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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13권 에필로그

여갤러(14.33) 2024.05.02 18:03:03
조회 363 추천 3 댓글 1
														

에필로그  



“── 리온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네, 오늘은 여기까지!”

  책장으로 둘러싸인 방에는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그런 방에서 의자에 앉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던 것은 커다란 배를 가진 노엘이었다.

  노엘의 주변에는 모두 리온의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그 중 한 남자아이가 노엘의 옷을 잡고 잡아당긴다.

 “노엘 엄마, 그다음은? 아빠는 그 후 어떻게 되었어요?”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있던 것은 리비아가 쓴 리온의 활약상을 정리한 영웅담이었다.

  리온을 닮은 금발머리 소년도 노엘에게 계속 이야기를 요구한다.

 “아빠의 활약상을 더 듣고 싶어요.”

 노엘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앞에 두고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책을 책꽂이에 돌려놓으며 이제 그만 끝내자고 재촉한다.

 “이제 늦었으니까 오늘은 여기까지만 읽고 자렴.그리고 미안해.이 책의 뒷부분은 아직 안 끝났어.”

 아이들이 “어~”하고 불평하는 소리를 낸다.

  세로로 말아 올린 머리를 한 여자아이가 노엘의 다리에 매달렸다.

 “왜 안 써주시는 거예요.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노엘은 웃으며 글을 쓰지 않는 이유를 알려준다.

 “아직 못 썼어요.”

 노엘이 아이들을 보면 이미 졸린 듯이 잠든 아이들이 있다.

  안제를 닮은 여자아이는 졸린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 손은 잠든 남자아이의 옷을 잡고 있었다.

  리온과 분위기가 비슷한 남자아이는 바닥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아이들은 졸리지 않다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자고 한다.

 “써주세요~”

 노엘은 아이들에게 “그건 불가능해”라고 말한다.

 “조금만 더 기다려요.아빠의 대모험은 이제부터 시작이야.

 그게 끝나면 리비아 엄마가 다시 책으로 정리해 줄 거야.

 다 쓰고 나면 가장 먼저 너희들에게 들려줄게.”

 분홍색 머리의 소녀는 인공지능인 팩트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

  바닥에 뒹굴고 있는 팩트가 그 자세 그대로 아이들에게 주의를 준다.

 “얘들아. 수면 시간의 감소는 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자, 자자.”

 잔소리를 하는 팩트에게 아이들은 놀아주기가 부족했던 모양이다.

 일제히 팩트에게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팩트가 화났어~”

 “굴려봐~”

 “야, 그만해! “나한테 기대어 자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거야? 그래, 너희들 평가를 하향 조정할 거야!”

  그 전쟁으로 사라진 줄 알았던 인공지능들, 하지만 어이없게도 예비품에게 데이터를 옮겨 생존하고 있었다.

  지금은 왕국을 뒤에서 든든하게 받쳐주는 인류의 든든한 조력자들이다.

  단, 지원까지만 가능하다.

  국가 운영에 크게 관여하게 하지는 않았다.

  이유는 리온이 싫어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싶었던 안제가 아무리 설득하고 허락을 구해도 이 부분만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리온은 “가능한 한 사람의 힘으로 열심히 하고 싶다”며 양보하지 않았다.

  결국 안제가 포기하고 리온의 방침을 따랐다.

  다만 노엘은 처음부터 리온의 생각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효율성을 생각하면 인공지능에 의존하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가능한 한 자신들의 힘으로 발전하는 것이 더 건전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봐, 팩트에게 장난치지 마. 다들 빨리 자지 않으면 아빠한테 혼날 거야.”

 아이들이 일제히 대답한다.

 “네~”

 그러자 옆으로 포니테일을 한 검은 머리의 여자아이가 노엘을 향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노엘이 소녀의 눈높이까지 쪼그리고 앉아 눈을 마주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엄마.저기요, 저기요! 아빠는 언제 돌아오세요?”

  노엘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에 웃음을 터뜨린다.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떠난 리온이 언제 돌아올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마 본인조차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쨌든 힘든 건 이제부터다.

 “자, 언제가 될까요? 나도 몰라. 하지만 여름이 되면 긴 휴가가 있을 테니 한 번쯤은 돌아올 거라고 생각해요.”



한때 리온이 소유하고 있던 부동섬은 재개발이 진행 중이었다.

  전쟁을 위해 개조된 땅은 지금은 푸르른 풍경이 펼쳐져 있다.

  현재도 왕국의 관리 하에 있지만, 리온이 개인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자들을 가둬둘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런 떠다니는 섬에 마리에 일행의 모습이 있었다.

  농사일을 하는 로봇들을 바라보며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마리에가 땀에 젖은 이마를 수건으로 닦았다.

 “아~ 땀을 많이 흘렸어.오늘 마실 맥주는 분명 특별하겠지!”

  해가 뜨기 전부터 저녁에 마실 맥주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마리에를 발견한 카라와 카일이 급히 달려온다.

  카라는 어린 아이를 업고 있었다.

 “마리에님! 너무 무모한 짓은 하지 마세요!”

  카일도 당황하고 있다.

  어린 아이는 아직 어리지만 키가 커져 카라보다 더 커져 있었다.

  반 엘프이지만 엘프의 특징이 드러나면서 단정한 얼굴의 미남이 되었다.

  성격도 어렸을 때보다 둥글둥글해졌지만 크게 변한 것 같지는 않다.

 “주인님! 그런 몸으로 돌아다니지 마세요!”

  현재 마리에가 임신 중이라 배도 크게 부풀어 있었다.

 “싫어요.

 나는 땀을 흘리고 맥주를 마신다.

 더 이상 자중지란은 하지 않을 거야!”

  카라는 불평하는 마리에의 팔을 잡고 억지로 끌어당겼다.

 “그 몸으로 무슨 생각으로 술을 마실 생각이에요! 빨리 돌아가야 해요!”

  이전보다 더 예민해졌지만, 여전히 마리에의 곁에서 돌봐주고 있었다.

 “난 술이 마시고 싶어요!!!”

  카라가 안고 있는 아이는 손가락을 빨고 있었다.

  그 아이는 진한 파란색 머리를 하고 있었고, 율리우스를 닮았다.

  시끄럽게 떠드는 세 사람에게 다가온 것은 떠다니는 섬으로 돌아온 질크였다.

  가죽 여행 가방을 들고 나타난 그는 마리에 일행에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술이 마시고 싶은 마리에 씨에게 희소식입니다. 제가 특별한 홍차를 가져왔어요.”

 질크의 홍차라는 말에 카라가 귀찮아하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준비할 테니 질크 씨는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카일도 질크에게 냉랭한 태도를 취한다.

 “제발, 자신이 내어주는 차가 맛이 없다는 걸 깨달으면 어떄?”

  카일은 한결 부드러워졌지만, 다섯 바보에 대해서는 여전히 냉정하다.

  현재도 다섯 바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두 사람의 반응에 질크는 어깨를 으쓱했다.

 “여러분께는 너무 고상하게 보였나요?”

 그런 와중에 마리에가 질크가 들고 있는 가죽 가방을 보고 얼굴을 붉혔다.

 “질크.......그, 그 차 세트 가방, 본 적이 없는데?”

  자세히 보니 새 가방이다.

  질크는 어떻게 알아챘을까 싶을 정도로 신기해했다.

 “이거예요? 여기 오기 전에 왕도(王都)에서 발견해서 구입해 왔어요.

 이렇게 예쁜 물건이  싸게 파는 줄 알고 샀어요.”

 마리에가 그 말을 듣고 발을 헛디디자, 카일이 즉시 지탱해준다.

 “주인님, 괜찮아요!질크 씨가 자작으로 복귀했으니 돈은 조금 여유가 있답니다!”

  그래도 마리에가 울음을 터뜨린다.

  왜냐하면──모두가 귀족으로 복귀했지만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낭비하지 않겠다고 말했잖아!”

  빚을 지고 있는 상대는 리온이라기보다는 재정을 쥐고 있는 안제다.

  리온처럼 달콤하지도 않고, 이자도 꼬박꼬박 챙긴다.

  다섯 바보가 변함없이 낭비하는 것은 아니다.

  빌린 금액도 상식적인 범위 내이며, 그 이유도 업무상 필요한 것들뿐이다.

  하지만 일반 가정의 상식과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마리에로서는 엄청난 액수의 빚이다.

  그런 마리에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질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대답한다.

 “헛된 것이 아닙니다.

 어쨌든 80만 디아를 주고 구입한 차 세트니까요.

 고대 유적에서 발굴된 귀중품이니까요.”

 80만 - 일본 엔으로 환산하면 8천 만.

  그 말을 들은 마리에가 배를 움켜쥔다.

 “ 아, 안 돼요.저택으로 돌아가서 낳아야 해요.”

 이미 여러 번 출산을 경험한 마리에가 침착한 모습이었다.

  카일이 다급하게 달려온다.

 “의사님! 의사님! “

질크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했다.

 “저,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선은 차를 준비해야죠......아니, 마리에 씨를 병원으로 데려가는 게 우선이네요!”

  당황한 질크가 가방을 떨어뜨려 안에 들어 있던 80만 디아로 구입한 차 세트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를 들은 마리에에겐 피가 거꾸로 솟구쳤다.

 “아이고........! 팔십만 디아아! 하핫!”

 절규한 마리에가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질크가 마리에를 껴안았다.

 “마리에 씨, 정신 차리세요!”

  카라는 질크에게 차가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당신이 마리에 님에게 제동을 걸었잖아요? 왜 항상 속아 넘어가세요? 바보같이 싼 티세트를 고급품이라고 속여 얼마나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세요? 제발 좀 감정가로서 치명적으로 감각이 없다는 걸 자각해 주실래요?”

  무자비한 카라에게 궁지에 몰린 질크는 겁에 질린 채 사과를 한다.

 “죄송합니다.”

 그런 질크에게 카라는 쓸모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도와주게 한다.

 “반성했으면 바로 저택으로 돌아가서 물을 끓여주세요. 자, 뛰어!”

 “ㄴ, 네!”

  질크가 저택으로 향하자 카라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리에 님, 정신 차리세요.”

 눈을 뜬 마리에가 먼 곳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지만, 그 얼굴에는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오빠한테 연락해서 생활비를 받아야 해요.

 후훗, 또 갚기 전에 선불로 빌려서 빚이 늘어날 거야.

 또 안젤리카들에게 혼날 거예요.”

 “마리에님, 힘내세요! 괜찮아요.

 질크 씨의 이름을 말하면 알아차릴 테니까요.아마 그럴 거예요! 아마!”

  마리에가 중얼거린다.

 “오빠가 보고 싶어.......”

볼데노와 성마법 제국은 호르파트 왕국에 패배한 후 한 가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또 기계들이 철탑을 세우고 있어.”

 “으스스하네.”

 “왕국에 졌어.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제국의 수도를 비롯해 많은 도시에 철탑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가로등 역할을 맡은 철탑이지만, 패전 후 세워진 탓에 제국 백성들의 평판은 좋지 않았다.

  수도를 걷던 핀은 철탑을 올려다본다.

 “저 녀석이 하고 싶었던 것이 설마 이것일 줄은 몰랐어.”

 제국의 백성들이 불만을 품고 있는 철탑은 리온의 발상으로 마련된 것이었다.

  핀의 팔에 자신의 팔을 감고 있는 미아가 그 철탑을 올려다보며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기사님.결국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웠던 걸까요?”

 하늘 아래에서 미아는 예전처럼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다만, 그것이 가능한 것은 리온이 준비한 가로등이 있는 지역에서만 가능했다.

  가로등은 빛뿐만 아니라 마소를 방출하는 기능도 갖추고 있었다.

  제국의 백성들은 신인류의 피가 강해 대기 중 마소가 희박해지면 만족스럽게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리온은 제국을 멸망시킬 생각은 없었다.

  다만 제국의 백성들이 하늘 아래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가장 친한 친구를 믿지 못했던 핀은 미아의 말에 자신의 실수를 후회한다.

  미아의 말에 핀은 미간을 찌푸리며 잃어버린 동료를 떠올렸다.

 “그 녀석을 좀 더 믿어줄 수 있었다면, 나는 쿠로스케를 잃지 않았을지도 몰라.

 애초에 전쟁도 피할 수 있었을 텐데.”

 “기사님.”

 생각에 잠긴 핀을 미아가 껴안는다.

 “그때는 아무도 이런 미래를 예측할 수 없었어요.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그리고 미아도 많은 폐를 끼쳤어요.”

 전쟁이 끝난 후 핀과 미아는 그 책임을 묻지 않았다.

  모든 책임은 모리츠가 짊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핀과 미아는 기사와 황족의 지위를 버리고 일반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핀은 미아를 슬프게 해서는 안 된다며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언제까지 기사님이라고 부를 거야? 난 이제 기사가 아니야.”

 “하지만 그래도 기사님은 여전히 미아의 기사님이야.”

 핀은 고개를 떨구는 미아의 머리에 손을 얹어 쓰다듬어 주었다.

 “그럼 언젠가 이름을 불러줘.”

 “ㄴ, 네!”

  제국에서 두 사람은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

    세상은 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걸까?  호르파트 왕국에서 멀리 떨어진 사막의 나라 오시아스 왕국에서 나는 마리에의 간절한 근황이 적힌 메일을 확인하고 있었다.

  내 왼쪽 어깨 부근에 떠 있는 엘리시온이 일부러 나를 위해 프린트해 준 메일의 내용은 비참함 그 자체였다.

  건물 옥상에서 바람을 맞으며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몸무게가 나가는 마리에에게 피해를 준다니, 역시 질크는 웃을 수 없는 쓰레기다.”

 그런 쓰레기라도 나에겐 생명의 은인이다.

  제국과의 전투에서 질크가 없었다면 나는 죽었을 것이다.

  중요한 장면에서는 활약하지만 평소에는 웃지 못할 쓰레기라는 것은 플러스 마이너스로 말하면 제로? 아니, 약간 마이너스?  생명의 은인이라는 사실만 아니었다면 격리시켰을 텐데 아쉽다.

  엘리시온이 내 의견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그의 행동이 눈에 거슬려서 삭제합시다.”

 “험한 말 하지 마.”

 “그럼 비밀리에 삭제하라는 뜻인가요? 네, 알겠습니다.

 조만간 질크는 병사 처리하겠습니다.”

 “내 발언을 곡해하지 마라! 질크는 방치 - 그것도 안 되니까 노엘에게 부탁해서 설교를 하는 건가? 안제는 국정에 바쁠 것 같고, 더 이상 귀찮게 할 수 없어.”

 왕국에 두고 온 안제와 노엘을 떠올리면 눈물이 난다.

  왜 나는 이국땅에 와 있는 걸까?  더 나아가 왜 교사가 된 것일까? 라고.

  내가 있는 곳은 사막의 나라 오시아스 왕국의 학교다.

  무엇이 그리도 슬퍼서 호르파트 왕국의 왕까지 올라간 내가 이국의 땅에서 교사가 되어야만 하는가?  그것은 이 땅이 그 여성향 게임의 네 번째 작품의 무대이기 때문이다.

  신분을 숨기고 교사로 학교에 잠입해 네 번째 작품의 등장인물들을 지켜보고 있는 셈이다.

  엘리시온이 빨간 렌즈를 세 번 깜빡였다.

 “올리비아님으로부터 영상이 도착했습니다.

 재생합니다.”

 “

리비아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내 눈앞에 엘리시온이 투사한 영상이 재생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부엌이 비추이자 앞치마를 두른 리비아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리온 씨.오늘 요리는 생선 요리니까 빨리 돌아와 주세요.

 늦을 것 같으면 연락해 주세요.꼭 연락해 주세요..”

  생선 요리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다는 호소였다.

  웃음이 절로 나오는 내용에 당황스러웠던 내 얼굴도 어느새 풀리고 있었다.

  마지막에 다시 한 번 강조할 때 묘하게 진지한 표정을 짓는 것이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정말 좋네.

 혼자서 근무하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사실 아이들과 함께 성장 과정을 지켜보고 싶었는데.”

 “아이들의 성장 기록을 확인하시겠습니까?”

  “집에 가면 확인해볼까?”

 “맡겨주세요.”

 그 여성향 게임의 나쁜 결말을 피하기 위해서라고는 해도, 혼자서 근무하는 것은 힘들었을 것이다.

  리비아가 곁에 있어 주는 것은 기쁘지만,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힘들다.

  아니, 아이들이 많은 것이 문제지만........  엘리시온은 어딘가 납득이 가지 않는 듯했다.

 “그래도 올리비아님의 동영상이 궁금해요.

 마스터에게 못을 박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요.”

 “귀엽네.”

 “이걸 귀엽다고 말할 수 있는 마스터의 그릇의 크기! 엘리시온은 감탄했습니다.”

 「── 넌 매번 반응이 너무 과장되어 있어.

 혹시 나를 바보로 보는 건 아니겠지?”

 “아니요.엘리시온은 마스터가 최고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아, 그렇군.”

  비꼬는 루크시온보다 솔직한 것은 좋지만, 엘리시온은 반응이 너무 과장돼서 오히려 바보 취급을 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니, 착한 아이야.

  엘리시온은 착한 아이지만....... 문제도 많다.

 “아, 그리고 롤랜드인데, 무사히 퇴원했다고 하네요.”

 “아, 그래.

 왕좌에서 물러난 롤랜드였지만, 은거 중에도 그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가택연금 상태였던 부동섬을 수십 번이나 빠져나왔다.

  대도시로 나가서 호객행위를 반복하며 많은 여성과 관계를 맺었다.

  이 정도만 들으면 화가 났지만, 너무 방탕한 행태에 연행된 롤랜드를 쫓아다니던 여성들이 화를 냈다는 후일담이 있다.

 “또 한 번 칼에 찔려서 입원하지 않겠어?”

  그 롤랜드가 여성에게 칼에 찔려 입원했다.

  다시 한 번 칼에 찔렸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큰 소리로 말한 나에게 엘리시온이 묻는다.

 “롤랜드가 칼에 찔려 의식을 잃었다고 보고했을 때, 마스터는 걱정하고 계셨죠? 롤랜드의 안부를 여러 번 확인했고,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말을 듣고는 분명히 안도하고 계셨어요.그런데 또다시 칼에 찔린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순수한 의문으로 묻는 엘리시온에게 나는 얼굴을 돌렸다.

  ”물론 처음에는 놀라고 걱정했어.

  나는 롤랜드가 싫지만, 나 역시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입장이다.

  칼에 찔렸다는 얘기는 남의 일이 아니다.

 “자, 나도 언제 칼에 찔려도 이상하지 않은 입장이니까요.”

 “안심하세요.

 마스터를 찌르려는 자는 이 엘리시온이 존재 자체를 말소하겠습니다.”

 “정말 할 것 같아서 무섭다.

 나에 대한 감정이 너무 무거워.”

 엘리시온의 반응에 당황한 그는 다시 롤랜드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그보다 마스터님은 롤랜드의 이야기를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래, 나도 아내가 많으니까.”

 스스로 말하면서도 엉터리 발언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지만, 이것만은 어쩔 수 없다.

  지금부터 한 사람으로 좁히면, 그거야말로 칼을 들고 나오는 사람들이 나올 것 같다.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곳까지 왔다.

  후회는 없다.

 하지만 반성은 하고 있다.

  내가 조금만 더 능숙하게 대처했더라면 이런 끔찍한 결말은 맞이하지 않았을 텐데.

 “마스터와 롤랜드는 상황이 다릅니다.

 원하신다면 지금 당장 처분해드리겠습니다.”

 “그만해! 롤랜드를 죽이면 안 돼!”

 확실히 미웠고, 칼에 찔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살짝 웃긴 했지만 말이야!  죽이면 안 되잖아! “

마스터의 롤랜드에 대한 감정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죽었으면 좋겠는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는가?”

 “죽었으면 좋겠는데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

 “── 이 건은 보류하겠습니다.”

 엘리시온이 빨간 렌즈로 뒤를 돌아보며 그대로 광학 위장을 하고 사라졌다.

  학교 건물 옥상에 누군가 올라오는 기척이 느껴진다.

  계단을 오르고, 문을 열고 옥상으로 올라오는 것은 남학생이다.

  참고로 내가 교사로 잠입한 학교는 남학교다.

  꿈도 희망도 없는데, 그런 말을 하면 아내들이 한꺼번에 혼쭐이 나기 때문에 절대 입에 담을 수 없지만 말이다.

  옥상에 올라온 남학생인데 남자치고는 날씬한 편이었다.

  중성적인 얼굴로 나를 발견하고 미소를 지었다.

 “또 여기 계셨어요, 리온 선생님?”

  상당히 반가워하는 남학생에게 나는 교사답지 않은 말투로 대했다.

 “옥상이 좋아서 말이야. 그보다 무슨 볼일이라도 있어?”

  용건을 묻자 그 남학생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금세 표정을 풀었다.

 “다음 수업은 리온 선생님이 맡으시거든요. 지각하지 말라고 부르러 왔어요.”

 기쁜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남학생은 사실 그 소녀 게임 네 번째 작품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남장하고 남학교에 입학했다는 설정인 것 같은데...... 무슨 일로 남학교에 잠입을 시도하는 걸까?  에리카로부터 얻은 정보도 적고, 지난번보다 단서가 적은 상황이다.

  내가 일부러 사막의 나라에 와서 교사를 하고 있는 것도 현지에서 엘리시온과 함께 조사를 하기 위해서다.

 “그럼 교실로 가볼까요?”

 키가 큰 채로 학교 건물 안으로 돌아온 나는 남학생──주인공과 이야기를 나눈다.

 “아~아, 수업 같은 건 하기 싫어~”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나요?”

 주인공은 당황했지만, 내 이야기가 재미있었는지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그렇게 하는 동안 교실 앞에 도착했다.

  교실 안으로 들어가자, 불량배 같은 녀석들이 지긋이 쳐다본다.

  내가 부담임을 맡고 있는 반인데, 이 학교에서도 문제아들이 모여 있는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네 번째 작품도 상당히 설정이 꽉 찬 이야기인 것 같다.

  주인공이 자리에 앉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차임벨이 울리고 나서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이 중에 주인공의 상대가 될 공략 대상 남학생들이 있을 것 같지만, 아쉽게도 아직 특정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현재로서는 모두 후보군인 셈이다.

 “모두 모인 것 같아서 다행이다.”

 내가 세상을 구한다는 것은 지금도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다른 적임자가 없으니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저승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루크시온과 웃으며 재회하기 위해서다.

  네 마스터가 세상을 구했다는 자랑거리라도 하나 만들어 주고 싶지 않겠어?  그러니 이번에도 구해 주자고.

 “그럼, 수업을 시작할까?”

 그때까지 몇 번이나 더 세상을 구해야 하는 걸까.

  정말이지── 이 여성향 게임의 세계는 나에게 가혹한 세계다.


오역 알아서 거르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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