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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팬픽] ??? : 무구한 어둠을 세라로 들여야...

2nd_prototyp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10.07 23:07:24
조회 564 추천 7 댓글 8
														

꾸밈없는 어둠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찾아와 물꼬를 튼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한없이 깊게, 그리고 순수하게 압축된 심연 덩어리가 흥미롭지만 하찮다고 여겨왔던 단 하나의 인간에게 관심을 보인 것은ㅡ.


언제 어디서든, 그게 설령 어떤 잔혹하고 무자비한 수단이라도 어둠은 가리지 않는다.


예로부터 모든 혼돈과 온 세상의 악을 겹쳐놓은 색은 늘 검은색이었기에.


그래서 인간들에게는 신이라고 여겨질 법한, 지고와 인외의 순수 악 그 자체 《무구한 어둠》은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택했다.


글렌 레이더스라는 한 명의 인간에게 흥미와 관심을 끌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그가 원하고 바라왔던 모습을.


시공간을 벗어난 허무 뿐인 공간 속에서 그는 순식간에 변모했고, 변화했고, 변장했다.


이질적인 뒤틀린 목소리가 부드럽고 가느다란 청아한 목소리로.


혼돈의 마굴이 겹친 듯한 겹눈은 보는 이의 넋을 잃게 만들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 뺨 속에 숨은 붉은 주술의 문양.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몸을 감싸는 것은 해맑은 초원을 연상케 하는 푸른 빛의 옷가지.


다시 허무의 바다를 지난 그 앞엔 어느새 얕은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끝을 모르고 검게 응축된 표면이 일그러지고 왜곡되어 새하얀 피부로 이루어진 그가 차원을 넘어 세상에, 지표면에 나타났다.


"...아아, 모처럼 세상에 직접 내려왔는데 말예요. 제가 찾는 분은 보이지 않네요."


그는 아무도 모르게 변장한 겉모습ㅡ 세라 실바스, 한 명망높은 유목 민족장의 딸ㅡ으로 쿡쿡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가 지금 서 있는 장소는 한 군데의 마술 소재 상점이었다.


허공에 나타난 일그러짐을 보고 주인장은 진작에 도망갔는지 노포 안에 없었다.


"뭐, 상관없으려나요. 찾는 건 천천히 하면 되니까요. 숨바꼭질은 저도 딱히 싫어하진 않는답니다?♬"


실상은 문드러진 무구한 어둠의 노을빛 눈에 그제야 페지테의 경관이 비추기 시작했다.


높게 지어진 건축물과 삼각형 모양의 뾰족한 지붕.


하늘 위에 있던 천공성은 지켜봤던 바에 따르면 예전과 달리 사라져 있었지만, 그녀는 딱히 기분이 나쁘진 않은 모양이었다.


그대로 폴짝폴짝 뛰며 어딘가로 향했다.


그러자 이윽고 글렌이 근무하는 알자노 제국 마술학원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자, 그럼~. 후훗, 여기서부턴 어떻게 하는 편이 좋을까요? 그래도 이대로 기다리긴 솔직히 따분한걸요. 흐음~."


마술학원 입구의 경비관들을 손가락을 튕겨 기절시킨 그녀는 다음엔 뭘 하면 좋을지 물색했다.


사실 눈만 깜박인다면 이런 건물 따위 날리는 건 일도 아니었으나, 모처럼이니 그의 장단에 맞춰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입구에서 서성인 채 느긋한 눈으로 내다보이는 학원 옥상을 올려다보는 무구한 어둠의 귀에 어디선가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하필이면 개학 날이 어제?! 진짜 우연도 뭔 이런 우연이 다 있냐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이미 아침은 한참 지나 곧 해가 중천에 뜰 무렵, 멀리서 검은 눈동자와 머리카락을 가진 청년이 한심스럽게 그녀 앞으로 전력을 다해 뛰어오고 있었다.


타오르는 태양 같은 눈동자가 가만히 그를 응시했다. 원래라면 곧장 사각에 숨어 그를 지켜보는 게 유리할 거라 판단했으나ㅡ.


그녀, 혹은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왜 머리보다 발이 한 발짝 빠르게 움직였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건물의 커다란 기둥 뒤에 숨어 염탐하던 무구한 어둠은 세라 본인의 말투, 목소리, 복장과 외모를 완벽하게 재현한 채


글렌이 뛰어오는 방향을 향해 다가갔다. 비스듬히 지나간 바람에 눈처럼 포근한 머리카락이 허공을 수놓았다.


그리고 익숙한 여성의 실루엣이 눈가에 들어오자마자.


"어, 어...?"


땅을 질주하며 박차던 발을 글렌은 황급히 멈추고 급정거할 수밖에 없었다.


"서, 서, 설마...? 그, 그럴 리가..."


눈을 몇 번 문지르고 비빈 뒤, 믿기지 않는 광경을 다시금 확인했다.


더는 사라지지 않았다. 보지 못할 줄 알았던 백발이 바람에 나부끼며 시야를 하얗게 물들였다.


눈앞에서ㅡ 손바닥 위에서 그것이 스러지지 않고 있었다.


"아, 아아... 아아...!"


이 세상에 있으면 안 될 세라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를 향해 살포시 미소짓고 있었다.


"후후, 안녕, 글렌 군. 피곤해서 늦게 일어난 거야? 이 시간에 오면 분명 지각일 텐데."


"...너, 정말... 세라야? ...그런 거야?"


글렌은 떨리는 눈으로 세라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그래도 교사로서 너무 늦게 일어나면 안 돼. 자, 약속. 앞으로는 좀 더 일찍 다니기로."


"..."


하지만 곧 속에서 곧 용암 같은 극심한 분노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너, 누구냐? 이딴 웃기지도 않는 장난을 치는 망할 자식아."


그리고 세라를 가장한 눈앞의 어둠을 눈빛만으로도 꿰뚫을 수 있을 정도로 살벌하게 노려보았다.


사실 대화가 한 번이라도 어긋난 시점에서 그녀가 세라로 둔갑한 완벽한 타인이었음을 눈치채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아차, 들켰나요~? 예, 정답이랍니다! 역시 대단해요, 우후훗...! 과연 제가 눈여겨본 분답군요?"


"뭐라고? 눈여겨봤다니... 대뜸 뭔 헛소리야, 넌?"


글렌은 권투 태세를 취한 채 빈틈없이 그를 노려보았다.


"자, 여기서 질문! 당신은... 끝없는 운명을 통해 찾아온 당신이라면, 분명 제가 누군지 아시겠죠? 그럼 제가 누구일까요~?"


"...뭐? 너 그게 무슨..."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대가는 세계 통째로? 뭐, 당신이라면 금방 알아맞히실 테지만요."


세라로 위장한 무구한 어둠이 손가락을 튕기자 굳어있던 글렌 앞에서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어떠한 마술 주문의 영창이나 주기도문을 외는 기색도 없이 단번에 외양을 탈바꿈해서 글렌의 눈에는 마치 옷을 갈아끼운 것처럼 보였다.


"자, 그럼 제가 사랑하는 당신... 선택지는 두 가지가 있어요. 세계를 대가로 지금 여기서 제 손에 순순히 끌려갈 것, 아니면


당신도 죽고 세계도 통째로 사라지는 어리석은 선택이 기다리고 있답니다?! 현명한 당신이라면 과연 어느 쪽을?!"


"아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광기로 일그러진 폭소를 자아내던 무구한 어둠의 기괴하고 불쾌한 웃음소리는 하늘 위로 높이높이 울려퍼졌다.


"너, 진심이야? 세계를 나보고 도마 위에 올리라고? 장난해 지금?! 하물며 지금 그 말을 믿으라고?"


"아뇨, 장난이 아니에요. 전 어디까지나 진심인걸요? 당신이 너무 좋아서 견딜 수가 없는 것뿐... 그러니 최대한 빠르게 대답하지 않으면


언제 제 인내심이 바닥을 보일지 모르거든요. 으음... 당신을 외우주로 납치해서 이대로 영원의 굴레를 통해 영영 함께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제 체면이 떨어지잖아요? ...애당초 꼭두각시 인형이 무슨 재미로요?"


"...정신 나간 녀석, 확 그냥 죽어 버려."


글렌은 혀를 차며 단단히 머리가 맛이 간 듯한 무구한 어둠 앞에서 입을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 말은 요컨대, 사실이리라.


몸 주위를 솟구치며 당장에라도 세상의 저편까지 뻗어나갈 듯한 흉폭한 마력이 글렌의 시야를 검게 덧칠하고 있었다.


그리고ㅡ.


"땡~. 타임 오버."


무구한 어둠은 목에 칼을 긋는 제스처를 취하며 끝을 맺듯이 말했다.


"뭐?! 야, 잠깐! 기다려!"


그와 동시에 글렌이 서 있는 거리. 아니, 더 광대하게ㅡ 도시 전체. 아니, 더 광활하게ㅡ 제국을 넘어 세상 전체에 이변이 일어났다.


이마 위의 구름이 세차게 흘러 가속하기 시작하더니 눈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쿠구구구구구구!



땅 위로 솟구친 마그마 블럭과 간신히 형태만 유지하고 있는 용암이 들끓기 시작했다. 혼돈과 재앙이 이제 막 시작된 참이었다.


"너어...! 웃기지 마! 당장 멈춰, 멈추라고!"


머리에 피가 몰린 채 글렌이 즉시 다가가 멱살을 잡으려 했으나, 그 주먹은 허망하게 공중을 휘저을 뿐이었다.



ㅡ아아아아아아악...! 말도 안 돼... 누, 누가 나 좀...


ㅡ흐으윽... 그런, 엄마... 어딨어, 흐아아아아아앙!


ㅡ으아아아악! 아, 아직 죽기 싫어어어어어!



여기저기서 다급함, 절망에 찬 비명이 터져나왔고, 그 비명은 나아가 마치 물감처럼 알자노 제국 마술학원까지도 퍼져 나갔다.


세상은 주홍빛, 빨간빛, 하얀빛, 검은빛, 여러 참담한 형태로 끝을 맺고 있었다. 이제 손쓸 방도가 없었다.


애초에 글렌 단 한 명의 인간이 막을 수 있을 정도로 사태가 작지 않은 것이다.


"사랑하는 당신은... 그저 제 손에 놀아나면 그만이에요! 아아, 이제 곧 갑니다?! 머나먼 허공의 저편으로! 보이지 않는 아득한 끝으로요!"


폭소와 홍소로 거리를 가득 채운 소녀가 광기에 절인 목소리로 외치자 세상이, 붉게 변한 하늘이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크으으윽?! 제길, 제기랄...!"


머릿속 한 켠을 어둡게 침식한 기억이 금세 고개를 처들었다.



ㅡ제가 저로 있는 한, 당신이 당신으로 있는 한... 언젠가 저희는 다시 만날 거예요. 사랑스러운 당신.



"...너, 너였어?! 그게, 너였던 거냐?! 이게... 잘도, 잘도 그때처러어어어어어어어어엄!"


목청이 찢어질 것 같은 고함 소리,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가 상극을 이루며 귓가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곧 어마무시한 바람, 항거할 수 없는 공기의 흐름이 나타나 무방비한 글렌을 덮쳤다.


하지만 글렌은 더 이상 당시와 같은 초월적인 힘도, 지고를 초월해 신적 존재와 대치할 수 없는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느새 입가를 가리며 서늘한 미소를 지은 소녀의 옆으로 원 모양의 우주 공간이 펼쳐졌다.


안쪽은 오롯이 파란과 덧없는 진공을 간직한 심연, 심연, 한 층 더 깊은 심연뿐이었다.


"이런 제기랄, 또 네가아아아아아아아아아...!"


빛조차 무력하게 삼켜지는 블랙홀 속으로, 맥없이 빨려들어가면서도ㅡ.


"망할, 망할망할! 너는 넌, 너만큼은 반드시 언젠가... 내 손으로...! 죽여서 대가를 치르게 해줄 테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글렌은 여전히 잊혀진 망자 같은 저주를 퍼부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소녀의 모습은 세상을 짓쳐드는 어둠의 욕망에 못 이겨 그대로 흔적도 없이 흩어졌다.


그렇게 먹물처럼 변한 세상은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암전되었다.



무구한 어둠, 아니 외우주의 사신엔 본래 성별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무색의 폭력일 뿐, 세상에 개념 존재로서 현현하기 위한 최소 조건으로서 성별을 두르고 나타난 것에 가까웠다.


그 혹은 그녀도 사실, 글렌을 처음에는 감명깊게 봤을 뿐 딱히 마음이 끌린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아, 하지만 너무 가엾고 귀엽지 않은가. 동시에 사랑스럽지 않은가.


본인 안에 내제된 불합리함과 나약함을 알면서도 모든 걸 바로잡으려 하는 올곧음과 투철한 정의감이.


정반대의 사람에게 이끌린다는 말은 이러라고 있던 말이던가.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무구한 어둠은ㅡ 아마 몇천 년은, 몇만 년은 깨어나지 않을ㅡ 깊게 잠든 글렌의 뺨을 쓸었다.


온 애정을 담아 쓰다듬자, 급기야 자신에게도 애정이라는 감정이 나타났다 금세 반짝하고 사라진 것 같았다.


"...이미 알고 있지? 당신이 어딜 가든, 내 품을 벗어날 수 없는걸."


익살스럽게, 신나게 웃다가도 무구한 어둠은 세라로 변하더니 이따금씩 글렌의 눈동자를 들여다보곤 했다.


"정말이지... 둔감한 게 좀 지나치지 않아, 글렌 군? 가끔은 여심을 헤아릴 줄도 알아야 한다구. ...응, 지금처럼?"


그녀는 자신의 색과 너무나 똑같은 그림자가 드리운 눈동자를 몇 번이고 쳐다보았다.


이왕이면 마지막이나마, 아득한 꿈 속 세계를 탐험하고 있을 글렌에게 적어도 그가 원하는 형태로.


꿈을 이루어주자는 생각과 함께.



ㅡ검은 면 위에 포개진 새하얀 뺨 속의 붉은 입술은 흰 머리카락에 가려진 탓에 보이지 않았다.



1시간 반에 4천 자 가까이 쓴 거면 그래도 나름 잘 써진 듯? 역시 상상력의 문제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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