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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규칙만 잘 지키면 의외로 좋은 아파트다.

우동게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4.22 18:16:50
조회 5739 추천 138 댓글 11
														
삐빅…삐빅…삐빅…삑.

언제 잠들었는지 기억은 없지만, 알람 시계 덕분에 눈을 뜰 수 있었다. 시간을 보니 오전 2시 30분. 충분하다.

욕실로 가서 물로만 가볍게 샤워한 다음,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4월 18일 목요일. 갈색으로 통일된 옷을 입고 3시가 되길 기다렸다.

3시에 가까워지자, 사람들의 다급한 외침이 벽을 통해 울려 퍼졌다. 알람을 깜빡했거나, 너무 깊게 잠들어서 지금에서야 일어난 사람들이겠지. 하지만 지금부터 준비하기엔 너무 늦었다.

쨍그랑!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고, 바닥에 ‘쿵’ 하는 소리가 여러 번 나기 시작했다.

‘도저히 안 되겠으면 오전 3시가 되기 전에 유리창을 깨고 추락사하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라는 규칙을 지킨 사람들이겠지.

시계를 다시 바라봤다. ‘재깍…재깍’하는 소리와 함께 시계가 3시를 가리켰다. 이제 내가 했던 모든 게 옳았길 바랄 뿐이다.

뚜벅. 뚜벅. 뚜벅.

밖에 있는 무언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고, 내 문 앞에서 멈춰 섰다. 잠시 뒤, 그 무언가는 내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삐빅! 삑! 삑! 삑! 삑! 삑! 삐이이! 덜컹! 덜컹!

암호가 틀렸다는 알림음과 문을 강하게 잡아당기는 소리 두 번이 들려오는 것을 끝으로, 밖에 있는 무언가는 미련 없이 다른 집으로 향했다.

“살았다.”

오늘도 무사히 넘어갔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다시 침대에 누웠다.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는지는 모른다. 무슨 죄로 이곳에 끌려온 건지, 누군가의 원한을 사서 끌려온 건지 모른다. 그저 자고 일어났더니 이곳. ‘802호’라고 적힌 방에 깼다는 것밖에는.

띠리링!

누군가 규칙을 제대로 못 지켰는지, 멀리서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는 소리, 그리고 비명이 들려왔다. 비밀번호가 무엇이든, 규칙을 잘 지켰으면 안 열리고, 못 지켰으면 열린다고 한다.

규칙. 

외부와의 연락도 불가능하고, 집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는 규칙 덕분에 탈출도 불가능한 이곳에서 하루를 무사히 보내기 위해선 여러 규칙이 있었다. 다행히도 방에 붙어 있는 ‘생활 규칙’ 덕분에 어렵지는 않았고, 의외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다.

똑똑.

규칙대로 노크 소리 후 1분 뒤에 문을 열자, 내가 미리 시켰던 아침 식사와 소설책이 앞에 놓여 있었다. 놀랍게도 메모지에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나 생필품, 혹은 요청 사항을 적어서 문 앞에 놔두면, 다음날 ‘똑똑’하고 문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요청했던 것들이 문 앞에 놓여 있었다. 그것도 공짜로. 물품을 챙기는 순간, 언제나 그렇듯 이 시간쯤에 비명이 아파트에 울려 퍼졌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야! 내가 왜 여기 있어! 거기 누구 없어요! 저기요!”

죽은 사람 뒤에 바로 입주하는 ‘새 입주민’ 중에 지금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이곳에서 살다가 맛이 갔는지 소리를 질러대는 사람들과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매일 같이 있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금방 조용해졌다. ‘이웃에게 불편을 주지 마시오.’와 ‘집 밖으로 나오지 마시오.’ 규칙 때문이겠지. 바보 같은 행동으로 명을 재촉한 사람들을 비웃으며 문을 닫으려는 순간, 옆집에서 문이 열렸다. 

“어. 802호 형님! 좋은 아침입니다!”

얼굴을 확인하니 일주일 전에 이곳에 입주한 젊은 남자다. 매일 같이 인사하고 나랑 떠들고 싶어하는 놈이다. 귀찮은 놈이고 규칙도 안 지킬 것 같이 생겨서 금방 죽을 것 같았는데, 아직 살아있는 게 대단하다.

“아. 예.”
“에이. 나보다 나이 많은데 말 놓으시라니까요. 어쨌든 이제 슬슬 이야기 좀 하죠. 옆집 이웃인데.  여기서 이야기할 사람이 형님밖에 없어요. ”
“됐습니다.”
“그래요? 뭐…아쉽네요. 그럼.”

아쉬워한다는 놈 표정이 전혀 아쉬워 보이지 않는데. 젊은 남자를 내버려 두고 문을 닫았다. 외로우면, 이렇게 몸만 살짝 내밀고 대화도 가능했다. 계속 사람이 바뀌어서 깊은 관계는 쌓지 못하는 것도 있고, 내 성격도 활발하지 않아서 대화를 꺼리지만. 그렇기에 이 괴상한 아파트는 집에서 혼자 노는 걸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은 의외로 천국일 수도 있다. 이미 한 달 동안 살아남았으니까.

 오전 3시.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을 때, 오전 3시가 되기 전에 모든 준비를 마치기만 하면 된다.

…재깍…재깍…재깍….

…으. 뭐지. 내가 언제 잠이 들었지? 아직 정신을 잃을 시간이 아니었을건데? 창문을 바라보니, 언제 밝았냐는듯 다시 어두워져 있었다. 내가 얼마나 잔 거야?

“어?”

이해할 수가 없었다. 2시 55분. 어두운 것을 보아 지금은 오전 2시 55분이다. 내가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고, 알람조차 울리지 않았다. 아니면 못 들은 건가?

쨍그랑!

멍하니 시계만 바라보고 있다가 유리창 깨지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제야 들리지 않았던 비명과 절규가 들려옴을 깨달았다. 평소엔 규칙을 지키지 못한 한심한 사람들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내가 그 상황인 것을. 

‘도저히 안 되겠으면 오전 3시가 되기 전에 유리창을 깨고 추락사하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머릿속에 최후의 규칙이 지나갔다. 당연히 열리지 않는 베란다의 창문을 깨고 탈출하라는 뜻이 아니다. 일단 여기는 8층인 걸 둘째 치고, 저층이라도 살 가능성이 없다. 최후라는 단어 자체의 의미처럼 더 빨리 죽으라는 뜻일 것이다.

“아니야.”

아니야. 그냥 포기하고 죽으라고? 지랄하지 마. 난 아직 죽을 수 없어. 3시가 되기 전에 모든 걸 다 끝내면 되는 거야.

재빨리 욕실로 가서 물을 ‘묻힌다’라는 느낌으로 대충 씻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금요일? 금색 옷이었나? 아니 회색 옷? 매주 반복하던 건데 급하게 하려니 머리가 돌지 않는다. 남은 시간은 1분쯤. 아 그래. 쇠 금이니까 회색이지. 회색 옷을 뒤집혀 있든 말든, 일단 입기 시작했다.

“휴우.”

말리지도 않은 몸에 대충 뒤집어 입은 회색 옷을 입고 의자에 앉았다. 살면서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내가 규칙을 어긴 게 있나? 설마 오늘 있었던 일이 문제가 되었나? 옆집 남자 놈하고 이야기한 것? 아냐. 그랬다면 벌써 죽었을 텐데. 뭐가 문제지? 뭐가 달라졌지? 설마 음식에?

생각의 답을 찾기 전, 내 집 도어락을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삑. 삑. 삑.

문제가 없다면 열리지 않을 것이다. 어긴 건 없어. 몸도 씻었고 옷도 입었고 오전 3시가 되기 전에 다 끝냈어. 이번에 살아남는다면 시계를 더 달라고 해야겠다. 애써 태연한 척을 했지만, 식칼이 놓여 있는 싱크대를 힐끔힐끔 바라보며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다.

삑. 삑. 삑…띠리링!

몸이 먼저 움직였다. 문이 열리기 전에 재빨리 싱크대에 놓인 식칼을 들고 문을 겨눴다. 팔이 떨리긴 해도 곱게 죽을 생각은 없다.

덜컹!

“아.”

문이 열리고, 앞에 서 있는 게 누군지 본 순간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냥 베란다 밖으로 떨어져야 했어.’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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