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항쟁이 끝나고 6.29선언이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세상을 바꾸자고 했던 많은 사람들이, 선거를 통해서 점진적으로 세상을 바꾸자고 하는 사람들과 밀어붙인 김에 한꺼번에 밀어붙여 버리자, 말하자면 봉기를 통해서 정권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자는 사람들, 이 두 개의 노선으로 갈라져 버렸습니다. 그 전까지는 ‘무조건 싸우자.’ 이것만 알았는데, 그때가 되니까 차이가 있었습니다. 한참 동안 공부를 한 뒤에야 그게 무슨 차이인지 알게 됐습니다.
저는 거기에 대해서 별 생각은 없었고, 노동자들이 그때까지만 해도 구박을 받는 쪽이었으니까 노동자를 위해서 국회로 가자, 계기는 이렇습니다. 다른 사람이 구속돼 있을 때 제가 변호사이기 때문에 면회를 갈 수 있는 특권이 있었어요. 그게 그렇게 좋았습니다. 그런데 1987년 11월에 저의 변호사 자격이 정지돼 버렸습니다. 정지되고 구속돼 있는데, 국회의원 한 사람이 면회를 왔습니다. 변호사도 아닌데 면회를 왔어요. 그 당시는 구속돼 있는 사람 면회를 갈 수 있다는 것이 대단히 유용한 투쟁의 무기였습니다. 그래서 국회의원 한번 해 보자.
그때 마침 검찰에서 저를 구속시키는 영장을 세 번씩이나 청구했다가 기각돼 버린 것이 밑천이 됐습니다. 그게 큰 사건이 돼서 당시 신문 사회면에 크게 났습니다. 그때 제 생각은 ‘이만큼 났으면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겠지. 국회의원 하면 안되겠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국회의원 나가 보니까 별로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세상이라는 것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부닥쳐 보면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어쨌든 그렇게 착각하고 ‘가자 국회로.’
정치로 고치자, 혁명과 투쟁의 노선에 대한 회의 이런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뒤에 국회의원이 되고 운동 진영은 분열했고, 노동자 주도노선이 세를 얻고, 배타적 자주노선 또한 세를 얻고, 그 사이에 노선 갈등이 많고 혼선이 있는 가운데 정치에 나간 사람은 변방의 인사가 되었습니다. 하여튼 주력부대도 아니고 전위는 물론 아니고 뒤에서 거들어 주는 보조적 부대, 이런 것으로 분류돼서 국회의원 노무현이 설 땅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좀 밀렸죠. 물론 아무도 밀어낸 사람은 없습니다만, 제가 동경하고 있는 것은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것이었는데 별로 쳐주질 않는 바람에 자연히 밀렸고, 3당합당이라는 새로운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지역분열의 구도라는 것이 구조화됐습니다.
소위 사회변혁이라고 하는 우리들의 진로에 커다란 장애가 발생한 것입니다. 1987년 대통령 선거때 전국의 지역이 네 개로 갈렸다가 다시 1990년 3당합당을 통해서 전국의 지역이 세 개는 한 당으로 합치고 호남은 따돌렸죠. 그것이 1990년 3당합당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지역구도 만들어졌죠.
1980년대 초반에 「외채,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금융자산의 40%를 10대 재벌이 다 가져다 쓴다. 5대 재벌이 시장을 100% 독점하고 있다. 중소기업 다 죽는다.’ 등등의 얘기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3저 호황을 거치고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외채와 독점의 문제가 점차 이슈에서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외채와 독점문제 얘기를 하고 농민가를 부르고 노동자 투쟁가를 부르던 사람들로서는 이것이 혼란스러웠습니다. 우리가 그때 사회적 모순이라고 부닥쳤던 문제는 이제 다 지난 일이 돼 버리고, 새로운 문제에 부닥친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또 새로운 해답을 모색해야 되는데, 그때 새로 부닥친 문제가 세계화,정보화 이런 것이죠, 그리고 경제 질서로 이미 관치경제의 시대를 지나서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와서는 금융을 매개로 국가경제를 간접적으로 관리하던 시대로 변해버렸고, 개방은 돼 버렸고, OECD에 가입했고, 이런 변화 과정에서 그야말로 1980년대 초반에 팸플릿 몇 개, 책 몇 권에 의지해 왔던 단순한 우리들의 논리가 이제 현실과 맞지 않게 되는 상황에서 굉장히 많은 혼란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민주주의 과제, 그리고 경제,사회의 과제도 변화했습니다. 민주주의의 과제는 직선 헌법을 쟁취하는 것, 이 한마디였습니다. ‘독재 끝내자, 대통령 우리 손으로 직접 뽑자.’ 이것 한마디로 압축돼 있었죠. 그 이후의 민주주의 과제라는 것은 이제 ‘특권, 그들만이 누리는 권리, 그들만이 보는 유리벽을 걷어내자.’ 이런 것이였죠. 가장 전형적인 것이 국정원이 나를 들여다보는 것 같고, 또 정권에게 고분고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국세청이 언제든지 뒷조사를 할 수도 있고, 검사는 또 항상 특별한 권력을 가지고 있게 되고 하는 그런 문제들, 그리고 정경유착 이런 등등이 우리 사회의 주제로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인식과 전략도 변화해야 되고 그렇게 하면서 제가 하는 일은 주로 개혁, 그리고 통합, 통합의 핵심적 내용은 지역구도를 어떻게든 극복하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그냥 대통령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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