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내향감정' 이란 기능에 오해를 가지고 있는 프제들도있니?

MBTI 이론에서 Ni 주기능으로 묘사되는 인프제가 원래 MBTI 의 원론이라 할 수 있는 칼융의 이론에선 내향감정형에 더 가까웠다는 주장이 늘 인프제 커뮤니티에서 막힌다.

난 MBTI 이론의 과몰입자이고 MBTI 이론을 넘어서 칼융의 원전에도 관심이 매우 많은 사람임.

내가 심리학이나 철학의 전문가는 아니지만열정을 가지고 수년에 걸쳐 MBTI & 8기능 & 칼융이론을 접해온 결과, 더 나은 MBTI 이론과 인간심성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고쳐져야할 부분이 많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음.

당연히 이러한 생각이 내 주관적인 믿음이나 근거없는 사유에서 나온건 아님.

나 또한 내향형으로서 주관이 객관을 앞서가는 경향이 있지만 그럼에도 스스로의주장과 결론에는 항상 충분한 사유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서적, 인용구, 지식을 묶어서정리하는 편임.

수년간 열정에 이끌려 내가 정리한 정보와 자료들을 여러 커뮤니티에서 설명하고 논했던 것 같음.

특히 너희들이 대부분 한번쯤 방문해봤을 'https://www.personality-database.com/' (이하 PDB) 에서도 참 열정적으로 대화를 나눴던 것 같음.

이 사이트가 전문가를 위한 학술 사이트는 아니지만 MBTI 관련 웹사이트 중에선 세계에서 가장 회원수와 트래픽이 많은 사이트임.

더 나은 대화를 위해 본 사이트를 넘어 저 사이트의 공식 디스코드에도 참여해서 그곳의 오랜 회원들 및 관리자들과 대화를 나눴고, 이들의 대다수가 내 자료를 이해해주더라고.

그 결과, 저 사이트를 오래 이용해본 사용자들은 알겠지만 저 사이트에는 초기에는 유형란에 MBTI/에니어그램/소시오닉스 및 몇개의 구분만 있었는데 최근엔 '융 유형' 을 비롯한 여러가지 구분이 추가되었음.

그리고 '실제로 J 성향이 P 성향을 앞섰는지의 여부' 와 관계없이'융의 내향직관' 성향이 두드러지는 바람에 INTJ 혹은 INFJ 로 오인되었던 인물 및 캐릭터들도 INTP 혹은 INFP 로 재평가 되고 있는 광경들이 코멘트에서 더욱 늘어나고 있고.

이때쯤이었나? 국내에서 'MBTI 의 의미' 라는 책이 유행에 불기 시작했고 유튜브에는 '길 연구소' 라는 채널도 개설되어 기존의 MBTI 를 융의 이론으로 다시 해석한 관점들을 소개하는 의견들이 강세를 불기 시작하더라고.

중요한건 이러한 열정이 단순히 MBTI 의 오류를 지적하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의 심성을 더 깊게 파악하고 더 나은 인간적 가치를 발견하는 것' 을 위시한 융의 뜻이 요즘 유행하는 MBTI 의 덕을 보기 위해서는 오류부터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임.

그런데 이 길목에 종종 INFJ 유형과 관련해서 설명이 가로막히는 경험을 겪게 되더라고.

슬슬 생각을 반대로 해볼 필요가 있겠다고 느껴지더라고.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INFJ 유형인 여러 개인들의 의견을 다시 한 번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결과 이 유형들은 하나 같이

'내 직감이 좋다', '내 직감은 잘 맞는 편이다', '왠지 감으로 무언가를 알아낸다' 와 같은 의견을 강조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더라고.

그와 동시에 난 어떤 생각이 들었지만 이 생각이 나의 지나치게 편협하고 유치한 주관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는 판단 아래에 그저 유치한 기억으로 치부했지.

너네가 생각하기엔 어때?

너넨 너네 스스로의 유형이 좋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니? 만약 그렇다면 그 이유 중엔 내향직관이라는 키워드과 어느 정도 연관되어 있을까?

혹시 그렇다면 그게 내가 종종 설명을 함에 있어서 난관을 겪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거 자체가 오해인데 말이지.

왜냐하면 'INFJ 유형이 융의 원론을 기준으론 사실 내향감정형이었다' 라는 사실이 INFJ 유형의 직감이 나쁘거나 감이 좋다는건 착각이란 뜻과 같지가 않거든.

저기서 말하는 직감이나 감이 '현실의 구체적인 경험에서 타인에 대해 드는 인상을 무의식적으로 파악하는 것' 을 말한다면 INFJ 유형이 그러한 직감이 발달되어 있다는 건 전혀 이상한게 아닌데 말이지, 왜냐하면 융이 말했던 내향직관은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결이 달랐거든.

마치 외향사고형의 생각이 언제나 객관적 사실과 일치하는것도 아니고 외향감각형이 태어나서 본 모든 감각적 인상을 전부 기억하는게 아니듯이 말이야.

내가 이런 의심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내 설명에 완곡하게 반대하는 INFJ 유형들의 반론이 정작 내 설명을 제대로 이해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돼.

말하자면 개념의 사실성에 대한 고찰보다는 그 주장이 드러내는 어떠한 표면에만 더 집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리 생산적이지도 않은 얘기를 길게 해서 미안.

마지막으로 융의 내향감정/내향직관과 MBTI 의 Ni Fi 의 차이만 정말 간략하게 요약해보고 마무리 짓고자 함.

1.

융의 내향감정은 첫번째로 내향적 판단 기능이야.

내향적 판단기능의 의미는 '대상에 대한 합리적인 평가'를 내향적기준(관념, 공상, 아이디어, 이론, 개념)을 근거로 한다는 뜻이야.

물론 내향적 판단 유형도 외향적 근거를 가지고 와, 외향적 기준을 전부 배제하고나서는 이성적인 평가는 불가능할 테니깐,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생적 기질의 영향으로 외적인 데이터보다는 내적인 데이터에 더 영향을 받는게 내향적 합리적 유형이야.

당장 융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행했던 세미나에서 설명했던 감정 주기능 유형들만 들어보더라도 우리가 생각하는 '뿌삐' 보다는 '뿌제' 의 뉘앙스에 가깝다는걸 알 수있음.

"감정이란 합리적 기능입니다. 당신이 감정이 합리적 기능이란 점에 동의할 수 없거나, '당신의 감정을 깊게 느낀다면'(뿌삐)그것은 당신의 감정이 주기능이 아니란 뜻입니다."

"감정은 하나의 냉철한 추측입니다. 감정유형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자신의 이득을 고려할 줄 아는 그런 합리적인 사람들입니다."

"감정이 분화될수록(발달될수록) 그것은 객관적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지만 그렇지 않을수록 감정은 극도로 주관적이고 이해하기 힘든 것이 될 것입니다."

특히 마지막 문장이 감정적 가치를 기반으로 합리적인 행동과 언어를 구사하는 FJ 유형과, '감정을 사고보다는 선호하지만' 결국 자신의 미학적감수성(직관 또는 감각)에 이끌려 살아가는 FP 유형들의 차이를 아주 잘 나타내준다고 생각해.

그리고 다른 융학파 연구가의 내향감정형 설명은 INFP 보단 INFJ 의 인상을 더욱 잘 묘사해주더라고.

참고로 이 사람은 내향사고형(MBTI 기준 INTJ 유형)

"나는 처음에 내 내향감정형 동료가 어떻게 그런 상황을 견딜 수 있는지 의문스러웠다.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된 것은 그녀는 '견딘' 게 아니라 그 상황의 '이점' 과 '단점' 을 비추어보아 자신에게 더 나은 선택한 것이었다."

언뜻보면 사람 좋은 F 유형 같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손익을 확실히 고려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인내심 있다는점에서는 FP 보다는 FJ 가 더 엿보이는 부분 같아.

2. 융의 내향직관은 일단 직관이 감각기능과 함께 인식기능이었다는 이해에서 출발하면 편해.

MBTI나 8기능에선 기능을 내적으로 쓰면 초점이 내부로 수렴하고 외적으로 쓰면 외부로 발산한다는 뉘앙스로 기능을 설명하는데, 원랜그런거 없었다.

내향직관이란 결국 '주관적 인식' 을 바탕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사람들이야.

'주관적 인식을 바탕으로' 라는 말이 구체적으로는 너무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어서 대부분의 IN 유형이 '어 저거 난데?' 와 같은 생각이 들 수도 있겠네.

여기서 인식이란 우리가 가게에서 바코드 찍 찍는듯한 그런 느낌의 인식이 아니라,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의 '생각'과 같은 느낌에 가까워.

쉽게 말해 매우 자극적인 인상을 발하는 사물을 눈 앞에 두고도 1초만에 시선이 눈 앞의 사물이 아닌 그 사물의 자극으로 인해 머릿속에 떠오른 '상상, 생각, 아이디어, 감성, 감상' 에 푹 빠져 오로지 그 생각과 심상에만 집중하는INFP INTP 유형을 생각하면 돼.

물론 순수한 내향직관형은 현대에 와서는 거의 INFP 유형에 몰빵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왜냐하면 INTP 유형은 내향사고로 경도된 경우가 적지가 않거든.

3. 융의 이론과 MBTI 의 이론이 상이하다는 것이 'MBTI 의 내용'을 지적하는 것은 아님.

예를 들어 MBTI 에서는 INTP INFP INTJ INFJ 각 유형을 자신들의 관점을 기반으로 묘사하고 설명해주잖아.

그 설명 자체는 틀리지 않았어.

그런데 INFJ 의 어떠한 특징을 Ni+Fe 로 표현하고, '이것이 칼융의 내향직관형을 주기능으로 사용하고 외향감정을 부기능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라고 말할 때 틀렸다는 거야.

다시 말해 Ni+Fe 로 설명되는 구체적인 묘사의 내용 자체는 맞아, 그런데 그게 사실 '칼융의 내향직관' 의 의미와는 거리가 있어.

마찬가지로 우리가 흔히 INFP 하면 떠오르는 '깊은 감수성', '자신의 주관적인 감성에 깊게 매몰되는 기질' 과 같은 것은 칼융의 기준으론 내향직관 기질에 해당됨.

그런데 MBTI 에서는 내향직관과 내향감정을 다른 관점으로 해석하여 INFP 의 그러한 성향을 Fi+Ne 로 묘사한 것임.

4. 칼융의 이론에서 감정과 사고는 내향적이든 외향적이든 '합리적' 이다.

그리고 직관은 내향적이든 외향적이든 '미학적' 이고 '감성적' 이고 '비합리적' 이다.

MBTI 에서 묘사하는 Ni 기능은 융이 저술한 '내향적이고 합리적인 성향에 대한 요약' (내향사고와 내향감정을 통틀어서) 에 가까워.

비합리적이라는 것은 '순수하게 자신의 주관적인 인식에 근거하여 세상에 적응한다' 라는 것을 말해.

융이 사용한 용어 '미학' '감성' 은 칸트의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은 아니지만 그 내용을 기반으로 이해해도 무리가 없어.

다만 거기에 '유형' 이란 말을 덧붙였을 때 그 의미는 '그러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 이 돼.

언제나 주관과 객관을 다듬어서 이성적인 행동양식을 도출해내는 J 유형과는 대조되는 부분이지.

그래서 융과 융학파 사람들이 이러한 미학적이고 비합리적인 유형의 단점을 묘사할 때 그 내용은 MBTI P 유형 특유의 단점들과 일맥상통해.

인식의 방향이내향적일 땐 J 성향이 따르고,인식의 방향이외향적일 땐 P 성향이 따르는 MBTI 의 이론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지.

더 자세한 내용은 원론은 국내 부글북스에서 주로 발매한 융의 저서와 이부영 박사가 집필한 책들을 참고해봐.

그리고 그 책들의 내용을 심도있게 이해할 땐 서양의 형이상학, 인식론, 현상학을 참고하는게 매우 중요해.

정작 나는 현상학 부분에서 막혀서 임시방편으로 유튜브 영상과 핵심요약 서적들만참조한 후에체계적인 공부는 고대철학부터 시작 중이지만 말이야.

읽어준 모든 갤러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이걸로 글을 마칠게, 다들 점심시간 잘 보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