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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테라 공성전 : 종말과 죽음 3부] 9:xv 죽음으로서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2.16 10:52:19
조회 729 추천 32 댓글 7
														




9:xv 죽음으로서



옥좌실에 가벼운 비가 내린다. 하지만 끊임이 없다. 타오르는 옥좌의 빛이 발하는 열기가 너무도 강렬해 드높은 천장의 금으로 된 상감이 녹아내리는 것이다. 액화된 금이 비처럼 뚝뚝 떨어진다. 마룻바닥에 튕긴 금방울이 수은 구슬처럼 떨린다.


거대한 공간은 이제 거의 비어가는 중이다. 말카도르의 악전고투를 지원하기 위해 십일조로서 바쳐진 사이킥 적성을 가진 이들의 마지막 대열까지도 모두 사용되어 삼켜지고 소멸의 길을 걷는 중이다. 불타버려 연기를 뿜고 있는 뼛조각이, 그리고 버려진 관이 회중석을 뒤덮는다. 이제 옥좌실은 납골당이나 다름없다.


더 바쳐질 지원자는 없다. 더 이상 여기 모일 수도, 들어올 수도 없다. 모든 문은 봉인되었다. 무언의 윤허는 마무리된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불칸은 그 조치의 필요성이 스스로의 죄책감과 혐오감을 압도하는 상황이노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최후의 수단을 동원하는 데 동의했을 뿐이다. 극단적인 순간을 위한 극단적인 조치였고, 제국을 살리기 위한 희생이었다.


하지만, 그 조치로는 모자랐음이 드러나고 있다. 아직 그 극단적 순간은 끝나지 않았으므로. 그 모든 고통과 죽음으로도 헤쳐내지 못했고, 이제 그저 무익한 실패 속에 끔찍한 범죄로 보일 뿐이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천장 위에서 녹아내린 금이 계속 떨어진다. 방울이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마치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시계의 똑딱이처럼, 더 이상 흐르지 않는 시간의 흐름을 물어뜯고, 끝나지 않는 지금의 고뇌의 여운을 새긴다.


윤허의 힘 없이, 옥좌는 통제 불능의 상태로 타오르는 중이다. 극심한 열기와 눈부신 빛이 뿜어진다. 마치 옥좌실의 바닥에 화산의 분화구가 열려 격노를 토하는 것 같다. 콘실리움의 마지막 생존자들이 고통 속에 압도당한 기계들을 돌보는 중이지만, 불칸은 저들 역시 무엇도 달성하지 못하고 있노라 확신한다. 거기에 더해, 그는 저들의 정신이 너무도 굳어져서 어떤 이유도, 어떤 효과도 없는 무의미한 업무를 그저 기계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 아닌지 두려워한다.


그리고, 여기 모였던 이들의 태반은 이곳에 피난처가 없음을 알고 도망친 뒤다. 귀족들, 궁인들, 조신들까지. 다른 곳에도 피난처가 없을 것이기에, 불칸은 저들이 어디로 향했는지 알 수 없다. 불칸은 무언의 윤허가 보인 잔혹함이 그들을 혐오와 공포로 몰아가지 않았을까 두려워한다. 그 때문에 그들이, 저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죽음의 팔에 안기게 된 것은 아닐까.


불칸은 거대한 은의 문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불타버린 인간의 재가 허공에 흩날린다. 그의 발이 디딘 넓은 바닥이 진동한다. 여기저기서 타일들이 구부러지고 금이 간 채 비틀린다. 그 아래의 기반암이 갈라지고 있기에 그러하다. 긴 균열이 우슬릿과 대리석으로 된 거대한 기둥까지 이어진 꼴이 불칸의 눈에 든다. 옥좌실의 뼈대가, 불침이라 여겼던 황궁의 뼈대가, 테라의 뼈대가, 지구의 뼈대가 포기하고 있다. 그의 손에 있고, 항상 그의 영속성을 공유하는 존재라 여겼던 견고하고 버텨내는 원소들조차 포기하고 있다.


불과 몇 시간 전, 혹은 몇 초 전-뚝뚝 떨어지는 금빛 방울 속에서도, 그는 시간을 헤아리지 못한다-메아리쳤던 거대한 전쟁의 외침에 답하는 이가 없다. 그 외침이 반복되지도 않는다. 만약 그것이 마지막 희망의 표식이었다면, 어둠에 맞서기 위해 모이라는 최후의 외침이었다면, 그 외침은 버림받았으리라. 그들의 마지막 희망은 좌절되었으리라.


모든 것이 끝난다. 모든 것이 망가진다.


문 앞에는 헤타이론 프로콘술 우즈카렐 오피테와 동행 파수대의 돌로 라모라, 그리고 그 휘하의 필로루스 파수대원들이 대기하고 있다. 은의 문에는 빗장이 가로질러진 채다. 불칸은 쿠스토데스로부터 적이 얼마나 가까이 왔는지 보고 받을 필요조차 없다. 저 바깥 통로에서 벌어지는 야만적인 마지막 전투의 소음이 들려오고 있기에. 아주 가깝다. 적은 이제 문 바로 앞에 있다.


그리고 그는 놈들을 이 안에 들이지 않으리라.


불칸은 한숨을 내쉰다.


얼마나 무의미한 다짐인가. 불칸은 저들을 막을 수 없다. 물론, 일부는 막아낼 수 있으리라. 어쩌면 많은 수를 막을 수 있을지도. 하지만 저들 모두를 막을 수는 없다. 카오스의 군세에는 수효도 끝도 없으니.


그보다, 불칸은 놈들이 기울인 노력을 헛되게 해야만 한다. 놈들이 거둘 승리의 순간에, 불칸이 제국 최후의 영토에서 지휘를 시작한 순간부터 알고 있던 그 허망한 결말을 놈들도 공유해야만 한다.


놈들은 결국 문을 열고 침입하겠지만, 놈들이 발을 들일 곳은 남지 않을 것이다.


측정할 수 있는 시간도 없고, 남은 시간도 없다. 그는 뚝뚝 떨어지는 액화된 금의 꾸준한 똑딱거림을 유일한 계수로 삼아 순간을 정할 것이다. 그 연금술의 박자에 맞춰, 그는 자신의 연금술을 행할 것이다.


창조자는 파괴해야만 한다. 부적이 그를 기다린다.


불칸은 문에서 돌아선다. 그는 결단을 내린 뒤다.


지금이 바로 그 시간이다. 지금이 종말이다. 지금이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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