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마이너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번역] 소설핫산) 투명하게 흐려지는 - 前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12 23:30:27
조회 1920 추천 24 댓글 6
														

글자수 문제로 분할


번역기


15155자


원본


기억상실 / 연애


viewimage.php?id=3dafdf2ce0d12cab76&no=24b0d769e1d32ca73de983fa11d02831c6c0b61130e4349ff064c41af1d8cfaa7bc90ab6ee250a394179b720ead539827202d8521e11076451498fea9f75298241021174


어느 날, 선생님이 기억상실에 걸렸다.

모든 것을 잊어버린 그의 쓸쓸한 미소에 카스미자와 미유는 예전의 고독했던 자신의 모습을 겹쳐본다.


「저는 당신을 기억하겠어요.」

「몇 번이나 세상이 흐려진다 해도, 반드시.」


기억상실에 걸린 선생님과 카스미자와 미유의 추억과 가을 이야기.



――



여름은 지나간다.


우리는 혼자 살 수 없다.

그것은 사회적 지위, 생활 수준, 생명 활동 같은 것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마음이 고독하면 살 수 없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우리가 마음이 있다고 해도.

그 조각을 누군가의 마음속에 묻어두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기억됨으로써 살아간다.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정착함으로써 살아간다.

비록 지금 자신 옆에 아무도 없다 하더라도. 어딘가 먼 곳이라도 좋다. 누군가가 자신을 기억해주고, 생각해주고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고독의 진창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고독했다. 혼자였다.

아무래도 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에 머무른다는 게 실로 서투른 모양이라.

항상 누구의 마음에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 사람, 선생님을 만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처음으로 마음에 머무르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선생님의 마음 속에는 많은 학생이 있는 듯했다.

누구나 강렬하고 선명한 색으로 그의 마음을 물들였다.

나는 그런 색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 가득 마음을 두고 갔다. 두면 둘수록 내 몸은 가벼워지는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이곳이 내가 살아갈 곳이라고 정의했으니까.


그렇다면 그 마음이, 설 장소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맡긴 자신과 함께 선생님조차 없게 된다면.

나는 정말로 텅 비어서. 이번에야말로 속절없이 혼자가 되는 걸까.

투명함의 저편으로 사라지는 자신에게 손을 뻗어 잡는 것은 이루어질까.

하지만. 이전 선생님이라 불렸던 사람은 나보다 훨씬 고독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


꽤 오랫동안 잠들어있던 것처럼 느껴졌다. 하늘은 여전히 푸른 채였고 석양에 물드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직감보다는 오래 잠들지 않았다. 아마도.

잠이 덜 깬 채로 머리를 흔들어 위에 올라탄 나뭇잎을 떨어뜨린다. 머리카락에 엉킨 게 여러 장, 별다른 감정 없이 손가락으로 집는다. 노란 낙엽색으로 물든 잎사귀, 늦가을은 아직 이르지만 아무래도 이 잎사귀는 조금 일찍 끝을 맞이한 듯하다. 「단풍은 완만히 진행되고 있습니다」라며 하품을 눌러 죽인 듯한 목소리로 말한 크로노스의 일기 예보를 오늘 아침 라디오에서 들은 것 같다. 나는 하품을 눌러 죽이지 못했고 아직 꿈결이었기 때문에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미야코쨩이라면 기억하고 있을까.

거기까지 생각하고 마른 잎을 든 채로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손가락을 떼고 낙엽색의 그것이 팔랑팔랑 떨어지는 걸 멍하니 바라본다. 땅에 떨어져 다른 낙엽들과 분간할 수 없을 때쯤, 나는 그것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고 있었다.

오늘은 훈련도 없었기에 언젠가 선생님과 찾아간 저격 훈련에 사용했던 장소를 목적지로 산책을 하고 있었다. 도착한 후에는 그대로 푹 잠들어 버린 것 같다. 울퉁불퉁해진 콘크리트 때문에 조금은 등이 아팠다.

아무런 말없이 한참을 돌아오지 않았으니 다들 걱정하고 있을까, 거기까지 생각하고 분명 내가 없어진 걸 눈치채진 못했을 거라며 시원스레 결론내린 나의 뇌수를 조금은 섭섭하게 느낀다. 정말로 연락이 오지 않았다면 기분은 밑바닥에 가라앉아 오늘은 더 이상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 버릴지도 몰랐다.

그래서 스마트폰은 보지 않은채로, 인컴의 무선은 봉쇄한 채로, 이제와선 내 신체의 일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소총을 두 손으로 안고 캠프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가을 바람이 분다. 그 기세와 싸늘함에 나도 모르게 눈을 감는다. 조금씩 가을빛으로 물드는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에서 나는 적란운을 보았다. 여름의 구름, 여름의 잔재. 어제처럼 기억하고 있는 그 계절을 떠올리려 생각했지만 이미 이 산에서 여름의 냄새는 나지 않게 되었기에 잠깐 멈췄을 뿐, 이윽고 앞을 향해 그 장소로부터 멀어져 갔다.

생각해보면, 그것이 올해 본 마지막 여름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보기도 전에 늦가을의 색으로 물든 낙엽을 보고 있던 나는 이미 가을조차 끝나 버린 듯한 기분으로, 어째서 우리는 겨울에 긴 잠을 자지 않는 걸까 하는 공상적인 의문을 품고 있었다.

동면해 버리면 나는 행복한 꿈을 꿀 수 있을 거라 말하고 싶은 걸까.

조금 전까지 자고 있었지만 특별히 좋은 꿈을 꾼 기억도 없기 때문에 그만큼 피곤했다는 걸까. 아니면 행복한 꿈은 내 뇌에서 흘러나가 버린 걸까. 둘 다 아무래도 좋았다.


******


"미유, 돌아왔나요."

"아....... 음, 다녀왔습니다......?"

"네, 어서오세요. 슬슬 목욕 준비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돌아와 줘서 다행이에요."


나는 이쪽을 보고 미소 짓는 미야코쨩에게 놀랐다.

없어졌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나는 예전보다 타인의 마음에 머무르게 되었다. 아무래도 누구의 마음에도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살아가기 때문에 막상 주변에서 나를 눈치채준다 해도 잘 답해주지 못하는 게 고민거리다.


"혹시, 연락같은 거 했었어......?"

"아뇨. 아마 보지 않을 거다 싶어서. 어두워져도 돌아오지 않으면 이쪽에서 무선 봉쇄를 해제하면 되고."


툭툭, 자신의 인컴을 가볍게 찌르며 대답하는 미야코쨩을 보고 안도한다. 이곳에 돌아왔을 때부터 화내는 분위기는 없었지만 제대로 그것을 파악할 수 있을 때까지 조금 겁을 먹고 만다.


"그렇구나...... 어느쪽이든 아무 연락도 안 해서 미안해......?"

"괜찮아요. 목욕 준비, 빠르게 끝내죠."

"응."


수도 근처에 만들어 둔 간이 드럼통 목욕탕에 물을 넣기 시작한다. 간이라고는 했지만 이미 오랫동안 써 온 물건이 되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기능적이 되어 갔다. 몰두하는 성격의 사키쨩이 거의 혼자서 하고 있던 일이지만.

그날의 사건 이후, 우리들은 선생님이 있는 사무실의 샤워 시설을 빌리게 되었다. 그래도 아직 이 목욕탕이 쓰이는 일은 있었다. 이것은 우리 공원 생활의 상징 중 하나이며 애착가는 물건이다. 아마 나는 네 명 중에 가장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다.

이 좁은 드럼통 안에서 진심으로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내가 있을 곳은 여기고, 이런 나를 받아준 건 소대원들이며, 그런 우리를 이어준 건 선생님이다. 소대원들과 더 친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선생님에게 토로한 날도 있었을 정도로 나는 모두가 좋다. 물론 선생님도 정말 좋아한다.


"이쪽은 끝났어...... 장작, 도와줄게."

"감사합니다."

"해가 떨어지는 게 빨라졌네."

"그렇네요. 이제 가을이니까요."


두서없는 대화를 하며 둘이서 장작을 팬다. 하늘은 실로 어둡고 검게, 그리고 깊어져 간다. 황혼을 끝내고 야경으로. 다행히 주변이 잘 보이지 않게 되기 전에 목욕 준비는 끝났다. 사키쨩과 모에쨩이 돌아올 무렵에는 끓고 있을 거다.

그렇게 되면 특별히 할 일은 없어진다. 캠핑 의자에 앉아 근처 빌딩 창문의 개수를 세고 싶어져 버릴 정도의 지루함이다.

미야코쨩은 언제나처럼 스마트폰을 응시하고 있다. 표정이 조금도 변하지 않아 즐거워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중요한 시간이겠지 싶어 말을 걸지 않고 있었다.

이래보여도 일단 저격수다. 공백의 시간을 보내는 건 싫지 않다. 오히려 기다리는 건 특기라고 할 수 있다. 조금 깊게 의자에 고쳐 앉아서 뺨에 닿는 공기라든가 멀리서 들리는 차의 엔진음, 그런 것에 의식을 돌린다. 머지않아 내가 세상에 녹아가는 듯한 감각에 빠진다. 잡념이고 뭐고 없는, 스스로를 하나의 무기로 만들어 바꾸는 듯한.

하지만 지금은 딱히 작전 중인 것도 아니었으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다. 과장되게 표현했지만 결국은 그저 심심풀이. 후우, 숨을 내쉬고 나는 나를 되찾았다. 순간, 피부에 닿는 공기의 감각도, 차의 엔진음도 멀리 사라져 간다.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은 공원 저편 빌딩 창문 너머로 정신없이 일하는 사람들의 표정까지도 보이는 내 시야뿐이었다.


"......후훗."


그런 내 시야가 조금이지만 이상하게 느껴져서 그만 웃음이 새어나오고 만다.


"? 무슨 일 있나요, 미유."

"어, 아......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방해해서 미안......?"

"아뇨, 그건 괜찮습니다만......"


방해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방해를 하고 말았다. 황급히 손과 고개를 붕붕 흔들며 사과한다. 미야코쨩은 조금 신경쓰인 모양이라 어리둥절한 표정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고 이윽고 스마트폰을 보는 자세로 돌아갔다.

그것을 지켜 본 후 재차 자신의 시야에 의식을 돌렸다. 세상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을 정도로 공원의 하늘은 열려 있다.

내 눈은 잘 보인다, 라는 모양이다. 나에게는 당연해 보이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 일이 자주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언제였던가. 지금보다 어릴 때, 이 시야가 계기가 돼 주변 사람들로부터 꺼림칙한 시선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떠올리는 걸 멈췄다.


나는 그런 『어긋남』을 잔뜩 안고 있다. 그것을 『개성』이라는 상냥한 단어로 정리해 가둬 버리는 건 편하지만. 그 개성은 삶에서 치명적인 차이가 되어 나를 덮치곤 했다.

그런 차이 같은 게 없었다면. 나는 지금까지의 생애를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화려한 것으로 만들 수 있었을까 몽상한다. 그럴 때마다 나의 이런 비굴한 성격으로는 아무도 나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며 그야말로 비굴한 사고로 끝내버린다.

아아, 어쩌면 이런 비굴한 사고가 이런 장애물 같은 엇갈림을 만들어 내고 있는 걸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비굴함이 차이를 낳았는가 차이가 비굴함을 낳았는가. 여하튼 나는 나에게 진절머리가 났다.

그럼에도 의자에 세워둔 라이플을, 나의 『가치』를 살짝 쓰다듬는다.

나는 그런 어긋남을 자신의 무기로 삼고 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은 작전 행동에서 유리하고, 잘 보이는 것은 저격수로서 필요한 조건이다.


나는 알고 있다. 나의 가치는 이 손가락에 깃들어 있다고.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이 있기 때문에 나는 가치있는 소녀라고.

만약 내가 주위에 인지되는 존재라면, 평균적인 시야의 소유자라면, 그걸 기반으로 비굴한 성격은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무력하고 비굴하기만 한 나에게 모두가, 선생님이 과연 미소를 지어줄까.

나는 사라졌으면 하는 만큼 싫어하는 나에게 구원받고 있다. 자가중독 같은 그것에 의존하고 있다. 이 체질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나도 진짜다. 그렇지 않으면 구하지 못한 게 분명히 있을테니까. 예를 들면 그것은 눈앞에서 느긋하게 동영상(아마도)을 보고 있는 미야코쨩이거나, 사키쨩이거나, 모에쨩이거나, 어쩌면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이 경치도 구한 것 중 하나로 세어도 좋을지 모른다.

이런 나에게도 역할이 있고, 그 역할을 제대로 해냈기 때문에 지금 나는 여기에 있다. 모두에게 인정받고 있다.

나는 만족스럽다고 말해도 좋다. 지금의 나는 모두의 마음속에 살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그 너머가 두렵다. 언젠가 내가 모든 역할을 다하고 길모퉁이에 떨어져 있는 조약돌과 같아진다면. 그때 나를 찾아줄 사람이 있을까.


나는 언젠가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진다. 나는 불안이 아니라 확신으로서 그것을 알고 있다.

분명 선생님도 나를 잊는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기억해주는 사람. 나와 달리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사람. 분명 선생님이 나를 잊으면 지금의 나는 바람이 부는 순간, 그야말로 안개처럼 사라지겠지.


"미야코쨩."

"무슨 일인가요?"

"바람이 기분 좋네."

"......후후, 그렇네요."


그렇기에 지금 부는 가을 바람에 사라지지 않은 나에게 안도했다.


"어~이."

"아, 사키쨩. 돌아왔구나."


부디 내일도 모두가,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이, 나를 기억하고 있기를.


"모에는 어떻게 됐나요?"

"두고 왔어. 그 녀석 터무니 없는 양의 폭약을 샀다고."

"......모에쨩에게서 트럭 빌렸으니까 바로 돌아갈게, 사키는 기억해두겠어. 라고 연락이......"

"뭐라고!? 그런 거 둘이서만 가지고 갈 순 없잖아!"


이 날이 계속됐으면 좋겠다. 모두가 나를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뭐, 모에는 항상 필요한 물건을 보급해 주고 있기도 하고. 분명 언젠가 도움이 될 거예요...... 아마도지만."

"적당한 타이밍에 폭발시키면 그냥 안 넘어가겠어......"


평온한 날들. 미지근한 물 같은 일상. 우리가 싸울 필요가 없는 게 최고다.


"곧 돌아온다 했고, 목욕 준비를 해둘까요. 사키는 짐을 내려두고 오세요."

"그럼 나는 목욕물이 끓고 있는지 보고 올게."

"네, 부탁해요."


조금 뛰어 모두에게서 떨어진다.

두 사람의 대화가 멀어지고 귀뚜라미 울음소리만 들려온다.

지금의 나는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니다.

모두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 여기에 없는 선생님도.

하지만 순간 강하게 불엇던 바람이 너무나 차갑게 느껴졌던 그때, 자신의 버팀목이 하나 없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고독이라는 나락으로 다시 굴러 떨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는 것을.

많은 것을 그 사람에게 맡겨 두었기 때문에 내 마음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가을의 냄새가 나는 바람이 나의 모든 것을 앗아가고, 먼 계절 저편까지 가버렸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목욕 확인을 끝낸 후 웃는 얼굴로 모두가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내일도 이 평온한 날들이 그야말로 영원히 계속될 거라 생각했다.

그 내일이라는 것에 정말 좋아하는 사람은 없는데.


다음날, 우리는 선생님이 쓰러졌다는 걸 알게 된다.

쓰러진 것은 마침 내가 싸늘한 가을 바람을 맞았을 때.

3일 밤낮을 계속 잠들었던 선생님이 눈을 떴을 때,

선생님은 기억을 잃고 있었다.

나를 잊고 있었다.




너를 본다.


"내(僕/보쿠) 병문안을 와 준 걸까."


전체적으로 흰색의 가구가 비치된 병실과 침실의 중간적인 느낌의 방.

침대에 등을 맡기는 자세로 앉아 있는 선생님이 자신을 「私(와타시)」가 아니라 「僕(보쿠)」라고 말했을 때, 정신이 아득해지는 감각에 빠졌다.

그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든가, 기분 나쁘다든가,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든가, 그런 게 아니라 오히려 적당히 어울린다고 생각한 자신에게 위화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눈앞에 있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선생님이 아니라는 사실에 그 정도로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자신에게 놀랐다고 할 수 있다.


"...... 선생, 님......?"

"안녕. ......음, 카스미자와 미유씨, 맞지?"

"......네."


우리와 그의 면회는 한 사람 한 사람 차례로 이루어졌다. 기억을 잃은 그에게 한꺼번에 많은 학생이 찾아오면 부담이 될 거라는 총학생회의 배려.

그것은 결국 총학생회의 지원이 없었다면 샬레를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것과 다름없었다.

샬레 오피스에서 조금 떨어진 빌딩의 한 방. 겉으로 보기에는 적당한 임대 건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그곳은 실제 밀레니엄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의 의료 설비가 갖추어져 있었다. 아마 총학생회가 위장한 거겠지. 이 지구는 그녀들의 영향력 하에 있는 구역이다.


"미안해. 이런 모습을 봐도 괴로울 뿐이겠지."

"그렇, 지는."


그는 『선생님』으로서의 권한을 잃은 듯했다. 전투지휘, 외교, 지도, 나는 잘 모르지만 어떤 권능 같은 것. 모든 걸 잃은 상태였다.

그것이 밖에 알려지면 중대사, 나아가 키보토스의 위기가 된다. 따라서 현재 그의 용태는 완전히 은닉되어 면회할 수 있는 학생도 샬레에 소속 또는 조력한 자 중 그 정보를 밖으로 누설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자에 한정되었다.

은닉은 현재로서는 성공하고 있는 듯하다. 워낙 바쁜 사람이라 다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정도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언젠가 그 비밀이 공공연해지고 모든 것이 파탄나 그대로 키보토스가 대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쓸릴 거라는 망상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 가장 불안한 건 내가 아니다. 그런 발언도 생각도 꾹 참고 나는 파멸적인 상상을 억누르고 있었다.


"상냥하구나, 미유씨는.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어."


그렇게 웃는 그는 변함없는 상냥함을 가지고 있었다. 이 사람이 가지고 있던 상냥함은 타고난 거였구나 하고 조금은 안도한다. 하지만 그는 내 상냥함이 약간의 무리에서 만들어졌다는 걸 깨달았을까.


"음. 어디가 나쁘다는 것도 아니고, 건강하다고 할 수 있어. 오히려 계속 여기에 있어야 하니까 심심할 정도야. 아니, 여러 아이가 병문안을 와 주니까 지루하지는 않을지도."


나, 사랑받았었구나. 그렇게 말하며 건강함을 어필하듯 팔을 돌리고 웃는 그에게 이끌려 나도 웃는다.


"건강하시다면, 다행이에요."

"고마워. 빨리 전부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는데....... 너도 내가 이런 상태여선, 싫겠지?"

"싫다니, 그렇지는...... 지금은 모르는 것 투성이라 힘드실 테고......"

"그래도 빨리 돌아가고 싶어. 확실히 나는 여러가지로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아는 것도 있어. 너희들에게 『선생님』은, 소중한 사람이었겠지?"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정말로 그저 상냥한 사람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내게 미소를 짓는 모습은 너무나도, 고독해 보였다.

......고독? 우리가 있는데?


"미유씨? 괜찮아?"

"네? ......아, 네. 괜찮아요......?"


눈앞에 있는 그를 고독하다고 생각해 버린 사실에 놀랐다. 그는 많지는 않지만 다수의 학생들이 병문안을 오고 있고, 여기에 오지 못하는 학생들에게도 사랑받고 있다.

고독과는 인연이 멀텐데.

어째서 그는 조금 쓸쓸하게 웃는 걸까.


******


"슬슬 끝낼 시간이네. 많이 얘기해줘서 고마워. 괜찮다면 또 와줘."

"와도 괜찮을까요?"


어쩌다 한 시간 동안 말을 꺼냈을까. 그는 많은 이야기를 나에게서 듣고 싶어했다. 분명 여기에 온 학생 전원에게서 듣고 있을 텐데. 가끔 노트에 뭔가를 적고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건 아마 기록이겠지.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을 계기를 찾고 있을 거다.


"물론. 네가 괜찮다면. 그래도 말이지, 신청하면 언제든 올 수 있을 거야. 아, 그래도 학교에 가야 하나......"

"후후. 지금의 저에게 다니는 학교는 없는걸요......?"

"그랬었지. 미안해."


조금 얼굴을 붉히고 사과하는 모습은 정말 미안하다는 듯한 느낌에 나는 황급히 고개를 젓는다. 다소 자학적인 발언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활이 당연하게 되어버렸지만 옆에서 보면 돌아갈 곳이 없는 소녀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곳을 건드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겠지.


"아, 아뇨아뇨......! 당신이 사과할 일이 아니니까요......!"

"그럴까. 아니, 네가 그렇게 말해준다면 그렇겠지. 혹시 특별히 할 일이 없다면 또 와줘. ......나는 조금 따분하니까."


뺨을 긁으며 아직도 조금 미안함이 남은 쓴웃음을 짓는 그에게, 역시 조금은 아쉬움을 느낀다. 나와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건 기억의 계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지루하고 외롭고, 누구라도 좋으니까 이야기하고 싶을 뿐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말을 듣고 확인할 용기는 내게 없었다.


"네. 저라도 괜찮다면, 또 병문안 올게요......"


대신 그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한다. 기억을 잃고 혼란스러워서 「다시는 오지 마」라는 말을 들을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 장소를 방문 했었으니까, 다시 오라고 하는 것만으로 기뻤고. 무엇보다도, 내버려둘 수 없다고 생각해 버렸다.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다행이다. 미유씨는 정말로 공손하고 상냥한 아이구나."


조금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는 그는 역시 선생님과는 달랐고.

기억이라는 것이 사람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좋아하는 선생님의 몸으로 알지 못하는 웃음을 짓는 그를 거절하지 않는 자신에게 위화감을 느낀 채로. 그가 말한 것처럼 공손하게 인사하고 방을 나선다.

돌아가기 전, 경비 겸 접수 담당 학생회 임원에게 다음 면회 예약을 넣는 건 잊지 않았다.


******


"미유씨, 자주 와주네."

"어, 그런가요......?"


침대에 몸을 맡긴 채 오늘 다섯 번째 초콜릿에 손을 뻗는 그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놀라서 캐러멜을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


"응. 다른 아이도 가끔 상황을 보러 와 주지만 미유씨가 제일이려나. 혼자서 과자를 먹어도 의미 없으니까 좋지만."

"항상 과자라든가, 이렇게 받아도 괜찮나요?"

"괜찮아~ 뭔가 이전에 내가 갖고 있던 저금 같은 건 써도 된다고 해서. 과자를 좀 사는 정도는 이전의 나도 용서해 줄 거야."

"후후. 확실히 선생님이라면 팍팍 사버리자~ .......같은 걸 말할 거 같아요."

".......예전의 나, 꽤나 대충대충이야?"

"평상시에는 진지하지만...... 대충일 때는, 엄청."


방에 두 사람 몫의 웃음소리가 울린다. 여기 온 것도 몇 번째일까.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로 나는 여유로웠다. 병문안을 온 건지 놀러 온 건지 알 수 없다. 오늘은 어떤 작전이 있었다든가 반대로 최근 며칠은 아무것도 없어서 순찰로 하루가 끝났다든가, 요즘의 나는 거리를 걸으면 자주 사람과 부딪치기 때문에 곤란하다든가.

그는 여전히 『계기 찾기』 중이라, 여러가지 이야기를 듣거나 지금의 자신이 읽을 수 있는 자료를 요청해 읽어 본다. 대단히 엉터리인 보고서가 나와 누가 썼을까 하고 읽어나갔더니 예전의 자신이 만들었다고 들은 그의 표정은 실로 어이없다는 듯 했고 우스웠다.

자신이 한 일인데도 전혀 기억에 없는 실수가 발굴되는 건 어떤 기분일까. 조금은 타입캡슐 같아서 재미있다는 감상은 조금 거리낌없는 느낌이 들어서 말할 수 없었다.


"그래도, 예전의 나는 대단하네. 내가 이런 걸 하고 있었다는 게 조금 믿어지지 않아."


웃음이 진정되고 조금이지만 분위기가 잠잠해질 때. 그는 꿈에서 깨어나는 듯한 목소리로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있었다. 창밖에서 보이는 석양이 그의 표정에 그늘을 만든다.


"그렇, 네요......"


예전의 당신은 굉장했어요. 같은 걸 나는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지금의 그를 부정하는 것으로 이어지니까. 하지만 선생님이 대단하다는 것도 사실이었기에 나는 말끝을 흐리고 있었다.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우리 학생들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고 삶의 지표이자 동경이며 저주였다.

나 또한 선생님을 너무나 좋아한다. 친애가 아닌 연애로, 나는 선생님을 좋아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수많은 나를 선생님에게 맡기지 않는다.

선생님과 만났기 때문에 나는 모두와 살아갈 수 있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대로 기억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나는 그처럼 될 수 있을까."


그는 조금 눈부시게 느껴지는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리고는 그대로 조용해져 버린다.

내쪽을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은 대답을 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의미하겠지.

하지만 나는 이런 침묵을 견딜 수 있는 타입이 아니었다.


"되, 되지 않더라도, 괜찮지 않을까요?"


쥐어짜듯 나온 목소리를 듣고 그가 내쪽을 향한다. 그것을 본 나는 아차 싶었다. 그가 조금은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키보토스는 그래선 안 되는 거겠지. 예전의 내가 필요했기 때문에 나는 여기에 온걸꺼야."


그가 작은 책상 위에서 자료 한 장을 집어들었다. 어떤 사건의 보고서. 규모는 작지만 샬레가 개입한 것으로 빠르게 다친 사람 없이 해결한 사건이었다.


"예전의 나에겐 역할이 있었어. 그래서 필요한 존재였던 거고. ......모두에게 존경받은 거야."


역할을 다하기에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다. 그 생각은 너무나 약한 소리처럼 느껴졌고, 도저히 선생님이 할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을 바로 부정할 수 없었던 건. 내가 완전히 같은 것을 평소에 생각하고 살기 때문이다. 그 약한 소리는 아무런 저항없이 내 마음에 파고들어 자리를 잡았다.


"슬슬 끝낼 시간이네. 이런 얘기를 해서 미안해."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 나에게 둘러대듯 웃으며 적당한 과자를 담은 비닐봉지를 건네준다.


"감사합니다...... 또, 올게요."


또 온다. 그렇게 말하자 그는 몹시 기쁜 표정을 지었다.

사람은 정말로 기쁜 일이 있으면 직전까지의 답답한 분위기 같은 건 전부 잊는다.

그는 내가 다시 온다고 하면 좋아하고, 나는 그가 좋아하면 기쁘다.

적어도 「또 보자」라는 말이 살아있는 동안은, 나는 그렇게 믿는다.


"고마워, 기다릴게."


과자를 받고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로 다시 올 테니까, 여기서 앉아있어도 의미가 없다.

그대로 평소처럼 인사하고 방을 나선다.

돌아오는 길에 7번은 나를 눈치채지 못한 사람에게 부딪쳤다. 어제는 6번, 조금씩 늘고 있다. 주의력이 산만해지고 있는 걸까 생각했지만, 강한 위화감이 있었다.

피로를 풀기 위해, 그리고 위화감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공원으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잠들었다.


다음날, 피로는 풀렸다. 그 대신, 단 하나의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만약 내가 전보다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되고 있다면.

그 의심은 옳았다. 소대 모두가 평소 눈치채주는 그런 상황에서도 나를 눈치채주지 않았다. 조금씩, 천천히. 자신이 고독해져 가는 감각.

선생님과 만나기 전의 자신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자신의 손끝을 보니 조금 비쳐 보였다. 황급히 눈을 비비자 평소와 같은 손가락이 거기에 있다.


"선생님, 저는 어떻게 해야..."


선생님 밖에 없었다. 지금은 그 사람밖에 없다.


공원에서 뛰쳐나와 여느 때의 그 빌딩까지 달린다. 오늘은 면회 예정을 잡지 않았지만 그런 일은 머리에서 빠져나가 있었다.

행인과 몇 번이나 충돌한다. 아슬아슬하게 피하다 가끔 실패한다. 하마터면 모퉁이 저편에서 튀어나온 스쿠터에 치일 뻔했지만 운전자는 치려 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저...... 저기!"

"......어라, 오늘은 면회 예약을 하지 않으셨죠?"

"맞, 아요."


낯익은 접수처 학생이라도 아주 가까이 다가가야만 했다. 평소 같으면 건물에 들어왔을 때는 저쪽에서 인사해 줬는데.


"꽤나 서두르는 거 같은데 급한 일인가요? 일단 규칙상 예약이 없는 학생은 안내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만......"

"그 부분을 어떻게 안 될까요?"

"으, 으음...... 잠깐 기다려주세요."


거친 호흡을 가누지 않은 채 물고 늘어지자, 그녀는 태블릿을 꺼내 어디론가 연락을 취하는 듯했다.

접수처의 천장, 그 구석에 배치되어 있는 방법 카메라를 빤히 바라본다.

지금의 나라면 이 카메라에 잡히는 일도 없는 걸까. 마음만 먹으면 이대로 선생님 방까지 향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지 모른다.

총학생회의 비호 아래 있는 그에게 감시의 눈을 뚫고 가는 건 리스크가 있다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을 이해하고도 나는 그에게 가고 싶었다.

비록 기억을 잃어도 그라면 나를 찾아줄 거라고. 지금 이 순간도 희미해져가는 내 존재를 어떻게든 유지하고 싶어서. 그가 나를 알아채지 못할 가능성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만약 찾지 못한다면, 그 순간에 나는 정말 사라져 버릴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카스미자와씨. 위쪽에 확인을 했습니다만."

"어떻게 됐나요......?"

"지금은 아무도 면회 예약을 하지 않은 시간대이고, 선생님이 괜찮으시다면 이번에는 안내해도 문제 없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뭐라고..."

"괜찮다고 연락이 왔어요."

"가, 감사합니다......"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윙크하는 접수 담당에게 깊이 고개를 숙인다.


"이번만이에요. 다음부터는 제대로 예약해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입관 수속을 시작하는 것을 곁눈질하고, 부디 그가 나를 알아봐주기를. 그렇게 바라며 눈꺼풀을 감았다.

타닥이는 키보드 타이핑 소리와 어디선가 울리는 공기 조절 시스템 소리만이 들려오는 가운데, 조금 전 비쳐 보였던 손가락 끝에 의식을 향한다. 아직 손끝의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뭔가를 만지는 일도 없고, 만지는 것으로 열을 느끼고 싶다며 굶주린 듯한 손끝 같은 건 있으나 없으나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내 왼쪽 뺨을 손톱으로 튕긴다. 그랬음에도 뺨은 차가워서 사라져 가는 건 손끝뿐 아니라 자신의 전부라고 이해한다.

빨리 안심하고 싶었다. 그가 나를 알아보면 이 신체도 열을 떠올려 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


"......실례합니다."


일부러 소리를 내며 문을 연다. 성큼성큼 빠른 걸음으로 방에 들어가 언제나처럼 침대에 기댄 그의 곁을 향해 간다.

그것은 평소의 나를 보고 있던 그라면 기묘하게 느낄 수 있는 행동이었을 테고, 나 역시 이런 무례하게 여겨져도 어쩔 수 없는 행위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가 알아차렸으면 하는 초조함과도 비슷한 바람에 떠밀리고 있다.

나는 그를 문병하기 위해 이 방에 방문한 게 아니라 그에게 구원을 청하기 위해 이 방을 방문한 거겠지.


"안녕. 갑자기 오다니 드문 일이네...... 괜찮아?"


눈앞에 설 것도 없이 그는 알아차렸다.

내가 바란 구원은 분명 이 방에 있었다고 확신한 순간. 이대로 하얗고 차가운 바닥에 무너져버릴까 싶었지만 다시 빠른 걸음으로, 이제와선 달리는 수준으로 그의 곁으로 향해 그대로 당황하는 그의 손을 잡았다.

방에서 나오지 않고 누워만 있기에 운동 부족인 걸까, 그의 손은 조금 차가웠다. 하지만 그 차가운 손길에 닿는 것만으로도 얼음장 같았던 내 몸이 녹아 따뜻해지는 걸 느낀다. 선생님의 손도 마찬가지로 따뜻했다는게 떠오른다. 더 강하게 움켜쥐며 내 열을 쏟아붓는다. 내 존재를 눈앞의 존재에게 각인시키듯이.


"저는, 여기에 있나요? 당신에게, 저는 보이는 건가요?"


의미를 알 수 없는 물음. 이 말이 들린다면 굳이 물어볼 것도 없는 일. 다만 나에게는 자신이 세계에 「존재한다」라는 확신이 없었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다는 건, 무섭니?"


그는 물음의 의도를 바로 알아차렸는지, 이어진 손을 바라보며 질문으로 답한다.


"무서워요. 계속, 계속. 두려워서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요."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은 고독이다. 나는 그 공포를 안다. 선생님과 만나기 전의 나는 고독의 공포에 휩싸여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잊혀지고, 누구의 존재가치도 될 수 없는 존재였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기억되어 살아간다는데, 누군가의 마음에 사는 것으로 살아간다는데.

누구의 마음에도 살지 못했던 나를 처음으로 받아준 존재가, 나와 모두를 연결해주고 있었다.

선생님, 언제라 해도 나를 찾아줄 사람.

나라는 존재는 분명 그 사람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사람은 자신을 강하게 기억해 줄 사람이 있어야만 한다.

선생님이 나를 잊고. 아니, 나를 기억하던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없어지면서, 나는 텅 비어버렸다.

선생님은 내가 맡긴 『카스미자와 미유』의 존재 가치를 지닌 채, 어딘가 멀리 사라져 갔다.

자기 자신을, 선생님의 마음에 맡기고 있었다.


선생님이 나를 찾아주니까, 걱정해주니까, 지탱해주니까, 이끌어주니까. 나 같은 게 살아있어도 된다고 생각하게 해 주니까.

조금씩 세상이 변해간다고 생각했고, 나는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손에 넣을 수 없었던 많은 것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특별히 내가 달라진 점은 아무것도 없었다.


"예전의 저로 돌아간다고 생각했어요. 눈에 잘 띄지 않는 건 항상 있는 일이지만. 최근엔 그게 너무 심해서, 마치 선생님을 만나기 전 같아서."

"생각했다. 라는 건 지금은 그렇지 않은 거야?"

"이해했어요. 돌아가고 뭐고, 저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걸. 단지 선생님...... 그 사람이, 나의 존재를 지탱해 주고 있었다고."

"그래서 물어본 거구나. 자신이 보이냐고."

"......네. 어떨까요. 당신에게는, 제가 보이나요?"

"적어도 내겐 보여. 네가 방에 들어온 것도 금방 알아차렸고, 애초에 복도를 걷는 소리도 들렸으니까."

"그렇, 죠......! 역시 당신은――"

"있지, 반대로 물어봐도 될까."


이어지는 말은 막힌다. 마치 내가 계속할 말의 내용을 전부 알고 있고, 그것을 듣고 싶지 않다고 막는 듯 했다.

순간, 방안의 분위기가 변한다. 모든 것이 흰색 가구로 통일된 이 장소가 가라앉은 회색 같은, 혹은 아스팔트에 떨어져서 찌부러진 석류 같은. 어쩔 도리가 없는 색으로 변한 것 같았다. 눈앞에 앉아 있는 그의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나는 그가 던질 질문을 정면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미유씨는, 내가 보여?"

"......네?"


목에서 짜낸 것은 아마도 닿지 않은 곤혹의 목소리. 그도 그럴게 그는 지금도 눈앞에 있고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 손도 잡을 수 있다.

차가웠던 그의 손은 조금이지만 열을 되찾고 있었다.

어세가 강해진 것과 관계가 있는 걸까.


"미유씨."

"ㅇ, 왜 그러세요......?"

"기억을 잃어버리고 『내』가 된 뒤로, 너만이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아. 나를 나일 뿐인 존재로 봐주고 있어. 그런 게 아닐까, 하고 믿을 수 있었던 건 너 뿐이야."


그가 한 물음의 의미를 이해했다. 내가 보이는지. 물리적으로 보는 건 간단하다. 그러나 본질을 보는 건 쉽지 않다.

기억이 결손된 그를 주변에서는 선생님으로 대한다. 나는 그럴 수 없었기에 「당신」이라 불렀고, 분명 당신은 그런 나에게 구원 받고 있었던 거다.

하지만 나는 방금 전 자신의 존재를 확립하기 위해서만 당신을 선생님으로 이용하려 했다. 가로막힌 이어지는 말은 「당신은 선생님 같네요」였으니까.

그 말은 신뢰에 대한 배신일 뿐이었겠지.

충동에 휩쓸려 최악의 한마디를 내뱉을 뻔한 자신이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싫어졌다.

하지만 침묵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연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도 괴로우니까.


"......확실히 저는 당신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건 잘못됐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어째서?"


말만으로 어깨를 잡혀 있는 기분이다. 결코 난폭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분노가 가장 가까운 표현일지도 모른다.

분노를 닮은 지향성 없는 감정이 방 전체를 돌아다니며 지배했고, 몇 번이나 내 가슴을 꿰뚫엇다.


"......모르는 『누군가』의 이름을 짊어지는 건, 괴로울 거 같았으니까요."

"아아, 괴롭지.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아. 천천히 떠올리면 된다며...... 지금의 나에겐, 볼일 없다는 것처럼 말이야."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필요로 했다. 언젠가 면회에서 그가 한 말이 플래시백 된다. 존재 가치가 없다면 사람은 누구의 마음에서도 사라져 간다.

내가 저격수로서의 실력만으로 그것을 확립했듯이, 선생님은 『선생님』이라는 입장을 짊어짐으로써 우리와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미유씨는 내가 선생님처럼 되지 않아도 괜찮지 않냐고 말해 줬었지. 그게 키보토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기뻤어."

"진심, 이었어요."

"그래서, 나는 너와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어. 이런 건 내 이기심이고, 지금도 그렇지만 말이야. 그렇다면 이런 나라도 존재해도 괜찮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마치 말 하나하나가 과거의 나 같다. 자신에게 존재가치란 추호도 찾을 수 없고, 그런 자신을 봐주는 존재에게 자신을 맡긴다.

당신이 보고만 있어준다면 살아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 정도의 일.

하지만 단지 그 정도의 일이 사람을 구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고.

여전히 분위기만이 변색된 새하얀 방에서 단둘이, 그의 눈동자를 바라본다.

분명 예전의 나라면 이 장소에서 도망쳤을 거다.


"죄송, 해요. 그런 저도, 당신에게서 『선생님』을 원했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 사람이 발견해주면, 나는 분명 여기에 존재하는 거다. 살아 있어도 괜찮은 거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마찬가지. 그렇게 말했지만 그 말에 보증은 없었다. 누군가에게 잊혀지는 일은 있어도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경험은 없기 때문에, 내가 그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은 불가능하다.

모든 걸 잊어버린다면. 그렇게 생각한 밤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지금 당장 모든 것을 잊어버린 사람을 눈앞에 두고서 그 소원의 어리석음을 이해한다.

잊혀지는 것보다 잊어버리는 쪽이 훨씬 고독한 거겠지.

적어도, 우리는 그렇다.


"미안. 나는 네게서 소중한 것을 빼앗았네."

"괜찮아요. 저도, 당신을 보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그는 선생님이 아니다. 선생님이 내게 주던 삶의 가치를, 이제부터 그에게 바라고 싶었다고 하면 그는 그것을 허락해줄까.

선생님만큼은 아니더라도, 지금의 나를 찾아주는 사람은 그 말고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동시에 지금의 키보토스에서 그를 한 명의 사람으로 보는 학생은 나 말고는 존재하지 않겠지. 그렇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그도 그럴게, 이렇게 멋진 사람이 외톨이라니, 그런 세계는 이상하다.


"정말로 미안해. 화풀이라니, 선생님이라면 분명 하지 않았겠지."

"괜찮아요. ......그래도 확실히 당신이 저를 보고 있다는 건 알았으니까요."


그는 살짝 눈썹을 떨구고 웃는다. 그 모습은 상냥하고, 동시에 자포자기의 기색이 섞인 슬픈 표정이었다.

약간이나마 피부에 닿는 공기가 부드러워진 것을 느낀다. 이미 어깨를 잡고 있는 느낌도 없어지고 조금은 몸이 가볍다. 방이 살짝 넓게 느껴졌다.


괴로운 대화를 이어가는 게 조금 피곤해서인지, 우리는 뭔가 말하는 일 없이 그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동안 그러다 아마 30분이 지났을 때쯤 그가 중얼거렸다.


"이제부터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 말은?"

"계속 이 방에 있을 수는 없어. 그렇다고 기억 없이 밖으로 나갈 수도 없지."


만약 그가 이대로 학생 앞에 서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게 알려진다면. 키보토스는 대혼란에 빠진다.

혼란을 피하기 위해 이런 좁은 방에 처박혀 그저 살려놓고 있다.

아무도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면, 살아있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건, 그는 원하지 않는다. 나도.


"......당신은, 어떻게 하고 싶나요?"

"내가, 어떻게 하고 싶냐고?"

"네, 저 같은 사람에게 말해도 어쩔 수 없을지 모르지만......"


바라지 않는 상황이라 해도, 하다못해 소원을 듣고 싶었다.


"음, 생각해 본 적 없어. 아니, 생각해도 소용없을 거 같아서 그만뒀어."

"생각만 해보는 건, 어떤가요."


그는 팔짱을 끼고 신음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진지하게 자신의 소원을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자신의 소원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고민하다니, 이 사람은 정말 서투르구나.


"천천히 해도 괜찮아요. ......저는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아니, 있어. 이러면 좋겠다~ 라는 건 있지만......"

"있지만?"

"말해도 괜찮을까 싶어서."


눈을 피하며 답했다. 말하기 싫은 것도 아닌 듯 한데.

그 정도로 주저한다면 꽤나 켕기는 일일까.

그러나 질문한 건 나고, 아무리 부정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야겠지. 어차피 무력한 나로서는 이룰 수 없을 테고.


"드, 들려주세요."

"알았어."


피하던 시선이 이쪽을 향한다. 그 눈동자를 보고, 애써 미소를 지었다.


"미유씨, 나는 말이야."

"네."

"여기서, 도망치고 싶어. 도망쳐서 나는 나로 살고 싶어."


그 소원을 듣는 순간. 불가사의할 정도로 순순히 받아들여 버렸다.

소원이 이뤄지면 키보토스에서 『선생님』은 사라진다. 아니, 이미 없는 그것은 직함조차 사라지고 그 대신 무명의 사람이 하나 태어난다.

이 세상에, 우리에게 선생님은 필요하다. 그래야만 구할 수 있는 게 많이 있다.


"미안. 역시 이건 없던 걸로."


그렇게 말해야겠지. 당신이 고독한 것과 선생이라는 존재를 구하는 것을 저울질한다면 구하는 쪽으로 기울 테니까.

고독했던 당신이라는 존재를 내가 깨달았다. 그 시점에서 이제 끝내야 한다.

이후는 내가 고독의 골을 메우고 기억을 되찾는 그날이 올때까지 이 작은 방에서 평온하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거면 될 거다.


"......도망가죠."


하지만, 그건 싫다. 모든 것이 원래대로 된다면,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은 사라져 버린다. 그것은 죽는 것과 뭐가 다른 걸까? 그는 살아있고 싶다고 분명히 바랐다.


"미유씨......?"


믿을 수 없어. 라는 얼굴로 나를 보는 이 사람이 없게 되면 슬퍼하는 건 나뿐이다.

선생님의 기억이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아 슬퍼하는 사람은 많이 있다. 나 또한 슬프다.

하지만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은 나뿐이다. 그라는 상실을 품는 건 나뿐이다.

싫다. 그런 건 싫다. 외톨이였던 사람이 외톨이인 채로 죽고 그것을 나만 알고 있다니, 견딜 수 없다.


"여기서 나가고 싶다면 제 손을 잡으세요. 그것만으로도 이 세상에서 당신을 숨길 수 있어요."


고독을 알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사람은 죽고싶어져 버리니까.

당신을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이건 내 이기심이지만, 고독의 괴로움을 공유할 수 있었던 첫 사람이기에 잃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라니, 쓸쓸해요. 여기에 혼자라니, 이상해요."


나는 투명했다. 투명해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런 나를 채색한 것은 선생님이다. 그렇다면, 선생님이 당신이라는 사람으로 투명해지면 당신을 채색하는 것은 누구일까.

나라면 좋겠다, 가 아닌, 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해 버렸다.


"그러니, 제가 당신을 데리고 나가겠습니다."


내가 데리고 나가는 세상은 선생님이 내게 보여준 세상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새하얗기만 한 방보다는 조금은 선명하겠지.




다음화

자동등록방지

추천 비추천

24

고정닉 18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자동등록방지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말머리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2861 설문 어떤 상황이 닥쳐도 지갑 절대 안 열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5/20 - -
2862 AD 희귀 정령 획득 기회! <아스달 연대기> 출석 이벤트 운영자 24/05/23 - -
11259406 📃번역 소설핫산) 풀 아머 선생님 [6] 조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0:49 651 15
11259348 📃번역 피폐번역) 아루는 약한 아이야. [23] 피어싱스카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0:45 2203 39
11259130 📃번역 번역) 아마우 아코의 어깨결림 [10] Xerxe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0:22 1786 21
11258895 📃번역 핫산) 유우카도 선생님 옆에 앉고 싶다 ③ [3] 히마리사랑한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0:00 1034 15
11258799 📃번역 핫산) 유우카도 선생님 옆에 앉고 싶다 ② [2] 히마리사랑한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1024 15
11258751 📃번역 핫산) 유우카도 선생님 옆에 앉고 싶다 ① [1] 히마리사랑한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1078 16
11258719 📃번역 핫산) 반성해라 모모이 [8] Atrahasi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1239 17
11258582 📃번역 핫산) 유우카는 선생님이 신경쓰이는 이야기 ③ [1] 히마리사랑한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841 15
11258504 📃번역 핫산) 유우카는 선생님이 신경쓰이는 이야기 ② [4] 히마리사랑한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749 14
11258484 📃번역 번역) 오토기쿠루미 [8] Xerxe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2459 32
11258453 📃번역 핫산) 유우카는 선생님이 신경쓰이는 이야기 ① [5] 히마리사랑한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2024 25
11258386 📃번역 소설 핫산) 3년 후, 너와 이곳에서 담배를 피운 보편적인 밤 [3] 히마리사랑한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377 16
11258017 📃번역 요청)메이드모모미도와 사오리 [1] 노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521 5
11257935 📃번역 번역) 얀데레 직전의 세리나 [15] Xerxe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4136 42
11257742 📃번역 핫산) 시로코와 드라이브 [3] 핑크찌찌망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1668 23
11257531 📃번역 번역) 센세네 메이드모모이 [12] 피어싱스카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3798 34
11257400 📃번역 핫산) 메모이에게 코박죽 하는 선생 [2] 핑크찌찌망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1540 19
11256986 📃번역 무하한뽁찡 [12/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2940 34
11256573 📃번역 피폐번역) 아루는 강한 아이야! [26] 피어싱스카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5921 73
11256454 📃번역 소설핫산) 피폐) 블루 아카이브를, 다시 한번 #204 [7]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1048 23
11256397 📃번역 번역) 이치카와 배꼽 [13] Xerxe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5652 63
11256267 📃번역 번역) 아키라와 여선생님 [14] 산타짱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3984 43
11256188 📃번역 번역) 바니 미카와 손바닥 밀치기 [16] Xerxe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4355 38
11256148 📃번역 핫산) 푸념을 늘어놓는 미카쌤과 사오리쌤 [54]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6728 103
11256023 📃번역 핫산요청)사오리 선생, 미카 선생 [1] 흑백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541 5
11255872 📃번역 핫산) 선생님과 아루짱이 데이트한다고? C&C 참전 [56] 핑크찌찌망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5689 69
11254175 📃번역 번역) 밥해주는 네루 [21] 고구맛탕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3651 51
11254038 📃번역 번역) 안경, 무척 잘 어울려 [7] Posyel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1838 19
11253792 📃번역 번역) 보잘 것 없는 게마트리아 녀석이… [11] Posyel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3696 35
11252930 📃번역 불꽃보빔) 키쿄나구 [25]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6445 52
11251671 📃번역 번역) 방디부에 놀러온 레이사 [63] Xerxe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6641 84
11251416 📃번역 번역) 호시노가 선생침대로 숨어드는 만화2 [13] 갈갈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6177 59
11250401 📃번역 번역) 메이드 모모미도와 유즈 [34] Xerxe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5081 56
11250142 📃번역 번역) 히나와 둘이서 [11] Xerxe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3393 51
11249863 📃번역 번역) 시로코와 선생님 [28] Xerxe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5698 67
11249436 📃번역 번역) 미카와 목줄 [54] Xerxe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8156 97
11249374 📃번역 핫산) 여선생에게 응석 부리는 히나 (보빔 주의) [9] 핑크찌찌망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4094 43
11249199 📃번역 핫산) 만약 키라라가 응급의학부에 들어가면 채혈해줬으면 좋겠다 [58]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8455 75
11249192 📃번역 핫산) 독사굴 티파티 [27] 핑크찌찌망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7111 75
11249123 📃번역 핫산) 콘돔 물고 유혹 하는 몸모이 [44] 핑크찌찌망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10263 104
11247728 📃번역 소설핫산) 고백의 날에 울면서 라멘을 먹는 하야세 유우카 - 後 [9] 슬로보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1838 26
11247711 📃번역 소설핫산) 고백의 날에 울면서 라멘을 먹는 하야세 유우카 - 前 [5] 슬로보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2480 25
11247450 📃번역 번역) 빅젖 선생님과 아키라와 기지개 (여선생 [22] Posyel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7368 69
11247315 📃번역 번역) 좀 봐주세요... [30] Posyel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8487 83
11247111 📃번역 소설 핫산) 카가미 치히로는 달콤하지 않다. [7] 히마리사랑한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904 19
11246876 📃번역 번역)의존하는 아즈사 [12] 피어싱스카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3844 26
11245396 📃번역 핫산&스포) 감자작가 백화요란편 에필로그 [33]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3 6336 81
11244801 📃번역 핫산) [おむらいぬ] 선생님 이거 홈쇼핑으로 산거야 [7] 핑크찌찌망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2 3113 21
11244752 📃번역 요청) 메이드모모미도 카페가구에.. [1] 노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2 881 5
11244525 📃번역 핫산) 손금을 봐주는 히마리 [36]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2 5549 95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