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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 - 정성일앱에서 작성

더블라지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2.22 11:4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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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은 백번을 고쳐서 다시 써도 도무지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쓸 생각이다. 그것만이 내가 당신을 불러오는 유일한 방법이기 떄문이다. 혹은 떠나가는 당신을 잠시라도 불러 세우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런 글을 멋지게 쓰려는 것은 역겨운 일이다. 슬프다기보다는 그냥 아프다. 죽음이 우리 삶의 일상사의 일부이고, 나는 적지 않은 지인들을 이미 떠나보냈다. 그중에는 당신보다 더 나이 어린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당신과의 작별은 나를 아프게 만든다. 아무리 생각해도 서른여섯 살은 세상을 떠나야 할 나이가 아니다. 당신을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서 2004년 8월 5일 오후 5시 반에 일원동 삼성병원 영안실 15호실을 찾았다. 당신이 세상을 떠난 지 스물 세시간 만의 일이다. 거기 그렇게 당신은 그냥 사진으로만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날은 아침부터 숨 막힐 듯한 더위로 가득 찬 채 화창한 햇빛이 도시를 감싸고 있었다. 혹은 집에 돌아오는 길은 달이 휘영청 뜬 채 그렇게 무심코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당신을 마지막으로 보러가는 그 순간에만, 영안실까지 가는 그 길목에서만, 비를 뿌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영화를 인용하지 않을 생각이다. 이건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당신과 나누었던 영화 이야기들을 떠올려 볼 생각이다.

그해 가을, 그러니까 당신이 스물네 살이 되는 1992년, 그렇게 처음 이제 막 진행을 시작한 '영화음악실'에 나는 게스트로 초대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나오는 것이었고, 그때 프로그램 피디였던 홍동식 씨는 그냥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아무 이야기나 하셔도 되고요. 단 하나, 연예계 소식만 전해 주지 않으시면 됩니다." 사실 나는 그 말이 매우 고마웠다. 왜냐하면 그때만 해도 라디오에서 영화는 연예와 이음동의어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처음 방송을 녹음하기 위해 작은 라디오 스튜디오에 갔을 때 거기에는 홍동식 피디 곁에 작고 예쁘장한, 사실 소녀라는 느낌이 더 큰 아나운서가 앉아 있었다. 나는 이 프로그램이 내가 초대받은 첫 번째 라디오 프로그램이 아니었기 떄문에 그 아나운서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예쁘고 귀여운 그녀들은 대부분 교양이 없었으며, 영화에 대해서는 배우들 위외에 별 관심이 없었으며, 텔레비전에 가기 위한 간이역 정도로 라디오를 생각하고 있었으며, 더더구나 게스트가 하는 말은 그냥 잡담 정도로 생각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은임씨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제스처의 과장이 좀 큰 편이다. 작은 편인 걸 자기 자신이 알기 때문에 좀 커 보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약간 가성이 들어간 상태에서 내게 인사를 했다. 나도 인사를 하면서 그냥 혹시 이 소녀 공주병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방송국이란 곳에 대해서 편견이 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정은임 씨는 처음에는 영화에 대해서 잘 몰랐다. 상대방이 영화에 대해서 얼마만큼 알고 있는지 가늠하는 것은 나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은임씨는 오프닝을 자신이 직접 썼지만,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구성작가들에게 의존했다(그리고 그때 <정영음>의 구성작가들은 그들 자신도 자부심을 느끼는 것처럼 '最强'이었다). 물론 그것이 잘못은 아니다. 나는 영화에 내 사랑을 건 사람이지만 상대에게 그걸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잘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척하고 나설 때는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나는 그때 고작 서른네 살에 불과했다. 첫 방송 녹음이 시작되고 그냥 무사히 끝났다. 약속한 시간은 10분이었고, 조금 넘겨서 끝난걸로 기억한다. 사람들은 녹음된 내용만을 듣기 때문에 녹음하기 전에 나누는 대화나, 혹은 중간에 음악을 틀면서 나누는 은밀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알수 없다. 그러나 게스트와 진행자 사이에서 진짜 대화는 대부분 그 막간에 있다. 그때 정은임 씨는 내게 자신이 영화음악실 담당자로서 무언가를 보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약간 으스대는 목소리로 "리버 피닉스의 <아이다호>, 정말 좋지 않으세요?"라고 내게 느닷없이 질문을 던졌다. 여기서 방점은 느닷없다는 데 있다. 그때 이 영화는 일종의 컬트영화였고, 소수자들 만이 이 영화를 찬미할 때였다. 나는 그냥 약간 지겹다는 투로 친절하게 대답했다. "구스 반 산트는 그거보다 먼저 만든 <드럭스토어 카우보이>가 훨씬 좋아요." 대화는 썰렁하게 끝났고, 나는 개의치 않고 짐을 싸서 방송국을 나왔다. 매주 여의도에 한 번씩 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나를 당황하게 만든 것은 3주 뒤였다. 방송에 들어가기 전에 느닷없이 "<드럭스토어 카우보이>도 좋기는 한데요, 전 여전히 <아이다호>가 더 좋은데요."라고 내게 말했다. 갑자기 무어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게 된 나는 그날 녹음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고 끝을 냇따. 그때는 아직 '어둠의 경로'가 없었고, 개봉되지 않은 영화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온갖 수소문 끝에 '비짜' 비디오테이프(말하자면 불법 복사 테이프)를 구해야만 했다. 정은임 씨는 3주 만에 <드럭스토어 카우보이>를 구해서 '자막 없이' 본 다음 내게 그 말을 한 것이다. 나는 돌아가는 길에 혼자 중얼거렸다. 이 여자, 재미있다. 정은임 씨는 그런 사람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내 생각에) 그녀의 가장 뛰어난 점은 학습 능력에 있었다. 그녀는 자기 프로그램에 초대받은 게스트들이 무엇을 제일 잘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배웠다. 그것도 매우 전투적으로 배웠다. 말하자면 정은임 씨는 영화를 책이 아니라 일종의 실전 비평을 통해서, 자기 프로그램에 초대받은 게스트들과의 진검 승부를 통해 익혀나간 사람이다.

아주 오래전 사석에서 정은임 씨는 게스트 중에서 박찬욱 감독을 제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때 박찬욱은 '진짜 안 나가는' 감독이었으며, 차라리 그가 쓰는 영화에 관한 글로 영화 '선수'들 사이에서 유명해지고 있었다. 나는 정은임 씨가 박찬욱 감독에 대해 지나가듯이 한 멘트를 기억하고 있는데, "박찬욱 감독은 자기 영화를 볼 수 있는 관객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거에요. 그냥 영화에 대해서 말하는 걸 듣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 영화 이야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지만,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영화 이야기도 아니잖아요"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이 여자,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 말을 기억하는 나는 올해 초 1월에 그녀의 방송에 초대 되었을 때 한국 영화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물었다. "이제 그때가 온 거라고 생각하세요?" 지난해 겨울 <올드보이>는 이례적인 성공을 했고 아직 칸에 가기 전이었다. 정은임 씨는 "박찬욱 감독은 좀 더 나아갈것 같은데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단서를 달았다. "좀 위험하긴 하지만요." 정은임 씨는 가끔 어떤 직관 같은 것을 보여주었다. 박찬욱 감독이 지난주 <씨네21>(465호)에 ".....하지만 정은임 씨는 내가 하는 모든 이야기를 재밌어하고, 즐기면서 꼼꼼히 귀 기울여 들어 주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런 경청에서만이 나올 수 있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서 나를 당황하게 만들곤 했다......"라고 쓴 대목을 읽었을 때, 부고 기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만 웃고 말았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어떤 확신에 차서 웅변조가 되는 사람이다. 혹은 거의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정은임 씨는 질문할 때 정면으로 그냥 콱 찌르는 사람이다. 시시하게 말을 빙빙 돌리거나 아니면 중언부언하지 않는다. 그때 누구라도 일단 멈칫하게 만드는 질문의 예리함은 정은임 씨의 그 꼼꼼한 준비와 직관에서 오는 것이다. 그 대목을 읽으면서 그 순간 너도 참 아찔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을 하다가 정말 이런 순간에 걸려들면 쩔쩔매게된다. 나는 그때 한겨레에 매주 영화평을 쓰고 있었는데, 그녀는 매주 꼬박 꼬박 그걸 읽으면서도 내색을 하지 않았다.(그걸 알 게 된 건 한참 뒤에 일이다) 그리고 내가 쓴 영화평을 이야기하기 위해 스튜디오에 들어올 때 정은임 씨는 종종 급소를 찌르는 듯한 질문을 던지곤 했다. 처음에는 질문 자체가 좀 우스꽝스러웠으나 점점 그 질문은 핵심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보통 방송국은 게스트들을 6개월에 한 번 프로 개편 때마다 '자르는'것이 관례이다. 그걸 알기 떄문에 나는 6개월이라는 주어진 시간 동안 내 멋대로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막 나가고 있었다. 정은임 씨(와 이 프로그램의 피디인 홍동식 씨)는 그걸 재미있어하고 있었다. 나는 점점 약속한 시간을 넘겨서 한 시간인 이 프로그램에서 거의 30분 이상을 떠들어 대곤 했다. 정은임 씨가 좀 곤혹스러워한 건 내가 방송 대본을 준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몇 장의 메모만을 준비한 다음 그걸 보면서 이야기하기 때문에 함께 진행해야 할 정은임 씨는 자신이 아무런 준비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좀 화가 나있었다. 나는 준비된 대본을 읽는 훈련은 한 적이 없기 떄문에 '라이브' 한 쪽을 택했다. 그냥 메모를 보고 생각에 이끌리는 쪽을 따라 이야기를 했다. 그때 내가 한 방송 내용 중에는 '방송 중에' 갑자기 떠오른 생각을 이야기한 대목들도 있었다. 그걸 서로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대신 나는 다음 주에 무슨 내용을 할지에 대해서 언제나 정은임 씨와 의논을 했다. (홍동식 피디는 그 문제에 대해서 그냥 믿고 맡기는 타입이었다). 그러면 정은임 씨는 자기 방식으로 준비를 했다. 두 명의 데이비드(린치와 크로넨버그), 키에슬로프스키, 타르코프스키, <블레이드 러너>. 왕가위 혹은 오우삼, 팀 버튼, (코폴라의) <드라큘라>, 세 편의 <에이리언> (아직 카로 - 주네의 네 번째 <에이리언>을 만들어지지 않았다), 허우샤오시엔, 임권택, 명단이 늘어날수록 점점 프로그램은 이상하게 진행되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청취자를 잊어버리고, 정은임 씨를 매주 설득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게스트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건 정은임 씨의 재능이다. 아마 다른 게스트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녀는 점점 매우 까다로운 미팅 상대가 되어 갔다. 처음에는 쉽게 설득되었지만, 점점 많은 게스트들과의 만남에서 얻어 낸 경험과 지식, 그리고 영화에 대한 그녀 자신의 이해가 깊어지고 넓어지면서 질문이 많아졌다. 나는 계절이 바뀌어도 '잘리지' 않았고, 그렇게 2년 2개월을 매주 함께했다.

정은임씨가 해낸 많은 것들은 사실 홍동식 피디와 그림자 아래서 이루어진 것이다. 종종 사람들은 정은임 씨의 라디오 프로그램이 할 수 있는 수위를 훨씬 넘는 발언과 <인터내셔널>歌의 방송에 대해서 전율하지만, 그것은 프로그램 담당 피디가 직업인으로서의 자기 목숨을 '함께' 걸지 않는 한 힘든 일이다. 또는 영화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은 이미 구성작가들에 의해서 준비된 것들이다. 그러므로 단지 그러한 이유로 정은임 씨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면 정말 이야기되어야 할 이름들은 홍동식 피디와 그 당시의 구성작가들일것이다. 정은임씨의 진짜 훌륭한 점은 자신이 그들의 그림자 아래 그저 분신에 지나지 않는 '카케무샤'가 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했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아나운서들은 구성작가들의 대본에 온기가 감돌도록 안간힘을 쓰지만, 정은임 씨는 그것을 고쳐 가면서까지 자기 생각을 넣으려고 했다. 그저 예쁘게 다듬거나 아니면 멋진 말을 넣고 뺴는 것이 아니라 영화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넣으려고 했다. 그건 매일 스튜디오에 들어가야 하는 방송의 무시무시한 메커니즘 속에서 거의 필사적인 노력이다. 그녀는 방송을 하면서 자주 아팠다. 겨울에는 감기 때문에 쩔쩔맸고, 봄에는 두통을 아파했다. 여름에는 가벼운 몸살이 자주 걸렸고, 가을에는 그 후유증을 다스리느라고 힘들어했다. 심지어 두 번은 그녀가 미리 녹음해 놓은 인사말이 끝난 다음 마치 그녀가 내 앞에 있는 것처럼 혼자서 그 긴 시간을 녹음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정은임 씨는 <정영음>이 심야에 그저 분위기를 잔뜩 띄우면서 목소리르 낮추고 음악이나 틀어 대는 프로그램으로 잊혀지기를 원치 않았다. 그녀에게는 이 방송이 일종의 해방구이자 공동체이며, 더 나아가 영화를 통해서 좋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일보 전진이 되길 원했다. 사실 그녀와 그 동료들이 함께 만들고자 한 <정영음>의 핵심은 여기에 있었다. 그걸 아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정은임 씨는 나처럼 영화에 매달리지 않았다. 영화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애썼지만, 그러나 그 노력은 영화를 빌려 세상 안으로 더 깊이, 더 가까이, 더 낮게 다다가고 싶었던 마음의 일부였다. 그러므로 만일 정은임 씨는 그녀 자신의 영화가 아니라 음악을, 혹은 문학을, 또는 그 어떤 다른 프로그램을 맡았다 할지라도 같은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며 같은 자리에 올랐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정은임 씨가 다시 <정영음>에 돌아온 2004년 1월에 다시 같은 스튜디오에서 만났을 때 그녀에게 "영화는 결국 당신에게 운명 같은 게 아닐까요?"라고 물었다. 그녀 자신도 영화로 돌아온게 마치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편하다고 대답했다. 내가 그 겨울, 거의 8년 만에 다시 자리에 앉았을 때 <정영음>이 제시간에 도착한 편지와 같다고 한 말의 일부는 정은임 씨에게 보내는 내 마음의 연애편지와도 같은 것이었다. 나는 내 마음의 편지를 들고 방송에 가서 정은임 씨에게 전달했다. 그녀는 그냥 살짝 웃었다. 언제나 소녀같을 줄 알았던 그녀의 얼굴에도 가볍게 주름살이 눈가에 그려졌다. 정은임씨는 지아장커의 <임소요>를 꼭 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친애하는 당신>이 꼭 보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 기회가 없다.) 그녀는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에 가볍게 흥분하고 있었다. 나는 이제 그녀가 영화를 떠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렇게 이기적인 사람이다.

내가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대목은 왜 그토록 <정영음>은 방송국에서 미움을 받았을까, 라는 의아함이다. 나는 방송국의 생리를 이해하지 못하며, 더더구나 방송국 프로그램 편성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1995년에도 그러했고, 2004년에도 똑같은 과정을 밟으면서 그녀의 방송은 그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중단되었다. 정은임 씨가 라디오에서 맞이한 기쁨의 순간은 너무 짧았다. 그녀의 죽음 앞에서 내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채 해 보지도 못하고 중단되었다는 데서 오는 것이다. 죽음은 이르게 올 수도 있고, 더디게 올 수도 있다. 그건 사람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정은임씨는 그녀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단 한가지 안타까움, 방송국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냥 기다림으로 보내야만 했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비디오를 소개하거나, 혹은 내일의 날씨를 알리거나,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들은 (내가 보기에)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정은임 씨는 자신을 컨트롤할 때가 아니라, 말 그대로 자기감정을 고스란히 내보이면서, 세상이라는 실패의 모순에 분노를 느끼면서, 그래서는 안 된다고, 그걸 말하기 위해 전력투구할 때 가장 멋잇는 사람이다.

당신이 세상을 떠난 올해 여름은 정말 덥다. 이만큼 더웠던 것은 10년 전 이었다고 한다. 그해 여름 매주 나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 헐떡거리면서 여의도까지 갔었다. 나는 그때 당신에게 영화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기 위해서 일주일 내내 준비를 하고 그곳까지 갔다. 내가 떠들기 시작하면, 당신은 아나운서 답지 않게 턱을 고이고 내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지금 나는 이제 세상에 없는 당신을 위해 이 글을 쓴다. 이편지가 당신에게 도착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이제 나는 누구에는 나의 영화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할까? 누가 그렇게 내 영화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 줄까? 세상은 점점 시시해져 가고 있고, 나는 점점 쓸쓸해지고 있다. 한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편지를 여기서 끝내야 할 것 같다. 그 대신 오늘은 당신이 아직도 세상에 남겨 놓은 싸이월드에 찾아가 볼 생각이다. 당신 몰래 당신에게 매주 연애하는 감정을 안고 여의도를 찾아가 영화 이야기를 들려주던 당신의 영화 친구 정성일 씀. 2004년 8월, 날씨 유난히도 무덥고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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