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 아후라 옥황 멜서스

*본편 이전*

원류 사람들이 아후라제국에서 차별과 박해를 받고 있다는 것은 편견에 불과했다.

원류 사람이란 괴우주 일반 시공에서부터 진화해서 올라온 문명들 중에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수준의 육체 단계를 고수하고 있는 이들을 말한다. 야누 초신이 크툴루 괴신족으로부터 구해 파라탐 초시공으로 끌고 온 태초 사람들은 원류 사람과 같은 등급이고 둘을 합쳐 부를 때엔 원류 사람으로 불렀다.

아후라제국도 다른 파라탐 초문명들이 그랬듯이 원류 사람들에게 그들이 그 육체에서 누리는 것이 가능한 최상의 생활을 제공했다.

원류 사람 김준우는 아후라제국에서 살았다. 김준우는 수많은 비슷한 역사들이 여러 우주들에서 반복되고 있고 이 중 하나에서 자신이 왔음을 알았다. 김준우가 살았던 곳은 운이 나쁜 편에 속해서 한 번 인공지능에게 인류가 멸종당했다가 그 인공지능이 절대자를 두려워하여 인류를 부활시킨 적이 있는 우주였다. 김준우는 숱한 원류 사람들이 그렇듯 한 번의 죽음을 경험했다. 김준우는 1980년에 태어나 2022년에 죽은 바가 있던 사람이었다.

김준우는 아후라제국이 괴우주 파라탐 초문명의 맹주로서 하는 짓들을 알았다. 아후라제국은 같은 아후라신족들을 계급화시켜 부렸고, 온갖 계략으로 악을 조장하는 중이었다. 자신과 같은 원류 사람들에게 베풀고 있는 은총과는 도무지 안 맞는 짓들이었다.

김준우는 아후라제국 옥황상제 서문화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서문화는 김준우의 집에 방문해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색계적 편재의 일종으로서의 대인간용 인터페이스를 서문화는 보낸 것이다. 서문화는 곤룡포를 입었고 김준우의 앞에는 커피와 다과가 놓여 있었다. 김준우가 말했다.

“어째서 악당으로 구는 겁니까? 호기심으로 묻는 겁니다. 어차피 나 같은 원류 사람은 아후라제국의 자비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니까요.”

“21세기 이전의 인류의 지도자들은 항상 멜서스 트랩에 관해 고민했지요. 세상에 아무리 선과 자애가 넘쳐도, 이를 뒷받침할 자원이 부족하다면 인간 세상은 지옥이 된다는 멜서스 트랩은 인류의 지도자들이 익히 알던 바였지요. 그랬기에 그들은 때때로 바라지 않아도 인류를 빈곤으로 몰기 위한 악을 자행했습니다. 자원 소비량을 줄이기 위해서였지요.”

“아후라제국은 파라탐 초문명이 아닙니까. 알려진 모든 정보를 무한대로 운행할 수 있는데 어떻게 멜서스 트랩이 작동을 합니까?”

“멜서스 트랩은 결국 무지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고대의 지도자들은 세상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면 무엇이 나올지를 몰랐기 때문에 또한 온갖 제약을 받았기 때문에 멜서스 트랩에 굴복하곤 했지요. 무지라는 점에서 인류는 절대로 발전할 수가 없지요. 세상의 모든 논리 너머에 단 하나의 모순이라도 있다면 그 안에 절대적 무한이 있어도 결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는 논리학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아후라제국은 알 수 없는 무지의 외계에서 적대자가 나타날 때 악을 내세워야 할 경우의 수를 언제나 대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언제나 악하게 굴 필요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극단적인 상황이 닥치면 그때 가서 비정상적으로 굴어도 되지 않나요.”

“때가 되면 그렇게 하겠다고 정책을 짜고 있는 파라탐 초문명은 많습니다. 때로는 늘 악독하게 굴어야 대비할 수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아후라제국은 스스로 그런 종류의 악역을 맡겠다고 작정한 것일 뿐입니다. 궤변으로 보이겠지만 이는 하나의 가정이며 대비가 필요하다고 제가 본 것이지요. 전 통치자로서 이를 동의하지 않는 아후라신족에게도 강요하고 있는 바입니다. 이 정도면 대답이 되었다고 봅니다, 김준우 선생님. 누가 무어라 해도 당신은 우리 파라탐 초문명을 가능케 한 필연적인 존재이고 그렇기에 제겐 영원한 선생님일 것입니다.”

김준우는 이후로도 아후라제국에서 천국 같은 삶을 누렸다.

[2022.01.20.][2022.01.22.][2022.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