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푼 미스라 루틸 미틸 피가로 레녹스 SS

ㅇㅇ · 2021.01.06 00:27:53

미치루의 집은 남쪽 나라의 마을에 있다.
북쪽 마법사 미스라가 처음 미치루의 집에 왔다. 미스라가 오는 날, 루치루는 기분이 좋았다. 

집을 청소하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하고, 꽃도 장식했다. 마음이 내키면 바로 정원에서 바베큐도 할 수 있도록 준비해두었다. 

미치루는 그게 마음에 안 들었다. 미스라는 엄마의 친구인 모양이지만, 북쪽 마법사다. 북쪽 마법사는 심술궃고 오만하다고 들었다. 

북쪽 마법사랑 사이좋게 지내는 일 따위 하고 싶지 않았다.

기분이 별로인 미치루는, 누군가 그 마음을 눈치채주길 바랐다. 낡은 의자에 앉아서 지루한 듯 볼을 부풀려본다. 
루치루는 바빠서 이를 눈치채지 못한다. 그 즐거워보이는 기색에 미치루는 우울해진다. 

레녹스가 찾아와선 방안을 들여다 봤다.

"미스라가 온다면서. 간식이야."
"고맙습니다"

레녹스는 훈제한 소세지와 치즈를 주었다. 레녹스가 시간을 잔뜩 들여서 만든 훈제 음식을 미치루는 정말 좋아했다. 

와아, 하면서 소리치며 살짝 춤추고 싶은 마음을 참고서 우울하게 한숨을 쉰다.

레녹스는 눈썹을 세우곤 걱정된다는 듯 미치루의 얼굴을 들여다 봤다.

"배가 아픈 건가"

그렇지 않다. 이것은 먹을 수 있고, 먹고 싶다. 하지만 그게 어려운 사정이 있는 것이다.

미치루가 좀처럼 잘 답을 못 하고 있으니 레녹스는 마음대로 납득하곤 웃었다.
"잘 됐어. 피가로 선생님이 슬슬 올 시간이다. 진찰 봐 달라고 해"
"아......"

훈제한 소세지와 치즈를 미치루로부터 빼앗고서 레녹스는 루치루에게 이를 건네주러 갔다.

미치루가 뭔가 말하려고 하니 루치루는 바쁜듯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온다. 

"미치루, 배가 아프다고? 눈치 못 채줘서 미안해. 방에서 자고 있을래?"

자신과 아주 닮은 루치루의 눈동자는 반짝이며 맑았다. 

별 것도 아닌 일로 미치루가 삐져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하고 있다.

루치루는 오늘을 굉장히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형을 보고 있으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할게요"

미치루는 작게 끄덕였다. 루치루는 미치루의 방에 와선, 베개 맡에 따뜻한 허브티를 두고 가 주었다.

훈제 치즈의 냄새를 잊을 수 없었던 미치루는, 기도하듯이 피가로의 방문을 기다렸다. 
미치루가 기분 상해하고 있는 것을, 피가로라면 눈치채 줄 것이다. 

형이나 아버지한테 말하지 못할 법한, 정말 살짝 열등하거나, 살짝 어둡고, 숨기고 싶은 것을, 피가로는 항상 발견해 주었다.

"미치루, 배 아프다면서?"

방문을 연 피가로를 올려다보며 "살짝" 이라고 미치루는 답했다. 그 순간, 피가로는 복통이 없다는 것을 이해한 모양이다. 

문진도 진찰도 안 하고선, 침대에 앉는다.

"엄청 진수성찬이네. 미스라는 잘 먹으니까, 루치루가 열심히 한 거겠지. 상냥한 아이네"
"네..."

피가로는 웃으며 미치루를 내려다 보았다. 긴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응석을 받아주듯이, 미치루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진다.

"치렛타가 죽고서, 선생님이 죽고서, 루치루는 부모님 몫까지 열심히 하면서 너를 키워왔어. 처음으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서 기쁜 거야"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니... 피가로 선생님이나 레노씨도 있는데"
"그거랑은 또 다르지"

"어째서인가요. 저는... 저는 북쪽 마법사 따위보다, 피가로 선생님이나 레노 씨가 훨씬 좋아요. 훨씬 신뢰할 수 있어요"
"하하, 그래?"
"네. ...형님은 그 녀석을, 이렇게 환영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말 못하고 있던 본심이 나왔다.
피가로는 눈썹을 세우곤, 달콤한 쓴웃음을 띄운다. 놀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미치루는 부끄러워졌다. 너무 어린애같았을 지도 모른다.

"뭔가요, 피가로 선생님.."

"아니야. 그래도, 그렇네... 미스라는 변덕쟁이니까..."
"변덕쟁이니까?"
"안 올지도 몰라"

뭐 그런 녀석이 다 있나. 입을 떡 벌리고선 미치루는 질려버렸다.
피가로의 예감은 적중했다. 예정했던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미스라는 찾아오지 않았다. 맑았던 하늘도 흐려져오고, 바베큐 도구 위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창문에서 밖을 보니, 당황하며 루치루가 땔깜을 정리하고 있다.

그 등이 외로워보였다. 
루치루는 밝고, 다정하다. 미치루가 자랑하는 형이다. 그런 그가 울적해보이게 아래를 보고있다. 작게 어깨를 움츠리면서, 한숨을 쉬고 있다.

'최악이야. 그런 녀석. 엄마랑 아는 사이라는 것도 거짓말일지도 모른다고'

위로하고 있는 모양인지, 레녹스나 피가로가 정원의 루치루에게 말을 걸고 있다. 나도 가서 같이 위로해야지. 

그렇게 생각하곤 미치루는 방을 뛰쳐나갔다.

"형님!"
"아루시무"

눈 앞에 나타난, 장신의 남자의 등에 시야가 가려졌다.
빨간 머리의 남자는 뒤돌아서선 미치루를 내려다 봤다.

자신의 집에 이 사람이 있다는 것이 실감이 안 날 정도로, 불온하고 또렷한 존재감이 있는 인물...

북쪽 마법사 미스라다.
그는 정장을 입고,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미스라 씨, 멋있어..!"

바로 방금까지도 한숨을 쉬고 있던 루치루가 감격하며 큰 소리를 낸다.

"무슨 일이야 미스라. 한껏 빼입고선"
"쌍둥이가 그랬어요. 홈 파티에 초대받았으니까. 클로에도 와서, 몇번이고 옷을 갈아입는 사이에, 시간을 잊어서.."

미스라는 말을 하면서 집을 둘러보았다. 구석구석 빤히 남의 집을 쳐다보다니, 실례인 녀석이다. 

볼을 부풀린 미치루는 이윽고 미스라가 뭘 하고 있었던 건지 알게 되었다.
그는 치렛타의 흔적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미스라는 벽에 장식해둔 꽃 자수에 시선을 멈추었다. 

루치루가 태어났을 때 엄마가 장식해둔 것이다. 잘 만들어진 자수여서, 맘에 든 물건이라고 말했었다.

그 자수를 쳐다보는 시선에, 틀림없이 분명, 엄마의 친구인 거라고 미치루는 생각했다.

미치루에게 있어서 미스라는 갑자기 나타난 부외자이지만, 미스라한테 있어서는 루치루나 미치루 쪽이, 갑자기 나타난 부외자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꽃다발을 갖고서 나타나 주었다. 그런데도 차가운 태도를 취한다면, 자신 쪽이 성격 나쁜 북쪽 마법사다.

"어서오세요, 미스라 씨"

미스라를 올려다보고서는, 미치루는 인사했다. 하아, 라고 미스라는 적당히 대답한다. 루치루는 기쁜듯이, 미치루에게 다가왔다. "미치루, 배가 나았구나. 레노 씨의 훈제 치즈, 남겨두길 잘했어"

"아하하, 형님, 먹어버리려고 했던 거에요?" "뭔가요, 훈제 치즈라니. 그거, 맛있는 겁니까?" "응. 자신작이다" "자, 손을 씻고, 자리에 앉고, 식사를 하자"

미치루의 등을 톡 치고선 피가로가 말했다.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미치루는 살짝 부끄럽다.

하지만, 지금은 미스라를 향해 미소짓는 루치루를 보고 "짜증나" 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눈치채고 보니, 비도 그쳤다. 그들의 신기한 만남을 축복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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