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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라노벨 쓴거 평까점

수강신청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03.15 00:14:43
조회 268 추천 0 댓글 10
														

(대충 작가 - 편집자 이야기임 )



"듄 씨."


조금은 어린 듯 한 여성의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왜인지는 알고 있다. 앞으로 무슨 말이 나올지도 아주 잘 알고 있고.


"이 부분 좀 봐 주시겠어요?"


지금 내 눈 앞에는 검은 단발의 소녀가 내 원고를 톡톡 두드리고 있다. 이름은 리스테. 예전에 내 편집장을 맡았던 닥종이 아저씨의 딸아이다. 닥종이 아저씨가 사라진 이후로 리스테는 편집자 일을 대신 맡게 되었다. 나이 차는 얼마 나지 않지만, 지금은 완전히 비즈니스적으로 상하 관계가 되어 버린 셈이다.


"또 왜..."


이젠 대꾸할 기운도 없다. 나는 여섯 시간 째 앉아 있던 책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나쁜 자세에 짓눌려 있던 허리 디스크 하나하나가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으으윽! 아아아악!"


냉담했던 리스테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짙은 남색의 눈동자가 걱정하는 빛을 띄었다.


"그러니까 허리 똑바로 펴고 앉으라고 했잖아요! 작가 수명을 깎아먹는 제 1 요인이 건강인 거.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들으시겠냐고요!"


"네가 이런 식으로 들들 볶지만 않으면 10년은 더 늘어날걸?"


"저도 어쩔 수 없어요. 작가님을 그냥 놔두면 둘 중 하나가 될 게 뻔한걸요. 영원히 휴재에 들어가던가, 아니면 내용이 산으로 가서 있는 욕 없는 욕 다 먹던가."


"그럼 나는 영원히 휴재하는 쪽."


"헛소리하지 마세요!"


실컷 혼자 열을 내던 리스테가 원고의 왼쪽 아래를 짚었다.


"어쨌든, 이번에 고쳐야 할 건 이 부분이에요."


"그래. 문제가 있긴 하네. 조금 있다가 고칠게."


"적어도 보고 나서나 말씀을 하시죠?"


대충 고개만 끄덕이면 좀 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예전의 귀여운 여동생 같았던 리스테가 아니다. 신인 편집자 리스테다.

그리고 이 신인 편집자께서는, 날이 갈수록 깐깐해지신다.


"..."


"어때요. 수정할 부분이 잔뜩 보이죠? 당장이라도 다 고쳐버리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죠?"


"잘 모르겠는데."


그렇게 한 줄 한 줄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내 눈앞에 들이대도,

글자 속에서 허우적대다 지친 지금의 나로서는 단 한 글자도 제대로 읽을 수가 없다.


"조금 쉬면 보이지 않을까."


"아니요."


거절도 한층 더 매몰차졌다.


"글자가 안 보이신다면 제가 일일히 읽어 드릴게요. 제가 다 도와드릴 테니까, 듄 씨는 일만 하세요."


듄 씨. 듄 오빠가 아니라 듄 씨. 씁쓸하다. 전에는 정말로 친했었는데. 귀엽고 소심하던 리스테는 편집자 자리를 맡게 된 이후로 완전히 변해 버렸다.


'연하의 히로인에서 전임 편집자를 뛰어넘는 괴물로 각성해 버렸어...'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웠던 리스테의 웃음은 살벌한 미소로 바뀌어 버린 지 오래였다.

리스테가 내 원고를 책상 위에 돌려 놓았다.


"그럼, 다시 시작해 볼까요?"


'탕!'


원고가 내려친 건 책상이었지만, 충격을 입은 것은 내 멘탈이었다.

여섯 시간 째 연속 집필에 계속되는 퇴짜까지. 더는 견딜 수가 없다.

나는 책상에 얼굴을 그대로 기대고서 엎드려 버렸다.


"리스테...살려줘..."


"아무도 죽이지 않아요 작가님. 제가 지켜 드릴게요. 작가님은 일만 하시면 돼요."


리스테의 마지막 목소리가 머릿속에 남아 계속 메아리쳤다.


"작가님은 일만 하시면 돼요."



일만 하시면 돼요.


하시면 돼요.


...하시면...



"으아아아아악ㅡ!"


이제는 놀라지도 않는다. 내가 갑작스럽게 비명을 질렀는데도,

리스테는 표정 하나 깜짝하지 않고서 고칠 부분을 계속 읊었다.


"아. 이 부분도 좀 고치셔야 할 것 같아요. '나는 드디어 1조 규모의 길드에 스카우트되었다.' ...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나요?

이 세상 모든 돈을 다 긁어 모아도 그 정도는 안 나온다고요."


"그거야 현실 속 얘기겠지. 이 글은 판타지야, 판타지. 마법 기술이 엄청나게 발달해서 은화 같은 건 쓰지도 않아. 대신 특수하게 제작된 종이나 플라스틱 조각을 화폐로 사용한다고."


전문 분야에 대해 말하다 보니 말문이 트였다. 머릿속도 확 맑아진 것 같고.

나는 몸을 일으켜 열변을 토했다.


"그래서 편리한 화폐 기술을 바탕으로 경제 규모가 커지고!

물가도 오르고! 1조 규모의 길드도 나올 수 있는 거야! 개연성에 어디가 문제가 있어. 전혀! 전혀 문제 없는데?"


"...작가님. 일단 흥분 좀 가라앉히시고요."


완전히 사무적인 말투다.


그래도 한때는 오빠라는 소리를 들었었는데.

닥종이 아저씨의 '한 문단 쓸 때마다 한 입씩 먹을 수 있다' 는 단식 집필 강행군에 갇혀 있을 때,

용돈 주면서 몰래 야식 심부름도 시키고 그랬었는데.


이제는...끝이다.


히로인 같은 건 없다.

지금 내 눈 앞에는, 사적인 감정 따위는 전혀 없는,

프로페셔널 편집자가 있을 뿐이다.


"...작가님."


"네?"


그 프로의 기운에 완전히 찌그러지고 말았다. 존댓말이라니. 아무리 한 글자 뿐이었고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던 거라지만,

네 살이나 차이 나는 애한테 이제는 존댓말이라니.

"판타지 소설이 대중적으로 읽힐 수 있는 건 그 허구성 때문이 아니에요.

판타지 소설의 허구적 배경은, 독자들이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는 '현실적 부분'을 돋보이게 해 줄 장치일 뿐이죠."


"그게 무슨 소리야. 판타지면 판타지지. 상상 속 이야기를 쓰는 거라고."


리스테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그게 아니라는 거에요. 모든 소설에는 독자들의 공감과 몰입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이 있어야만 해요.

그게 없다면, 아무도 읽지 않게 되겠죠. 더 나아가서 그 부분을 얼마나 살려 내고 강조했느냐가 작품의 경쟁력이고요.

판타지 역시 마찬가지에요. 그리고 판타지 소설의 장르적 강점은 공감과 몰입을 가능하게 하는 그 소재를,

돋보이게 해 줄 허구적 배경이고요."


열의에 찬 짙은 남색 눈동자 한 쌍이 내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현실적인 것들 중에서 나머지를 전부 쳐내면, 보여주고자 하는 걸 더 잘 보여줄 수 있게 되지 않겠어요?"


"...으응."


완전히 설득당해 버렸다. 이렇게 언변이 좋은 애가 아니었는데.

오히려 소심하다면 소심했던 리스테가 대체 어떻게 이렇게까지 진화한 거지?


"듄 씨. 듣고 있어요?"


"듣고 있어."


ㅡ 인수인계를 얼마나 잘 해 놓은 거야. 닥종이 아저씨는.


책상 위로 몸을 숙이고 내 앞까지 바짝 다가왔던 리스테는, 다시 뒤로 물러나 원고를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 다시 작품으로 돌아가서, '주인공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최고의 길드에 들어갔다.' ... 이 부분에서만큼은 특히 독자들의 공감을 살 수 있어야 해요. 그 동안 밑바닥 생활을 해 왔던 주인공이 능력을 제대로 인정받는 중요한 순간이니까요.

세계관이 어떻고 그쪽 경제 규모가 어떻든, 작품의 심장을 '1조 규모'라는 말로 해치는 건 편집자로서 반대에요."


말을 마친 리스테가 의기양양하게 이쪽을 바라보았다.


"반박할 게 있으면 해 보세요."


"..."


"없죠? 없죠? 그럼 다시 일 시작!"


털썩.


그 지긋지긋한 원고가 다시 내 앞으로 돌아왔다.


리스테. 내 편집자인 닥종이 아저씨의 딸이자, 짙은 남색의 눈에 검은 단발을 가진 소심한 소녀.

판타지 소설 작가인 나와는, 궁합도 안 본다는 네 살 차이다. 게다가 웃을 때는 정말 숨이 멎을 정도로 예쁘고.

한때는 정말 친했었는데. 언뜻언뜻 설레는 분위기가 흐르기도 했었는데. 그랬었는데.


이제 그런 건,


"전부 소용 없어졌어..."





한참 후. 나는 펜을 내려놓았다. 종이의 여백에 잉크가 번졌다.


"이제는 도저히 안 되겠어. 휴재 공지를 띄우자."


'콩!'


리스테가 내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그런 말 하면 아빠가 저기 있는 부지깽이로 한대 치랬어요. 제가 많이 봐 줘서 꿀밤 한 대로 끝난 거니까 정신 차려요."





'사락.'


집필에 집중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나는 펜을 내려놓고 기지개를 폈다.

창 밖에는 어느 순간부터 포근한 눈보라가 치고 있었다.

입자가 큰 함박눈이 아름답고 불규칙한 곡선을 그리며 오래도록 밤하늘 위에 머무르는 그런 눈보라.


너무 오래 감상에 젖어 있던 모양이다.

내 옆으로 다가온 리스테가 책상을 탕 쳤다.


"집중하세요 집중. 마감 시간이 세 시간밖에 안 남았다고요!"


그렇게 말해도 이미 반 쯤 의식이 죽어 버렸다.

나는 의자에 앉은 채 몸을 비틀었다.


"이제 더는 글이 안 나온다고. 창작의 샘이 메말랐어."


"...작가가 가장 창의적인 결과물을 낼 때가 어떤 때인지 알아요?"


"실컷 쉬고 나서 책상 앞에 앉았을 때가 아닐까."


리스테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아니죠. 작가들이 최고의 결과물을 내는 건 자유롭게 여행하고, 휴식하고, 행복할 때가 아니에요. 바로 방 안에 갇혀서 쥐어짜일 때죠. 지금같은 상황 말이에요. 반복되는 일상과 격리되어 그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거라는 절망감이 창작자들을 절박하게 만드는 거에요."


"그건 형사기관에서 억지로 자백을 받아내는 기술이잖아. 불합리하다고."


"응용할 가치는 충분해요."


하루 종일 언어를 너무 많이 썼다. 더 이상 대꾸할 말도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책상에 푹 엎드려 버렸다.


"알았어. 대신 배고파."


"기다려요. 간단하게 토스트라도 해 올 테니까. 대신 여기까지 원고 채워 놓으세요. 못 채우면 밥 안 줄 거에요."


리스테가 뒤편의 부엌으로 사라졌다. 사실 별로 배고프진 않다. 휴식 시간을 벌었다. 나는 또 창 밖의 눈보라로 시선을 돌렸다.


"왜 사람들이 내 글을 좋아하는 걸까."


찬 기운이 뺨에 스며들었다. 바깥의 거센 눈발은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마치 꿈 안에 있는 것처럼.


...그래.


이 모든 일의 발단은, 다름 아닌 [꿈 일기]였다.



'의식은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되, 몸만 천천히 꿈 속으로 빠트린다.'


1년 전의 나는 자각몽이라는 것에 한창 빠져 있었다.

자각몽이란 것은 말 그대로다.

자신이 꿈 속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꿈이다.


'호흡을 천천히 늘어뜨리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힘을 서서히 뺀다.'


단순히 꿈이라는 걸 자각하는 것 뿐만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 대목이다. 놀라운 일은 이곳이 꿈의 세계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서 벌어진다. 내가 세계를 마음껏 다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절세의 미인과 연애를 한다거나, 귀족이 된다거나, 아니면 세계 멸망이라던지 고성 탐험 같은 흥미로운 사건을 연출할 수도 있다.


'머릿속에 익숙한 풍경을 떠올리고...그리고 나서 문을...'


'으으.'


졸음이 덮쳐왔다. 기껏 잡아 놓은 가상의 이미지가 잘게 흩어졌다.

또 실패다.


나는 자각몽에 몹시 흥미가 동했지만 언제나 이 단계에서 졸음을 참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자각몽의 입구에도 가지 못한 채 매번 잠들어 버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꾸는 꿈은 흥미로웠지만, 그 꿈을 내 마음대로 다룰 수는 없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어.'


그 생각 아래 나는 자각몽을 다룬 전문적인 서적을 뒤지기 시작했다.자각몽을 꾸는 방법은 한 가지 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이전까지 시도해 왔던 것은 가장 기본적인 방법으로,

몸을 편안하게 이완시켜서 무의식 중에 자각몽의 세계로 빠져드는 원리였다.


나는 새로 알게 된 다른 방법을 채택했다.

꿈을 기록하고 기억해서, 의식적으로 지금이 꿈인 것을 자각하는 것이다.


책에서는 그것을 [꿈 일기]라고 불렀다.


자각몽에는 다가서지 못했지만, 그 시간 동안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일기장에 쌓여 갔다.

어느 날의 꿈은 특히 흥미로웠다. 나는 그걸 받아 적었고, 일기는 우연한 계기로 퍼졌다.


이상한 망상글이나 쓴다며 나를 놀리던 여동생이 내 일기를 훔쳐 가서 지 친구들과 돌려 본 게 화근이었다.


"오빠. 이거 다음 편은 없는 거야?"


소설이 아니라 꿈을 옮겨 적은 것 뿐이었는데.

완전히 오해를 받아 버렸다.


왜 남의 일기를 함부로 돌려 보느냐,는

짜증과 함께 힘껏 해명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여자애들의 입소문은 정말로 빨랐다.

내가 쓴 '소설'에 대한 이야기는 온 동네로 퍼졌고,

사건이 일어난 지 반 나절 만에 동네 인쇄소의 닥종이 씨가 출판 제의를 해 왔다.




"하아..."


그때 거절했다면 지금 이렇게 쥐어짜이지는 않을 텐데.

예상보다 책이 너무 잘 나갔다.


나는 사람들이 대충 실망하겠거니, 하고 내 나름대로 쓴 2권을 내놓았고,

전혀 꿈을 참고하지 않은 2권의 반응은...


"듄! 책이 미친 듯이 팔려 나가고 있어! 귀족들의 후원 제의도 들어왔다. 하하하, 우린 이제 부자야 리스테!"


"듄 오빠. 사실은 천재였던 거 아니에요?"


반응은 1편보다도 훨씬 좋았다.

책의 제목은 '3스타 길드와 내가 지배하는 자본의 정글'.

줄여서 [자본정글].


내 글이 온 나라에 퍼졌다. 귀족들이 출판사와 나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쉽게 돈을 번다고 생각했다. 마치 복권에 당첨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꿈 일기도 꿈 일기지만, 평소에도 재미 삼아 글을 적어 왔었다. 지금까지 취미로 써 왔던 글이 이렇게까지 돈이 되다니.


그래. 그때는 전혀 몰랐던 거지.

나는 돈에 눈이 멀어 평범한 행복을 팔았던 것이다.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고.


"뭐야. 하나도 안 썼잖아요!"


빵과 소세지를 책상에 내려놓은 리스테가 확 역정을 냈다. 나는 책상에 엎어져 흘러내렸다.


"나 힘들어. 살려줘..."


"약속대로 밥은 없어요. 자! 빨리 작업 해요!"


"정말로?"


"네. 진짜 없어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리스테는 음식을 내 앞으로 밀어 놓았다.


"...지금이라도 빨리 써요."


닥종이 씨였다면 정말로 안 줬을 것이다. 아직도 기억 난다. 밤늦게 마감했을 때. 내가 목표를 채우지 못하자, 그 아저씨는 혼자 통닭에 맥주까지 다 먹었다. 닭다리를 한번에 두 개씩 뜯으면서. 내 앞에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일단 먹으면서 해요. 다 식는다고요."


그에 비해 리스테는 정말로 다정했다. 알아채리지 못했는데, 나는 꽤 배고픈 상태였다. 접시는 순식간에 비어 버렸다. 리스테가 빈 접시를 치우고 내 손에 펜을 쥐어 주었다.


"식사 끝. 마감 시작. 마감까지 1시간 반 남았어요."


다시 작업 시작이다.

이 순간이야말로, 그 동안 닥종이 아저씨 밑에서 갈고 닦았던 트릭을 꺼낼 때였다.


...!


나는 펜을 똑바로 쥐고 엄청난 속도로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창작의 신이 강림한 게 아니다. 그냥 아무 말이나 쓰고 있는 거다. 대충 편집자가 마음에 들 만한 부분을 골라서 휘갈기면 이후의 검수에서 중간 점수는 받을 수 있다. 나는 영혼 없이 글자 수를 채워 나갔다. 지금의 작업은 집필이라기보다는 쓰레기 생산이라고 불러야 맞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하아. 흥미를 끄는 장치만 잔뜩 있지 내용이 없잖아요, 내용이."


처참한 실패였다. 원고를 받아 든 리스테가 책상을 톡 톡 두드리며 한숨을 지었다. 내 완벽한 트릭을 어떻게 알아챈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닥종이 시절엔 이렇게 넘어갈 수 있었는데.


"오늘은 공지를 올려야겠네요. 이런 건 출판 못 해요."


리스테의 얼굴이 굳었다. 나도 마음이 편한 건 아니지만, 일단 몸이라도 편해야지.


"미안."


어찌 되었건 정해진 기간에 연재를 못 하게 되었다. 작가로서 치명적인 실수다. 그치만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는 게 맞는 것 아닐까? 우선 한 숨 자고 나서 생각해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나는 재빨리 외투를 챙겨 입고 문고리로 달려갔다.


- 탈출이다!


'철컹.'


문은 여전히 잠겨 있었다. 아주 굳게 닫혀서, 온 힘을 주어도 꼼짝도 안 했다. 차가운 표정을 한 리스테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듄 씨. 헛된 꿈에서 빨리 깨시죠. 제가 올린 건 휴재 공지가 아니라 지각 공지에요. [자본정글]은 내일 아침에 연재될 거에요."


눈보라보다도 더 냉혹한 현실이 내 귓가에 휘몰아쳤다.


말도 안 돼.


내가 잠긴 문 앞에 멍하니 서 있는 사이 그 지긋지긋한 원고가 다시 내 손으로 돌아왔다.


"추가 시간을 6시간이나 벌었으니까 빨리 일 해요."


"뭐라고? 잠도 안 재우냐? 이런 건 노동 착취야!"


"똑바로 했으면 이런 일 없잖아요. 자업자득입니다."


끔찍한 세상을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나는 얼굴을 손으로 덮고 비명을 질렀다.

작가들의 영원한 숙적, 미완성의 원고가 내 품 안에서 팔락였다.


"아악!"


"아아아아아악!"


"빨리 책상에 앉으세요!"



'이건...꿈이야. 다 거짓말이라고.'



"........."




나는 휘청이며 일어났다.


"...하아암... 수고하셨어요. 이제 가 보셔도 돼요."


잠옷 차림의 리스테가 작업의 끝을 알렸다.


"하얗게...불태웠어..."


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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