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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오직'의 중요성과 위험성에 대한 한 신부님의 세가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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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12월15일

나해대림제3주간
화요일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매일강론2135호

믿음이 자기암시에 불과하다고?>

복음: 마태오 21,28-32

제가 오직 믿음만으로 사람이 변할 수 있다고 말하면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는 예도 있습니다. 신학을 배우거나 오랜 신앙생활을 해 오신 분들이 그렇습니다. 자신 안에 있는 능력으로 노력해서 삶이 변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불교의 교리인데도 모릅니다. 그리고 믿음을 강조하면 개신교 신앙이냐고 하고, 믿음으로 변한다면 연기자들이나 가수들이 긴장될 때 거울을 보며 ‘난 잘할 수 있어!’라고 수없이 되풀이하는 ‘자기암시’와 뭐가 다르냐고 합니다. 교회 내에서 믿음을 그저 자기암시 정도로 여기는 분들이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구원은 행위가 아닌 믿음에서 옵니다. 이 말은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믿음만이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 복음에 예수님께서 이런 이들을 비판하십니다. 처음에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변화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아들 둘이 있었는데 맏아들에게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합니다. 맏이는 싫다고 했지만, 마음을 바꾸어 일하러 나갑니다. 둘째 아들은 처음엔 좋다고 했지만 가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맏이는 결국 ‘그래, 그래도 난 아버지의 아들이지!’라는 믿음을 회복한 것이고, 둘째는 ‘근데 그분이랑 나랑 뭔 상관이야?’라며 믿음을 저버린 것입니다.

그러며 이렇게 결론을 지으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세리와 창녀까지 요한이 제시하는 ‘의로운 길’을 믿으니 변화하였는데, 왜 그것을 보고도 믿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가르친 ‘의로운 길’이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입니다. 그리스도는 사람이면서도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이 믿음이 단지 거울을 보면서 ‘나는 할 수 있다!’라며 자기암시를 하는 것과 같을까요? 물론 자기암시도 효과가 있으니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정체성 자체가 변할 수 있는 존재임을 믿는 것이고 우리는 그렇게 믿음으로써 우리 삶이 완전히 변하는 것을 체험합니다. 믿음으로 우리의 변화를 보면서도 믿지 못한다면 그것은 믿지 못함이 아니라 오히려 믿으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진짜 자신이 변할까 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위선적인 신앙인으로 남습니다.

가톨릭에서도 믿음으로 삶이 완전히 변한 신앙인들이 많지만, 오늘 복음의 세리와 창녀의 변화를 생각하다 보니 ‘CBS 새롭게 하소서’에 나와 간증한 조윤숙 목사가 생각이 납니다. 그녀는 화류계의 여왕으로 살다가 회개하고 목사가 된 분입니다.
조윤숙 목사는 강원도 정선에서 가난한 5남매의 딸로 자랐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는 서울에 있는 어느 집의 수양딸로 보내졌습니다. 자녀들이 다 뿔뿔이 흩어진 것입니다. 그녀는 고아로 성장하면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당시 서울의 유명한 요정에서 마담으로 화류계를 시작하였습니다. 노래를 잘하는 까닭에 인기가 높았습니다. 자신의 요정을 차리고 바닥에 뿌리고 발로 치우며 다닐 정도로 큰돈을 벌었습니다. 고급 외제차에 고급 운동, 그리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술과 담배, 나이트클럽을 돌아다니는 것이 삶의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헛헛한 마음은 무당을 찾아다니며 달랬습니다.

요정을 운영하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사채업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뒤를 봐주던 사람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부도를 맞고 빚쟁이들과 형사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죽기 위해 설악산에 갔습니다. 부모님 산소에도 형사들이 지키고 있어서 갈 수가 없었고 형제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도 형제도 만날 수 없다는 고통이 더 깊이 사무쳤습니다. 수면제 60알과 동맥을 끊기 위한 면도칼, 그리고 소주 한 병 들고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는 길 아스팔트 위에 작은 틈을 비집고 자라는 새싹이 보였습니다. 삶의 무상함 속에서 작은 생명의 위대함이 묵상이 되었습니다. 생명을 보니 창조주를 찾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교회를 다녀본 적이 있어서 하느님이 계신다면 내 꼴이 이게 뭐냐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죽어야겠다고 더욱 굳게 결심하고 계속 올랐습니다.
죽으려고 하기 직전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순간부터 살아온 삶이 주마등처럼 사진으로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사진 뒤에 엷은 천으로 가려져 있고 누군가가 서 있었습니다. 모든 자신의 삶 뒤에 똑같은 사람의 모습이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네가 ‘엄마 죽지마’하던 그 순간부터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너를 떠난 적이 없었다.”
이 음성을 느끼는 순간 자신을 경직되게 만들었던 어떤 것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감히 할 수 없었던 말을 하게 됩니다.
“주님, 용서해 주세요.”

12시간 동안 수면제를 하나하나 계곡물에 던지며 이전의 삶을 버렸습니다. 꼬박 12시간 동안 울고 나서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내려오는 중에 여자 두 명이 다 찢어진 옷과 헝클어진 머리를 보며 “미친년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머리를 잡고 싸웠을 텐데 그녀는 기쁜 마음으로 “저 미친년 아니에요!”라고 말하며 내려왔습니다.

경찰들이 말하기를 빚쟁이들이 그녀를 감옥에 넣어봤자 어차피 빚을 갚을 수 없으니 요정을 다시 일으켜 빚을 갚도록 하는 게 좋다고 고소를 취하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술집을 하면서 교회를 다녔습니다. 목사가 되고 싶었지만, 빚쟁이로 도망치는 것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술집을 하니 교회에서 받아주지 않아서 몰래 다녔다고 합니다. 빚을 다 갚고 목사가 됩니다.

조윤숙 목사가 변한 것은 소위 ‘자기암시’ 때문이었을까요? 자신의 힘만으로는 이런 변화를 이뤄낼 수 없습니다. 믿음은 단순한 자기암시가 아닙니다. 마더 데레사가 길거리에 있는 걸인을 예수님으로 믿게 된 것은 자기암시가 아닙니다. 믿음은 주님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김하종 신부가 가난한 아저씨에게서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목소리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오직 믿음으로만 사람이 변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어떤 이들이 신앙은 그런 자기암시가 아니라고 비판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신앙은 무엇이란 말일까요? 결국, 혼자의 노력으로 변할 수 있다고 말하는 유다 지도자들의 메마른 신앙이 아닐까요?

그리스도께서 항상 나와 함께 계셨다는 믿음, 이웃이 그리스도로 보이는 믿음, 또 내가 그리스도와 하나라는 믿음, 이 믿음만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것을 보고도 믿지 않으려 하고 본인 노력으로만 변하려 한다면, 한다고 해놓고 하지 못하는 둘째 아들이 될 것입니다. 사람은 오직 믿음만으로 변하고 믿음만으로 구원됩니다. 결코, 교회 내에서 유일한 의로움의 길인 믿음의 힘을 깎아내리는 생각들이 퍼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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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말씀의 향기♣ No2377
4월26일 [부활 제3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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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주님! 하루의 양식이 될 이 묵상글을 받아보는 모든 이들을 축복하시고 주님의 뜻대로 살게 하시며 은총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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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유튜브 복음 묵상)
https://youtu.be/XkhL87bkOak

<성경공부는 스승이 전부다.>

런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할머니 한 분이 힘겹게 버스에 오르고 있었습니다. 흰 터번을 두른 시크교인 차장이 할머니를 부축하여 빈자리에 앉혔습니다. 그런데 할머니의 시선은 차장의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버스가 몇 정거장을 지나자 할머니는 내릴 때가 되었고 차장이 다시 할머니를 부축해 드렸습니다. 버스에서 내린 할머니는 차장에게 인사하며 안쓰럽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고, 얼마나 아플꼬. 그 머리가 빨리 나았으면 좋겠구려!”

어쩔 수 없습니다. 아는 만큼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믿는 것만 보이는 것입니다. 만약 남편이 외도한다고 믿어버리면 모든 것이 그 증거로 보입니다. 그러니 부활한 예수님도 믿어야만 보고 만날 수 있습니다.

부활의 기쁨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에게만 주어집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나요? 어디서 예수님을 보셨나요? 바로 성체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매일 만납니다. 그런데도 만나지 못했다고 말한다면 아직 부활의 기쁨을 충만히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 우리는 성체가 예수님임을 미사 때마다 고백하면서 예수님을 만났느냐고 물으면 만나지 못했다고 대답하는 것일까요? 단순히 알 뿐, 믿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 교리가 완전한 믿음으로 나아가려면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오늘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도 이미 여인들에게서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은 뒤였습니다. 알기는 해도 만나지는 못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두 제자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확증해 줄 수 없었습니다. 비로소 예수님께서 빵을 떼어 나누어주실 때 그분을 알아보게 됩니다. 성체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뵙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이 당신을 알아보게 하는 방법은 무엇이었나요? 바로 ‘성경공부’를 통해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부활에 대한 성경 구절들을 가슴 뜨겁게 설명해 주시지 않으셨다면 그들이 예수님께서 빵을 떼어주실 때 그분을 알아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혹은 다른 사람이 성경 말씀을 설명해주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만큼 당신 부활에 대한 확신을 지닌 사람은 없었습니다. 예수님만큼 성경을 통해 부활의 확신을 그들에게 심어줄 스승은 없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열심히 공부한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공부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마르틴 루터는 자기 자신을 스승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이는 내 살이다, 이는 내 피다.”라고 하시는 성경 말씀을 자기 식대로 해석하였습니다. 그것 자체가 예수님이라기보다는 예수님께서 그것과 함께하신다는 ‘공재설’을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프로테스탄트들은 그것이 이전에 가톨릭교회가 주장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며 반발합니다. 이에 루터와 함께 종교개혁의 양대산맥은 스위스의 츠빙글리는 예수님께서 “기념하라!”라고 하신 것에 초점을 맞추어 그냥 예수님을 기억하기 위해 기념하면 된다는 ‘기념설’을 주장합니다. 성만찬을 주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에서 벗어나 그저 하나의 상징물에 불과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에 둘을 합의시키려 노력한 인물이 칼뱅입니다. 그는 “이는 내 살이다.”에서 “이다”에 집중하였습니다. 현재형이기 때문에 현재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영적 임재설’이라고 말하며 둘의 중간에서 이 예식을 기념할 때 역사의 예수님께서 현재에도 영적으로 임하신다고 말했습니다.

‘성경만으로’라는 기치로 가톨릭교회를 나온 대표적인 소위 세 개혁자들도 처음부터 성경해석에서 차이를 보이고 대립했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이 성경을 해석할 만큼 완전히 성령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들이 스승이 된다면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 성체가 중심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을 해석하기는 하지만 성체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게는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말씀을 통해 뜨거워진 가슴으로 성찬례 때 진정으로 당신을 알아보게 하시고 당신을 만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빵을 떼어주실 때 그분을 알아볼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성찬례 때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지 못하는 성경공부는 빗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빗나간 스승으로부터 성경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제 나라의 환공이 어느 날 당상에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윤편이 당하에서 수레바퀴를 깎아 만들고 있다가 몽니와 끌을 놓고 올라가 환공에게 물었습니다.

“한 마디 묻겠습니다만, 전하께서 읽으시는 건 무슨 말을 쓴 책입니까?”

환공이 대답했습니다.

“성인의 말씀이지.”

“성인이 지금 살아계십니까?”

환공이 대답했습니다.

“벌써 돌아가셨다네.”

“그럼 전하께서 읽고 계신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군요.”

환공이 벌컥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내가 책을 읽고 있는데 어찌 바퀴를 만들고 있는 목수 따위가 시비를 건단 말이냐? 이치에 닿는 설명을 하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죽이겠다.”

윤편은 대답했습니다.

“제 일의 경험으로 보건대, 수레바퀴 만들 때 너무 깎으면 깎은 구멍에 바큇살을 꽂기에 헐거워서 튼튼하지 못하고 덜 깎으면 들어가지 않습니다. 더 깎지도 덜 깎지도 않는다는 일은 손짐작으로 터득하여 마음으로 수긍할 뿐이지 입으로 말할 수 없고, 제 자식 역시 제게서 이어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70인 이 나이에도 늘그막까지 수레바퀴를 깎고 있는 것입니다. 옛사람도 그 전해 줄 수 없는 것과 함께 죽어 버렸습니다. 그러니 전하께서 읽고 계신 것은 옛사람들의 찌꺼기일 뿐입니다.”

장자의 ‘수레바퀴 깎는 노인’의 이야기입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신비로운 진리가 글 안에 다 담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 글을 쓰신 분이 살아계셔 그것을 설명해 줄 수 있을 때야만 그것이 죽은 자의 찌꺼기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의미로 성경공부도 스승이 전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살아계신 예수님께서 설명해주실 때 그 빛을 발합니다. 그리고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그러면 그분을 만나 뵙게 됩니다. 예수님은 교회 안에 살아계십니다. 바오로가 교회를 박해할 때 왜 당신을 박해하느냐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살아있는 예수님의 교회와 함께하지 않고 교회로부터 가르침을 받지 않고 성경을 읽으면 죽은 책을 읽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이가 성령으로 충만할 수 없기 때문에 각자의 해석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으로 수많은 이단과 사이비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성경보다 그 성경을 해석해주는 참 스승인 교회를 올바로 찾아야만 합니다. 그 성경해석자는 분명 성체 안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게 만드는 스승이어야 합니다. 성경해석을 통해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성경해석을 통해 성체 안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끌어주는 스승이 곧 그리스도를 닮은 성경해석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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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신천지 교인이 20만 명이 넘고 신천지에 들어오려고 교육받는 학생이 7만 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되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신천지에 빠지는 많은 사람들이 젊은 지식층이라는 데도 놀랐습니다. 이는 신천지가 명단을 내놓지 않았으면 누구도 모를 숫자입니다.

      신천지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습니다. 성경공부를 하지 않으면 됩니다. 모든 이단은 다 성경공부로 시작하고 성경공부로 끝납니다. 따라서 저는 통계는 보지 못했지만 아무래도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는 개신교 신도들이 신천지에 훨씬 잘 넘어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신천지에 빠지는 이들이 성경을 잘 몰라서 그럴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을 몰라서가 아니라 이전에 가졌던 ‘교리’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자신이 가진 교리지식을 확인하고 타인에게 그 교리를 전수하는 수단입니다. 성경을 통해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려고 하는 사람은 그 성경공부를 가르치는 사람의 교리를 자신도 모르게 흡수하여 그 사람 교리에 빠지게 됩니다.

      신천지가 성경을 통해 가르치는 교리 중 하나는 ‘거짓말’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뜻을 위해 거짓말하는 것을 허용합니다. 그래야 새 교육생을 포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생들은 자신들이 이미 헤어 나오지 못하게 신천지에 빠졌을 때 쯤 자신들이 신천지에 입문한 것을 알게 됩니다. 이 포섭방법을 쓰기 위해 거짓말의 교리가 허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거짓말의 교리를 그들은 성경으로 가르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형제들이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에 올라가려 할 때 “너희나 축제를 지내러 올라가라. 나는 이번 축제에는 올라가지 않겠다. 나의 때가 아직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요한 7,8)라고 말씀하시고는 갈릴래아에 남으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뒤에 “형제들이 축제를 지내러 올라가고 난 뒤에 예수님께서도 올라가셨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게 남몰래 올라가셨다.”(요한 7,10)라고 합니다. 얼핏 보면 거짓말을 하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좋은 의도를 위해서는 거짓말을 해도 된다고 가르칩니다. 성경에서 진리를 찾아내려는 사람은 이런 가르침에 바로 빠져버립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귀도 예수님을 성경말씀을 통해 유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마귀가 이렇게 성경을 잘 압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성경구절을 수긍하시면서도 “성경에 이렇게도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라는 말씀으로 반박하십니다.

      성경에는 이런 말도, 저런 말도 있어서 누구든 그 말씀으로 자신이 주장하고 싶은 근거를 댈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도 있지만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려면 부모를 미워하라고 하십니다(루카 14,26 참조). 도대체 무슨 말씀이 진리일까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경을 쓰신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우리가 신앙고백을 할 때 성경을 믿는다고 하지 않고 “교회를 믿는다.”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이 기본교리에서 벗어나 성경을 믿으려한다면 그것을 통해 잘못된 교리를 주입시키려는 마귀의 소행에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 가톨릭교리를 믿는 종교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진리이신 주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신다.”(1381항)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으신다고 하셨다가 다시 올라가신 것은 거짓말이 아니라 다른 의미가 있다는 가정 하에서 해석해야합니다.

      교리서는 또 “선한 의향(예를 들어, 이웃을 돕는 것)은 그 자체로 무질서한 행동(거짓말이나 비방)을 선하게 하거나 정당화하지 않는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하지 못한다.”(1573항)고 말합니다. 선한 의도에서 하더라도 거짓말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거짓말은 (정직의 덕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에) 타인에게 가한 명백한 폭력이다.”라고 합니다. 신천지는 이런 교리가 없기 때문에 자신들의 교리를 성경을 근거로 주입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톨릭신자이고 교리를 배웠다고 하면서도 ‘선한 거짓말’은 해도 된다는 식으로 말하면 그 사람 역시 교리를 모르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 상태로 성경공부를 하면 잘못된 교리에 빠지고 맙니다.

      문제는 가톨릭교회 안에도 성경으로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제가 강의하다가 신자들에게 불붙는 영원한 지옥이 반드시 있음을 믿는 사람 손을 들어보라고 하면 10%도 안 듭니다. 지식층으로 갈수록 더 심합니다. 심지어 신학박사학위를 지니신 분들도 장소적인 개념의 ‘불붙는 지옥’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을 신학생들이 배우고 신자들이 배웁니다. 그렇게 배운 지식으로 성경까지 공부한 선생님들은 성경공부를 통해 자신들의 믿음을 다른 신자들에게 전해줍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하느님께서는 선인과 악인을 구별하지 않으시고 비를 뿌려주시는 분이시라는 성경구절을 제시합니다(마태 5,45 참조).

      결국 하느님은 선인과 악인을 구별하지 않으시는 분이고 그래서 심판도 지옥도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공부를 통해 잘못된 진리가 계속 주입됩니다.

천국과 지옥의 심판 교리는 교리의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만약 지옥이 없다고 말하면 지옥에 가지 않게 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비웃는 사람이 됩니다. 지옥도 없는데 왜 괜한 고생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교리를 믿으면 가톨릭신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루카 18,8)라고 하신 것처럼, 지금은 교회의 가르침인 「가톨릭교회교리」가 너무도 힘을 쓰지 못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많은 신부님들이 그렇겠지만 저도 책이나 글을 통해 「가톨릭교회교리서」의 내용을 전파하려 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교리서에 있는 내용도 제대로 말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렸습니다. 제가 책에 “우리도 하느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썼다고 많은 이들이 반박을 합니다. 성경에 그런 이야기가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 근거를 교리서에서 찾아야 하겠지만, 물론 성경에도 있습니다.

“너희 율법에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폐기될 수 없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 하였는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시어 이 세상에 보내신 내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다 해서, ‘당신은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소.’ 하고 말할 수 있느냐?”(요한 10,34-36 참조)

      ‘하느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으니 본성상 ‘신’이라 불릴 수 있습니다. 성체는 하느님이라고 하면서 성체를 모신 하느님의 자녀는 인간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면 그것이 이상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신학박사들까지도 인간이 본성상 하느님이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성경이 아니라 교회의 가르침을 보아야합니다. 교리서는 구원에 대해 이렇게 가르칩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말씀’과 친교를 맺고, 자녀 됨을 받아들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려고 성자께서 인간이 되셨다.’ ‘그분은 우리를 하느님이 되게 하시려고 인간이 되셨다.’ ‘하느님의 외아들은 당신 신성에 우리를 참여시키시려고 우리의 인성을 취하셨으며, 인간을 신으로 만들기 위하여 인간이 되셨다.’”(「가톨릭교회교리서」 460)

      구원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우리도 하느님 신성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리입니다. 교리서도 “그분은 우리를 하느님이 되게 하시려고 인간이 되셨다.”라고 하고, “하느님의 외아들은 당신 신성에 우리를 참여시키시려고 우리의 인성을 취하셨으며, 인간을 신(하느님: deus)으로 만들기 위하여 인간이 되셨다.”라고 가르칩니다. 이런 교리 앞에서 인간이 절대로 하느님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사실 잘못된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도 잘못된 교리에 물들어있으면서도 가톨릭신자라고 믿고 있을 수 있습니다. 가톨릭 교리를 믿어야 가톨릭 신자입니다.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으려면 마스크를 써야하고, 손을 깨끗이 씻어야하고, 따듯한 물을 마시는 등의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이단에 빠지지 않으려면 하루 손 씻는 만큼이라도 ‘교리’를 공부해야 합니다. 교리를 다 배우고 성경을 보아야합니다. 교리를 아는 만큼 성경이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바이러스는 이 짧은 생을 앗아갈 수 있지만, 잘못 배운 이단적 교리는 영혼도 앗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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