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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훈의 음악적 천재성에 대하여

밀라니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9.11 08:3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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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지휘자 Renato Rivolta가 쓴 글을 번역 해 보았음.


원문: http://renatorivolta.blogspot.com/2017/01/fenomenologia-del-genio-musicale-myung.html




정명훈의 음악적 천재성에 대하여 (직역: 음악천재의 현상학: 정명훈)

돈 카를로, 라 스칼라 극장


정명훈 지휘자는 아주 말랐다. 마치 힘겨운 수련을 하는 사람처럼. 어쩌면 명상이나 요가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마르고 날렵한 몸을 가졌지만, 근육질로는 보이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의 어깨는 살짝 처졌으며, 몸에 비해 머리가 조금 큰 것도 같다.


오케스트라 피트로 들어가 줄지어 앉아있는 바이올리니스트들을 지나 지휘대로 걸어갈 때면, 그는 어렴풋이 무언가 지겹다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바이올리니스트들 사이를 지나가며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거나 다정다감하게 토닥이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가 스쳐 가며 어깨 위에 연주하는 빠른 비트는 어떤 말을 전하려 하는 것일까. 지휘대에 도착한 그는 지겹고 불쾌한 일을 맞이하는 사람의 표정으로 자리에 오른다.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청중의 박수를 맞이하는 그는 마치 과제를 끝내듯이 가능한 한 빠르고 고통 없이 그 순간을 넘어가려 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단 몇 초도 지나지 않아 그는 등을 돌리고 서며 청중이 그를 맞이하는데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허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물론 검은 옷을 입지만, 표준 연미복을 입지도 않고, 다른 지휘자들이 불편한 예식 복장 대신 입는 다양한 스타일의 이국적인 –- 그리고 때때로 우스꽝스럽기도 한 –- 재킷조차도 입지 않는다. 자기도취적으로 연미복의 옷깃을 펄럭이며 거드름을 피우는 것은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할 만한 행동이 아니다. 그에게 있어 지휘란 영적인 행위나 다름없으며, 그가 이끄는 오케스트라가 함께 올리는 의식이나 다름없다. 그를 지켜보는 관객들이 없어도 그는 오히려 더 열정적으로 지휘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옷은 검은색이기는 하지만 캐주얼하다. 장식이 없는 바지. 티셔츠 위에 걸친 셔츠 또는 얇은 스웨터. 봄에 산책할 때도 입을 수 있는 복장이다.

말했듯이, 그는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단 몇 초밖에 허락하지 않고는 한다. 때때로 관객의 박수 중에 시작하며 음악의 첫 음에 청중이 얼어붙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의 내면의 긴장감은 관중의 형식적인 환영 인사로부터 곧바로 공연의 본론으로 그를 이끈다.

지휘봉이 움직이는 순간, 우리는 초월적인 시공간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멈추지 않는 기적이 시작된다.


정명훈 지휘자가 어느 오케스트라에서나 끌어내는 수 있는 심오한 소리의 근원을 말로 설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가 지휘하는 다섯 개의 유럽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어본 결과, 그 소리는 분명히 정명훈 본인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그의 팔은 매우 유연하여 편안하고 우아한 움직임을 보여주며 마치 현악기 연주자들이 활을 다루듯 레가토를 유연하게 구현한다. 레가토, 테누토, 스포르차토, 트랏테지아토, 데타셰, 스타카토, 마르텔라토, 스피카토 등 가능한 모든 종류의 주법을 현악기 연주자들의 움직임과 동일하게 표현해낸다. 정명훈 지휘자는 연주자들에게 모든 종류의 주법과 셈여림에 맞는 구체적인 동작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는 고양이 같은 빠르고 날카로운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관객이 깜짝 놀랄 만큼 폭발적인 크레셴도와 그 못지않게 급작스럽게 일어나는 디미누엔도를 포함해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다양한 표현력을 몇백 분의 1초 동안 오케스트라로부터 어떻게 끌어내는지 알 수 없을 때도 있다. 하지만 따로 검증할 필요도 없이 나는 정명훈 지휘자의 실력에 확신을 가지고 있다. 정명훈 지휘자의 동양적 배경을 생각해 비유하자면, 아마 그의 날씬한 체격과 브루스 리 같은 고양이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이 한몫하지 싶다. 새총으로 발사해 튀어 오르듯 탄력 넘치며 사람들이 동경하는 무술가들의 빠르고 민첩한 동작을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지휘자로서의 천재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해보려 한다.


첫째로, 정명훈 지휘자는 마디를 기준으로 한 진부한 음악적 시간의 단위를 무시하는 듯한 뛰어난 음악적 시간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는 악보로 쓰인 대로 세로줄 사이의 공간에 끼워 맞춰져 있는 악상 기호대로 지휘하지 않고, 직접 음악의 소리를 만들어낸다. 정말 순수하게 악보에 쓰인 대로 (정확히) 연주한다면 독창적이지 못하며 감동도 주지 않는 흉내 이상이 되지 못할 테니 말이다.

즉, 그는 메트로놈의 템포나 마디에 국한되지 않은 시간을 따라 곡 안의 음악적 사건들을 연출해낸다.

돈 카를로의 경우에는 <드라마의 시간> (Tempo del Dramma)을 연출함에 있어 감정의 흔들림, 놀라움, 머뭇거림, 돌발적 움직임, 갑자기 폭발적으로 상승하거나 사라지는 에너지를 포함한 등장인물들의 자연스러운 심리적 행동들을 표현한다.

베르디에 의해 변화한 연극적 관습 안에서 음악은 정신적 기운을 표현하는 도구로서 극 중 사건을 경험하는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모사한다.

그래서 악보상으로는 메트로놈에 정확히 맞춰야 할 것 같은 순간에도 정명훈 지휘자가 풀어내는 음악의 스타일은 기계적이지 않고 유연하게 변화를 거듭한다.

심지어 짧은 순간에도 시간은 항상 제어된다. 때로는 템포는 유지하며 겨우 느껴지는 수 있는 “밀기”로 시간의 흐름을 흔들어 긴장감을 조성하거나, 때로는 반대로 템포는 지체하지 않으며 누군가 브레이크를 밟은 채 페달을 밟는 것처럼 게으르고, 침통하고, 지친 듯이 절제할 때도 있다. 그래서 매우 미묘한 뉘앙스를 정밀하고 명료하게 관리하며 극적/심리학적 상황마다 특징적이고 정확한 음색을 부여하는 것은 음악적 템포에 본질에 대해 매우 예리한 이해력을 가진 이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러한 시간의 개념에 대한 정명훈 지휘자가 이끄는 오케스트라의 표현력은 음량의 강약에 관계없이 완벽하다.

지금까지 음악적 시간을 정교하게 관리하는 능력에 대해 논한 것은 물론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이 능력은 위대한 연주자 또는 예술가의 본질적인 자질이다. 피아노나 바이올린이나 현악 사중주단 등에서 성공적으로 음악적 시간을 다루는 것도 대단하지만, 100명의 오케스트라, 어쩌면 수십 명의 다른 사람들, 솔로 연주자들, 그리고 합창단이 있는 무대에서 다루는 것은 차원이 다르며 극소수만이 성취할 수 있는 위업이다. 이루기 위해서는 모두의 정서적 참여와 서로 간의 소통을 적절히 활용해야 하는 정말 경이로운 일이다.


둘째로, 정명훈 지휘자는 (자주 눈을 감기는 하지만) 눈을 뜨고 명상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지휘를 한다. 나는 보디랭귀지로 음악을 표현하면서도 듣는 것에 정명훈 지휘자만큼 집중력을 보이는 지휘자를 본 적이 없다. 깊은 명상에 빠진 것처럼 대단한 집중력이다.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팔과 몸은 즉각 반응하여 연주자들의 반응 시간을 이해하며 몸짓으로 모든 음, 모든 쉼표, 모든 구절 / 사건에 삶을 불어넣는다. 반면 그의 얼굴을 보면 완전히 매 순간의 음악적 감각에 몰입하여 거의 무아지경에 빠진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때로는 더 귀를 기울이려는 듯 살짝 몸을 굽혀 귓가에 손을 갖다 대기도 한다. 이러한 행동은 그의 오케스트라를 향한 요청이다. 들으시오! 스스로의 소리를 들어보시오! 기술적이지도 학문적이지도 않은 그런 요청이다.



나는 스타와의 논쟁에서 정명훈 지휘자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중에서 음악을 만드는 사람은 오케스트라라고 했던 인터뷰를 인용한 적이 있다.

물론 지휘자에게도 공이 있고 지휘자가 음악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건 명백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소리를 만들어내는 연주자들이다.

마에스트로 정명훈은 그런 연주자들을 항상 존중하며 사랑으로 대한다고 할 수 도 있을 것 같다. 두 가지 작은 사건들이 이 점을 확인시켜 주었다


아마도 두 번째 막이 시작될 때, 정명훈 지휘자는 연단에 올라 관중의 박수갈채를 언제나처럼 멈춘다. 하지만 트럼펫 연주자는 준비가 안 되어 있었고 첫 음을 연주하지 않는다. 마에스트로 정명훈은 고개를 저으며 자책했다. “얼마나 바보 같을까”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그리고는 잠시 후 여전히 지휘를 하던 중 트럼펫 쪽으로 돌아서자마자 검지 손가락을 가슴에 대고 상냥하게 미소를 짓고는 눈을 굴리며 사과한다.

인터미션이 끝나고 공연 재개를 할 정명훈 지휘자가 거대한 가방을 들고 오케스트라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무엇이 들었을까? 희미한 조명 아래 자리 이동이 일어나는 동안 답을 찾을 수 있다. 마이스트로 정명훈은 지휘대 계단에 앉아 사탕과 초콜릿을 꺼내면, 스탠드에서 스탠드로 모두에게 전달된다.

5시간짜리 긴 공연을 펼치는 오케스트라에게 관심과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나는 이렇게 그가 나눠주는 애정은 음악을 사랑하며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보답 받는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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