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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1년] 프롤로그앱에서 작성

미러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11.23 00:51:00
조회 69 추천 2 댓글 3
														

예전에 쓴 글 뒷부분 표현이 맘에 안들어서 뒤를 싹 갈아엎었어..!!! bgm도 나름 신경써서 골랐으니까 함 틀어놓고 읽어봐











소리에는 부피가 있다.

정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공기가 차지하는 부피는 줄고, 그 빈 공간을 소리가 메운다. 적당히 도톰하고 적당히 까끌까끌한 종이와 투박하지만 매끄러운 단면이 나타나도록 깎은 연필의 교감이 격해지는 소리 - 라고 표현했지만, '교감' 처럼 야시꾸리하고 단어로 정의내리기 어려운 추상적인 느낌을 주진 않는다. 되려, 눈과 뇌에서의 순간적인 인상 덩어리들을 그대로 번역해서 내놓는 느낌. 호타루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게 느낄 때가 많다. 물론 호타루의 그림에는 늘 그랬듯, 그녀의 고심의 흔적이 가득 담겨 있겠지만 너무 무결한 무언가는 되려 감정이 담겨 있지 않은 듯 보인다. 아니면 순수한 감정 덩어리만이 담겨 있거나 -가 즉흥적인 재즈 드럼 연주가 최고조에 달하듯, 점점 빨라진다. 불규칙 속 역동성을 느낀다.

부실이 소리로 꽉 찬다. 공기가 소리에 잡아먹혔다. 나는 이를 '이제 정적을 깰 수 없다' 라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아니, 애초에 지금은 부실에 공기가 없다. 공기가 없기에, 소리를 낸다 해도 전달되지 않는다.

호타루는 다른 별에 있다. 공기 대신 소리만이 공간을 채우고, 부실, 나, 이젤, 종이, 그림만이 덩그러니 존재해서 멀리서 보면 미완성 게임의, 캐릭터가 출입 가능한 건물의 부분처럼 보이는 그런 불완전한 공간만이 존재하는 별. 호타루의 이름에 들어간 [星]은 아마 여기를 말하는 것 아닐까.

내가 소리를 낸다면, 공기를 다 먹고 부실을 장악하던 소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자기가 먹은 공기를 일순간에 토해내 부실을 가득 메울 것이다.

그리고는 사라질 것이다. 소름끼칠 정도로 강압적으로 호타루의 몸과 마음에 현실감각을 주입하고 뺑소니범처럼 영영 떠날 것이다. 뺑소니범은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죄책감을 못 이기고 피해자에게 다시 돌아온다고 장담하긴 어렵다. 소리도 마찬가지다. 소리가 그녀에게 돌아와 다시 부실을 장악하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공기를 의식하기 전까진 느끼지 못하듯, 소리 또한 계속 듣고 있으면 무뎌진다. 모든 아이들이 떠나고, 수면제 성분을 가득 머금은 듯한 온도와 냄새를 가진 햇빛.

의식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소리.

모든 것이 페이드아웃 되는 감각과 함께, 나도 내 별로 간다.

-

내 별에서는 무선 노트들이 빼곡한 책꽂이들이 중세 시대 성의 미로 정원같은 모습으로 얽혀 있다. 미로의 시작점은 항상 같다. [4세] 라고 쓰여 있는, 이젠 다 낡아서 표지의 가죽 조각이 떨어져가는, 그래서 꺼낼 때마다 가루가 날리는 빨간 노트가 늘 날 반긴다.

노트는 보통 하루에 한 권 정도가 다 채워지지만, 짧게는 몇 시간 만에 채워지는 경우도 있고, 길면 일주일이 넘게 한 권이 안 찰 때도 있다. 노트를 덮은 가죽은 대부분 갈색이지만, 아주 가끔, 다른 색의 표지가 생길 때가 있다. 갈색 노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몇몇 페이지들을 제외하고는 부스러져 사라져 남은 페이지들끼리 한 권으로 합쳐진다. 합쳐진 책들의 페이지들도 결국 부스러지고, 마지막에는 조금의 먼지만을 남긴 채 사라진다. 하지만 새 노트가 생기는 속도가 노트들이 얇아지고 합쳐져 사라지는 속도보다 빠르기에, 책장이 빌 일은 없다. 갈색 노트와는 다르게, 다른 색의 노트들은 페이지가 아주 느리게 사라지거나, 안 사라지는 경우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노트를 열면 책등에 쓰인 날짜와 시간에 관련된 내 메모, 짧은 수필, 그림 등등을 볼 수 있다. 갈색 노트의 내용들은 형식적이거나 간략하고, 그림도 연필로 된 스케치인 경우가 많다. 내용을 알아볼 순 있어도 그 이상의 기능을 하지는 못한다.

반면, 다른 색 노트들은 열자마자 압도될 정도로 정보량이 많다. 시험삼아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한 권을 꺼내 본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갈색 노트의 것과는 전혀 다름을 알 수 있다. 우선 글이 굉장히 빼곡하다. 읽고 있으면 몇 페이지를 추려내면 인터넷에 연재 가능한 수준의 단편소설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도 들 정도로 심상이 구체적이다. 그림도 애니메이션의 콘티, 수채화, 4컷 만화부터 팝업북의 형식까지 그림이 그려진 때의 모든 걸 전달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형태로 그려졌다.

아주 가끔, 노트의 색이 바뀔 때가 있다. 노트의 색이 바뀌면 노트 안의 내용물도 완전히 달라진다. 지금 보고 있는 그림을 이제 못 볼수도 있음을 자각하니 슬퍼진다.

노트를 덮는다. 지금은 이걸 보러 온 게 아니다. 미로의 끝을 향한다.

한쪽 벽면을 타고 미로를 따라가면 결국 끝에 다다른다. 책장 미로의 처음과 끝을 표시하기 위해, 그리고 이 노트가 어떤 색이 될지 노트가 완성되기 전까진 알 수 없게 하기 위해 빨간색 가죽에 안긴 노트가 있다.

펼쳐 본다. 종이가 아직 빳빳하다. 노트의 마지막 장에는 방금 본 호타루와 호타루를 상냥하게 감싸는 부실을 아예 먹어버린 공기가 두 페이지에 걸쳐 크게 그려져 있고, 구석에는 호타루의 별에 대한 간략한 스케치가 있다.

호타루는 그리는 동안 조금이라도 손이 떨렸다간 그림 전체의 조형을 망칠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얇고 깔끔하고 섬세한 선으로 그려져 있다. 호타루의 눈과 손의 선에 유톡 힘이 들어간 게 인상깊다. 문득 호타루를 처음 만났을 때의 노트엔 호타루가 어떤 모습으로 그려졌을지 궁금해진다.

노트둘을 손가락으로 통통통통 소리가 나게 쓸며 역행한다.

찾아냈다. 이왕 찾은 김에 호타루만 보고 가지 말고 처음부터 다 읽어보자.

은색 노트를 펼친다.

-

어쩔 수 없이 미술부를 맡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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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진지 빨고 추상적인 내용 쓰는 건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일 듯..
다음편부턴 뉴겜 5권 정도의 시끌벅적한 텐션으로 쓸 거 같아

읽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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