공학을 동원해 만든 살육용 도구다. 맞춤형 육식성 박테리아를 액화 젤 현탁액 안에 모아놓은 물건이다.


얼굴과 목이 녹아내리면서 비명은 고작 몇 초 만에 멈춘다. 경련성 발작이 사라지는 데에는 그보다 시간이 좀 더 걸린다. 경련이 멈추고, 목 위로 안드로메다의 흔적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살이 파먹힌 상체는 여전히 그녀를 찌르고 있는 레이피어에 기이한 각을 그리며 기댄 채다.


하지만 죽는 순간조차도, 그녀는 맹목적으로 더듬으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주머니에서 꺼낸 물건이었다. 물집이 잡힌 손에서 불과 몇 인치 떨어진 바닥 바로 위에 있다.


포는 고통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물건을 확인한다.


신경 협응 경보기다.


”아, 아슬아슬했구만.“


포는 씩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그리고서 더 가까이 들여다본다.


그녀가 이미 누른 뒤다.


그것을 확인한 동시에, 포는 미친 듯이 폭언을 쏟아낸다. 몸을 돌린 포는 계단을 향해 반쯤 절룩거리듯이 뛰기 시작한다. 두 층만 올라가면 격납고가 있다.


다음 순간, 저 아래 계단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포는 실험용 병의 뚜껑을 벗긴 뒤 계단에 대고 병을 던진다.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그의 작품이 작동하는 걸 볼 기회가 없다. 그는 계단을 향해 달린다.






하산은 자신을 향해 계단 아래로 튕겨 나오는 병을 본다. 그리고 지금 그가 들은 비명은 지금까지 그가 들었던 소리 중 가장 끔찍한 소리다. 방아쇠에 얹힌 손가락을-


하지만 금속제 병이 쿵쿵대며 계단을 튕겨 내려온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독성 액체가 거칠게 튀기고 있다. 하산은 비켜서려고 허둥댄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한 손이 그를 움켜쥔 뒤, 그대로 들어 던져버렸기에.


그대로 난간 위를 날아간 하산은 금속제 병의 하강 경로를 빗겨나가 계단 아래의 연구실에 있는 생체 구성기 용기 위에 거세게 나가떨어진다. 온몸이 욱신거리고 숨이 가쁘다. 하산은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운다. 1밀리초의 찰나 동안, 희미한 금빛 형상이 계단을 스쳐 지나간다.






인장관의 개인 페리선은 낡았지만 화려하다. 포는 격납고 갑판의 전원을 켜고 폐쇄창을 연다. 폐쇄창이 열리자 햇빛이 쏟아진다. 그 뒤를 연기가 따른다. 허름한 종이옷 차림으로, 포가 함선의 경사로를 비틀대며 오른다. 그 역시 일전에 이런 우주선을 소유한 바 있었다. 완전한 보이드 쉴드와 은폐 시스템을 갖춘 자동 유도형이었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까?


포가 돌아선다. 아몬은 아무 소리도 없이 도착한 뒤다.


”아, 정말 빠른걸.“


포가 중얼거린다.


커스토디안의 황금빛 정강이받이는 가볍게 타올라 변색된 흔적이 있다. 포는 슬픈 미소를 짓는다. 커스토디안의 생리 기능은 여전히 그에게 미스테리다. 그가 귀중한 연구 시간을 투자해 만들어낸 육식성 박테리아조차 효과가 없다니.


”뭐 그렇게 됐군!“


포가 낄낄거린다. 그러고서 손을 든다.


”날 잡으셨군, 아몬. 최선을 다했는데도, 떨쳐내기엔 모자랐나 보네.“


아몬은 답하지 않는다.


”그래, 아몬, 자네의 구금권 아래 다시 복종하겠다니까.“

”너는 탈출을 기도했다. 제국에 저항하고자 하는 뜻을, 그리고 제국의 이익을 파괴하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냈다. 너는 옥좌의 적이다.“


포는 웃음을 터뜨린다.


”그래서 뭘 하겠다는 거지? 내 연기된 처형을 집행하겠다고? 아니면 또 다른 피의 시합에 결말이 난 건가? 날 죽이러 온 거고?“

”불가피하다.“


아몬은 그대로 수호자의 창을 휘둘러 포를 페리선의 측면에 고정시킨다. 너무 빠르게 벌어진 일이라, 포에게는 움찔할 시간조차 없다.


다음 순간, 포는 입을 쩍 벌린다. 아직 남아 있는 포의 눈이 그를 꿰뚫은 칼날을 내려다본다. 입에서 핏줄기가 갑자기 솟아난다.


바실리오 포는 놀라움인지, 실망인지 모를 표정을 지으며 죽는다.


어쩌면, 묘한 만족감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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