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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화성, 2164

라그린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07.07 16:3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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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는 붉은 바람이 분다.


산화된 쇳가루가 바이저에 쏟아진다. 그 바싹 마른 소음이 빗소리처럼 들렸다. 쏴아아아, 쏴아아아… 저벅, 저벅, 저벅. 걸음을 멈추자 나를 따라오던 흙먼지도 나를 떠나 사라져버렸다. 여기에는, 아무도 없나요? 여기, 화성에는…



주거지로 돌아와 보호복을 벗자 정제된 공기가 몸으로 파고든다. 이내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미지근한 물방울이 몸을 타고 질질 흐른다. 물이 조금만 더 시원했으면 소원이 더 없었을 텐데.


그 만족스럽지 못한 샤워조차도 1분 안에 끝내야 한다. 이젠 물을 물 쓰듯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실수로 물을 틀어놓고 멍을 때리는 바람에 치른 곤욕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변기를 며칠 동안이나 못 내린다고 상상해보라!


그토록 귀한 물방울들을 수건으로 닦아내니 훨씬 개운해졌다. 헐렁한 옷으로 갈아입은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오늘의 성과가 얼마나 공허했고 시간 낭비였는지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이다.


일지를 써 내려가던 나는 마치 지나가던 악령이 들린 것처럼 분노를 토해내고는 다시 그 부분을 지우기를 반복했다. 끝내는 마지막 문단을 채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튼을 걷어 강화유리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하늘이 참 흐리다’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기 시작했다. 화성의 흐릿한 하늘, 유리창에 손을 대자 붉은 바람의 하울링이 손끝으로 느껴졌다. 장중한 관현악이라 생각하려 해봐도 바순과 호른밖에 없는 무의미한 울림뿐. 폭풍이 오려는걸까?


여러 과학자들은 비가 내릴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았다. 하지만 그것이 내 대에서 가능한 것인지는 ‘후속 연구’를 운운하며 확실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곳에 없다. 나는 이곳에 있다. 그리고 죽어가듯 침대에 쓰러진다.




내 가장 오래된 기억은 6월에 내렸던 폭설이다. 이미 며칠 전부터 기온이 겨우 영상에 머물렀기 때문에, 부모님이 다시 월동준비를 마친 후였다. 눈이 내린다면서 방방 뛰는 나를 바라보던 엄마는 ‘우리 지원이는 어떻게 하지’ 라며 걱정하셨던 것 같다.


뉴스에서는 하루종일 이상기온에 대해 떠들었다. 사람들은 엘리뇨와 라니냐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아마존을 모두 베어버린 브라질 사람들의 탐욕에 대해 성토했고, 아프리카 사람들의 무절제한 물소비를 질타했다. 하지만 아빠는 속아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


“저놈들 집에는 아마존 고목으로 만든 가구가 있을 거야.”

“맞아, 진짜 탐욕스러운 사람들이 누군데.”


다른 채널에서는 이상기후에 대한 전문가 대담이 이어지고 있었다. 패널로 출연한 노인이 누구인지는 잘 모르지만, 앞에 ‘생태기후 전문가’ 라는 푯말이 붙어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사람은 ‘내 그럴 줄 알았다’ 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건 유동성장기부채와 같습니다. 수 백 년간 인류는 지구에 진 빚으로 엄청난 발전과 부를 이루었죠. 이제 상환할 때가 온 겁니다.”

“박사님께서는 ‘만기가 왔다’ 라는 입장이신데요, 현 시점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 위기를 슬기롭게 넘길 수 있을까요?”

“임계점은 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아무런 악영향을 끼치지 않더라도, 상황은 스스로 악화될 겁니다. 그동안 경고했잖습니까?”


아나운서는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입술을 살짝 깨문 후에야 ‘자기에게는 자식이 있다’ 면서 미래세대를 위해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할 수 있는 건지 물었다.


“우리가 더 할 수 있는 일… 있습니다만, 제가 답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럼 누가 대답할 수 있을까요?”

“우주공학자에게 물으십시오.”


그 말이 기점이었을까? 그 후부터 TV에서는 기후복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대신 화성이주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서로의 목소리와 어조는 달랐지만 항상 같은 결말을 맺었다. ‘막대한 비용’. 그나마 기후복원 비용보다는 저렴할 것이라고도 덧붙혔다.


가장 긍정적인 학자들조차도 3년을 이야기했다. 모든 정부와 모든 기업이 협력할 것을 가정하고서도 3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이다. 지금처럼 6월에 폭설이 내리는 상황에서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


정작 나는 화성에 간다며 좋아했다. 짜리몽땅했던 그 손으로 저녁 하늘에 뜬 화성을 쥐어보겠다며 바둥거렸다. 주황으로 빛나는 화성의 빛줄기는 자꾸 여린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그와 달리 부모님은 골머리를 앓는듯했다. ‘맨입으로 태워주진 않을 거야’, ‘어떻게 마련하지?’, ‘지원이라도 태워야지’, ‘이 사람아 아직 애야 어떻게 혼자 보내려고 해’...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그렇게 한바탕 싸우고 나면 엄마는 항상 나를 푸욱 하고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무슨 죄를 지었다고,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하면서 하염없이 우셨다. 그 품속에서 나는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정말로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




몽롱한 정신으로 엄마를 부르려던 내 목이 잠겼다. 오히려 타들어 가는 기침이 나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언가 이상하다. 숨이 쉬어지질 않는다. 머릿속에서 스파크가 번쩍였다. 공기정화모듈이 문제를 일으킨 게 틀림없다.


점점 몸을 가누기 힘들어진다. 콜록, 켁! 기침조차 나오지 않는다. 폐가 쪼그라들면 이런 기분이 들까? 나는 흐려져 가는 의식 속에서 비상용 산소캔을 떠올렸다. 침대 밑? 선반 위? 어디다 두었지? 내가 어딘가 놨었는데…


침대 밑이었다. 정말로 눈이 돌아가 버리기 전에 겨우 산소캔을 찾은 나는 몇 번이나 심장이 터질 듯 숨을 들이 내쉰 후에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정말로 영영 죽어버릴 뻔했다. 눈물범벅이 된 눈가를 닦고서야 계기판의 붉은 경보등이 보였다.


‘세상에 맙소사, 모듈이 완전히 고장 났나 봐…’


끽해야 납땜으로 해결될 문제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하나뿐인 필터가 찢어졌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더 이상 필터를 구할 방법도 없고, 그 미세한 걸 바느질로 꿰맨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나는 뱃속까지 긁어낼 것처럼 캬아아악, 하고서는 가래침을 뱉어냈다. 오늘 나를 죽일 뻔했던 붉은 분말이 피처럼 섞여 나왔다. 아직도 목 여기저기가 깔깔하고 입 안에서는 모래가 씹히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보호복으로 갈아입고 거주지 밖으로 나섰다. 어제 평소보다 거센 바람이 분 덕분에 바깥은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아무래도 폭풍이 오고 있는 듯했다. 나는 달달 떨리는 손으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공기정화모듈을 확인했다.


다행히도 필터가 찢어진 건 아니었다. 밤새 바람이 난리를 치면서 모듈을 자꾸 건드렸고, 그 진동 때문에 필터를 조이던 나사가 풀려버린 것이다. 그저 다시 입자 필터를 끼우고 다시는 이런 바보 같은 일 때문에 죽는 일이 없도록 나사를 박기만 하면 될 뿐이다.


‘그래 맞아, 고작 이런 거로 죽었다간 저 멀리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필터를 다시 설치하는 일보다도 새어 들어온 먼지를 치우는 일이 더 힘들었다. 미립질의 입자들은 두 번을 쓸고 세 번을 쓴 후에도 계속해서 나왔다. 큰맘 먹고 진공청소기까지 돌린 후에야 그나마 예전과 비슷해졌다.


‘진공청소기가 100w니까…. 이번 주에는 전기를 조금 아껴야겠어.’


긴축운영안에 동의하는 것처럼, 인버터의 불빛이 깜빡거렸다. 일반적인 태양광 인버터의 수명을 생각하면 그래도 이 친구는 꽤 장수하는 축에 속한다. 언제 고장 나도 이상하지 않겠지만, 최소한 내 숨이 붙어있는 동안에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


애꿎은 난리로 시간과 전력을 많이 흘렸다. 벌써 태양은 헬멧 정중앙에 올랐고, 지표면은 타들어 가고 있다. 씨앗을 뿌리기에 좋은 시간대는 아니다. 기왕이면 볕이 강하지 않은 아침시간이어야 하고, 비가 오면 좋겠지만… 그럴 일은 없겠지.


바싹 마른 입을 축인 나는 씨앗 주머니를 챙겼다. 이게 나의 일과다. 저벅, 저벅, 휙! 파종을 곁들인 화성의 산책길은 고요하다. 적막속의 반복 노동은 정신까지 멍하게 만든다. 저벅, 저벅, 휙. 저벅, 저벅, 휙…




몇 년 후, 처음 화성이주선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감탄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통째로 쏘아 올리는 것이 불가능한 크기였기 때문에, 수차례나 부품을 쏘아 올려 우주 궤도에서 만든 인류 첫 번째 우주건조물이었다.


“정말 엄청나네…”


엄마는 화성이주선의 가격표를 보며 말했다. 현금은 가치를 잃고 있었다. 모두가 이주선에 타기 위해 팔 수 있는 건 모조리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화성이주선에 투입할 기술과 재료는 큰 가치를 인정받았다. 필요한 경우엔 목숨도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여보, 이거 봐. 이주권이 걸린 일이야.”

“화성에서 자랄 수 있도록 개량된 작물의 임상실험? 너무 위험하지 않아?”

“동물실험에서는 독성이 드러나지 않았데. 해볼 만해.”


화성이주선이 만들어지는 동안, 또 다른 과학자들은 화성에서도 자랄 수 있도록 유전자가위로 작물을 개량했다. 마지막 단계인 임상실험을 앞두고, 우리 부모님이 우연찮게 그 광고를 발견한 것이다.


“수 백 년 전, 선원들에게는 괴혈병이 공포의 질병이었습니다. 우주시대에도 그렇습니다. 화성인들에게는 신선한 식물이 필요합니다!”


TV 속의 양복쟁이는 신선한 식물의 필요성을 재차 말했다. 영양분은 캡슐로 보충할 수 있지만, 생기 가득한 식물이 주는 정서적인 안정감이나 행복은 대체할 기술이 없다고 말이다. 광고가 잠잠해지자 엄마는 말했다.


“그래, 같이 신청하자.”

“아니야, 아니야. 내가 일단 넣어볼게. 자기는 지켜보고 있어봐.”

“언제 또 이런 공고가 나올 줄 알고? 나라에서 한 공개 추첨도 탈락했잖아.”


제법 머리가 굵어진 나는 이제 부모님들이 하는 대화를 거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가 이주선 계획에 지원한 만큼 받은 이주권 중 일부는 공개 추첨에 들어갔다. 확률은 기대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결과도 그랬다.


그래서 부모님은 임상시험에 사활을 거셨다. 이주선 제작이 막바지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이주권이 걸린 일(그러니까, 위험한 일)도 바닥이 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약을 팔던 양복쟁이는 그 사실을 다시 한번 언급했다.


“이제 우리는 화성으로 떠납니다. 모든 준비는 끝났습니다, 당신의 선택만이 지구에 남아있죠.”




저벅.


발걸음이 멈추었다. 나는 모래더미 위에 무릎을 꿇었다. 터키커피를 끓일 수 있을 정도로 타오르는 모랫더미 틈에서, 드디어 싹 하나가 피어올랐다. 그 소담한 이파리의 모습에 나는 어찌할 줄도 모르고 눈물만 흘렸다.


“그래, 이제 희망이 있어…”


지금은 그저 작은 이파리에 불과하지만, 이건 화성에 이렇게라도 식물이 자랄 수 있다는 귀한 증거다. 만약 이 싹이 뿌리를 내리는 데 성공한다면 훨씬 더 복잡한 생태계라 할지라도 충분히 쌓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식물이 뿌리를 내리면, 표층에 수분이 부족하더라도 상관없다. 식물은 자신의 뿌리를 습기를 찾을 수 있는 곳까지 깊게 밀어 넣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토양의 통기성은 개선되고, 보비력과 보수력도 제 자리를 찾을 것이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물을 쏟았다. 바싹 마른 모래의 색깔이 서서히 진해진다. 이 정도면 뿌리에까지 물기운이 전해졌으리라. 바람 때문일까? 이파리가 꾸벅, 하고 인사하는 것 처럼 느껴졌다. 너도, 나도. 희망을 찾았다.


이파리의 사진을 찍고 거주지로 돌아온 나는 대충 물만 끼얹고서 식물사전을 켰다. 무척 낮이 익은 데다가 특이하게 생겼기 때문에, 식물의 이름을 아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식물의 이름은 Teraxacum platycarpum.


“민들레구나…”


유전자풀이 넓고, 환경오염에 저항력이 강하다… 긍정적인 서술이다. 산도가 높은 토양에서도 자랄 수 있으며, 번식력이 높기까지 하다니. 지금 이 식물이 화성에서 싹을 틔워주었다는 사실 자체가 고맙기만 하다. 너무나도, 너무나도!


“자, 이제 식물이 싹을 틔울 수 있다는 걸 증명했어. 이다음에는 낮은 수준의 생태계를 만들어봐야지.”


나는 오랫동안 비어있었던 체크리스트에 처음 [브이] 표시를 채워 넣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첫 번째 화성이주선의 마지막 탑승객이 타고 갈 우주선이 곧 출발합니다. 현장 보시겠습니다.”

“네, 여기는 휴스턴 우주센터의 프레스 룸입니다. 잔여석에 당첨된 각국의 사람들이 탑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리포터를 비추던 카메라는 안전선 너머의 행운아들을 비추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들뜬 표정의 탑승객들은 삼엄한 경호를 받으며 탑승 절차를 밟고 있었다. 리포터는 그중 한 가족과 인터뷰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지금 기분이 어떠신가요?”

‘꿈만 같습니다! 이제 마음편히 숨 쉴 수 있겠어요.’

“화성에 가면 계획이 있으신가요?”

‘우선 우리 셋이 마음 편히 산책을 하고싶습니다. 요즘 통 시간을 못 냈거든요.’

“네, 이렇듯 탑승객들은 기대에 부풀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휴스턴 우주센터였습니다.”

“네, 잘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화성 이주 이사회 대표님과 가진 화상 인터뷰를 보내드리겠습니다. 화성과의 거리 때문에 녹화본으로 보내드리는 점, 양해 바랍니다.”


잠시 후 화면에는 검은 노이즈가 지직거린 후, 누군가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 양복을 차려입은 사람의 어깨 너머의 창문에는 붉은 화성의 모습이 보였다. 그 사람이 입을 때자, 자막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화성에서 인사드립니다.’

“네, 반갑습니다. 대표님. 화성의 상황은 어떤가요?”

‘자원의 양이 예상보다 풍요롭습니다.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기에 충분합니다.’


대표는 지금까지의 노하우와 화성의 자원을 바탕으로 다음 세기 안에 태양계 전체를 개발하는 계획을 설명했다. 목성과 같은 가스형 행성에서는 거주는 불가능하더라도, 에너지를 추출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 언젠가 지구를 복원할 수도 있을까요?”

‘우리 경영진은 인류 발전을 위한 많은 계획을 가지고 있고, 지구도 그중 일부입니다.’

“반가운 소식입니다. 그럼 다음 질문드리겠습니다…”




결국 폭풍이 들이닥쳤다. 이미 보수를 끝마친 공기정화모듈은 끄떡없었다. 하지만 겨우 발견한 민들레 새싹이 자그마한 해라도 입을까 봐 한숨도 잠들지 못했다. 피곤에 찌든 몸이 겨우 몽롱하게 젖어 들었다가도 강풍이 이는 소리에 다시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모래폭풍은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그쳤다. 완전히 밤을 새우는 것 만도 못 한 시간을 보낸 나는 쓰러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폭풍이 그친 이상 어서 민들레를 확인해야 한다. 쓰러지더라도 민들레가 멀쩡한 걸 확인한 후에 쓰러져야 한다.


나는 아이를 잃은 부모처럼 민들레를 찾아 헤맸다. 때로는 정신이 나간 듯이 바닥을 뒤졌다. 뜨거운 화성의 열기가 보호복 너머로 느껴진다. 그 작열감은 나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


고생 끝에 찾아낸 어제 그 자리에는 이미 바싹 마른 이파리뿐, 생기있는 초록색은 온데간데없었다. 고작 식물 하나가 말라죽은 것이 아니다. 찰나의 시간이나마 그려보았던 모든 가능성이 끝나버렸다.


“이 행성의 이야기는 이제 끝이구나.”


나는 죽어버린 새싹 앞에 무릎을 꿇었다. ‘조금만 더…’ 라는 후회는 이제 아무 의미가 없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답답함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아서 바이저를 벗었다.


“이젠 지쳤어…”


땀에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뜨거운 화성의 공기가 파고들었다. 습기 하나 없는 열풍에 금세 땀이 말라버릴 것만 같았다. 매캐한 가스상물질이 목구멍을 간질거렸고, 연달아 기침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제 익숙해져야 할 공기다.


아무도 살 수 없는 화성의 이름 모를 어귀에 홀로 남았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하지, 무엇을 해야 하지, 어디로 가야 하지…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질문들이 자꾸 떠올랐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지..?


“난, 이제 돌아가야겠다.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터벅터벅, 거주지로 돌아왔다. 오랫동안 열지 않은 차고의 문을 열었다. 멎어있던 엔진이 마지막 불을 뿜는다. 내비게이션은 이 상황도 모르고 경쾌한 핑거 스냅과 함께 화면이 켜졌다.


출발지 : 경기도 화성

도착지 : 경기도 평택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화성을 비추던 태양은 모래언덕 너머로 사라진다. 영원한 밤이 찾아온다. 북쪽 하늘에는 주황 불빛이 반짝인다. 나는 서서히 남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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