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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추억> : 불고기 아주 맛있었습니다~!

ㅇㅇ(113.147) 2019.12.03 22:53:29
조회 446 추천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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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vol2에 ECCO랑 함께 실려있는 타키모토 타츠히코의 단편

입대하기전에 책 사놓고 첫휴가 복귀 전날에 타이핑하면서 읽음
제목만보면 먹는거 얘기 위주로 할 줄 알았는데 걍 평범한 에세이네
고진호 작가 일러스트도 2페이지 있는데 정 궁금하면 사서보셈

1
 한국에 도착한 순간, 나는 김치 냄새에 휩싸였다.
 나는 언젠가 읽었던 적이 있는, 좋아하는 작가의 여행기를 떠올렸다.
 『어느 나라에나 그 나라의 독특한 냄새가 있다. 인도는 카레, 미국은 배기가스, 한국은 김치. 그리고 일본은 간장과 된장.』
 계속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최근 수년 간 슬럼프에 빠져있어서, 작가로 데뷔하고서 5년이 지난 지금도 소설을 고작 3권밖에 출판하지 못했다. 거의 작가실격 상태의 나였지만, 작가의 습성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잘 안다.
 작가는 거짓말쟁이다. 재미있는 문장을 쓰기 위해서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뻥을 친다. 그래서 한국이 김치냄새에 감싸여 있다는 말은 눈곱만큼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은 길을 걸어도, 호텔의 자기 방에서 잠을 자도, 어디에 가도 김치 냄새가 났다. 나는 격렬한 컬쳐 쇼크를 받았다.
 동시에 새로운 의문도 떠올랐다.
 즉―― "역시 일본도 간장 냄새가 나는 걸까?"
 2박3일의 한국여행을 끝내고 일본의 하네다 공항에 도착한 나는 된장&간장의 냄새를 기대하고, 가슴 가득히 숨을 들이마셨다.
 "……!"
 그리고 느끼는 위화감, 충격.
 확실히, 일본은, 특수한 냄새가 났다.
 강하고, 짙은, 이 냄새.
 이, 이건――!
 "간장이 아냐! 된장도 아니야. 이건……카, 카레다! 일본은 카레 냄새가 나! 일본은 카레였어!"
 나의 옆에서 걷고 있던 오타 카츠시 편집장은, "그렇군요, 어쩐지 카레 냄새가 나네요." 하며 흥미 없다는 듯 맞장구 쳤다. 나는 흥분해서 소리쳤다.
 "어느 사이에 일본은 인도가 되어버린 걸까요? 이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중대한 사태에요!"
 "그런 것보다 부탁드릴 게 있는데 말입니다. 타키모토 씨, 이번 한국여행기, 아주 재미있는 놈으로 하나 부탁드립니다."
 "어쩌면, 일본은 인도였는지도 몰라! 일본은 어느새 인도가 되어버린건가?"
 "정말로 부탁드리는 거라고요…. 마감은 꼭 지켜주세요."
 "……."
 편집장의 말에 강렬한 압박을 느끼고 가벼운 패닉 상태에 빠진 나는, "일본은 인도, 인도는 일본." 하고 중얼거리면서 재빠르게 전철에 뛰어올라 도망치듯이 집으로 돌아갔다.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가 푹 잤다.
 그리고 그 뒤에 나는 지인에게 한국의 기념품을 보내거다 다같이 유원지에 놀러 가거나 했다. 한국여행의 피로를 풀기 위해 한동안 빈둥빈둥 놀며 지냈다.
 이러니저러니 하며 보내는 동안,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달이 지났다.
 그리고 문득 정신이 들고 보니, 오늘은 한국여행기의 마감 당일이었다. 몰려오는 마감의 압박에 의해 가벼운 패닉에 빠진 나는, 김치와 카레 이야기를 대충 갈겨썼다.
 "그래, 한국은 김치, 일본은 카레. 일본 카레와 한국 김치는 맛있습니다, 둘 다 맛있는 음식입니다! 캅사이신이 혈액순환을 좋게 하니까, 김치를 먹으면 미용에 좋아서, 한국 여성은 모두 미인이었습니다!"
 아아….
 이번 한국여행은 기념할 만한 나의 첫 해외여행이었다.
 나는 이국(異國)에서 여러 가지 체험을 했다. 이 에세이에 써야할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도 어째서 나는 김치와 카레 이야기만 쓰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좀더 재미있는 문장을 쓸 수 없는 것일까?
 "……."
 물론 슬럼프 탓이다.
 이 지긋지긋한 중증의 슬럼프.
 일본에서는 나의 작가생명이 끝나가고 있다는 소문이 나있다.
 세간에 "타키모토는 이미 끝났지." 하는 소문이 잔뜩 퍼져 있는 모양이었다.
 사실 나는 이미 제대로 된 에세이 하나 쓸 수 없는 몸으로 전락해 있었다.
 그건 그렇고, 이 한국여행(방문)은 일본의 《파우스트》 편집부가 한국의 출판 상황을 시찰한다고 하는 취지의 여행(출장)이었다.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나 소설이 유행하고 있는 모양이다――그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기 위한 시찰여행(출장)에, 운 좋게 슬럼프 작가인 나도 슬쩍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해외여행으로 뇌를 자극해서 슬럼프 탈출의 계기로 삼아라!" 라고 하는, 오타 편집장으로부터의 따스한 격려 선물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생각했다. 어쨌든 이 좋은 기회를 절대로 헛되이 날려서는 안된다――!
 한 달 전의 그 날. 한국 김포공항에 도착한 나는, 편집부들 및 〈Fate/stay night〉와 〈공의 경계〉로 유명한 나스 기노코 선생님과 함께 재빨리 택시로 호텔로 향했고, 재빨리 카운터에서 체크인을 마치고, 재빨리 자신의 방에서 짐을 풀었다.
 그리고 호텔 주위를 배회할 결심을 했던 것이었다.
 처음으로 방문한 외국을 혼자서 터벅터벅 돌아다니며 취재하고, 뭔가 별난 것을 발견하고 이국정서의 묘사력을 손에 넣어 작가로서 레벨업해서 슬럼프에서 탈출한다――그것을 위해, 나는 굳게 결심하고 취재 겸 산책에 나섰던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그 성과를 보여야만 할 때다. 김치&카레의 얘기를 쓰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아까까지의 김치&카레 얘기는 기억에서 지워주기 바란다. 자아, 이제부터 나는 용기를 내서 취재의 결과를 재미있고 우습게 여기에 써나간다. 일본인의 눈으로 본 한국의 모습을 멋지게 묘사한다. 새로운 시점의 제공이야말로 에세이의 역할이며, 작가의 존재의의인 것이다.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 이 슬럼프에서 탈출하기 위해, 나는 나의 눈으로 보았던 한국의 모습을, 박진감 넘치는 필체로 여기에 써나간다!
 
2
 그러면…, 우선은 한국이라고 하면 역시 김치와 태권도다. 한국은 어디에 가도 김치 냄새가 난다. 끼니마다 반드시 김치가 나온다. 나는 한국의 공기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 김치를 덥석덥석 먹었다. 그러자 코가 익숙해져서 김치 냄새는 신경 쓰이지 않게 되었다. 캅사이신 덕분일까, 어쩐지 몸 상태도 좋아진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태권도, 언젠가 텔레비전으로 봤던 태권도는 아주 화려한 경기였다. 멋지다고 생각했다.
 또 무엇보다 특필해야만 할 것이, 한국다운 멋진 거리풍경이다. 한국의 거리에는 많은 건물이 서있다. 멋지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한글이 사용되고 있다. 그런 이유로 거리의 건물에는 한글로 된 간판이 걸려있다. 그처럼 한국의 거리풍경에는 일본과는 다른, 어떤 독특한 이국정서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이국정서에는 도저히 필설로 하기 힘든 무언가가 느껴졌다.
 게다가 놀랄만한 것이, 한국에는 한국어가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도, 모두, 한국인이었다. 한국에는 한국인이 많이 있었다.
 오오! 이 얼마나 강렬한 이국정서인가! 나는 "그렇구나, 이곳은 외국이었지…." 하는 이국정서를 깊이 음미했다. 음미하면서 뚜벅뚜벅 걸어갔다. 걸을 때마다, 필설로 하기 힘든 새로운 발견이 찾아왔다. 나는 필설로 하기 힘든 컬쳐 쇼크에 완전히 박살이 났다.
 '즉…한국은 필설로 하기 힘든 나라구나…."
 그런 깊은 감개를, 나는 이 취재 겸 산책으로 체득했더 ㄴ것이다.
 그리고 나는 문득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렸다.
 "아, 안 돼…. 쓸 수 없어. 재미있는 얘기를 쓸 수 없어. 이래서는 작가로서 살아갈 수 없어. 그렇지, 호텔로 돌아가서 낮잠을 자자."
 나는 호텔로 돌아갔다. 낮잠 자기 전에, 작가로서의 자신감을 되찾기 위해 인터넷에 자신의 서평을 찾아보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내 책을 칭찬하는 문장을 찾으며 몇 시간이고 읽는 것이 내 일과였다. 그것을 위해 일본에서 들고 왔던 노트북을, 나는 호텔 방의 LAN 케이블에 접속했다.
 "……?"
 그러나 아무리 조작해봐도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았다.
 고장 난 모양이다.
 나는 굳게 마음먹고 호텔의 카운터로 향했다.
 '그렇다, 이런 트러블이야말로 여행의 참 맛이다. 트러블은 재미있는 이야기의 원료다.'
 나는 일본어 이외에는 말할 수 없지만, 손짓발짓 섞어서 외국인과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고, 그러는 것으로 인간적으로 성장한다…. 그런 에피소드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호텔 직원에게 LAN케이블 수리를 의뢰했다. 얼마 안 있어 수리를 담당하는 여자―젊고 아름다운 미인이었다―가 내 방의 LAN설비를 매만져주었다. 이윽고 수리가 완료되고, 노트북은 순조롭게 인터넷에 연결되었다. 나는 감사의 말을 전하기 위해, 머릿속을 풀 회전시켜서 한글을 떠올리려고 했다.
 띠용! 떠올랐다. 이래뵈도 나는 한국 드라마를 많이 봤다. 한국 드라마로 익힌 한글이 지금 이 순간 빛을 발한다!
 나는 최고의 웃는 얼굴로 말했다.
 "サランヘヨ(사랑해요)."
 "……."
 여자는 나를 더러운 것을 보는 눈으로 흘끗 쳐다보았다.
 그리고 말없이 방에서 나갔다.
 몇 분후, 나는 잘못을 깨닫고 머리를 끌어안았다.
 "배용준 흉내를 내어 버릇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나는 대체 무슨 짓을…! 아아, 어떡하지? 나 때문에 일본인은 천박한 민족이라고 여겨질 거야. 그 때문에 일본과 한국의 관계가!"
 "타키모토 씨, 슬슬 사인회에 가실 시간입니다."
 "하지만 괜찮아! 어차피 나 같은 건 그냥 슬럼프 작가인데다 일본에서도 옛날에 끝장났으니까. 하물며 한국에서야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나 마찬가지야. 내가조 금 일본인을 수치스럽게 했더라도 별 문제 없어! 어차피 나 따위는 벌레 이하의 모래알이니까, 아무도 나 같은 것은 신경 안 쓸 거야!"
 "서두르세요, 슬슬 회장으로 출발 안 하면 제 시간에 도착 못한다고요."
 오타 편집장이 나를 재촉하고 있었다.
 나는 물었다.
 "회장? 사인회? 누구 말인가요?"
 "무슨 소리 하시는 겁니까, 당신의 사인회라고요."
 "하하하! 농담도 잘 하시네요! 일본에서조차 끝났다는 제가 한국에서 사인회를 열다니, 아무도 안 올 게 뻔하잖아요. 설령 온다고 해봤자, 많이 와봤자 다섯 명 정도일 겁니다. 게다가 그 중 네 사람은 가엾는 저에게 연민을 느낀 관계자일 거라고요. 나 남을 상처 입히는 농담은 하지 마세요!"
 "스케줄 표 보내드렸잖아요. 설마 당신, 안 읽었습니까? 대충대충도 적당히 좀 하세요. 놀러 온 것이 아니라고요. 뭐, 좋습니다. 자아 얼른 출발하죠. 당신의 〈NHK에 어서오세요!〉도 한국에서 번역 출판되어 있습니다. 나중에 서점을 돌아보면서 잘 팔리는지 보고 오자고요."
 "하하하! 무슨 말씀이십니까? 누가 제가 쓴 책 같은 것을 읽겠습니까? 만약 제 책이 출판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런 것은 금방 반품되어서 휴지로 쓰이게 될 거라고요! 어차피 저 같은 것은 모래알 속 벌레의 쓰레기벌레――."
 편집장은 엉뚱한 소리를 외치는 나를 택시에 밀어 넣고, SICAF라고 하는 애니메이션·만화·라이트 노벨의 전시장 같은 이벤트 회장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나는 한국판 《파우스트》를 출판하는 학산문화사 부스의 회의실에 처넣어졌다.
 "……."
 회의실에 들어오기 전에 흘끔흘끔 봤던 바로는, 확실히 한국에서는 애니메이션·만화·라이트 노벨이 대유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SICAF 회장은 대성황이었다. 젊고 멋진 많은 남녀가 즐겁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사인회…, 그런 것을 해봤자 분명히 다섯 명밖에 안 온다. 따라서 나는 이 넓은 회장에서, 홀로 의자에 우두커니 앉아서 모두에게 연민의 시선을 받는다. "뭐야 저거?" "글쎄. 잘 모르겠지만 사인하고 싶어 하는 모양이야." "뭐 하는 사람이야?" "잘 모르겠는데? 저런 대머리 일본인 따위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잖아. 그것보다 다른 부스 보러 가자." 라는 모두의 기이한 시선을 꾹 참고 견뎌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나의 가혹한 운명을 생각하면 스트레스로 위벽이 줄줄 녹고, 안 그래도 심한 약년성 탈모증이 점점 더 진행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 당장 이곳에서 도망 나가서, 비행기로 붕 하고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

 "하지만…." 나는 생각했다.
 머리를 끌어안으면서 생각했다.
 여기가 승부처다.
 모처럼 한국까지 왔다.
 더 이상,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물론, 아무도 오지 않는 사인회는 비참하고 괴롭고 슬프겠지.
 자신의 프라이드가 산산조각으로 박살나는, 죽는거나 마찬가지인 체험이 되겠지.
 그렇다고 해도… 더 이상,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생각해보면 실수뿐인 인생이었다.
 항상 나는, 계속 실수만 하고 있었다!
 
3

 어릴 적부터 항상 남의 눈이 신경 쓰였다. 일본인에게 흔한 자의식과잉이라는 것이다. 나는 주변사람들이 나를, '멋진' '재능 있는' '훌륭한 인간'으로 보아주기를 소망했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유소년기부터 운동신경이 둔하고, 키가 작고, 친구도 적고, 무엇을 하더라도 굼뜨기만 한 아이였다.
 그런 주제에 항상 주변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싶었다. 모두가 친절히 대해주기를 바랬다. 추켜 세워주기를 바랬다. 그 자의식과잉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정도가 심해질 뿐이었다.
 ――아아, 칭찬받고 싶어. 인정받고 싶어. 찬양받고 싶다! 그리고 그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나의 존재는 무의미해! 모두에게 칭찬받지 못하는 나 따위는, 최악의 인간쓰레기다!
 그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의 눈이 무서웠다. 사실은 무능한 나를 다른 사람이 알아차리는 것이 두려워서, 방 안에 틀어박혀서 잠만 자고 있었다. 얼마 안 있어 대학의 학점이 미달되었고, 나는 백수가 되었다. 백수인, 히키코모리인, 부모님의 돈으로 살아가는 니트족이 되었다. 방 안에 틀어박혀서 PC게임만 하고 있었다. 애니메이션과 만화에 정신이 팔린 채, 아르바이트도 하지않고 부모님의 돈으로 방만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디를 어떻게 봐도 나는 사회의 방해물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자신을 '사실은 재능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려 하고 있었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지만 나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 그 재능이 언젠가 세상에 꽃을 피워 모두에게 인정받는 인간이 된다. 눅눅한 이불 속에서 그런 꿈만 꾸고 있었다. 그러나 만약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나는 최악의 인간쓰레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만약 꿈이 이루어진 날에는, 나는 사상 최고의 천재임이 증명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천재'와 '인간쓰레기'. 이 두 개의 극단적인 자기상(自己像) 사이를  나는 초스피드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운명의 장난인지, 아주 잠깐 동안 나의 꿈은 이루어졌다. 나는 소설을 썼고, 그 소설이 출판되고, 그럭저럭 팔렸다. 나는 극도의 우울 상태에서 흥분 상태로 튀어 올랐다. 나는 생각했다. '역시 나는 천재였어! 역시 나는 신에게 선택받은 특별한 인간이었어! 그래, 나는 다른 일반인들과는 다른 스페셜한 인간이야. 앞으로도 걸작을 매년 10권씩 쓰고, 쓰고, 또 써서, 언젠가 노벨문학상을 타게 될 운명을 타고난 인간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들떠 올랐다.
 그러나 순조롭게 작가가 된 나는, 데뷔한지 단 반 년 만에 슬럼프에 빠졌다. 매일 생각하는 것은 '나 같은 인간쓰레기는 그냥 죽어버리는 게 나아.' '글을 쓸 수 없는 나는 밥벌레일 뿐이야.' '재능 없는 나는 이 세상에 필요 없는 모래알이야.' 등등.
 그래도 가끔씩 꽤 괜찮은 단편소설 따위를 집필하는데 성공하는 날도 있었고, 그때 나는 기뻐서 어찌할 줄 모르며 "역시 나는 천재야!" "나는 특별해!" "예술의 여신에게 사랑받는 슈퍼 크리에이터!" 라고 소리치면서 자신의 방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다가…, 춤을 추다가 지치고, 그리고 바닥에 주저앉고, 다시 글을 쓸 수 없게 되고, "나는 인간쓰레기야." 라고 힘없이 중얼거린다.
 그런 흥분과 우울을 반복하기를 5년.
 아무런 성장도 없이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기를 약 5년.
 '천재'와 '인간쓰레기', 그 두가지의 셀프 이미지가 빙글빙글 도는 동안 창작 에너지는 고갈되고 뇌가 슬럼프 상태로 굳어버려서, 이제는 진짜로 "이대로는 큰일이다.", "이런 일을 반복하고 있다보면, 얼마 안 있어 나는 재기불능이 되어버린다" 하고 깨달아가는 요즘….
 아아….
 사실은, 계속 알고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고 있었다.
 "……."
 나는 일어섰다.
 
***

 일어선 나에게 오타 편집장이 말했다.
 "슬슬 나갈 차례로군요. 긴장하고 계십니까? 안색이 창백한데요."
 "아뇨…. …괜찮습니다. 다섯 명밖에 안 와도 괜찮습니다."
 물론 공포가 떠나가지는 않았다.
 이윽고 시작될 비참한 사인회에 대한 공포는 여전히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 공포에 대한 방어벽으로서, 나는 나도 모르게 자신을'인간쓰레기'라고 생각해버리기로 했다. 그러나 그러기 직전에 망설인다.
 ――그래, 0이냐 100이냐 하는 극단적인 셀프 이미지, 그런 망상으로 자신을 속이며 자기애(自己愛)를 유지하는 행위는 이제 그만두자. 용기를 내라.
 용기를 내서, 후들거리는 발걸음으로 사인회 단상에 올라가라. 긴장한 나머지, 온몸이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지만 신경 쓰지 마라. 대머리를 감추기 위한 모자도 미련 없이 벗어버려라. 소심해서 회장으로 눈길을 돌려 사람들이 얼마나 왔는지도 확인하지 못하지만, 나는 그런 소심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무서워하고 떨고 겁먹고 있는, 조금 나약하고 조금 꼴사나운 평범한 인간. 이런 나의 존재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인다――그러니까, 먼저 심호흡을 해서 마음을 가라앉히자. 그리고 아주 약간 기분이 편해지면 고개를 들고 모인 사람들에게 인사를 해보자. 분명히 목소리는 떨리고 있겠지만, 인사말은 학산문화사의 편집장이 알려주셨다. 그러니까 갠찮아, 용기를 내고――
 "アンニョンハシムニカ(안녕하십니까)."
 조심조심 고개를 들고, 찾아오신 분들께 조용히 인사를 했다.
 사인회의 단상에서, 이국의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

 그리고 이벤트는 끝났다.
 밤이 되었다.
 사인회를 마치고 서점 순회를 끝낸 뒤, 기분 좋으 ㄴ피로감에 감싸인 나는 오타 편집장과 함께 호텔로 향하는 택시 안에 있었다.
 "타키모토 씨, 오늘은 피곤하시죠?"
 "예, 조금…. 하지만 그 이상으로 커다란 수확이 있었으니, 괜찮습니다."
 예에――간신히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의 제가 틀렸었다는 것을 간신히 깨달았습니다. 오늘 저는, 아주 조금이지만 자신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기분이 듭니다.
 감사합니다!한·일 《파우스트》 편집부 여러분, 한국의 팬 여러분,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제 책, 서점에 눈에 잘 띄는 곳에 진열되어 있었어요."
 "하하하, 잘된 일 아닙니까?"
 "…사인회도 이백 명은 왔었을 거예요."
 "정말로 열기가 넘치는 사인회였습니다. 정말 멋졌――"
 나는 편집장의 말을 막고,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외쳤다.
 "즉, 저는 역시 신(神)이었던 겁니다! 저는 신이었던 거예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래요, 저는 폐인이 아니었던 겁니다. 오히려 신 급의 슈퍼 크리에이터였던 겁니다! 천재였어요! 아싸, 저는 초천재였던 거에요―! 그러니까 슬럼프도 이제는 끝입니다! 신이라고 자각한 저에게 더 이상 무서울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하루에 2000페이지를 쓰겠습니다! 그리고 곧 국민영예상과 노벨문학상과 청년작문대상을 받을 겁니다! 와아~ 해냈다~, 슬럼프 탈출, 만세! 만세!
 
4

 그러나…, 일본으로 돌아온 나는 아니나 다를까, 슬럼프에 빠졌다.
 "……."
 한 줄도 문장을 쓸 수 없게 되었다.
 마감도 어기기 일쑤였다.
 아무래도 나는 신 급의 천재는 아닌모양이었다. 슬픈 일이었다.
 "……."
 역시 나는 최악의 인간쓰레기일까?
 물론, 그 정도로 구제불능도 아니었다.
 천재도 아니고, 쓰레기도 아니었다. 어느 쪽도 아닌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즉, 나는 한 사람의 인간에 지나지 않는 듯했다.
 "……."
 그러나 그것을 깨달아봤자 슬럼프는 끝나지 않는다.
 아직도 무엇을 써야 좋을지 모르겠다. 애초에 자신이 무엇을 쓰고 싶어서 소설가를 지향했는지조차 지금은 완전히 잊어버렸다.
 "……."
 하는 수 없이, 이 원고용지의 여백에 좋아하는 얘기를 적당히 써서 어물쩍 넘어가기로 한다. 남아 있는 공백에 머리에 떠오른 정경을 그대로 쓱쓱 휘갈겨서 이 한국여행기를 마무리하기로 한다.
 그것은 밤의 한국을 달리는 한대의 택시다.
 차 안에는, 한국인 운전수와, 일본인이 두 사람.
 일본인 중 한 명은 활동적이고 유능한 멋진 편집장. 그는 세계진출의 야망에 불타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의 일본인은 대머리다. 그는 자신을 천재라고 착각하고 있다.
 두 사람은 대화를 하고 있다.
 편집장이 말한다.
 "힘을 합쳐 세계진출에 힘써봅시다. 일본 문예도 슬슬 세계로 진출할 떄입니다, 힘을 냅시다, 돌파합시다!"
 대머리는 정신이 이상한 사람처럼 표정을 짓고서 실실 웃으며 말한다.
 "맡겨만 주세요. 저는 천재니까, 저의 소설은 바다를 넘고 산을 넘어 우주에 닿을 겁니다. 왜냐하면 저는 천재니까요."
 그리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요에 맞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택시 운전수.
 "흐으―흥, 흐으―흥, 해요―사랑해요―"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세 사람 모두 생각하는 것은 다르지만, 기분이 좋았다.
 대머리 작가도 점점 기분이 좋아져서, 나중에는 "흐으―흥, 흐으―흥" 하고 콧노래를 부른다. 그 멜로디는 일본의 엔카와 꼭 닮았다.
 대머리는 조금이지만 서정적인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 곧 여행은 끝난다.
 끝나기 전에, 이왕이면 조금 더 강한 서정을 맛보려고 대머리는 창 밖을 본다.
 밤거리에 천천히 흘러가는 네온사인은 전부 한글이라 알아볼 수 없었다.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축제 같다.
 그러나 축제는 아니다.
 축제 같은 것은, 없다.
 서정도 없다.
 시정도 없다.
 사실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도 귀에 맞지 않았다. 의미를 알 수 없다. 세계진출, 소설, 집필, 재능, 인생, 한국, 일본, 자신, 우주, 살아가는 목적, 살아있는 의미, 그리고 택시, サランヘヨ(사랑해요).
 "……."
 모두다 너무나 의미를 알 수 없는 것들이라, 대머리는 마음속으로 약간 웃는다.
 웃음이 계속해서 즐거운 기분을 불러일으켜서, 대머리는 서툰 중학생 수준 영어로 택시 운전수에게 말한다.
 "잇츠 어 나이스 송, 플리즈 볼륨 업"
 소설가는 거짓말쟁이다. 나이스 송? 그런 거짓말을 무엇을 위해 하지?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 조금이라도 재미있게 살아가기 위해. 사랑하지 않는 것을 사랑하기 위해.
 언젠가 거짓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그 언젠가 누군가를 향해서, 진실한 마음으로 "サランヘヨ(사랑해요)."라고 말하기 위해서――.
 택시는, 나를 태우고 달려갔다.
 강렬한 적색과 녹색과 깊은 어둠이 자아내는 이국의 길을, 나를 태우고 달려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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