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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ㄷㅇ소설) 천공호텔 단간론파 1-1화모바일에서 작성

카즈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7.26 19:54:29
조회 999 추천 14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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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호텔 단간론파는 단간론파 본가 시리즈의 스토리와 인물에 대한 스포일러, 주관적 해석과 재창작 요소를 다수 포함하고 있으니 부디 이를 유념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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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호텔 단간론파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대화를 나누는 내용 특성상 발언자의 신원을 표기하기 위해 대본체 표기가 들어간 부분이 있습니다. 읽는데 불편함이 없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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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호텔 단간론파
ch.1
체크 인, the 절망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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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프롤로그 3/3으로부터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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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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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카지노의 어느 특별한 달밤.

정체불명의 테러범에게 불의의 습격을 당한 저 카미나기 한나와 친구 아야키치 슌, 그리고 고용된 보디가드 아키하라 이토리 양은 푸른 섬광과 함께 정신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그 직후 정신을 차린 장소는 작은 호텔의 라운지 정도 될법한 크기의 분수 홀. 아직 나머지 두 사람은 카펫 바닥에 널부러져있는 채였습니다.
전체적으로 붉은 색을 띄고 있지만 정열과는 거리가 먼 칙칙한 색채가 기묘한 인상을 줍니다.
샹들리에가 걸려있지만 아름답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카펫이 깔려있지만 안정감이라고는 칩 하나만큼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홀 주변으로는 스페인의 오랜 건축물들을 떠올리게 하는 둥그렇고 키 큰 문짝들이 여럿 나 있었는데, 목재나 석재가 아닌 반질반질한 금속 소재로 보인다는 게 큰 차이점이었습니다.

미래적이라고도 고전적이라고도 볼 수 있을 그 오묘한 공간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구조물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근육질 곰 캐릭터의 동상.

유아적인 디자인에 마초적이고 머스큘린한 디테일을 집어넣은 그 동상은 근육질 조형에 긍정적인 기호를 가진 관람객도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기괴한 센스가 담겨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신경쓰이는 점은 그 못생긴 곰 캐릭터가 낯설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분명 어디에선가 그 곰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비록 흐린 기억 속이지만 확신이 들었습니다. 어디에선가, 어느 이름모를 도서관의 서적 속에서, 저 곰을….

"…착각이겠지."

무심코 혼잣말을 해버리고 말았지만 그 메세지만큼은 진심이었습니다.
착각일겁니다.
제가 저런 마이너한 캐릭터류에 깊은 관심을 갖고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제가 한번 파악한 정보를 까맣게 잊어버린다는 일도 좀처럼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에.


???: "뭘 고민하고 있는 거야. 당연히 모노쿠마 님이잖냐!"



라며 제 주의를 환기시켜주는 누군가 덕분에 기억나버렸습니다.
맞아, 저 곰의 이름은 모노쿠마였지. 어떻게 그런 걸 잊을 수가 있었을까. 이상한 일이네. 내가 깜빡하기도 한다니. 참 이상한 일이야….

어라.

그런데… 당신은 누구신가요?



모노쿠마: "초고교급 카지노 딜러 카미나기 한나 양! 입학 축하해! 덤으로, 체크 인도 축하해!"

"……."

모노쿠마: "……."

"……?"

모노쿠마: "……???"

"?????????"



눈앞의 광경과 움직이는 모노쿠마 인형의 말을 이해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래뵈도 저는 스스로가 상식파에 속한다고 자부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다짜고짜 테러리스트의 습격을 받아 낯선 장소로 끌려온 직후에 괴상망측한 동상을 관람하고 움직이는 곰인형의 등장까지 겪은 참에, 초고교급이니 입학이니 체크인이니 하는 소리들을 멀쩡히 알아들을 수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런 상황이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지는 인간이 있다면 그 편이 더 문제가 있겠지요.

그 모노쿠마 곰인형은 제가 뭐라도 말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안달내는 몸짓을 지었지만 미안하게도 할 말이 없다는 사실은 변치 않았습니다.

모노쿠마 인형의 얼굴이 새빨개져 터지기 직전이 되었을 즈음, 때마침 쓰러져있던 아키하라 양과 슌이 정신을 차려준 덕분에 저는 '리액션이 적은 눈치없는 아이' 신세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아키하라 양: "…아이씨, 골 깨지겠네…. 여긴 어디냐… 어라."

슌: "으으… 머리 아파…. 죽겠네 죽겠어… 아?"



일어나자마자 거친 말을 입에 담는 아키하라 양과 환자처럼 골골대는 슌을 보며 홀로 쭈뻣대던 저보다도 반가워한 건 역시 모노쿠마였습니다.



모노쿠마: "옷, 오옷. 잠꾸러기들이 이제야 일어나네, 우푸푸! 자, 그럼 다짜고짜 통보야!

초고교급 카지노 딜러 카미나기 한나 양, 초고교급 갬블러 아야키치 슌 군과 초고교급 보디가드 아키하라 이토리 양은 지금 이 시간부로 천공 모노쿠마 호텔에 체크 인 하셨습니다.

죽기 전까지 영원히!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우푸푸!"


아키하라 양: "…?"

슌: "……?"


짜잔, 하고 멋드러진 포즈를 지어보이는 모노쿠마였지만 아키하라 양과 슌도 저와 다를 것 없이 뻣뻣하게 굳어버릴 뿐이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모노쿠마 그 자체도 전혀 모르는 것처럼 보여 저보다도 혼란스러워하는 눈치였습니다. 물론 저도 모노쿠마를 알 뿐이지 모노쿠마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릅니다만, 전혀 낯설지는 않다는 그 차이점이 무의미하지는 않은 듯 했습니다.

한편 크게 실망한 모노쿠마는 입을 삐쭉 내밀고 몸을 배배 꼬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모노쿠마: "……하아. 이번 신입생들은 다 이 모양이야? 제발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이래서야 비장의 필살 기획이 다 물거품이 되어버린다고…."

슌: "저기… 테디베어 씨?"



슌이 용감하다면 용감하게 모노쿠마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말하는 인형에게 초면부터 말 붙일 생각을 하는 걸 보면 역시 슌도 사고방식이 정상은 아닙니다.



모노쿠마: "테디베어가 아니라 모노쿠마야."

슌: "아, 그래. 그러면 그, 모노쿠마 씨? 실례지만 하는 말들을 도무지 못 알아듣겠는데…. 혹시 이해가 가도록 차근차근 설명해줄래?"

모노쿠마: "으음. 안 돼."

슌: "응?"

모노쿠마: "안 된다고. 이런 미적지근한 반응으로는 도무지 진행이 안 돼. 전혀 두근두근거리지도 않고 찌릿찌릿하지도 않다고. 하아. 망했어. 전부 망했다고."

슌: "…내가 뭘 잘못한 건가?"


슌은 그렇게 말하며 제 쪽을 흘깃 쳐다봤지만 저도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습니다. 모노쿠마는 상심을 넘어서 짜증이 돋은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모노쿠마: "아, 그냥 처음부터 다시 해버릴까? 응? 어때, 그게 좋을 것 같지 않아? 아무래도 좀 날림이었던 것 같아. 프롤로그부터 아예 다시 계획해서 제대로… 기억도 좀 싸그리 지워버리고… 아예 한 두 명 쯤 죽여놓고 시작해도 좋을 것 같고. 아니면 한 사람만 끔찍하게 죽여서 전시해놓는다던지…."

슌: "아니아니아니아니, 무슨 그런 무서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아키하라 양: "어이, 곰탱이 새끼. 너 뭐야? 제봉선 따라서 반으로 갈라지고 싶냐?"


슌의 호들갑을 가로막으며 대뜸 모노쿠마에게 욕설을 뿜어버리는 아키하라 양.
그녀의 대범함에 전 진심으로 감탄했지만 어쩐지 욕설을 들은 모노쿠마도 못지않게 기뻐하는 것 같았습니다. 혹시 악질적인 마조히스트인걸까요.


모노쿠마: "우횻! 이거지 이거야~ 이게 제대로 된 초고교급 리액션이지! 아, 이 3인방 중에서 리액션 담당은 아키하라 양이 되겠네. 기억해둬야겠어~ 메모 메모!"

아키하라 양: "귀 먹었냐? 너 뭐냐고 묻잖아. 그 오타쿠 테러리스트랑 한패냐?"

모노쿠마: "오, 오타쿠는 맞지만 테러리스트는 아닌뎁쇼…."

아키하라 양: "지금 말장난 하자는 걸로 보여? 헛소리 늘어놓지 말고 당장 우릴 출구로 안내해. 그 같잖은 인형을 조종하고 있는 본체를 찾아서 죽여버리기 전에."


검은 장갑 낀 손을 우득 우득 스트레칭하며 그렇게 말하는 아키하라 양의 살기어린 눈빛은 그녀가 내뱉은 단어 하나 하나 진심이 아닌 것이 없다는 걸 이해시켜주었습니다.

어떻게 저 가녀린 체구에서 저런 살기와 기백이 스며나오는 걸까, 저는 또다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인형이 아니라 인형을 조종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대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도 슌보다는 훨씬 상식인다웠습니다.

하지만 분위기가 묘했습니다. 그 위협을 들은 모노쿠마는 기가 죽기는커녕 잠시 기운 빠진 연기를 하다 이내 배를 부여잡고 낄낄 웃음을 터뜨렸고, 심기가 불편해진 아키하라 양은 앞으로 나섰습니다. 어쩐지 불안해진 저는 그녀를 말려세웠습니다.



"아키하라 양, 일단 진정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키하라 양: "토끼녀는 남친 옆에 딱 붙어있어!"

"토끼녀?!"

슌: "남친?!"


서로 놀라는 대목이 달랐지만 똑같이 당황한 틈을 타 아키하라 양은 저와 슌 사이를 가로질러 저 높이 펄쩍 뛰어올라 모노쿠마 동상 위에 올라탔습니다. 도무지 인간의 몸놀림이라고 부를 수 없는 모습에 슌은 입을 쩍 벌리며 놀라워했습니다.

마치 창작물 속의 닌자처럼 잽싼 움직임으로 눈 깜짝할 새에 동상의 꼭대기까지 타고 올라간 아키하라 양은 대번에 모노쿠마 인형의 멱살을 휘어잡았습니다. 멱살이라기보단 두툼한 목살이었습니다만.


모노쿠마: "어, 어어? 어어어? 본체부터 죽이러 가는 거 아니었어?!"

아키하라 양: "그건 됐고, 일단 이 기분나쁜 인형부터 찢어발겨놓고 생각해야겠어."

모노쿠마: "아아악, 하, 한 번만 다시 생각하면 안 될까?"


아키하라 양은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습니다. "뭘?"


모노쿠마: "저, 그게, 난 아직 여고생에게 내 속살을 보일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달까…."

아키하라 양: "...뒤져!"


모노쿠마의 도발과 거의 동시에 아키하라 양의 주먹이 쉬익, 바람를 가르며 모노쿠마의 얄미운 얼굴에 정통으로 꽂혔습니다.

정확히는, 꽂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아키하라 양, 안 돼요!!!"

아키하라 양: "??!"

모노쿠마: "우푸푸."


낌새를 알아챈 전 다급하게 외쳤습니다만 그 경고가 아키하라 양의 귀에 닿았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습니다. 아키하라 양과 모노쿠마가 발을 딛고 있던 거대 모노쿠마 동상이 달걀 껍질처럼 쩌적, 쩌적 갈라지며 힘없이 무너져내렸습니다.

모노쿠마는 공중부양이라도 하듯 평온하게 샹들리에 위에 올라탔지만 중력의 지배를 받는 아키하라 양은 달랐습니다.

아무리 날쌔다해도 결국엔 인간. 휘청거리다 균형을 잃고 추락하는 아키하라 양을, 무너져내리는 잔해 속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금속 갈퀴같은 것이 휙 낚아챘습니다.

픽, 벌레 죽는 듯한 소리가 났습니다.

달걀처럼 무너진 모노쿠마 동상.
정확히 말하자면 그 모노쿠마 동상 자체가 하나의 달걀 껍질이었습니다.

검고, 불길하고, 또 위대한 어떤 존재를 위해 지어진 요람.

체인쏘와 라이플. 화염방사기와 미사일. 검은 금속 골격과 불길하게 반짝이는 붉은 불빛.

먼지가 걷히고, 그 찬란한 껍질을 깨고 세상을 향해 당당한 첫 등장을 선보인 그것은 언뜻 보기에도 건조된 목적을 유추할 수 있을 법한 초거대 살인병기였습니다.


모노쿠마: "학생 제군에게 소개할게~ <더 그레이트 에구이사루>! 이 천공 모노쿠마 호텔의 보안을 책임질 보안 담당자야! 앞으로 자주 보게 될 테니 다들 인사하렴! 우푸푸푸!"

"아키하라 양…!"


신장 20m는 충분히 될 법한 거대 살인기계의 손아귀에 낚아채이고 걷어차여, 벽에 쳐박힌 채 축 늘어진 아키하라 양의 모습에 저는 새어나오려는 비명을 강제로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죽었습니다.

저건 인간이라면 반드시 죽었습니다. 아무리 강인한 아키하라 양이라도. 테러범으로부터 목숨 걸고 저와 슌의 안전을 지켜준 아키하라 양이라도…. 죽을 수밖에 없는 물리적 충격입니다.

SF 영화에나 나올 거대 살인로봇이 등장해 한 사람을 벌레 잡듯이 살해해버리는 끔찍한 광경 따위, 전혀 믿기지도 않았고 목격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대체 이건 뭘까요. 그 테러리스트의 등장부터 모든 게 이상해졌습니다. 여긴 어디이고, 저는 누구이고, 우린 대체 어떤 광경을 목도하고 있는 걸까요. 이게… 이게 현실이긴 한 걸까요?

해답을 선뜻 던져줄 생각은 없는 듯, 살인기계 위에 탑승한 모노쿠마는 압도적인 비현실감에 얼어붙어버린 저와 슌을 내려다보며 비겁하게 웃었습니다.


모노쿠마: "어라, 겁먹었어? 겁먹었어 겁먹었어?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걸 보니까 겁먹었어? 끄응, 이러면 그냥 살려둘 걸 그랬나? 리액션할 사람 하나는 필요한데…."

슌: "이, 이게… 이게 대체 무슨…?"

모노쿠마: "그러게, 한창 창작 의욕을 불태우고 있는 살인게임의 흑막한테 시비를 걸면 이렇게 무심코 상상하고 있던 걸 실현하고싶게 되어버린단 말이지. 창작의 고통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은 참, 교양이 없어도 너무 없잖아. 우푸푸!"

슌: "고작 그런 이유로 사람을 죽였다고…? 파리라도 잡는 것처럼?"


슌의 목소리는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습니다. 살인기계가 주는 공포라기보단 조금 더 뜨겁고 원초적인 무언가로부터 끌어올려진… 그런 떨림.

분노.


모노쿠마: "으으응, 그것보다 훨씬 하찮은 이유로도 사람은 죽는 걸? 이를테면 따분함이라던지, 옷걸이라던지, 열등감이라던지. 오히려 창작의 욕구에서 나온 살인이라는 건 어쩐지 엘레강스하고 좋지 않아? 응? 우푸푸!"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여전히 딴청을 부리는 모노쿠마의 태도에 슌은 금새 맥이 빠져버린 목으로 힘없이 말했습니다.


슌: "대체… 대체 원하는 게 뭐야. 대체 우리한테 왜 이러는데. 왜 멀쩡히 잘 살고 있던 사람들을 납치해와서 이러는 건데…!"

모노쿠마: "우푸푸푸푸- 납치라니, 가당치도 않은 말을 하는구나, 아야키치 군? 나는 납치따위 한 적 없는데. 그리고 목적이라면 분명히 말했잖아?
나는 <살인게임의 흑막>이라고."


나는 살인게임의 흑막이라고.
거인 위에 올라탄 모노쿠마의 말소리가 마치 확성기를 가져다 댄 것처럼 유독 홀 전체에 울려 메아리쳤습니다.

나는 살인게임의 흑막이라고.

살인게임의 흑막이라고.

살인게임의 흑막.

살인게임… 살인게임… 살인게임….

살인게임.

결국 그게 핵심이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던 일련의 사건들. 그것들이 행해진 이유도 오로지 하나.

목적 자체가 이해할 수 없으니 과정도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합니다.

살인게임.

오로지 그에겐 그것 뿐이라고, 모노쿠마는 말했습니다.



모노쿠마: "너네들은 지금 이 시간부로 전원 두근두근거리는 살인게임에 참가해줘야겠어! 기한은 죽을 때까지, 혹은 영원히! 도망갈 곳도 방법도 없어!
이곳에서 나가기 위해 너네가 할 일은 오로지 하나, 살인!
대상은 이 현장에 있는 전원, 방법은 무제한! 머리를 박살내서 죽이든, 수조에 빠뜨려 익사시키든, 칼로 찔러죽이든, 밧줄로 교살하든, 프레스로 압사시키든, 톱으로 토막을 내든, 폭사시키든, 절벽에서 밀어 추락사시키든, 독을 먹여 죽이든 아무런 상관도 없어!
나가고 싶다면 죽여라! 죽이는 자만이 영광을 얻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천공 모노쿠마 호텔의 룰! 우푸, 우푸푸푸, 우푸푸푸푸푸!"


모노쿠마의 목소리가 흥분으로 점철될때마다 그레이트 에구이사루의 눈에서 뿜어져나오는 붉은 빛이 마구 요동쳤습니다.

웃음, 웃음 다음에 또 웃음이 이어지다 오르가슴에 빠진 여성처럼 가쁜 숨을 몰아쉬는 모노쿠마의 모습은, 그야말로 광기.

살인을 향한 그 순수 어린 예찬.

범죄에 대한 일말의 무게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는 그 유쾌한 오락성.

그것은… 그것은 마치….

마치 흐릿하게 가려진 과거의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뭘까요.
대체 뭘까요. 아까부터 저를 불안하게 만드는 이 흐린 기억의 잔재는.

신경쓰이는 일은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모노쿠마의 수상한 말투.
너네들, 이 현장에 있는 전원.
어쩐지 눈앞의 우리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조금 더, 조금 더 많은… 대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그 말투.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말투의 진의는 곧바로 드러났습니다.



모노쿠마: "지금 한 말은 각 통로에 숨어서 엿듣고 있는 너네들☆에게도 해당됩니다~! 쥐새끼처럼 쪼그려있지 말고 어서들 기어나오라구! 짜부 된 아키하라 양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아?"

"…!"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홀을 둘러싸고 있던 스페인 양식의 통로 속에서 인기척이 들려왔습니다.

웅성웅성, 소근소근.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지만 분명히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저와 슌, 그리고 아키하라 양의 모습을 관찰하며 숨어있던 사람들이. 그들의 동요와 부끄러움과 긴장감이 공기를 타고 느껴졌습니다.

소극적인 그들의 태도에 모노쿠마가 한마디를 더 얹으려던 참에, 사람들을 대표해서 한 소년이 밝은 곳으로 나섰습니다.



선글라스 소년?: "그런 말을 듣고도 나서지 않는다면, 더 이상 사내라고 할 수도 없겠군요."



엷은 백금발에 붉은 셔츠와 선글라스, 베이지 빛깔의 숏 케이프와 바지를 빼입은 그는 마치 잘생긴 유럽 강소국의 왕자같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기다란 지팡이를 짚으며 뚜벅 뚜벅 앞으로 나선 그를 필두로 해서 우르르라고 할까, 주춤주춤이라고 할까, 한 다스는 충분히 넘어보이는 엄청난 수의 낯선 얼굴들이 어둠 속에서 빠져나왔습니다.

그들 모두 성인은 아닌 것 같은 액면가에 개성적인 스타일의 소유자들이었는데, '이렇게나 많이?' 싶을 정도의 인원이라 재빨리 셈을 해보니 그 수는 열 일곱. 저와 슌, 그리고 아키하라 양을 합치면 딱 스물이 되는 수였습니다.

그들 하나 하나가 몇 마디씩 하고싶은 말을 쏟아내기 시작하자 분수홀은 금방 성수기의 카지노 홀처럼 소란스러워졌습니다.



아랍 풍의 소년?: "이보게, 맹인 소년! 새치기하지 말게나! 이 몸이 먼저 나서려고 했는데!"

코주부 안경과 왕관?: "파하핫! 구라다, 구라야! 잔뜩 쫄아있었으면서! 점마 저거 시뻘건 구라쟁이 아니가! 매달아라! 매달아!"

키 큰 레게머리 소년?: "흐으으음~¿ 거대 로봇에 살인게임이라, 곤란해보이는 상황이네~¿"

검은 미래풍 옷의 소년?: "……."

푸른 양갈래머리의 소녀?: "우, 우와아. 오지게 큰 로봇이네…! 아, 거기 오빠 안녕? 안녕? 내 이름은… 어라, 개쫄아서 하나도 안들리는 건가. 피."

쪽빛 머리의 짜증날 것 같은 소년?: "못생긴 로봇에 못생긴 인형에 못생긴 여자애네. 큭큭."

선명한 오렌지색 머리의 소녀?: "하아, 분위기 타서 나오긴 나왔는데 이거 진짜 괜찮은 거 맞을까…. 그냥 쭉 숨어있는 게 나았을지도."

은장발의 미소년? 미소녀?: "오우 마이… 깟! 저런 흉물스런 물건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파렴치하게 돌아다니다니, 아, 현기증이 나. 누가 어서 경찰을 불러줘요. 이 역겨운 곳에 더 이상 못 있겠어."

고대 이집트 풍의 코스튬을 입은 소녀?: "…너무 밝은 곳은 싫은데…."

연구실 가운을 걸친 육감적인 몸매의 여성?: "어머나, 신기해보이는 실험체들이 줄줄이! 아하핫!"

안경 낀 곱슬머리 평범 소년?: "이봐요, 당신. 사람들을 보고 실험체라니 대체 무슨 비상식적인 소릴 하는 겁니까? 그리고 도서관에서는 정숙하세요!"

졸려보이는 여자아이?: "흐아아암…. 어라, 여긴 어디여…? ...도서관은 아니네."

영어를 사용하는 소녀?: "(이럴 리가 없어, 이럴 리가 없다고…. 어째서, 어째서 모노쿠마가…. 그래, 이건 모두 악몽이야. 창작에 너무 열중한 탓에 악몽을 꾸는 거라고….)"

동양 예복에 작은 부채를 들고있는 남자?: "…과연."

패셔너블한 외모의 미소년: "아까 에구이사루에게 공격당한 여성 분… 괜찮으실지 걱정됨다."

담배를 물고 있는 어두컴컴한 소녀: "괜찮을 리가 있겠어? 몸이 강철로라도 되어있지 않은 이상…. 만약 살아난다면 특종감이지."



과연, 살인게임을 하려면 최소 이 정도 머릿수에 이 정도 개성은 필요하다는 걸까요.

수긍 아닌 수긍을 하고있던 차에 선글라스 소년이 지팡이 끝으로 이쪽을 가리켰습니다.



선글라스 소년: "숙녀 분, 신사 분. 부디 여전사 양의 수습을."

"네…? 아, 그래요. 알겠어요. 슌, 함께 와줘요."



열 일곱이나 되는 과개성 집단의 출몰 때문에 아키하라 양의 존재를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저는 반 쯤 넋 나간 채로 있던 슌을 강제로 끌고가다시피 하며 아키하라 양의 몸이 쓰러져있는 벽 쪽으로 조심 조심 걸음을 옮겼습니다.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은 다리가 천근만근 무거워졌습니다.



모노쿠마: "어라, 움직여도 된다고 한 적 없는데."

"…!"

모노쿠마: "우푸푸, 농담이야. 마음대로 해도 돼. 어차피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닐테고~"

"……."



저와 슌에게 장난스런 위협을 가한 후, 모노쿠마는 저희가 아닌 나머지 열 여섯에게 고개를 돌려 열심히 떠들어대기 시작했습니다. 모인 사람들 쪽에서 무어라 웅성웅성 떠들어대는 기척이 들렸지만, 어차피 저 그레이트 에구이사루라는 물건이 등장한 이후로 모노쿠마가 무슨 말을 해도 귀가 찢어질 만큼 시끄러웠으니 별 의미는 없었습니다.


모노쿠마: "자, 그럼 배우도 다 모였으니 자세한 설명을 시작해볼까?"


일동의 목소리는 모노쿠마의 일방적인 소음공해에 깔끔하게 묻혀버렸고, 저와 슌도 결국 그레이트 에구이사루를 무시하고 걷기가 어려워 걸음을 멈추고 말았습니다.
미안해요, 아키하라 양. 수습은 조금 뒤에 해야겠어요.


모노쿠마: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 자리에 모인 스무 명의 고등학생 손님들은 앞으로 벌어질 살인게임의 주역들이야! 와, 박수 박수!"


박수 대신에 거친 야유가 터져나왔습니다.


모노쿠마: "으, 으음…. 그래, 지금 당장엔 혼란스러워할 수 있어.
아직 고딩이고, 평범한 일상을 즐기던 내가 왜 이런 장소에, 이런 일에!
억울하고 분하겠지. 알아, 알아. 기억도 어쩐지 좀 깜빡깜빡하고 그렇겠지.
하지만 그런 너네들을 위해 너네들이 가진 한 가지 공통점을 알려줄게! 이걸 들으면 납득이 좀 갈 지도 몰라.

너네들은 한 사람 한 사람, 전원이 초고교급 재능을 지닌 초고교급의 학생들이야!"


조금 더 크게 웅성거림과 야유가 들려왔습니다. 그쯤되니 모노쿠마도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노쿠마: "아, 아니 아니, 이런 반응이 아니잖아.... 아, 초고교급 학생이 뭔지 모르는 거구나! 어라,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고…. 흠, 좋아 좋아. 까짓꺼 설명해주면 되지! 우푸푸!
자, 다들 옆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살펴보세요! 왼쪽도 좋고 오른쪽도 좋고, 뒤도 좋고 앞도 좋으니 얼굴을 봐! 보이지? 뭔가 이상하게 생겨먹은 페이스 페인팅 같은 게.
바로 그게 <초고교급의 표식>이야! 얼굴에 그런 문양이 자연적으로 생겨난 사람들을 초고교급 학생이라고 해! 참 쉽지? 우푸푸!"


"……."



이제 야유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그레이트 에구이사루의 성능으로도 전부 가릴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얼굴에 무늬가 나면 초고교급이라니.

세상에, 그딴 바보같은 기준이 어딨어요?



모노쿠마: "아, 아니, 나는 그냥 사실대로 말하고 있을 뿐인데 왜 욕을 하고들 그러냐고…. 진짜라니까? 너네들은 초고교급 학생들만이 가지는 표식이 얼굴에 생겨났고, 그렇기에 이 살인게임에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참가하게 된 거야! 그게 너희가 알아야 할 전부. 그 이상은 스스로 알아내셔!

살인게임이 끝나기 전까지 너네들은 이 <호텔>과 호텔 주변의 공간인 <돔>내부에서 정해진 룰을 지키며 오순도순 함께 생활하며, 너네들이 이곳에서 나가기 위해 할 일은 단 하나야.

살인!

…이라고 말했었지만, 우푸푸! 사실 그게 그렇게까지 단순한 건 아니야!

이건 어디까지나 살인 <게임>이니까 게임적인 요소가 없으면 안되겠지?
그냥 아무나 한명 찔러죽이고 나가버린다, 그런 엔터테인먼트 따위 참가하는 측도 주최하는 측도 아무도 즐거워하지 않을 테고.

그래서 존재하는 게 바로 학급재판 시스템입니다!

학급재판 시스템이란 아주 간단하고 이지적이고 합리적인 제도입니다!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살인을 저지른 사람을 검정이라 칭하고 나머지 인원 전원을 하양이라 합니다.

살인사건의 발생 이후 시체 발견 아나운스가 울리면 일정 시간의 조사 시간이 주워지고, 조사 시간이 끝난 이후엔 곧바로 학급재판이 개시됩니다!

학급재판이란 말 그대로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아내기 위한 재판! 조사한 단서들과 여러분의 추리를 통해 충분한 논의를 거치고, 각자의 판단에 따라 살인사건의 검정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거침없이 한 표를 행사!

다수결에 의해 검정으로 결정된 사람이 검정이 맞다면 학급재판 무사통과, 틀리다면 대실패, 참사, 카타스트로피입니다!

학급재판을 무사히 통과한다면 검정은 살인이라는 죄의 무게에 걸맞는 <벌칙>을 받고, 나머지 하양들은 즐거운 호캉스를 계속 즐기면 됩니다!

허나 만약에라도 학급재판을 통과하지 못하게 된다면? 검정은 승자 보상과 함께 이 호텔에서 빠져나갈 권리를 얻고,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이 행사한 표에 상관없이 싸그리 <벌칙>을 받게 됩니다. 어때, 간단하지?"



요약하자면 살인이 발생하면 조사를 하고, 추리를 통해 범인을 밝혀낸다.
참으로 간단하고도 바보같은 게임입니다.



담배를 물고 있는 어두컴컴한 소녀: "가만 듣고 있자니 어이가 없네. 우리가 왜 그딴 놀음에 응해줘야 하는 걸까?"


어두컴컴한 여성분이 대뜸 따지고 들었습니다. 축 늘어진 머리칼에 기다랗게 묶은 사이드테일, 내려온 다크서클과 힘빠져보이는 녹색 톤의 원피스 그리고 겉옷. 물고있는 담배를 빼놓고 보면 비교적 평범하고 수수한 인상의 여성이었지만 내뿜는 카리스마는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그레이트 에구이사루를 눈앞에 두고 저런 배짱을 부리다니, 대체 얼마나 기골이 있는 여자인걸까요. 모노쿠마도 예상치 못했는지 "응? 그야 말 안 들으면 저렇게 되니까?" 하고 아키하라 양 쪽을 가리키며 떨떠름하게 대답했습니다. 간단하면서도 살벌한 위협이었습니다만, 여성분은 눈 하나 깜빡치 않았습니다.


시가라토 유즈: "...일단 자기소개를 하지. 내 이름은 시가라토 유즈, 일선에서 특종감을 취재하는 <르포 기자> 일을 하고 있어. …이번에도 <어떤 사건>을 밀착 취재하던 중 정신을 잃고 쓰러졌는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에 휘말리다니 웃기지도 않네.
이봐, 모노쿠마. 아무리 생각해도 밸런스가 너무 안맞는다고 생각하지 않아?"

모노쿠마: "?"

시가라토 유즈: "형평성 말이야, 형평성. 당신이 설명한 살인게임의 룰은 전혀 형평성이 없다고. 검정에게나 하양에게나 말이야.
검정은 목숨을 건 살인을 하고서도 피말리는 학급 재판을 겪어야 하지, 하양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목숨을 잃을 수 있을 뿐더러 심지어 범인을 맞춰도 다수결에 의해 패배할 수 있어…. 심지어 보상이 충분한가하면 그것도 아니겠지. 고작해야 남은 시간을 연명할 수 있는 기회 정도.
대체 어느 바보가 이런 불합리하고 허접한 게임에 열중하려 할까…?"

모노쿠마: "흐음…. 하지만 일단 시키면 잘만 하던 걸? 이래뵈도 살인게임의 베테랑이라고, 이 몸은."

시가라토 유즈: "요컨대 올드 패션이라는 거군. 낡아빠진 고전소설에나 나올법한 살인게임, 피 튀기고, 사람이 죽고…. 그런 걸 대체 누가 즐긴다는 걸까?"

모노쿠마: "…낡아빠져? 그건 아닐걸!"


시가라토 양의 용기있는 비아냥에 흑백의 곰도 발끈하고 나섰습니다. 형평성 부족. 진부함. 살인게임의 흑막이 지닌 나름대로의 고충을 제대로 찔렀던 것일까요? 모노쿠마는 꽤 무게 있는 발언들을 줄줄이 발설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노쿠마: "이런 이런, 중요한 정보들은 천천히 알려주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지. 시가라토 양, 이번에 징징대서 나를 곤란하게 만든 건 꼭 기억에 담아둘 거야! 염두해둬! 우푸푸!"

시가라토 유즈: "…그래, 노트에라도 적어둘게."

모노쿠마: "흥. 듣고 놀라지나 마셔, 이번 살인게임에는 세 가지의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그 중 첫번째.
이번 살인게임은 무려 <사람이 죽지 않는 살인게임>이라고!"

시가라토 유즈: "…하?"

모노쿠마: "거봐, 깜짝 놀랬지? 포장을 뜯기 전부터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은 형편없을 거라고 예견하는 딸내미는 아빠 가슴에 상처만 준다니까!"

시가라토 유즈: "아, 아니…. 너무 어처구니 없어서 그만…. 그건 확실히 올드 패션은 아니긴 한데. 사람이 죽지 않는 살인 게임…이라고? 그런 게 가능한가?"


술렁이는 일동 속에서 시가라토 양은 어렵사리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모노쿠마의 말을 곱씹었습니다.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기는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살인 게임에 사람이 죽지 않는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일까요. 무엇보다도 이미 한 사람이 희생당했는데.
그런 우리의 반응을 헤아린 듯 모노쿠마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모노쿠마: "이 몸은 상냥하니까 이해가 가도록 설명해줄게! 여러분, 여기 혹시 가상현실이 뭔지 모르는 시대에 뒤떨어지는 학생은 없겠죠? 만약 있다면 초고교급 박탈할 거야?"


검은 옷의 사내가 슬며시 손을 들다가 또 슬며시 내렸습니다. 모두들 그를 못 본 척 해주었습니다.


모노쿠마: "자, 모르는 사람은 없는 것 같으니 계속할게.

갑작스럽지만 이 천공 모노쿠마 호텔은 가상현실 속의 공간입니다. 최신 기술을 활용해서 리얼함을 최대로 살린 거짓 속의 진실! 그말인즉슨 여러분들도 이미 잘 만든 가상현실 속에 들어와있다는 거죠~ 우푸푸, 쇼킹 쇼킹!

살인게임의 모든 과정과 결과는 이 가상현실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먹고 자고 싸는 것도 가상현실 속, 살인과 학급재판도 가상현실 속, 죽음도 살인게임 속!

자, 눈치 빠른 학생이라면 슬슬 눈치챘겠지?

가상현실에서 목숨을 잃거나 다친다고 해서 현실의 여러분까지 위해를 입지는 않습니다!

물론 고통은 제대로 느낍니다만 그래봤자 가상현실 속의 일.

가상현실에서 살해당하거나 <벌칙>을 받은 사람은 <게임 오버>로 취급되여 가상현실 밖으로 추방되고, 자다 일어난 것처럼 개운한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람이 죽지 않는 살인게임>이 완성되는 것이죠!

우푸푸, 어때? 시가라토 양? 이 정도면 충분히 합리적이지?"



시가라토 유즈: "가상현실이라니, 그런 갑작스런 말을 대체 우리가 어떻게 믿…."



모노쿠마: "아하, 그렇게 말 할 줄 알았지! 못 믿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보여줄게. 현실 속에서 편히 취침하고 계신 여러분의 모습입니다!"


번쩍, 곰이 뚱뚱한 손가락을 튕기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홀로그램 영상 따위가 나타났습니다.

그 영상은 어느 넓고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의 깨끗한 방을 비추고 있었는데, 바닥과 벽이 모두 새하얀 대리석 재질인데 반해 그 중심엔 수없이 많은 케이블이 연결된 커다란 기계가 자리하고 있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기계의 주변으로는 딱 스물이 되는 수의 둥근 캡슐 같은 장치가 둥글게 진열되어 있었고, 그 속에는 더 이상 당연한 설명을 이어가기도 귀찮다는 듯 곤히 잠든 건강한 소년 소녀들의 모습이 비쳐보였습니다. 바로 이 홀에 모인 스무 명의 초고교급 학생들이었습니다.


시가라토 유즈: "…."

모노쿠마: "뭐 여기까지 보여줬는데도 의심한다면 별 수 없지만, 평온하고 아무 일도 없는 잠들어있는 현실보다 20m급 살인로봇이 뛰어다니고 초 큐트 러블리 곰인형이 춤을 추는 가상현실이 더 리얼하다고 믿겠다면 나도 말리지는 않겠어~ 우푸푸!"

시가라토 유즈: "…젠장."


모노쿠마의 구멍이 뚫린 것 같다가도 꽤나 공격적인 논증에 결국엔 꼬리를 내린 시가라토 양과 일동이었습니다.

저는 기세가 꺾인 시가라토 양을 보며 아쉬운 마음이 들면서도 또 한편으론 다행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는 살인게임이라면 이 상황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비록 죽는 건 아프겠지만, 결국 현실에선 긴 악몽이라도 꾼 것처럼 금새 멀쩡히 깨어나게 되겠죠.

그때 한참동안 말이 없던 슌이 다급하게 물었습니다.



슌:"잠시만. 현실의 우리가 안전하다면, 방금 에구이사루애게 살해당한 이토리 씨도 아직 살아있다는 말이야?"

모노쿠마: "응? 그래, 그야 당연하지! 말했잖아? 가상의 죽음은 현실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살인게임에선 게임오버 당한 거지만."


모노쿠마는 그렇게 말하며 또다른 화면을 허공에 띄웠습니다. 침대처럼 푹신해보이는 캡슐 속에서 평온히 잠든 아키하라 양의 새하얀 얼굴, 그리고 그 옆에 연결된 바이럴 사인 디스플레이였습니다. 심박수 안정, 혈압 안정, 뇌파 안정. 그야말로 잠에 든 것으로밖엔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진심으로.

아키하라 양의 안녕과 가상현실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고 나고서 살인게임 참가자 일동에는 묘한 안정감이 돌았습니다. 비록 강제로 가상현실에 집어넣어진 상황이지만 당장에 죽을 일은 없다는 걸 보장받았기 때문일까요. 비교적 들을 자세가 된 우리들의 모습을 살피고는 모노쿠마는 만족스럽게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모노쿠마: "그럼 이걸로 첫번째 특이점에 대한 설명은 종료! 곧바로 다음 스페셜 포인트를 인트로듀스 해줄게~ 우푸푸!

첫번째 타이틀이 <사람이 죽지 않는 살인게임> 이라면 두번째는 그 이상의 센세이션이야. 그건 바로 <공범이 허용되는 살인게임>!"


슌: "…그게 뭐가 특별해? 공범이라는 건 살인사건에 쌔고 널렸잖아. 계획범죄의 경우엔 오히려 단독범의 소행이 통계적으로도 더 적을 걸."


슌의 태클에 모노쿠마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습니다.

모노쿠마: "노우 노! 비록 살인사건에는 흔하겠지만, 살인게임에선 전혀 흔하지 않지. 이런 살인게임 초짜를 보았나!"

슌: "전혀 욕이 아니거든, 그거…."

모노쿠마: "어쨌거나 모르면 잠자코 듣기나 해!
이전까지의 살인게임에서는 게임의 난이도를 위해 공범에게 아무런 메리트를 주지 않았습니다!
비록 A와 B가 공모하여 C를 살해했다고 치자. 함께 계획을 짜고, 함께 살인도구를 준비하고, 함께 실행을 했다 치자고.
만약 사회의 법규를 적용한다면 A와 B는 공범 취급을 받아 두 사람 모두 처벌을 받겠죠?
하지만 살인게임에선 그렇지가 않아.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의 살인사건에서 검정으로 판정되는 인물은 단 한명! 바로 마무리 일격을 가한 사람! 그게 바로 살인게임의 국룰이라 할 수 있는 규칙 중 하나였지.

하지만 그 <올드 패션>을 집어던지고, 천공 모노쿠마 호텔은 살해방법의 다양성을 위해 과감히 공범 제도를 공식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여러분, 주변을 돌아봐주세요. 살인게임의 참가자인 초고교급 소년 소녀들이 보이시나요? 우푸푸!"


저와 슌은 반사적으로 서로를 쳐다봤습니다. 그리고 열 일곱 명의 낯선 얼굴들도 서로를 흘기거나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묘한 경계심이 팽팽하게 홀을 메웠습니다.


모노쿠마: "지금 이 자리에 선 너네들,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하나의 태그를 이뤄 살인게임의 파트너가 됩니다! 우푸푸!

아까 말했다시피 본래의 경우엔 공범을 허용하지 않는 경우가 흔치만, 딱 한 사람, 검정의 파트너에 해당되는 인물에 한해서 공범을 인정하고 학급재판의 결과를 함께 적용하겠습니다!

그러니 너네들은 파트너와 함께 오순도순 머리를 맞대며 최고로 짜릿한 살인을 계획하고 또 실행할 수 있다는 거지.
우푸푸, 벌써 두근두근대지? 그렇지?"


…다른 의미로 두근두근거리네요, 그거. 조금 더 복잡하고 치밀한 방법으로 살해당할 수도 있다는 거니까.


모노쿠마: "아웃당한 아키하라 양까지 총 스무 명이니 열 쌍의 태그가 나오겠네. 살인게임 내내 동거동락할 각자의 파트너는 잠시 후에 알려줄테니 기대하시라!

자, 그럼 이번 살인게임의 마지막 스페셜리티를 공개할 차례인데…."







슌: "잠깐만."

"…?"

슌: "…잠깐. 뭔가 이상해. 어째서 깨어나지 않는 거야?"


슌이 안도감과 의구심이 섞여있는 오묘한 표정, 그리고 소름돋게 냉철한 목소리로 모노쿠마에게 물었습니다. 얼핏 혼잣말처럼 들리기도 했기에 모노쿠마도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모노쿠마: "응? 깨어나지 않는다니, 뭐가? 네 오른손의 흑염룡? 아직 중2병이 덜 가신 거니?"

슌: "아니, 그게 아니야."

슌은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슌: "아까부터 틀어져있는 저 영상… 이토리 씨는 아까부터 계속 캡슐 속에 잠들어있어. 이토리 씨는 살해당했는데 어째서 아직까지 현실에서 깨어나지 않는 거야? 아까 설명한 것과는 다르잖아. 혹시 너… 거짓말 한 거 아니야?"


슌은 허공에 여전히 남아있는 대형 홀로그램 영상을 가리키며 이야기했습니다. 과연 그 말대로였습니다. 영상 속의 아키하라 양은 여전히 검은 머리칼을 곱게 뉘이고 독사과를 먹은 백설공주처럼 얌전히 누워있었을 뿐입니다. 잠에서 깨어나기는커녕 잠꼬대조차 할 조짐을 보이지 않습니다.


모노쿠마: "흐음…. 글쎄, 듣고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네. 잠깐만, 확인을 좀….
어라? 어라라라라?

어라라라라라라…라?"


슌의 이의제기를 들은 모노쿠마는 그레이트 에구이사루의 머리에 해당할 것 같은 부위 속으로 쏙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한동안은 아무런 반응이 없더니, 이내 그레이트 에구이사루 그 자체가 크게 몸체를 뒤흔들고, 오늘 본 중에서 가장 살인게임의 흑막답지 못한 소리를 내며 당황해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영문을 모르고 의아해했습니다.


모노쿠마: "이, 이게 무슨 일이람…. 이럴 리가 없는데…?"

슌: "뭐야? 뭐가 그럴 리가 없는데?"

모노쿠마: "아니, 그게…. 이런 경우는 또 처음 보는데…."


모노쿠마는 무척이나 우물쭈물하며 말을 미루고 또 미루다, 결국엔 허탈하다는 듯이 충격적인 진실을 내뱉고 말았습니다.




모노쿠마: "…아직 살아있잖아? 아키하라 이토리 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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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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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9802 일반 이거도 순애지? [8] emily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2 5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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