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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베트남 공산당의 창당

라틴아메리카사회주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03.26 23: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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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러시아에서 시작된 볼셰비키의 사회주의 혁명은 전 세계를 강타했다. 10월 혁명을 통해 세계 최초로 사회주의 국가를 탄생시킨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은 1919년부터 이른바 제3인터내셔널(The Third International)을 창설하여, 제국주의로부터 억압받는 국가들에게 사회주의를 전파하고자 했다. 이에 따라 일제 치하 조선과 군벌전쟁을 겪던 중국 그리고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던 베트남을 포함하여, 무수히 많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 등에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독립운동 세력들에게 큰 영향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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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베트남 공산당 창당 상상화, 호치민과 혁명 동지들은 영국령 홍콩에서 베트남 공산당을 창당했다.)


이 중에서 베트남의 근현대사는 매우 혁명적이다. 이들은 19세기부터 대략 100년간의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일본의 지배를 받았으며, 베트남의 독립운동 세력은 일본에 맞서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가 다시 식민지 지배를 하러 들어오자, 프랑스에 맞서 8년간 전쟁을 치렀으며,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를 통해 100년간의 프랑스 식민지 통치를 종결시켰다. 프랑스가 물러난 이후 미국이 들어오자, 이들의 침략에 맞서 저항했고, 1975년에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이룩했다. 이것이 바로 현재 베트남 공산당이 가진 자랑스러운 역사다. 따라서 오늘은 베트남 공산당의 창당과정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19세기부터 프랑스의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던 베트남에서도 적잖은 독립운동가들이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였다. 현재 베트남에서 국부로 평가받고 있는 호치민(Ho Chi Minh)은 1919년 프랑스 파리에서 서구 제국주의의 위선에 크게 실망했었다. 그는 응우옌아이꾸옥(Nguyen Ai Quoc)이라는 가명으로 파리의 베르사유에 찾아가 ‘안남 민족의 요구(Peuple Annamite)’를 미국의 대통령인 우드로 윌슨(Woodro Wilson)에게 전달하고자 했으나, 강대국들에 의해 철저하게 외면 받았다. 이에 실망한 호치민은 레닌과 소비에트의 노선을 따르고자 했다. 1920년 프랑스 파리에 있던 호치민은 제2차 코민테른 대회에서 러시아의 레닌이 발표한 ‘민족과 식민지 문제에 대한 태제’를 보고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했으며, 1923년에는 모스크바에 가서 유학을 하며 코민테른(Commintern) 극동국에서 활동했다. 그는 레닌을 만나고 싶어 했지만, 아쉽게도 생전의 레닌을 만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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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푸, 모스크바 유학파인 그는 1930년 베트남 공산당 창당 이후 호치민과 대립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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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홍퐁, 쩐푸와 마찬가지로 모스크바에서 유학했으며, 황포군관학교도 다녔었다. 베트남 공산당 초대 총서기를 지냈으며, 1938년 프랑스 당국에 체포되어 1942년에 생을 마감했다.)


그러던 1924년 11월 중국 광저우로 가서 활동했으며, 1925년에 새로운 혁명 조직인 ‘베트남 혁명 청년회’를 결성했다. 여기서 호치민은 교사로도 활동했으며, 잡지 ‘탄니엔(청년)’을 발행하기도 했다. 여기서 활동했던 이들 중에는 레홍퐁(Le Hong Phong)이나 호뚱머우(Ho Tung Mau)도 있었다. 이 단체의 활동은 베트남 독립운동사에 있어서 새로운 세대를 의미했다. 당시 베트남 독립운동의 민족주의 노선은 과거 근왕운동을 벌이기도 했던 판보이쩌우(반패주, Phan Boi Chau)와 판쭈찐(Phan Chu Trinh)으로 대표되었다. 그러나 호치민이 주도한 베트남 혁명 청년회와 1927년에 탄생한 베트남국민당(VNQDD, Vietnam Nationalist Party)의 등장으로 독립운동의 주도세력이 교체됐다.


‘청년’을 만든 호치민은 당시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을 양성하는 데 집중했다. 호치민의 추천에 따라 장제스가 교장으로 있던 황포군관학교에 적잖은 베트남 독립운동가들이 입학했다. 참고로 황포군관학교는 우리나라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이 다녔던 곳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쩐푸(Tran Phu)나 레홍퐁 같은 이들이 모스크바 동방노동자대학에 유학을 갔으며, 이들을 통해 혁명 요원들을 양성했다. 1927년에 와서 그 수가 대략 200명에 달했고, 1929년에는 ‘청년’의 당원 수가 많게는 1,000명에 이르렀다. 당시 호치민은 <혁명의 길>이라는 책자도 썼으며, 이는 베트남의 <공산당 선언>과 같은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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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냔단을 읽고 있는 호주석 포스터, 신문에 마르크스와 레닌의 얼굴이 들어가 있는게 인상적이다.)


1929년 5월 1일 베트남 혁명 청년회의 전국 대회가 영국령 홍콩에서 개최됐다. 이것을 시작으로, 공산당 창당 논의가 베트남 내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활발해졌다. 이 과정에서 베트남 좌파 독립운동 세력은 크게 세 분파로 나뉘어 대립했다. 이중 공산당 결성파의 경우 1929년 6월 하노이에서 인도차이나 공산당의 수립을 선언했다. 청년회 내의 일부는 비밀 공산당 조직인 안남공산당을 만들었으며, 마지막으로 신월혁명당쪽의 급진적 당원들이 가세한 인도차이나공산주의연맹이 만들어졌다. 즉 이렇게 세 조직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 경쟁했다. 세 분파는 1929년 말까지 대립했다. 이러자 코민테른은 이들의 통일을 요청하는 서신을 베트남으로 보냈으며, 그 이후부터 이들은 하나의 정당으로 통합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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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공산당 초기 마크)


코민테른은 서신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 설립의 근본 교리들을 강조하면서, 세 개의 공산주의 정당이 통일되어야만 하는 당위성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호치민(당시 응우옌 아이 꾸옥)은 제3인터내셔널의 지침이라는 명분으로 베트남의 공산주의 조직을 통합하기 위한 회합을 소집했다. 1930년 1월 말 호치민은 홍콩에 도착했으며, 다른 공산당 조직들도 홍콩에 도착했다. 1930년 2월 3일 홍콩의 구룡에서 회의가 열렸으며, 놀랄 정도로 쉽게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회의는 2월 3일부터 7일까지 대략 5일간 비밀리에 행해졌으며, 이 회의에서 베트남 내의 공산주의 조직을 통합해서 하나의 공산당을 창설한다는 안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그리고 통일된 당의 명칭을 베트남 공산당으로 정했으며, 당의 정강과 책략 및 당헌의 초안과 대중 조직에 관한 원리의 초안 등을 새로이 채택하는 것도 합의했다.


당의 정강과 책략에서는 베트남 혁명은 제국주의와 봉건주의를 타도한다는 목적 아래, 조국의 독립을 되찾고 토지개혁을 실시하며 프롤레타리아의 지도하에 공산주의 사회로 도약해가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임이 천명됐다. 당의 노선은 농민 대다수와 뚜렷한 반혁명세력이 아닌 부농 및 중·소지주들을 규합하고, 프티 브루주아지와 인텔리겐치아 및 중농과 제휴하는 것이었다. 당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대였으며, 프롤레타리아트로 하여금 인민을 지도할 수 있게끔 하는 수단이었다.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홍콩에서 베트남 공산당이 창당된 것이다. 새로 창당된 정당은 통킹과 안남에 204명, 코친차이나에 51명, 중국에 15명, 태국에 40명의 당원을 거느리고 있었다. <호치민 평전>의 저자 윌리엄 J. 듀이커는 베트남 공산당 창당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1930년 2월 새로운 정당의 결성과 더불어 응우옌 아이 꾸옥은 베트남 혁명의 다음 단계로 이행할 준비가 되었다. 그가 눌랑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했듯이, 이 정당은 입헌당, 인도차이나 공산주의자 연맹(곧 해체되어 그 조직원들 대부분은 베트남공산당에 입당한다.), 하노이에 기반을 둔 베트남국민당, 이제 기능이 정지된 혁명청년회 등을 포함하는 몇 개의 정당과 분파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그러나 꾸옥은 공산당이 비록 아직 어리고 작았지만, “그 모든 조직들 가운데 가장 잘 조직되고 가장 활동적”이라고 단언했다. 이제 두 개의 주요한 공산주의 분파 사이의 싸움이 끝났기 때문에, 베트남 공산당은 정확한 정책과 새로운 내적 통일로 무장하고 급속하게 성장할 터였다. 마침내 응우옌 아이 꾸옥은 15세기의 애국자 레 로이가 외적으로부터 동포를 해방하기 위해 사용했던 무기인 마법의 검을 손에 쥐게 된 것이다.”


출처: 호치민 평전 p.268


1930년 2월 베트남 공산당은 영국령 홍콩에서 창당됐다. 베트남 공산당 창당은 세 개의 분파를 통합하고 새로운 혁명적 단계의 규정 및 노선 설정에 있어서 의미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 중 일부는 이에 반대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모스크바 유학파인 쩐푸가 그러했다. 쩐푸는 베트남 공산당 결성이 당시 코민테른의 노선을 크게 일탈했다고 판단했으며, 실제로 호치민에 대해 이론이 빈약하다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그는 베트남 공산당을 코민테른의 노선에 충실한 당으올 변혁시키려고 했었다. 1930년 10월 제1차 중앙위원회에서 쩐푸가 서기장으로 선출되어 당의 지도권을 장악했으며, 쩐푸는 당명을 베트남 공산당에서 인도차이나 공산당으로 변경했다. 그렇게 해서 오랜 기간 동안 베트남 공산당의 당명은 인도차이나 공산당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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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베트남 공산당 창당 90주년 포스터 1, 2020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직접 찍은 사진이다.)


베트남 공산당이 창당되던 1930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는 베트남 국민당이 주도한 봉기가 통킹과 안남 일대에서 일어났다. 시작은 베트남 국민당이 주도했다. 물론 베트남 공산당 또한, 이 봉기에 가담했으며, 대표적으로 응에안 성 하틴 소비에트 봉기(Nghe-Tinh Soviet)가 그러했다. 공산당은 세포조직을 이용하여 곳곳에 소비에트를 수립했으며, 토지의 재분배를 비롯한 소작료 인하와 세금의 경감 등을 실행했다. 진보적인 정책들을 직접적으로 실행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봉기는 1931년 프랑스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됐다. 프랑스 당국은 전투기까지 동원하여 이 봉기를 진압했다. 인도차이나 공산당은 그 이후 조직 재건에 힘썼으며, 이는 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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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베트남 공산당 창당 90주년 포스터 2, 2020년 베트남 다낭에서 직접 찍은 사진이다.)


1930년 봉기 이후 베트남의 독립운동은 완벽히 사회주의 세력들이 주도하게 됐다. 베트남 공산당을 창당한 호치민은 1941년 30년 만에 베트남에 귀국했다. 호치민은 1911년 21살의 나이에 베트남을 떠나 1941년 51살의 나이에 조국 땅을 다시 밟을 수 있었다. 예리하고 선견지명을 가진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의 침략이 있자, 이들의 실체를 명확히 파악하고 일본 제국주의와 프랑스 제국주의에 맞선 독립운동 단체를 조직했다. 그것이 바로 베트남독립동맹 즉 베트민(Viet Minh)이다. 베트민은 당연히 공산당에서 활동했던 이들이 주를 이루었으며, 일본과 프랑스 그리고 미국의 침략까지 무찌를 수 있는 역량을 창조하고, 또 지휘했으며 궁극적으로 제국주의를 무찔렀다.


참고문헌


쟝 라꾸뛰르, 안혜련(역), 『베트남의 별』, 소나무, 1988


베트남공산당사연구회, 김종욱(역), 『베트남공산당사』, 소나무, 1989


윌리엄 J. 듀이커, 정영목(역), 『호치민 평전』, 푸른숲, 2003


송필경, 『왜 호찌민인가?』, 에녹스, 2013


후루타 모토오, 이정희(역), 『베트남, 왜 지금도 호찌민인가』, 학고방,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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