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불법도박’ 李, ‘사과의 정석’이지만 ‘추가 의혹’은 어쩌나
’부인 허위경력 의혹’ 尹, ‘잘못된 행위’ 명시 안해
2021년 12월 16일은 현직 대통령과 유력 차기 대통령 후보들이 모두 고개를 숙인 날로 기록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는 이날 저마다 다른 이유로 국민 또는 지지자들에게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런데 이들의 사과는 제대로 전달됐을까?
‘공개 사과의 기술’을 쓴 미국 서던 오리건대 에드윈 바티스텔라 교수는 과거 조선비즈 인터뷰에서 “좋은 사과는 과정”이라며 “무엇을 잘못했는지 밝히고, 그 잘못에 대해 미안함을 전달하고 앞으로 무엇이 달라질지 전달해야 한다. 자신의 잘못을 수용하고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며, 피해자와 정상적인 관계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좋은 공개 사과가 갖출 요건을 ①사과하는 이의 미안한 감정 전달 ②특정한 규칙 위반 인정 및 그에 따른 비판 수용 ③잘못된 행위의 명시적 인정 및 자책 표시 ④앞으로의 바른 행동 약속 ⑤일정한 보상 혹은 대안 제시 등 5가지로 꼽았다.
문 대통령과 양대 정당 대선 후보의 사과는 바티스텔라 교수의 기준을 어느 정도 충족했을지 살펴봤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6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사회대전환위원회 출범식이 끝난 뒤 아들이 불법 도박을 했다는 의혹 보도와 관련해 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7일 정치권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전날 코로나19 확산세에 따라 방역조치를 강화한 것과 관련 “방역조치를 다시 강화하게 돼 국민께 송구스럽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단계적 일상회복 과정에서 위중증 환자의 증가를 억제하지 못했고 병상확보 등의 준비가 충분하지 못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강화한 방역조치 기간에 확실히 재정비해 상황을 최대한 안정시키고 일상 회복의 희망을 지속해 나가겠다”며 “코로나 상황을 예상하기 어렵고, 방역과 민생의 균형점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정부는 기민하게 대응하고 국민과 함께 인내심을 가지고 극복해 나가겠다”고 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을 통한 간접 사과였다.
문 대통령의 사과는 ②~⑤번 주요 요건을 형식적으로 다 갖췄다. 전문가 및 야당 등이 지적해온 ‘위중증 환자 증가를 억제하지 못했고 병상확보 등 준비가 충분하지 못했다’는 실책을 인정했고,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손실보상과 함께 방역 협조에 대해 최대한 두텁게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확정하여 신속하게 집행하겠다”는 보상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①번 조건은 충분히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형식이 직접 사과가 아닌 대변인을 통한 사과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미안한 감정을 전달하는 일이 ‘대변인’을 통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16일 서울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조치 강화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브리핑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방역조치를 다시 강화하게 돼 국민들께 송구스럽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이 후보는 아들의 불법 도박과 관련해 사과했다. 앞서 조선일보는 16일 ‘이 후보 아들로 추정되는 사람이 2019년 1월부터 2020년 7월까지 미국에 서버를 둔 온라인 포커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온라인 포커머니 구매·판매와 관련된 글을 100건 이상 올렸고, 수도권의 오프라인 도박장을 방문한 후기 형식의 글도 남겼다’고 전했다.
이 후보는 “언론보도에 나온 카드게임 사이트에 가입해 글을 올린 당사자는 제 아들이 맞다. 아들이 일정 기간 유혹에 빠졌던 모양”이라면서 “제 아들의 못난 행동에 대해 실망하셨을 분들께 아비로서 아들과 함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 “자식을 가르치는 부모 입장에서 참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로서 자식을 가르침에 부족함이 있었다”면서 “아들도 자신이 한 행동을 크게 반성하고 있다. 온당히 책임지는 자세가 그 괴로움을 더는 길이라고 잘 일러주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 치료도 받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 후보는 이날 오전 선대위를 통해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서 사과하고,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사회대전환위원회 출범식 후 기자들과 만나서도 질문을 받기 전 먼저 사과했다.
이날 이 후보의 사과는 공개 사과의 기술의 ‘정석’에 가까웠다. 이 후보가 직접 카메라 앞에 나서 사과의 뜻을 밝혔고(①), 언론이 지적한 아들의 문제 행동을 부분적으로 인정(②)했다. 다만, 불법도박 사이트를 ‘카드게임 사이트’라고 지칭해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또 “가르침에 부족함이 있었다”고 자신의 문제점도 인정(③)했고, 대안으로 아들의 도박 중독을 대비한 선제적 ‘치료’ 계획(④,⑤)도 밝혔다. 다만, 이 후보의 아들과 관련한 추가 의혹 보도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이 후보가 아들의 ‘불법 도박’ 관련 문제에 대해서만 언급한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한 화상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후보는 부인 김건희씨가 2007년 수원여대 겸임교수 초빙지원서에 허위경력을 기재했다는 논란과 관련해 “오래된 일이라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으나 결론이 어떻게 나든지, 국민 눈높이에 미흡하다는 점에 대해 저나 제 처(妻)나 국민께 늘 죄송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윤 후보는 다만 일각의 공식 사과 요구에 대해선 “내용이 조금 더 정확히 밝혀지면 ‘이러저러한 부분에 대해 인정한다’고 제대로 사과드려야지, 그냥 뭐 잘 모르면서 사과한다는 것도 조금 그렇지 않겠나”라고 했다. 이어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민주당에) 어떤 공세의 빌미라도 준 거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며 “저희가 조금 더 확인해보겠다. 하여튼 국민께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윤 후보는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간담회 후 만난 기자들이 ‘부인 김씨의 허위 이력 논란에 대해 대국민 사과 의향이 있는가’라고 묻자 이같이 답했다.
윤 후보의 발언은 사과하는 이의 미안한 감정 전달(①)을 제외한 나머지 요건(②~⑤)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특히 “어떤 공세의 빌미라도 준 거 자체가 잘못됐다”는 표현에선 김씨의 규칙 위반과 잘못된 행위(②, ③)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보인다. “겸임교수는 시간강사이고, 시간강사는 (대학이) 전공을 봐서 공개채용하는 것이 아니다. 외부강사는 학계에서 누가 추천하면 그냥 위촉하는 것이고, 공개채용에 필요한 자료를 (대학이) 받는 것도 아니다”라며 김씨를 감싼 윤 후보의 전날 발언의 연장선이고, 사과의 대상을 ‘국민’에서 ‘지지자’로 좁히는 발언이기도 하다.
윤 후보 발언을 사과가 아닌 ‘사과 예고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윤 후보가 “내용이 조금 더 정확히 밝혀지면 ‘이러저러한 부분에 대해 인정한다’고 제대로 사과드려야지, 그냥 뭐 잘 모르면서 사과한다는 것도 조금 그렇지 않겠나”라는 표현 때문이다. 윤 후보의 발언이 격식을 갖추기 보다는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나온 것도 이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
속뜻이 무엇이든, ‘좋은 사과’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이날 윤 후보의 발언은 김씨의 ‘허위경력’ 기재 논란을 가라앉히는데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실제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등은 이날 국민의힘 당사 앞 기자회견에서 “대학 시간강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윤 후보 발언을 들은 전국의 대학 강사들은 심한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윤 후보는 공개적으로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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