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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스포) 유레카 후기

ㅇㅇ(124.50) 2023.12.06 00:56:59
조회 658 추천 13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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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졸면서 봤다 퀄 기대하지 마라 나도 내가 뭔 개소리 한 지 모르겠음...

굳이 올리는 이유는 굳이 감상 정리하겠다고 이 병신같은 글 두 시간 쳐 잡고 있던 게 아쉬워서..




최근 모종의 기회로 영화 촬영을 도우며 깨닫게 된 점은, 영화에서 샷과 샷을 잇는, 아주 기본적인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점이었다. 그 샷을 조금 더 온전히 잇기 위해, 더 잘 잇기 위해,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와 조금 더 합응하도록 잇기 위해서 스토리보드를 수정하고, 삼각대를 옮기고, 높이를 조정하고, 렌즈를 바꾸고, 줌을 당겼다가 풀었다가, 포커스 아웃과 딥 포커스를 오가다가, 심지어는 소품들의 위치까지 조정해 가며 찍는 그 일련의 과정들을 경험하고 나니, 영화의 샷은 얼마나 자연스러움을 위해 스스로를 부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끄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밖에 없었다. 한편, 이 모든 과정이 샷과 샷의 연결에 있어 자연스러움을 추구하기 위한 일이라면 뒤집어서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샷과 샷의 연결이 자연스럽지 않으면 왜 안 되는가?



그 이유는 아마 샷과 샷의 연결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때 관객의 감정 이입이 방해받지 않을 수 있고, 나아가서 더 큰 규모의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관객은 영화관에 입장할 때 평소에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그대로 가지고 영화를 바라보게 되며, 따라서 영화도 그 일반적인 세계관을 방해하지 않도록 지켜야 할 일종의 규약을 지니게 된다. 예를 들어, 같은 배우가 완전히 서로 다른 두 명의 인물로 등장할 수 없다. 아예 달라 보이는 분장을 하거나, 또는 아주 닮았다거나 쌍둥이라거나 하는 설정이라면 모를까. 또, 영화 속의 세계는 선형적이어야 한다.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선형적이다라는 어휘를 썼지만, 단순하게 이런 생각이다. 카메라가 잠시 집 밖을 비췄다가 다시 집 안을 비출 때, 방금 전까지 집 안에 있떤 인물이 사라져 버리면 당연히 어색하지 않은가? 영화를 볼 때 관객들은 카메라가 미처 비추지 못하는 공간에도 자연스러운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유레카>는 이게 무너지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정확히 느낀 시점은 <유레카>의 2부, 황폐화된 미국 원주민 보호구역 내부에서 일하는 여성 경찰관이 찾으려 했던 총격전의 범인들을 찾지 못하자 그 다음 씬에서 자신마저 실종되고 마는 순간이었다. <유레카>가 담고 있는 세계의 선형성이 순간 깨져버린 것이다. 그녀가 찾아갔던 카지노 옆 호텔에서 일어난 총격전이라는 사건도, 그녀가 경찰차에 태우고 있던 남녀도, 그리고 그녀와 같이 살고 있던 원주민 농구 교사와 그녀의 관계성도 전부 함께 그 장면을 기점으로 일순 영화에서 소거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1부의 짧은 흑백 서부극에서 '대령'이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기억은 신뢰할 수 없죠." 과연 그들이 정말로 존재하기는 했던 건지 관객의 기억조차 신뢰할 수 없는 순간이다.(결코 내가 전까지 졸면서 보다가 이 순간 잠이 확 달아나서 느낀 감상만은 아니라고 믿는다.)



리산드로 알론소의 영화를 아직 <리버풀>, <도원경>, <유레카>의 세 편밖에 보지 못하였지만, 공통점을 찾아본다면 이 영화는 전부 로드 무비의 형식을 띠며, 특히 근작 <도원경>과 <유레카>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찾는 이야기가 반복된다는 것을 들고 싶다. <도원경>에서 아버지 군나르가 딸 잉게보르를 찾아 헤메는 과정은 영화의 주요 동력이지만, 결코 해결되지 못하는 동력이다. 심지어 영화는 그 마지막을 딸이 아버지로부터 시간을 뛰어넘어 도착한 유일한 사물인 병정 인형을 연못에 집어 던지는 장면으로 마무리하기까지 한다. <유레카>의 1부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버지 비고 모텐슨은 딸을 찾아 헤메지만 딸은 돌아가지 않겠다며 아버지에게 총을 마주 겨눈다. 이런 매정한 동작은 어찌 보면 영화적 관습에 대한 저항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리산드로 알론소 감독은 서방 세계의 영화 관습에 반대하여, 잃어버린 대상을 결코 찾지 못하는, 더 나아가서 영화 스스로 자꾸 사라지면서 결말로 나아가는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게 아닐까?



원주민 노인이 건넨 차를 마시고 한 마리의 새로 변한 농구 교사는 과거의 아메리카 대륙으로 향한다. 여기서 많이 비논리적일 지라도, 이 장면을 보이는 대로보다는 조금 다르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교사가 새로 변했다고 확신할 수 있다면 그 증거는 시간의 선형성일 것이다. 그러나 원주민 노인은 말한다. "시간보다는 공간을 봐야 해." 2부에서 갑작스럽게 일어난 변화들- 1부에서 2부로의 전환과 경찰이 사라지는 장면은 시간의 선형성 혹은 샷과 샷 사이 연결의 선형성을 오히려 어기고 침해하는 방향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새의 등장은 그 반대로 선형성에 합응하는 형태로 교사의 사라짐과 이어져 교사의 변모로 해석된다면 좀 이상하지 않을까? 교사는 사라졌고 새는 그 자리를 대체했을 뿐이다. 현실의 무게를 짊어진 인물은 사라졌고 시간을 넘나드는 새라는 기호만이 남아, 의미가 덧붙여지기 전의 원시의 아메리카 대륙으로 향했다고 보는 편이 더 나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꿈으로 암시되는 3부의 배경이 리산드로 알론소 감독이 태어나기 직전인 1974년 말인 것은 우연일까.



3부의 원주민은 서로 꿈을 공유하는 부족에서 살다가 꿈의 내용이 겹치자 같은 부족민을 살해하고 도망친다. 그가 향한 곳은 사금 채굴장이었고, 자신 몫의 사금을 탐내는 이들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채굴장에서 벗어나려 하다가 오히려 함정에 빠져 자신의 모든 짐과 사금을 빼앗기고 만다. 그러나 오히려 몸만 남은 그는 마치 다시 세례라도 받듯이 원주민 노파의 손길에 따라 온 몸엔 오일이 발라지며 평안을 되찾은 듯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그는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시작해 다시 아무것도 없는 위치까지 되돌아 온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어떻게 원주민이 꿈을 꾸지 못하게 되었고, 어떻게 탐욕을 꿈꾸다가 착취를 당했는지. 원주민이 사라진 그곳에는 그 증거품처럼 칼만이 남는다. 원주민이 칼로 변한 게 아니라, 원주민이 사라지고 칼만이 남은 것이다. 교사가 사라지고 새가 그 자리를 대체했듯이. 이 엔딩은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착취받았던 원주민들의 해방처럼 받아들여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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