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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이바나시 (회오리, 비명, 눈썹)

ㅇㅇ(182.216) 2019.08.28 16:15:14
조회 65 추천 0 댓글 0

"혹시 눈썹이라는 말 들어봤어?"


그건 점심을 먹을 때의 일이었다. 우린 모처럼 휴가를 맞아 친구 가족과 함께 근처 공원으로 나들이를 나와 있었다. 초가을로 접어드는 날이라 그런지 공원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난 아내와 같이 만든 도시락을 먹으며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친구가 몸을 기울이더니 이상한 걸 물어보았다.


"그게 뭔데."


대충 답하면서 베이컨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참 신기해. 분명 전과 다름없이 똑같이 요리했을 텐데도 어디서 먹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니. 이래서 소풍을 갈 때 도시락을 싸는 구나.


"나도 몰라. 요즘 들어 그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더라고. 나도 하나 줘."


"이상한 영화 그만 좀 봐라. 맨날 괴물이니 좀비니 그런 걸 보니까 머리도 이상해지지. 없어, 이제."


"보고 싶어서 보냐. 애들이 좋아하니 같이 보는 거지. 저기 있잖아, 왜 없다고 그래. 제수씨, 하나 가져가도 되죠?"


아내는 웃는 얼굴로 무려 두 개나 줬다. 내심 아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친구 와이프도 보고 있으니 뭐라 할 수가 있나. 난 아직 열지 않은 도시락을 저 멀리 몰래 빼두었다.


"아빠!"


로아가 손을 흔들며 방방 뛰고 있었다. 주변 아이들이 로아에게 다가가 무슨 세레모니 같은 걸 하고 있었다. 상대 골키퍼가 바닥에 엎드린 걸 보니 골을 넣은 것 같았다. 난 벌떡 일어나 손뽀뽀를 무진장 날려주었다. 아내가 부끄러운 얼굴로 앉히려 했지만 어림도 없지. 사랑하는 아들에게 이 정도도 못해준다면 아버지 자격도 없다 이 말이다.


내 세레모니에 만족했는지 로아는 경기에 다시 집중했다. 아내가 나무에 등을 기대더니 편안한 얼굴로 말했다.


"선생님한테 축구 잘한다고 칭찬 받더니 더 열심히 뛰네."


"당연하지. 우리 아들인데. 꼭 축구 선수로 키우고 말 거야."


"오빠 운동 신경 없잖아?"


"나 예전에 농구 했던 거 몰라? 날라다녔지, 아주."


"네, 그래서 여자들한테 인기 엄청 많았죠. 얘 별명이 뭐였는줄 알아요? 회오린데 왜 회오리냐면 아주 그냥 여자라면 다 빨아들여서-."


저 주둥이를 막으려 손을 뻗었지만 쥐새끼 같은 놈이 요리조리 잘도 피했다. 난 차마 뒤를 볼 수 없었다. 등에 식은땀이 뻘뻘 나는 건 착각이겠지. 음음.


"아!"


"조용히 해. 옆구리 그리 세게 찌른 것도 아닌데 무슨."


"기억났어. 여기야, 여기."


친구가 자기 눈 위를 가리켰다.


"뭔 소리야, 갑자기."


"눈썹 말이야. 눈썹이 여기라고."


"아직도 그 얘기야?"


기가 차다 못해 콧방귀가 절로 나왔다. 난 친구 와이프를 보며 이런 남편 때문에 힘드시겠다고 했다. 친구는 그러거나 말거나 손가락으로 눈 위쪽을 만지작거렸다.


"그러지 말고 네 딸 노는 거나 구경해. 저거 봐라. 모래를 제 키만큼이나 쌓았네. 이야, 장하다."


환호성이 들렸다. 또 골을 넣었는지 로아가 환히 웃고 있었다. 난 얼른 자리에 일어나 입에 손을 갖다댔다. 근데 이상했다. 분명 내 귀엽고 잘생긴 아들이 맞는데 어딘가 부족했다. 입? 볼? 눈? 이마? 눈썹?


"눈썹?"


순간 귀가 먹먹해졌다. 사람들이 다들 뒤로 넘어가 있었다. 뜨거운 열기가 온 얼굴을 감쌌다. 무언가 폭발하더니 흙이 위로 솟구쳤다. 아들이 나뒹굴고 아내가 바닥을 기었다. 흐느낌과 비명이 섞여 온 사방을 물들였다. 나 또한 다를 바 없었다. 머리가 세게 맞은 것처럼 정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 친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도 흙먼지를 뒤집어 제 몰골이 아니었지만 그와 별개로 어떤 생각에 빠진 것 같았다. 친구는 입을 오물거렸다. 난 여기서 도망쳐야 한다고 말했지만 친구는 나사 빠진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깊은 바닷속에 잠긴 것처럼 몸이 굼떴다. 세상이 시간선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진짜가 아니었어."


"뭐?"


친구의 허망한 표정과 함께 밑에 있는 땅이 폭발했다.








"혹시 눈썹이라는 말 들어봤어?"


그건 점심을 먹을 때의 일이었다. 요즘 프로젝트니 뭐니 바빠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꿀 같은 휴식인지. 난 회사 전경을 보며 새우 초밥을 맛있게 삼켰다. 그런데 느닷없이 한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난 회사 동료에게 몸을 기울여 물어보았다.


"그게 뭔데."


"나도 몰라. 그냥 갑자기 떠올랐어."


동료는 혀를 쯧쯧 차며 등을 두들겨줬다.


"요즘 부담이 많긴 하지. 팀장이란 자리가 원래 고생이 많아."


"어후, 어깨가 좀 결리긴 한다. 함 봐봐. 나 거북목 생긴 거 같냐?"


"그건 진작에 생겼지, 바보야."


동료가 킬킬 웃었다. 나도 같이 웃으며 초밥 하나를 더 먹었다. 그런 와중에 머리에 한 가지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눈썹. 눈썹이 뭘까. 눈이 들어갔으니 눈과 관련된 건가. 근데 그런 말이 있긴 한 거야?


"저기 봐봐."


동료가 어깨를 툭 쳤다. 가리킨 곳을 따라가니 한 여 사원이 웃는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얼굴 붉어지는 거 봐라."


"저렇게 예쁜 여자를 보면 누구라도 그래."


"난 괜찮은데?"


"아, 진짜."


민망함에 아무렇게나 내뱉으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면 되지. 거 참. 난 괜히 생수를 들이켰다. 그럼에도 내 눈은 여 사원을 향해 있었다. 얼마 전에 들어온 신입 사원인데 인상도 좋고 머리도 좋아 사내에서도 인기가 많다. 분명 나 말고도 다른 남자들이 눈여겨 보고 있겠지. 그런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한 번 들이대봐. 내가 너랑 쟤랑 얘기하는 거 옆에서 봤는데 분위기 괜찮았었어."


"그냥 일적으로 얘기한 것 뿐이야. 그리고 나이 차이도 좀 있는데 뭘 들이대냐. 됐다."


"요즘 나이 그리 신경 안 쓰는 거 몰라? 서로 좋으면 됐지, 남 눈치 볼 필요 없어."


"됐다니까. 눈썹 없어서 이상하기도 하고."


"뭐?"


"응?"


나를 보는 동료의 얼굴이 이상했다. 나도 같이 바라보다가 방금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아니, 그러니까.."


"아까부터 이상한 말 하네. 잠 잘 못 자서 그래?"


"아냐, 아냐. 그건 아닌데."


왜 이러지. 난 눈 위쪽을 슬슬 매만졌다. 평상시 그대로였다. 털 하나 없이 맨들맨들한 곳. 근데 허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여기에 뭔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있다면 뭐가 있어야 하지? 별 거 아닌 것 같으면서도 뿌리 깊게 박힌 생각은 도저히 뽑혀지지 않았다.


"내 말 들었어?"


"어?"


동료가 답답한 얼굴로 말했다.


"곧 여름이라 오늘처럼 밖에 나오기 힘들 것 같다고. 땀 때문에 눈 아프니까."


"그렇지."


"그래도 뷰는 좋은데 여름 내내 못 나온다고 생각하니 갑갑하다. 이제 밥 어디서 먹냐."


"휴게실에서 먹어야지, 뭐."


"거기? 야, 저번 여름에 생각 안 나냐. 에어컨 새로운 걸로 바꿨다고 공지해서 이제 좀 시원하게 먹겠구나 싶어서 가니까 사람들이 득실득실해서.."


주변이 침묵에 빠졌다. 난 다시 눈 위쪽을 만졌다. 여름에 땀나면 눈이 아프다고? 왜 아프지, 눈썹이 있는데. 어라, 없네. 나만 없는 건가. 동료도 없는데.


"야, 야. 또 말 안 듣네. 너 몸 어디 안 좋은 거 아냐?"


"눈썹이 없어."


"그게 뭔데 자꾸 찾아."


"아니, 있었는데 없어졌잖아. 어째서.."


순간 몸이 흔들렸다. 머리가 어지러운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건물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이와 반대로 소리는 조용했다. 비명을 지르며 밑으로 떨어지는 사람들과 나에게 뭐라뭐라 소리치는 동료를 보면 틀림없이 시끄러워야 할 텐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내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 건 딱 하나. 눈썹.


'진짜가 아니었어.'


어디서 들었는지 모를 말이 문득 떠올랐다. 난 난간을 붙잡으며 멍하니 있다가 하늘을 쳐다봤다. 아수라장이 된 여기와 달리 하늘은 푸르렀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저 속에 비행기 하나가 유유히 날고 있었다. 비행기? 아냐, 움직이지 않고 검은 점처럼 박혀 있을 뿐인데. 저게 뭐지?


"진짜가 아니라고?"


요동치던 건물은 결국 옆으로 쓰러져 버렸다. 내 몸이 붕 뜨더니 순식간에 밑으로 추락했다.









"눈썹을 만드는 게 어때요?"


"외형이 똑같아지면 손님 기분이 좋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어차피 거의 비슷한데 무슨 상관입니까. 보세요, 진도가 안 나가잖습니다. 재해가 벌어지건 말건 멍하니 있는데. 관람도 제대로 안 되고 말이야."


"죄송합니다."


남성이 머리를 쓸어넘겼다. 남성 옆에는 한 사람이 점잖은 자세로 가만히 서 있었다.


"아빠. 그냥 나 축구하러 갈래."


"미안해. 잠깐만 기다려봐. 아빠가 얼른 재밌는 거 보여줄게."


남성은 직원에게 손짓해 조용히 말했다.


"초기화시키고 이번에는 아예 정글로 보내주세요. 동물에게 물려 죽는지 굶어 죽는지 보고 싶으니까."


"알겠습니다."


직원은 검지를 들어 빙빙 돌렸다. 그러자 유리창 안에 있던 건물과 사람들이 거대한 압축기에 무참히 짓이겨졌다. 잠시 후, 세찬 바람 소리와 물소리가 들리더니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깨끗해졌다.


남성은 여유롭게 다리를 꼰 채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시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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