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는 정해진 길이 없는 법이다

보닌 창고를 정리하다가 구석에 먼지덮인 박스 안에서
누렇게 색이 바랜 바둑 책을 꺼내들게 되었다

지금은 다시 사장되어 틀딱의 상징이 되었지만
한때 부모들에게는 자녀의 두뇌개발이라는 명목하에
그리고 얼라들에게는 고스트 바둑왕이 유행을 타면서
전국에 바둑학원 열풍이 일던 시절이 있었다

보닌도 코흘리개시절 부모님의 손을 잡고 바둑학원에 끌려가
기보를 외우고 대국을 두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재능은 없었지만 나름 몇 년 다니면서 어디가서 바둑이야기로 입은 털어볼 수 있는 화제 중 하나로 남아있다

바둑이란 참 오묘한 게임이다
각각 19개의 검은 줄이 교차하는 나무판 위에
흰 돌과 검정 돌을 서로 번갈아 놓는 이 단순한 게임에서
사람들은 전략과 병법을 탐구하며 논하기도 하고

그 중심을 천원, 즉 우주의 중심이라 부르며
삶의 교훈을 찾아 헤매기도 했다

체스, 장기와 같은 다른 게임과 다르게
바둑은 주어진 말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스스로 새롭게 판 위에 돌들을 놓아 게임을 진행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처럼 무궁 무진한 자유도를 가지고 있건만
정작 바둑을 둘 때에 많은 사람들은 정석이라는,
어느정도 정형화된 모양의 수들을 주고받는다는 점이다

무한한 자유가 주어졌지만
그럼에도 타인이 인정하는 삶의 길,
모두가 바라는 모범답안을 얻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네 삶과도 닮아있다

그럼에도
바둑에서 완전히 똑같은 기보가 나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우리의 삶도 나라는 주인공은 결국 우주에 하나뿐인 존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안정된 삶의 형태를 원하고
그를 위해 타인의 삶과 성공을 모방하며
자신의 현재 모습과 비교하여 저울질한다

그러나 급식 시절의 내가 즐기던 세상과 
추레하고 덜자란 어른이 되어버린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다르고

F1레이스카를 몰 때의 조종법과
차고에 처박혀 있던 똥차를 몰 때의 조종 기술이 다르듯
지금의 나를 위한 성공 공식과 나와 다른 시간축과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남이 이뤄낸 성공의 공식은
결코 같을 수 없는 것이다

타인과 나를 비교해 갖지 못한 것을 조급해하기 보다
나만이 가진 무언가를 다시 추억의 틈바구니 속에서 꺼내 세상에 당당히 드러내는 것
그것이 진정한 브랜딩이고
성공의 공식이 되는 무기인 것이다

삶의 길에는 레일따위 깔려있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어버리곤 한다...

(상남자, 28세, 버튜버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