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마이너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sisterhood 번역 50-1

ㅇㅇ(121.141) 2020.03.14 16:54:24
조회 98 추천 0 댓글 1
														

01


하루 남았다.


거의 빈 기숙사 방을 둘러보면 내일이 졸업식이라는 게 자꾸만 떠오른다. 내일 우리는 학교를 떠나야한다. 내 마음의 고향이 된 곳이었다. 지난 며칠동안 온갖 입시 결과가 속속 들어왔다.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본교 건물 게시판에 걸려있었다. 매일같이 나는 게시판을 방문했다.


내 결과는 내일 나오니 그것 때문은 아니었다. 반의 애들 중에 누가 합격했는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이틀 전에 나오미의 합격을 확인했다. 나오미는 부담을 덜게 되겠지. 어제는 시즈네가 붙은 걸 확인했고, 그애의 결과는 놀랍지도 않았다.


내일이면 모든게 결정된다. 졸업식도 내일이라는 건 졸업장이 케이크 위의 제일 맛있는 체리나, 불합격의 슬픔을 지워낼 별 도움 안되는 위로가 되리라는 의미였다.


야마쿠에 처음 올 때 얼마나 걱정했었던지가 기억난다. 갇힌 것만 같았다. 하지만 거의 10개월동안 이곳에서 보낸 지금, 이곳은 너무 편안해서 떠나기가 두려웠다. 그래서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일주일쯤 전부터 작별인사를 할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했다. 스스로에게 정한 규칙은 누가 더 중요한 지 어떤 순서를 정하지 않는 것이었다.


어떻게 끝나긴 했지만 예상보다는 조금 길어졌다. 대충 훑어보는 동안 이곳에서 만나 이제는 삶의 일부가 된 사람들에게 생각이 흐른다.


유우코... 애독자이면서 하나코의 남자친구로써, 나는 아마 다른 학생들보다 그녀와 많이 알고 지냈으리라. 유우코 씨가 학비를 마련하려고 야마쿠와 상하이에서 일한다는 게 기억난다. 나의 부모님이 대학 생활동안이나, 만약 있을 지 모를 재수나 삼수정도까지는 기꺼이 학비를 내 주신다고 하셨던 걸 감사하게 만든다. 유우코 씨와 마지막으로 통화했을 때 그녀는 우리의 노력을 보고 자신도 시험에 열정을 쏟을 수 있었다고 했다. 유우코 씨가 자기 길을 찾고 10년쯤 뒤에 다시만날 지, 아니면 여전히 도서관에서 덤벙대는 그녀를 볼 수 잇을지는 잘 모르겠다. 붙길 바란다. 쉽게 긴장하기는 해도 유우코 시는 꽤 좋은 사람이고, 자신이 공부하려는 과목을 무척 좋아하니까 대학에 못간다는건 너무 잔인한 일이었다.


양호선생님.... 입학시험 후에 나는 달리기를 다시 시작해 그와의 약속을 지켰다. 그도 내게 훈련과 식단을 짜서 자기 말을 지켰다. 예상보다 훨씬 가혹했다. 말로는 아니라고 하는데, 내 심장 문제를 늦게 알려준 데 대한 작은 복수라고 생각한다. 가끔 바보같은 농담을 하긴 해도 양호선생님은 1년동안 무척 믿을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가 나의 건강을 고민해 준 데 감사한다.


무토 선생님.... 릴리를 만났을 때, 그녀가 우리 담임이 꽤 독특하지만 결국 좋아하게 될거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릴리가 옳았다. 무토 선생님이 내 멘토가 되리라는 첫인상은 전혀 없었지만 결국 그렇게 됐고, 장래 과학 교사가 되려는 내 꿈도 그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강의는 다른 애들이 난해하다고 하니 가르치는 분야에 있어서만은 좀 더 기준을 높이 세워야겠지만, 담임으로써 평가에 있어서는 내 멘토를 본받으려 한다. 언젠가 교수 학위를 따면 그에게 보여주고싶다.


노부유키, 에이지, 와타루, 다카히로, 오카히토, 나오즈미.... 과학부 멤버들은 이들을 포함해 나와 켄지까지 총 8명이었다. 에이지, 나오즈마, 오카히토, 타카히로는 처음에 과학 성적이 낮아서 부활동에 들어왔다. 내게 살짝 알려줬다. 하지만 그들은 활동을 즐겼기에 부활동을 게속했다. 무토 선생님과 릴리에게 교직의 꿈을 얻었을 진 몰라도 숙제를 도와주던 부활동 멤버들은 내가 가르치는 일을 즐기게 되리라는 걸 알려줬다. 클럽 회장이었던 것도 이런데 도움이 됐다. 나는 항상 리더보다는 따라가는 쪽이었고, 여전히 그 사실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지금은 필요하다면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내가 그들을 도와준 만큼이나 나를 도왔다. 며칠 전 나는 몇 안되는 2학년이고 가장 재능있는 노부유키에게 회장자리를 넘겼다. 그의 지도 아래 클럽이 계속 잘 운영되기를 바란다. 어쩌면 그 아이가 무토 선생님의 다음 애제자가 될지도 모르겠다.


켄지.... 켄지는 여전히 내게 와일드카드였다. 중력의 법칙같은 걸 토론하던 중에도 녀석은 느닷없이 음모론을 섞어넣기도 했다. 최신 항 페미니스트 운동의 경향을 선동하러 나한테 다가온 적도 있었고, 단순히 수업 질문을 하려는 적도 있었다. 켄지도 과학부 회원이니 현실에 돌아올 수 있으리란 희망을 가졌던 적도 있지만 켄지는 매번 기숙사 천장을 확인해 보면서도 대중 앞에서는 완전히 정상적일 수도 있는 거 같았다. 결국 페미니스트 전쟁 어쩌고 하는 건 죄다 무시하고 일리 있는 얘기에만 집중하는 걸로 대처하게 됐다.


시즈네와 미샤..... 이 두 명의 첫인상은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처음 학교에 왔을 때는 마음의 정리가 필요했고, 릴리가 느긋하게 나를 달래는 건 나를 학생회로 데려가려는 공격적인 영입보다는 훨씬 나를 편안하게 해줬다. 두 사촌이 정확히 다른 방법으로 같은 목표를 달성하려고 한다는 걸 깨닫는 데는 좀 더 시간이 걸렸다. 처음엔 시즈네와 성격이 안맞아서 시간이 좀 걸렸지만 그래도 사이는 점차 좋아졌고, 하나코와 사귈 무렵에 학생회 듀오는 내 친구가 돼 있었다.


시즈네와 미샤는 결코 떨어지지 않으리라 생각했건만 내일이 지나면 두 명은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열심히 노력하고 보충을 받아서, 미샤는 결국 추천서를 딸 만큼 성적을 확보했다. 올해 말에 미국의 어느 대학으로 진학한다고 했다. 반면 시즈네는 일류 국립대에서 경영학 학위를 따며 보내리라. 졸업후의 여정이 달라지는 데 미샤는 조금 고전하고 있었다. 두 명이 계속 연락하기를 바란다. 그동안 얼마나 친밀했는지 생각해 보면 이대로 끝나는 건 너무 안쓰럽다.


에미.... 야마쿠에서 내 상태가 좋았던 데는 에미의 노력이 컸다. 매일 아침 달리기를 하려는 동기는 오락가락했지만 에미는 매일 아침 트랙에 있었고, 그래서 나 또한 계속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달리기를 빼먹었던 몇 번 동안엔 하루 종일 죄책감을 느끼게 했는데, 에미는 이걸 칭찬으로 받아들이겠지.


에미가 말장난을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됐고, 그녀와의 농담따먹기도 즐기게 됐지만 불행히도, 매일같이 만나는 데 비해 그녀에 대해 그다지 많이 알지는 못했다. 우리 관계는 즐거웠고, 절반쯤은 농담이었고, 달리기가 끝난 시점부터 양호실에 가는 사이를 채우기엔 완벽했지만 최근들어 그 모든 게 조금 피상적이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모의고사 준비를 시작할 무렵 하나코랑 릴리, 나와 함께 공부하자고 에미를 꼬드겨 보기도 했었는데 에미는 정중하게 거절했었다. 나랑만 친구인 걸로 충분했던 거겠지. 적어도 그녀와의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에미도 같은 생각이면 좋겠다. 양호선생님 얘기로, 에미는 트레이너가 될 생각으로 가까운 도시의 전문대에 지원했다고 한다. 가끔 좀 무서운 건 있지만 에미가 훌륭한 사람이 되리라 생각한다. 대학에 육상부도 있을테니 잘 하겠지.


릴리..... 야마쿠에 온 뒤로, 릴리가 내 삶에 끼친 영향은 지대했다. 처음 온 순간부터 릴리는 나를 돌봐줬다. 릴리가 하나코를 도와주고 우리를 맺어주려 하지 않았다면 하나코와의 인연도 없었으리라. 한동안 나는 릴리를 정말 존경했다. 릴리는 항상 자신감에 차 있었고, 침착하며,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는 거 같았다. 어떤 사건 이후로 릴리도 다른 사람들처럼 연약한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됐지만, 우상화는 끝났을지언정 나는 릴리를 필요할 때 의지할 수 있는 누나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릴리는 또 몇 가지 중요한 사건에 직접 엮여있었다. 여자친구를 사귀고, 스코틀랜드에서 방학을 보내고, 무엇보다 과학 교사가 되려는 꿈을 가지게 해 줬다. 우리 모두가 졸업한 뒤에 우리들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전부 잘 되면 릴리 하나코 그리고 나까지 모두 같은 대학에 다니겠지만, 학부가 다르니 앞으로 점심을 같이 먹긴 힘들것이다. 그래도 원한다면 저녁에 릴리네 집에서 모일 수는 있으리라. 모든 게 잘되면 우리의 관계는 이어지리라. 모든 게 잘되면..... 그건....


하나코.....


돌이켜보면 정말 빠르게 진행된 관게였다. 첫만남의 시간에 나는 그녀를 너무나 불편하게 만들었고, 결국 그녀는 당황해서 도망쳤다. 6주가 지나서 우리는 공원에서 고뇌에 찬 고백을 하며 관계를 시작했다. 출발은 힘겨웠지만 하나코와 함께하는 동안은 정말 행복했고, 적어도 내가 느끼기로는 하나코도 나와 함께하며 행복해했다. 하나코는 자신의 껍질을 깨고 나를 바라보다가 서서히 더 많은 것들을 보기 시작했다. 우리 관계의 첫 몇달 동안 멋진 기억은 얼마든지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하나코의 미소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코를 더 많이 알게됐지만 그녀의 미소는 언제나 매력적이었다. 상냥하고 어린아이같은 미소는 몇 번을 보더라도 내 하루를 밝고 기분좋게 만들어줬다.


02


그 미소를 다시 볼 수 있기만을 바란다.


하나코가 단순히 공부를 이유로 극단적으로 틀어박혔다는 것을 나는 거의 믿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시험을 위해 나는 일부러 그 생각을 피해왔다. 정말 중요한 시기였다. 결과와 졸업을 기다리며 삶은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지난 몇 달 쉬지않고 공부하던 학생들은 밤에 충분히 휴식을 취했고, 서서히 시험기간 전의 활동을 재개했다. 나츠메는 다음 호를 열망하며 신문부의 나오미 곁으로 돌아갔다. 나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고, 후배에게 부장 자리를 넘기려고 과학부에 돌아갔다. 남은 여가시간은 시즈네가 새 학생회에서 욕지거리를 할 때 일을 도우며 보냈다. 언제나 그렇지만, 예외는 있었다.


하나코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시험이 끝나고 하루에 두 번씩 여자시숙사에 들렀다. 하나코의 방문을 두드리며 필요한 게 있는지 물어보면 거의 '괜찮아. 그래도 고마워.'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것도, 문틈으로. 그녀는 좀처럼 문을 열지 않았고, 가끔씩 열릴 때면 낮에도 항상 잠옷을 입고있었다.


최근에 다카와 씨에게 그 일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녀는 강요하지 말고 지금처럼 계속하라고만 해줬다. 몇 번 이야기를 나눠봤고, 기숙사 관리인이 주시중이라는 얘기도 전해줬다.


전에 방문했을 때, 다카와 씨는 졸업식이 다가올수록 하나코의 상태가 더 안좋아지리라 예상했었다. 이번에 그녀는 그날 모든 게 끝날거라고 했다.


어떻게 끝나는지는 얘기하지 않고서.


하루 남았다.


방에는 더이상 일거리가 없었다. 짐은 거의 다 싸놨고, 책도 전부 반납했다.


하나코 보러 가야지. 얼마나 짐을 싸뒀는지 확인해야겠다.


-----------------


"하나코?"


정중히 노크하며 무슨 반응이 있는지 문에 귀를 가져다댄다. 하지만 아무 반응도 없었다. 두 가지 의미였다. 하나코가 안에있는데 반응 보이기 싫거나, 아니면 방에 없거나. 근처 화장실 문이 잠겨있었지만 여기서 사람을 기다렸다간 기숙사 관리인에게 곤욕을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 다시 한 번 하나코의 이름을 부른 다음 돌아가자. 짐 꾸리는 걸 도와줄 생각이었는데 하나코 방에는 물건이 거의 없으니 오래 전에 끝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히사오?"


귀에 익은 목소리에 돌아서자 릴리가 서있었다.


"아, 릴리. 혹시 하나코 어디있는지 알아?"

"자기 방에 없는거면 글쎄. 아래층 휴게실에서 친구를 만나다 오는 길이라 하나코가 떠났어도 뭘 듣지는 못했을거야."

"어, 그러면 나중에 다시오는게 낫겠다. 짐 꾸리는 거 도와줄 필요가 없으면 말이야."


릴리는 슬프게 고개를 저었다.


"벌써 거의 직접 했어. 가족들이 나머지를 도와줄거야. 하지만...."


그녀는 자기 방 문을 열고 안으로 손짓했다.


"....혹시 조금 더 기다려 볼래? 마지막으로 차 한 잔 하면서."

"괜찮네."


우리 둘이서만 한 방에서 티파티를 한다면 부정한 느낌이겠지만 릴리의 제안은 단순히 예의바른 부탁이란 느낌이 아니었다. 나는 가타부타 않고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 화장대 위의 차 세트를 제외하면 방은 거의 비어있었다. 문을 닫고 테이블에 앉는다. 릴리는 컵 두 개를 채우고 내게 하나를 건넸다. 조용히 마시는데, 둘 다 별로 이야기가 없다. 결국 다 마시고 내려놓을 즈음 그녀는 애처로운 표정이었다.


"......하나코 없이 둘이서만 이러니까 기분이 별로다."

"하나코가 올 때 까지 기다릴 수도 있겠지만.... 초대한다고 받아줬을지는 모르겠어. 하나코는 요즘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은 거 같아. 방에 없는 건 좀 놀랐어. 그랬더라면 말이지만. 아니면 그냥 노크한 걸 무시한건지도 모르고."

"요즘 다카와 씨를 가끔 만나고 있다며?"

"얼마 전에 얘기했어. 하나코에 대해 좀 분명히 얘기해 달라고 부탁드렸는데 평소처럼 얼버무렸어. 어쨌든 요점은, 센터시험 치르고 하나코가 좀 기운을 차리다가 다시 가라안기 시작했다는 거야. 들은 건 그거 뿐이야. 다카와 씨는 자기가 하나코랑 함께있는 시간을 최대한 이용하고 있다고 하지만 글쎄....."

"다카와 씨가 진지하지 않은 거 같아? 하나코를 위해 할 수 잇는 건 뭐든 하겠다고 약속하셨잖아."

"그런 게 아니야. 분명 노력하시겠지. 그냥...... 테라피스트도 이제는 도움이 되지 않는 느낌이야. 상처에 반창고만 바르는 거처럼. 그리고, 어쩌면 또 모르지. 내일이 지나면 하나코랑은 다시 못만나는걸."

"히사오...."

"내일이 되면 더 알게 될거야 릴리. 하지만..."


우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둘 다 같은 생각을 하고있었다. 릴리나 나와 달리 하나코는 시험을 두 번 쳤다. 하나코가 정말로 아는 사람 없는 동네의 2지망 대학에 진학했을 지 걱정됐다. 단순히 연습삼아 치렀던 건지도 모른다. 왜냐면 2지망 대학의 시험은 카스호쿠보다 전이었기 때문이다. 적당한 모의고사가 됐으리라. 그녀의 2지망 결과는 3일 전에 돌아왔는데, 하나코는 합격하지 못했다. 무척 불안했고, 릴리의 표정을 보면 그녀도 같은 생각이었다.


"히사오, 하나코가 두 번째 시험에 전력을 다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잇어."

"맞아. 하나코가 붙고 내가 떨어졌을지도 모르지. 내일이 되면 알 수 있을거야."

"지난번에 내가 물어봤을 때, 아마 낙관적이라고 했지?"


맞다. 내 시험은 꽤 어려웠다. 무척. 하지만 내 공부의 성과는 있었고, 시험의 내용은 전부 아는 것들이었다.


"그래. 떨어졌으면 나도 엄청 실망할거야."

"하나코한테도 시험 얘기 꺼내봤는데.... 하나코는 그냥 모르겠다고만 했어."


하나코는 자기 시험을 아마 낙관적이라고 평가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정말 모르는 건지 그냥 우리 걱정하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네."


하나코가 센서시험에 학격했을 때는 안심이 됐다. 하나코도 쉽게 입학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지망의 시험에서 합격점을 얻지 못하자, 우리와 하나코가 함께 대학에 갈 수 없을 가능성이 다시 현실로 다가왔다.


"우리만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닌 거 같아. 저녁 일찍 나오미랑 만났는데, 하나코가 어디로 갈 지 아냐고 물었어..."

"시험 붙었는지에 달린 일이지."

"그럴까? 하지만 결과가 어떻게 되건 묵을 곳은 필요하겠지?"

".....그렇지."


릴리는 머리를 만지작댔다.


"나오미가.....다른 대책이 없으면 부모님한테 하나코를 잠시 머물게 해 줄 수 있는지 물어봐주갰대."

"도와주겠다는 건 고마운데 좋은 생각인지는 모르겠어. 나오미 부모님은 하나코를 만난 적 없잖아. 그분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누가 알겠어?"

"나도....같은 생각이야."

"릴리?"

"응?"


잠깐 머뭇거린다. 오랫동안 우리는 놀라울 정도로 이 주제를 피해왔지만, 지금은 얘기할 때였다.


"그....음..... 크리스마스때 너희 부모님이 하나코한테 제안했던 거...."


릴리가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부모님이 입양 서류를 내밀고, 우리가 충격에서 벗어났을 때, 나는 안도했다. 하나코가 졸업 후에 갈 곳이 없을 걸 걱정했었는데 좋은 해결책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하나코는 그 주제를 다시 꺼내지 않았고, 이제 이 모든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알 수 없었다. 릴리도 이 이야기를 편하게 느끼지는 않는다. 망설임 끝에 릴리가 이야기를 이어갔다.


"센터 시험 끝나고 며칠 뒤에 하나코 방에 가서 이야기 해 봤어. 나는....하나코가 어떻게 생각하는 지 물어봤었어.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나코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어. 침묵이 견디기 힘들게 돼서 그때..... 나는 떠났어. 내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던 걸까? 나는...."


뭔가 얘기하려는 걸까 했지만 릴리는 슬프게 고개를 저으며 결국 입을 다물었다. 릴리가 처음부터 모든 게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건 괴롭겠지.


"그걸로 마지막이었어?"


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후로 하나코를 만나기 어색해졌어. 거의 내가 고백했는 데 하나코가 거절할 용기가 없는 거처럼. 하나코한테 내가 가장 필요한 시기에 거리를....둬 버렸어."


릴리는 침울해서 보기에 고통스러웠다. 결국 하나코와 얘기하지 못한 건 나만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나는....하나코랑 같이 부모님 댁에 가서 나랑 같이 이사하는 게 지금도 실현 가능한 일인지 잘 모르겟어. 정말 원하지만, 하나코는 어떻지? 도저히....물어볼 용기가 없어."

"괜찮아. 다른 선택지가 있어. 부모님한테 이번에 얘기해 보려고. 음.... 하나코를 받아주실 수 있냐고. 갑자기 가계도에 한 명 느는 건 꽤 중요한 문제고, 하나코랑 내가 그렇게 자주 집에 찾아갔던 건 아니니까 좀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려고는 하는데, 그래도 두 분 다 하나코를 좋아하시니까 거절하진 않을거야."


물론, 우리 집안이 사토네 일가처럼 백만장자는 아니니 차차 해나가야겠지만 부모님이 아들의 연인을 찬 바닥에 내팽개치지는 ㅇ낳으리라.


"그건.....다행이야. 학교에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한 지원이 있는지 확인해 보려고 했었는데 당장은 필요 없는거같네."

"어떤 식으로건 해결될거야, 릴리. 야마쿠엔 적절한 대처법이 있을거라고."

"잘 모르겠어 히사오. 하지만 그래도 여기를......"

"음?"


릴리가 계속하길 기다리는데 릴리는 집중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일인지 확인하기 전에 그녀는 일어나 문으로 향한다. 손잡이를 더듬어 잡고 가볍게 문을 여니...


03


"아!"


릴리가 비켜서기도 전에 목소리만으로 알아본다.


"하나코...""


릴리는 거의 속삭이다시피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여자친구를 보니 가슴이 둑근거린다. 하나코는 여느때처럼 잠옷 차림이었다. 언제나 좀 크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어느때보다 그랬다. 아니. 하나코는 내 기억보다 훨씬 야위었다. 눈 밑엔 다크서클이 짙다. 며칠동안 제대로 먹고 잤던 건가? 하나코는 거의 유령같았다. 나와 하나코의 눈이 마주치고, 그녀의 눈가는 눈물을 참듯 촉촉했다. 하나코의 꽉 쥔 두 손에서는 가벼운 분노와 슬픔이 엿보였다. 하나코의 숨소리는 지금의 감정을 드러냈다. 릴리가 부드러버게 하나코의 이름을 다시 부르지만 이번엔 전보다 자신없었다.


"하나코,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문 밖에 서 잇었을까? 우리 대화를 얼마나 들었던 걸까?


릴리가 이름을 반복해 부르자 하나코의 눈과 턱이 줄어들었다. 그녀는 여전히 떨면서 잠시 뭔가 말하거나 울 것 같았다. 하지만 곧 숨을 크게 들이쉬어 릴리를 한 걸음 물러나게 하더니 고개를 몇 번이고 저으며 복도를 달려갔다. 다음 순간, 하나코 방의 문이 세게 닫혔다. 릴리는 뺨을 맞기라도 한 듯 그 소리에 움찔거렸다.


잠시 시간이 멈춘 듯 보였다.


릴리는 몽유병 환자처럼 하나코의 방으로 움직이지만 그녀가 손잡이를 잡기 전에 나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릴리. 지금 그러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야."


릴리는 손을 다시 거두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아. 그냥..."

"네 심정은 나도 알아. 나도 같은 기분이야. 아침이 되면 제일 먼저 하나코랑 얘기하자, 알겠지?"


릴리는 다시 시무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비틀거리며 릴리는 방으로 돌아갔다. 문까지는 따라갔지만 들어가지는 않는 게 좋겠지.


"이제 가볼게. 내일 다시 얘기하자."

"히사오?"

"응?"

"무슨 짓을 해도 상황이 점점 안좋아져. 나는 그냥..."

"알고 있어, 릴리. 하나코도 알거야. 마음 속 깊이에선."


------------


파란이 다가온다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주위 눈치 안 보고(어쩌면 눈치 없이) MZ식 '직설 화법' 날릴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4/29 - -
1551 릴리랑 린이랑 사이 안좋음? [2] ㄴㄴ(182.161) 20.03.28 79 0
1550 sisterhood 번역 51-3 [1] ㅇㅇ(223.62) 20.03.27 79 0
1548 짤떨어짐 [2] 123123(14.40) 20.03.27 42 0
1547 파딱쉑 왜 또 글 지우냐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3.27 47 0
1546 마음이 공허해 [5] ㅇㅇ(223.62) 20.03.26 57 0
1545 sisterhood 번역 51-2 [3] ㅇㅇ(223.62) 20.03.26 69 1
1543 상당히 어린 나이에 장애소녀 접했고 [7] 남극대제국_황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3.26 139 0
1541 번역이 왜캐 오래걸려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3.24 35 0
1540 이 시대의 조커.jpg ㅇㅇ(117.111) 20.03.24 102 0
1539 에미쟝과 함께하는 달리기 70일차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3.24 25 0
1537 조울증 있는 여자도 장애소녀 맞지? [3] ㅇㅇ(222.118) 20.03.23 79 0
1536 브리튼 vs 스콧 [1] 123123(14.40) 20.03.23 30 0
1531 sisterhood 번역 51-1 [1] ㅇㅇ(121.141) 20.03.19 59 0
1530 바이러스 예방 릴리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3.19 43 0
1529 학생회에서 알려드립니다 [2] 123123(14.40) 20.03.17 59 0
1528 하나어린이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3.17 53 0
1527 sisterhood 번역 50-3 [1] ㅇㅇ(121.141) 20.03.16 51 1
1526 정말로 내 글만 남게 되면 어쩌지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3.16 57 2
1523 sisterhood 번역 50-2 ㅇㅇ(121.141) 20.03.15 54 0
sisterhood 번역 50-1 [1] ㅇㅇ(121.141) 20.03.14 98 0
1521 에미쟝과 함께하는 달리기 64일차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3.14 28 0
1520 수영복 [2] 123123(14.40) 20.03.12 70 0
1519 미친거같아 글쓰는게 너무 재밋어 [4] ㅇㅇ(121.141) 20.03.12 74 0
1518 시스후드 번역이 다소 뜸할 수 있음 ㅇㅇ(121.141) 20.03.11 31 0
1516 sisterhood 번역 49 [1] ㅇㅇ(121.141) 20.03.10 198 0
1513 sisterhood 번역 48-2 [1] ㅇㅇ(121.141) 20.03.09 92 0
1512 에미쟝과 함께하는 달리기 61일차 ㅇㅇ(121.141) 20.03.09 33 0
1511 sisterhood 번역 48-1 [1] ㅇㅇ(121.141) 20.03.08 73 0
1510 das-hanako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3.08 61 0
1509 sisterhood 번역 47-3 [1] ㅇㅇ(121.141) 20.03.07 66 0
1508 sisterhood 번역 47-2 [1] ㅇㅇ(121.141) 20.03.06 91 0
1507 레딧발 몇장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3.06 61 0
1506 에미쟝과 함께하는 달리기 60일차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3.06 39 0
1503 단체사진 [2] 123123(14.40) 20.03.05 53 1
1502 sisterhood 번역 47 [2] ㅇㅇ(121.141) 20.03.05 124 0
1501 아 씨벌 번역 다날아감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3.05 38 0
1500 짥긁 ㅇㅇ(121.141) 20.03.05 32 1
1498 sisterhood 번역 46-2 [5] ㅇㅇ(121.141) 20.03.04 125 0
1496 sisterhood 번역 46-1 [2] ㅇㅇ(121.141) 20.03.03 88 0
1491 사이언티스트 하나코 [2] 123123(14.40) 20.03.01 79 3
1490 에미쟝과 함께하는 달리기 56일차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2.29 41 0
1487 한동안 시스후드 번역이 뜸할 예정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2.27 39 0
1484 sisterhood 번역 45-2 [1] ㅇㅇ(121.141) 20.02.26 48 0
1483 sisterhood 번역 45-1 [1] ㅇㅇ(121.141) 20.02.25 99 0
1481 제가 하이랜더 릴리도 좋아하지만서도 [1] 123123(14.40) 20.02.25 52 1
1479 sisterhood 번역 44-2 [1] ㅇㅇ(121.141) 20.02.24 50 0
1478 sisterhood 번역 44 [1] ㅇㅇ(121.141) 20.02.24 123 1
1476 맛감별사 테즈카 [1] 123123(14.40) 20.02.23 56 0
1474 러시아 릿까 cg [4]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2.22 61 0
1473 쌍팔년도 감성 [3] 123123(14.40) 20.02.22 75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