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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재업]<탄핵전후사의 인식> 4-2장, 강진원 저

심리학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17 15: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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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공장노조의 저항. 경상도 노동자평의회의 결성(마산, 울산, 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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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택시노동자들이 합세한 가운데 13만 이상의 인파가 경남 전역에 운집했다. 하지만 부산에서는 아직 군경의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3월 11일 7~8시부터 지방 중심도시들에도 계엄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산, 창원, 김해, 울산, 부산에서는 이미 20차 촛불시위가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 경남 지역의 노동조합의 반응은 격렬했다.

 

'위원장님. 이제 우리 어케합니꺼?'

'계엄군 내리오면 우리 다 끝이다! 일단 일반시민들언 다 해산시키뿌리고 집 돌려보낸담시 싸워야한다 안카나!'

'여기서 다 집가믄 그대로 다시 못모인다. 여기서 흩어지면 다 디진다.'

 

금속노조 위원장 김호균과 울산의 대공장 노조 대의원들은 대책을 강구하고 있었다. 민주노총 총연맹(각주 1)의 지도부와 연락이 닿지 않는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지만. 금속노조의 노동자들은 호락호락하게 당하고 있을 위인들이 아니었다. 현대 중공업 노조, 대우, 삼성의 조선소, 포항 제철의 노동자들이 시시 각각 울산, 창원시청으로 모여들었고 김해, 마산에서도 각지의 노동조합과 좌파적 시민단체들이 회의를 가지기 시작했다.

 

영남에서도 집회와 시위는 번져갔지만, 이곳의 전개양상은 여타 지역과 달랐다. 영남권의 시, 도, 군 지방자치단체들은 남하하는 계엄군과 격해지는 집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였다. 행정력이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한것이다. 지자체장들과 공무원들은 도망치거나 계엄군과 연락을 시도하다가 시민들에게 끌려나왔다. 창원시청에서는 공문서를 파쇄하기 시작했으며, 울산은 모든 행정이 마비되어 노동자들이 시청에 진입했을 당시에는 이미 대부분의 관청들이 비어있었다. 오직 부산만이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고 있는 가운데 시정이 계엄군과 협조할 모양새를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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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노조는 전국의 주요 도로를 몸으로 막아서며 계엄군의 경남 진입을 필사적으로 저지하고 있었다.>

 

 

 

'창원에서는 대의원들 다 긁었심더, 이제 어이합니꺼?'

'위원장 동지! 시청이고 구청이고 비었십니다! 이제 어캅니까??'

 

 

'100일 내전'의 첫 전장이 될 부산은 새벽에도 뜨겁게 끓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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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합참의 반격, 진해항의 반란

11일 3시경, 합동참모의장 이순진은 계엄 선포 30분 뒤에서야 선포 사실과 지휘계통의 이상징후를 포착했다.

'계엄령이 선포됐다고? 계엄 사령관이 박병주 참모총장이라고?'

명백히 제복군인중 최고선임자인 합참의장을 제치고 계엄령이 선포된 이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이순진 합참의장은 국방장관에게 연락을 넣었다. 그러나 '적절히 안배한 결과이다. 계엄에 협조해달라.'라는 답변 외에 합동참모본부에 전달되는 설명은 없었다.

 

계엄세력에게 있어서 이순진 합참의장은 눈엣가시같은 존재였다. 최초로 육사출신이 아닌 3사 출신 합참의장이자 보수적이고 강직하기로 소문난 이순진은 계속해서 독사파의 견제구를 받았었다. 그러나 그는 전군을 통틀어 최고참의 현역군인이었기에, 합참의장직에 무리없이 안착할 수 있었다.

 

계엄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이순진의 수족을 잘라야 했다. 이순진이 각 군에 기동 중지명령을 내리는 동안, 기무사는 공작을 통해 이순진과 관계가 깊었던 7기동군단과 수방사의 병력을 흩어놓는 작전을 시작했다. 7기동군단의 일부병력은 대구까지 기동하라는 터무니없는 명령을 하달받기까지 했다.

결국 기무사령관 조현찬은 용산 합참 관저에 병력을 끌고 들어온다. 그는 수도방위사령부의 영내병력들 중 일부가 폭도들에게 붙어 반란을 획책했음을 지적하며 합참의장을 비난하였다. 쿠데타의 의심은 이제 현실이 되었다.

 

합참의장의 신병을 확보한 기무사령부와 육군본부는 이제 한국군 대부분에 대한 장악을 완료했다. 아산의 해군부대는 금방 8사단에 통제되었으며, 진해 해군항에 파견된 기무사 병력은 정박한 주력함들을 장악하고 시위대를 향한 무력시위를 전개할 준비를 했다. 해군함정을 동원하여 전군이 계엄의 통제하에 있음을 보여주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계엄세력의 작전이 어그러졌다. 진해 해군항의 수병들이 기무사의 생각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폭동'으로 끝날뻔했던 항쟁은 100일간의 치열한 내전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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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연(1994년생, 해군 중사, 세종대왕함 소속, 군형법 제45조 명령불복종죄 징역7년 선고 이후 2022년 특사. 화랑무공훈장 수여)

 

서울서부보훈병원에 노년의 뱃사람이 휴게실에 왼다리를 절뚝거리며 들어온다. 이 늙은 퇴역군인이 그 유명한 '진해항의 반란'을 일으킨 부사관임을 아는 사람은 얼마되지 않았다.

 

 

정성연 : 반가워요. 나같은 늙은 뱃놈에게 궁금한게 많나 봅니다.

 

필자 : 안녕하십니까 정중사님. 진해항의 수병반란 이야기를 여쭈는데 정 중사님을 빼놓을수는 없죠.

 

정성연 : 후...그때 일이라...참 오래 된것 같은데...이제는 말해도 되겠지요? 아직도 얘기하기가 참 그렇다니깐. 담배 한대 피고 합시다.

 

보훈병원 테라스에서 봄볕을 받으며 그가 찐담배를 아이코스에 끼웠다.

 

정성연 : 당시에 우린 북한의 도발에 상당히 바쁜 시기였습니다. 지속적인 동해안 탄도미사일 도발과 서해안 해안포 도발과. 연안해군이 아닌 대양해군을 목표로 편제된 기동전단 소속 함정들은 연안함대 전력을 보좌하면서 서해, 동해 미친듯한 출동 일정에 살았습니다. 한 달에 7일-9일을 빼고 바다에 나가 있었으니까요.

 

3 야전군이 양동작전을 개시한 2017년 3월 7일경부터 해군에서도 이상징후가 포착되기 시작했다.

 

정성연 : 3월 7일부터 우린 출동을 마치고 주부식 보급과 긴급수리를 위해 1주일정도 잠시 진해에 정박할 예정이었습니다. 아침즈음 도착해서 진해부두에 홋줄을 걸고 함미 비행갑판에서 급하게 장교들과 직별장 몇명이 심각하게 이야기 하는걸 보았습니다. 그때도 심각한 얘기는 뒤로 재끼고 간만에 땅을 보고 흙냄새를 맡아보며 좋아하던 우리가 지금 생각하면 참 철이 없었습니다. 앞으로 뭐가 다가올지 몰랐지요.

 

정성연 중사의 동생 정성한씨는 당시 건국대학교에 재학중이었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기에 정 중사는 대입을 포기하고 입대해 동생의 학비를 보태고 있었다.

 

정성연 : 입항 뒷정리를 마무리하고 폰을 불출하고 보니 부모님께서 음성메세지, 전화와 카톡...아 그당시 유명하던 메신저입니다.(당시 메신저를 그냥 ‘카톡’이라고 부를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카카오톡을 이용하였다 ; 필자 주) 여튼 많이 남겨 두셨었죠. 대충 심각하구나 싶어 읽지 않고 바로 아버지께 전화 드리니까 제 걱정과 동시에 동생이 계속 시위에 나간다. 걱정되니 말려보거라 라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어머니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셨구요. 간만에 땅 밟으며 쉴틈도 없이 동생을 뜯어 말리는데 온 힘을 다 써버렸습니다. 당시 동생(정성한)한테 "형이 군대 있는데 부모님 잘 모셔야지 뭐하고 다니냐? 데모질이나 하라고 부모님 뼈빠지게 벌고 형 배타러 나와 돈버는거 아니다" 라고 훈계를 놓자 걔가 '형이 이 상황을 몰라서 그런다. 그런 위험한 집회 아니다. 다들 촛불 들고 기타치고 노래부르지 형이 생각하는 그런 데모같은거 아니다.'... "야 임마 그러든 말든간에.."....하... ... 담배 있소..? 하나만 주시오...

 

그는 물고있던 전자담배를 놓고 나에게 연초를 빌렸다. 그는 마치 폐포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듯이 깊게 들이마시고는 한숨 쉬듯 연기를 토해냈다.

 

 

정성연 : 3월 8일부터 전방 상황이 좋지 않았기에 우린 간단한 외출만 허용되었고 총원 함내대기 상태로 있었습니다. 오전정비과업을 마치고 식당에서 뉴스특보를 봤는데 북한 아나운서가 나와서 훈련에 규탄한다니 뭐니 한심한 소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참나 웃기지도 않아서 그런데 갑자기 함내방송으로 각 부서 장교들이 사관실(장교용 격실 : 주로 회의업무와 장교식사, 장교휴게실로 사용한다.)로 집합했고 얼마뒤 각 부서장들이 내용을 전파 했는데 뉴스에서 봤던거 보다 더 심각한 이야기였습니다. 육군 주요전선에서 국지적 교전(역자주: 당시의 과장된 교전상황이 그대로 전파되었다.)이 있었고 전방함대는 다 긴급출항 나갔다. 수리가 다되면 바로 출항한다고 말이죠. 그런데 장비고장 원인도 찾지 못했는데 어떻게 나갑니까... 발만 구르는거죠.

 

필자 : 언제쯤 출항 준비가 완료되었습니까?

 

정성연 : 3월 11일 밤이 되서야 장비고장을 찾아서 겨우 고쳐놨습니다. 얼굴에는 땀, 손에는 구리스 범벅이 되고 외부에 나와서 담배 한 대 필려는데 어머니께 전화가 왔습니다. 성한이가 연락을 안받는다고. 성한이가 밤이 됐는데 집에 안들어온다고. 군인들이 총들고 돌아다닌다고. 저는 정비만 다 끝나고 출항전에 짬 내서 전화해보겠다고 했어요.. 참... 진짜....(담배 한 대 문다.)

 

 

필자 : 당시 합참의 상황은 알고 계셨습니까? 해군은 계엄군에게 어떻게 저항하게 되었습니까?

 

정성연 : 합참 상황은 당시에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다른 배들도 어떻게 됐는지 잘 모릅니다.하지만 확실한건 우리 배는 호락호락하지 않았죠.

장비를 고쳤기에 바로 출항이 계획되었습니다. 출항 1시간 전 홋줄을 정리하고 출항 준비를 하고 있을때 멀리서 군용버스가 와서 육군 소대 병력을 내리고 갔습니다. 사복차림 남성 한명 특전사 중령 한명과 일부장교 몇명, 소총수 몇명을 이런 구성이었습니다.

이때 나는 계엄군을 처음 봤습니다. 계엄군. 그제서야 바깥의 상황이 어떤지 실감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걔낼 보니까 갑자기 화들짝 동생 생각에 겁이 났습니다. 기름진 손으로 몇번이나 놓쳐가며 전화기를 집었습니다.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얼마 기다리지도 않았는데 전화를 받았습니다.

 

성한이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서울대병원입니다. 혹시 고인의 친지분이십니까?' 

 

저는 전화를 뚝 끊어버렸습니다.

 

 

갑판에 나와 있던 부서장(소령)이 무슨 일이냐 라고 묻자 저는 '동생한테 가야한다, 무슨일이 생겼다. 애한테 무슨일이 생긴거같다.'(각주 3)라고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원래 큰 충격을 받으면 그렇게 담담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부서장님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기무사 애들이 우리를 격실로 집어넣었습니다.

 

계엄사의 특별명령으로 왔다 함장님께 안내하라고 했습니다. 부서장은 들은게 없다고 했지만 일단 안내를 했다고 합니다. 저는 멍하니 앉아서 출항 후 함장님께서 방송으로 원래 목적인 동해가 아닌 서해로 이동한다고 하시는 방송을 들었습니다. 방송을 하신것도 이례적인데 목적지까지 바꾼다는건 무언가 분위가 심상치 않았지만, 저에게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성한이는.....

 

필자 : 네. 말씀하시고 싶으실 때 계속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성연 : 방송이후 함내 분위기는 좋지 않았습니다. '동생이 죽은거같애.' 저는 침묵속에서 한마디를 했습니다. 다들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일을 겪은 게 저 뿐만이 아니었던 겁니다. 이래 김하사도 최중사도 친지들한테 무슨 일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수병들은 가족 소식을 알아야겠다고 스마트폰좀 빌려달라고 애걸했습니다.

 

같이 온 계엄군들은 총을 들고 여기저기들쑤시며 분위기를 무섭게 잡고 있었고 일부 함대원이 목적을 물어보며 반항하기도 했지만 폭력과 함내영창 구금으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남해를 지나 서해에 진입할 때 즈음 해서 방송으로 함장실에서 저와 제 직별장을 찾았습니다. 함장실에서는 함장님, 사복요원, 중령이 있었습니다. 함장님께선 저에게 함대지 미사일을 쏴야 할 수 있다고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후 그때 추억을 더듬으면서 그 많은 직별사 중에 왜 나였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는데 당시 꽤 자신 있게 장비를 다뤄서 신뢰가 있었던것 같네요. 경연대회도 나가서 입상도 하고 또...유일하게 잃을게 없었으니까... 나라면.... 그럴거라고 생각하신걸지도...

 

함장님께 물었습니다. "어디에 쏘는겁니까?" 함장님께선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사복요원이 "한강이다. 폭도로 변한 시민들이 북한에게 서울을 내줄려고한다. 자세한건 좀 있다 말해주겠다." 나는 뭐라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직별장과 함장실을 나와 이야기를 했습니다. "직별장님 이건 아닙니다. 어떻게 수도에...시민들에게 쏩니까? 제 동생이 지금 서울대병원에 누워있답니다. 제 동생이 폭도였습니까? 그러면?" 직별장은 날 진정시키고 침실로 보냈는데 도저히 진정히 안됐습니다. 저 말고도 모두가 진정하지 못하고. 잠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침실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중간에 계엄군 애들이 침실로 와서 들킬뻔하기도 했지만 기적적으로 들키진 않았습니다. 계엄군 쓰레기 놈들. 놈들의 큰 실수는 우리 집을 잘못 건든거였습니다. 우리 배에서 우리 대원들을 윽박지르고 질문하는 수병을 강제로 구금했으며 시민들에게 우리의 무력을 사용하라는 납득 안되는 이야기를 했죠. 거기에 성한이... 우리 성한이.... 계엄군 새끼들은 성질 더러운 뱃사람들을 잘못 건드렸습니다. 뱃사람은 친구가 눈물 흘릴때 호락호락하게 당하고 있는 놈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배를 꽤 오래 타서 배의 이곳 저곳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놈들은 몰랐습니다. 함수함미 침실을 몰래 돌아다니며 함내대원들과 함께 배를 되찾고 동생의 복수를 하고자 계획을 짰습니다.

 

필자 : 반대하는 사람들은 없었나요?

 

 

정성연 : 물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않았습니다. 다들 제 이야기 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들중 계엄군에 당했다는 연락을 받은게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친한 대원들이 눈 앞에서 계엄군에게 끌려가는걸 대부분이 봤으니까. 갚아주겠다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소병기고는 계엄사놈들이 지키고있어서 제대로된 무기하나 들수 없었지만 건실한 청년들이 때로 덮치면 총을 들고 있어도 해볼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희생을 감수해도 내 동생을 죽인 놈들과 한패가 될 생각은 없었습니다. 계획 실행시간은 발사시간과 동일했습니다.

 

발사 15분전 전투배치와 장비점검을 마치고 발사키를 수령받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사복요원과 계엄군 중령, 일부 장교가 전투지휘실로 들어왔고 사복요원은 나에게 전보를 주며 이 좌표로 발사를 준비하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박차고 일어나 말했습니다. "함장님 저는 시민들에게 발사하라는 그 명령에는 따르지 못하겠습니다!" 라고 소리쳤고 중령은 가지고 있던 권총을 목에 대고 앉으라고 소리쳤습니다. 제가 못하겠다 소리치자마자 이번에는 제 머리를 겨누며 쏴버리겠다는 말과 함께 쏘려는 자세를 취하했습니다. 함장님과 장교들 주변 부사관, 수병들이 뛰어들어 말리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전투지휘실에 계엄군과 뱃사람들의 피가 튀겼습니다. 전투지휘실 밖에서도 총소리와 고함소리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습니다. 기관실 대원들은 스패너를, 조리요원들은 식칼을 작전요원들은 맨손으로...전 대원들이 악착같이 목숨을 걸고 나선 끝에 배를 되찾았습니다.

 

구금된 함대원들을 풀어주고 그 자리에 생포된 계엄군을 집어 넣었습니다. 상황을 정리해보니 삼십여명 함대원 열댓명 계엄군이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부상자는 두배 가까이 되었구요. 장례 해줄 여력과 시간은 부족했습니다. 잠시 모포로 시신을 정리해 두던 차 방송이 나왔습니다. 

 

"총원 그대로 들어, 나 함장이다. 불미스러운 일로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한 전우를 잃었다. 허나 슬퍼할 겨를이 없다. 우리는 지금 군사반란에 맞서는 민주주의 수호의 최선봉의 용사가 되어야 한다. 우린 진해로 돌아가서 재정비 후 전우의 복수를 위해, 다시 나올것이다. 모두 만반의 준비를 하길 바란다. 이상 함장"

 

그렇게 우린 다시 남해로 돌아가 작전중인 모든 함정에 사태를 전달하기 시작했습니다. 몇몇 고속정이 무전침묵을 유지한 채 발광신호로 우리에게 '진해항은 이미 불타고있다'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이미 다른 함정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해군항 주변의 경비여단이 우리 소식을 듣고 주력함의 수병들을 무장해제시키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항구 주변에서는 크고 작은 함정들에 우리 동료들이 뛰어들어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무장으로 그들을 이길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겁니다.

 

함장님은 현재 작전중인 장교들중 최선임이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재정비를 할 항구가 절박했습니다. '부산항으로 가자. 부산 해작사로 가자.' 함장님은 해군 작전사가 있는 부산으로 향하자고 발광신호를 보냈습니다. 함장님도 우리도 딱히 계획이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우리 도움이 가장 필요해보일것 같은 도시 중 정박할 수 있는곳중 하나를 찍은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잃을게 없었습니다. 동생을 생각하면, 부산에 도착해서 싸우다 죽어도 좋을것 같았습니다.

 

 

 

 

(각주 1 : 현재의 '전국노동자평의회'에 대응되는 '민주노총'은 산별로 나뉘어있는 작금의 전국노동자평의회와 다르게 기업별로 노조가 나뉘어져있었다. 이 기업노조들을 총괄하는 본부를 '총연맹'이라고 불렀다.)

(각주 2 : 당시의 민주노총은 세 정파가 양분하고있었다. 첫번째는 민족해방과 남북통일을 중심으로 하는 NL계 온건파인 '국민파', 두번째는 좌파정당운동과 노동자정치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PD 중도파인 '중앙파', 마지막으로 현장 노동자 중심의 마르크스주의 혁명을 주장하는 PD 과격파인 '현장파'로 나뉘었다.)

(각주 3 : 정성한 씨는 3월 11일 당시 광화문 광장에 있었다. 그는 6시경 일어난 2차 발포의 희생자 중 한명이었다.)

 

 

 

 

 

같은시각, 졸지에 울산의 금속노조 지도부는 경남 주요지역의 행정과 각 대도시에 모인 수십만의 시위대를 관리해야하게 생긴 상황이었다. 부산을 제외한 대부분에서 노동조합과 민중이 행정을 장악하기 시작하였고, 울산과 창원, 거제에서는 노동정의당의 노희찬 의원 통일민중당의 김정철 등의 급진 좌파 국회의원, 시의원들이 광주의 임시의회에 참가하는 대신 자신이 살던 고장인 경남의 노동자들과 합세했다.

 

시민들과 노동자들 모두 투지와 열의는 넘쳤다. 그러나 노조 혼자만의 투지로는 경남 노동자벨트를 지킬수도, 관리할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김호균 위원장은 각지에 노조 대의원들과 시민단체장, 시민들에게 협조하는 의원들을 중심으로 상설대책회의를 꾸리도록 지시했다. 좌파 정당들과 연대하고 있던 '중앙파'는 각지의 진보정당들에게 함께할 것을 촉구하였고, 노조 내 급진세력인 '현장파'(각주 2)는 바로 현장노동자들을 규합하여 싸울 준비를 시작하였다.3월 12일 새벽, '부울경 노동자 평의회'의 시작이었다.

 

 

각지의 혼란을 수습해가려는 노동자 평의회에게 있어 최우선 목표는 부산시청을 점거하는것이었다. 새벽 내내 서면, 남포 등 부산의 주요 지역에서 민중의 대규모 저항이 이어졌지만 광주, 울산, 마산, 창원 등의 지역만큼의 반향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부산 시청은 계엄에 협조하겠다는 전체 긴급문자와 함께 강경진압을 계속하고 있었다. 총격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구치소는 만원이었고 병원에는 군경에게 중상을 입은 환자가 쏟아졌다. 시민들은 계엄령을 어기고 밤낮할것없이 아수라장이 된 부산을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경남 노동자들이 제대로된 저항을 시작하기도 전에 한국 제 2의 도시 부산에서의 항쟁이 진압당할 수순이었다. 남하하는 계엄군에 맞서 등 뒤에 정부군을 지지하는 도시를 남겨둘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모두 정신 똑디챙기라. 트럭이고 봉고고 다 챙기가 부산으로 간데이'

김호균 위원장과 경남 각지의 노동자 평의회는 차량을 징발하여 부산으로 향하기로 결정했다.

 

군사독재의 어둠을 뚫고 신새벽을 밝히듯, 공장 노동자들의 행렬이 이른아침부터 부산으로, 부산으로 향했다.

 

그들이 봉쇄를 풀고 부산의 시민들을 돕지 못한다면, 경남의 항쟁은 이어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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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일반 죄송합니다 [12] ㅇㅡ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4 225 0
125 일반 후세인 대역은 어떻게 해야 잘풀릴까 [2] ㅇㅇ(211.234) 06.04 6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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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일반 미국이 한국전쟁,베트남전쟁 완전한 승리를 거뒀으려면 [9] ㅇㅇ(211.234) 06.03 110 0
121 일반 IMF 때 자본주의가 종말이 왔다고 주장하면서 [1] ㅇㅇ(110.70) 06.03 71 0
120 일반 아래글에 나온 베트남 전쟁 캄보디아 보고 든 생각인데 ㅇㅇ(211.178) 06.03 57 0
117 일반 만약에 우리나라가 포르투갈 식민지 [6]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2 95 0
116 일반 ㄱㅇㄷ) 샤를 드골 대통령 [1] ㅇㅇ(183.98) 06.02 66 0
115 일반 한국의 초스피드 발전은 [8] ㅇㅇ(106.101) 06.02 137 0
114 일반 동남아에서 강대국 유력후보 뭐있을까 [4] ㅇㅇ(211.234) 06.01 105 0
113 일반 솔직히 6.25 때 북진통일하고 미국지원 받아서 경제발전한다해도 [5] ㅇㅇ(211.46) 06.01 111 0
112 일반 러일전쟁이랑 2차머전 대체역사 문서는 뵐갤이전인데 대역갤에 올려야되나 [2] ㅇㅇ(125.138) 05.31 85 0
111 일반 국공내전/대체역사 (4) ㅇㅇ(125.138) 05.31 66 0
110 일반 국공내전/대체역사 (3) ㅇㅇ(125.138) 05.31 5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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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일반 국공내전/대체역사 (1) [6] ㅇㅇ(125.138) 05.31 115 0
107 일반 6.25 전쟁/대체역사/북진통일 (2) ㅇㅇ(125.138) 05.31 71 0
106 일반 6.25 전쟁/대체역사/북진통일 (1) ㅇㅇ(125.138) 05.31 9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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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일반 6.25 전쟁/대체역사/38선 이북에 휴전선 형성 (3) ㅇㅇ(125.138) 05.31 55 0
103 일반 6.25 전쟁/대체역사/38선 이북에 휴전선 형성 (2) ㅇㅇ(125.138) 05.31 79 0
102 일반 6.25 전쟁/대체역사/38선 이북에 휴전선 형성 (1) ㅇㅇ(125.138) 05.31 90 0
101 일반 6.25 전쟁/대체역사/적화통일 (3) ㅇㅇ(125.138) 05.31 36 0
100 일반 6.25 전쟁/대체역사/적화통일 (2) [5] ㅇㅇ(125.138) 05.31 88 0
99 일반 6.25 전쟁/대체역사/적화통일 (1) [2] ㅇㅇ(125.138) 05.31 127 0
98 일반 6.25 전쟁/대체역사 (3) ㅇㅇ(125.138) 05.31 47 0
97 일반 6.25 전쟁/대체역사 문서 (2) [8] ㅇㅇ(125.138) 05.31 91 0
96 일반 6.25 전쟁/대체역사 문서 (1) [3] ㅇㅇ(125.138) 05.31 8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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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일반 여기 갤 좋네 [7] ㅇㅇ(106.101) 05.31 9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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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일반 베트남 전쟁이 분단으로 끝났다면 남베트남과 캄보디아는? [9]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30 15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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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일반 6.25 전쟁 이후 김일성의 책임 전가가 [8]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9 9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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