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문명과 과학 기술력은 대체적으로 전근대적 주술적 세계관에 대응되는 인간 이성 능력의 상징인데, 그런 기계를 '신으로 숭배' 한다는 점이 부서진 신의 교단 같은 것이 주는 아이러니함임.

물론,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건 없다고 부서진 신의 교단 같은 건 워해머의 컬트 메카니쿠스(기계교) 같은 비슷한 사례가 있고, 그런 설정의 시조 내지는 중시조쯤 되는건,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임.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하려 하지만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될 수밖에 없는데, 터미너스라는 행성 하나에 갑자기 뚝 하고 떨어진 파운데이션은 멸망해가고 있는 은하제국의 가장 이름난 기술자들과 과학자 집단이었기에 그들이 갖고 있는 지식은 뛰어났지만, 스스로를 지킬 군대는 없었음. 점차 몰락하는 은하제국의 군벌들이 보유한 기술 수준은 파운데이션보다 훨씬 열등했지만(다만, 50년대 소설이라는 점에서, 파운데이션의 뛰어난 지식이란 게 고작 원자력 수준이고, 아무리 변방 군벌이라 해도 우주 여행을 할 수 있는 세력들이 고작 석유 엔진 따위를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옛날 감성이 푹푹느껴지지) 아무런 무기 없는 파운데이션을 박살내는 건 쉬웠음. 그래서 이 파운데이션이 살아남기 위해 수를 쓴 게 자기들을 '기계령의 사제' 취급한 거임, 자기들의 과학 기술력과 기계 다루는 법을 '기계령과 소통하는 종교 의식'으로 포장하고, 자기들만이 선택받은 사제이기 때문에 너희들은 우리의 기계를 다룰 수 없고, 우리들만이 기계령의 은총을 베풀수 있다. 이런 식으로 자기들의 기술력을 주변의 군벌들에게 베풀어서 생존하지만, 그 기술력을 나누지는 않지. 또한 이러한 방식으로 '기계령의 사제'들이 여러 나라에 퍼져감으로서 첩보와 사보타주 활동을 하기도 하고. 결론적으로는 '그런 거 없다'지만 실제로 다른 군벌들은, 파운데이션 시리즈 2권 나오기 전까진 진짜 기계령이라는 게 실제로 있다고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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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다가 화물 신앙까지 갑자기 생각이 나니까, 부서진 신의 교단에 대해서 묘한 동인설정이 생각나더라고, 부서진 신의 교단이 실은, 있지도 않은 '부서진 신'을 숭배하는 화물 신앙 집단이라면?

분명히 부서진 신의 교단은 변칙적인 초상기술을 가지고 있고, 고대에는 메카네 제국이 있었다는 게 역사적 사실임. 하지만 그게 다 부서진 신의 교도들이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라면?

요컨대, 메카네 제국 또는 그보다 더 오래된, 초상기술 문명이 존재했고, 그들은 기계 신 따위를 믿지 않고, 어쩌면 '메카네'는 그저 그리스어 말 그대로 '기계'라거나, 그저 '기술들' 이상의 뜻을 갖지는 않았을 거임. 하지만, 이 초상기술 문명은 지금은 사라졌고, 그들이 존재했다는 흔적만이 부서진 신의 교단 관련 SCP들인데, 한낱 무식한 고대 인간들에 불과한 '최초의 부서진 신의 교도'들은 이 초상기술 문명을 일종의 신으로 섬기게 된 거임, SCP-2847 '불사대우'를 보면 고대 메카네 문명인 하나라에서 AI를 만들 수준은 되었으니, 그런 AI들을 접한 사람들이 '저 기계는 신이다' 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그런 식으로, 존재하지도 않는 기계 신을 찾게 된 것, 마치 다시는 오지도 않을 존 프럼을 찾아 오늘도 나무로 모형 총을 만들어서 '군대 제식'을 흉내내고 나무로 '비행기를 유도할 관제탑'을 만들어서 의례를 치르는 화물숭배교도들의 초상 버전이 부서진 신의 교단이라는 거지. 화물 숭배와의 차이가 있다면, 그래도 부서진 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어쨌든 '화물'에 해당하는 것 일부(즉, 메카네 관련 SCP)를 실제로 가지고 있다는 것 정도.

하지만, 부서진 신의 교단도, 어렴풋이나마 자신들이 갖고 있는 초상 기계들이 남겨진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그걸 '신이 부서졌다' 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고, '부서진 신의 교단'이 신을 다시 조립하겠다는 것은 결과적으로는, '고대 초상기계문명을 복원' 하는 것이 되겠지. 하지만,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기계 신을 숭배하는 이들에게는 방법론과 인식 자체가 잘못되었으니 영원히 오지 않을 뿐. 요컨대 화물 숭배로 비교하면 화물 숭배자들의 이상향인 '존 프럼이 무한히 많은 화물을 가지고 재림하는 것'이, 부서진 신의 교단에서는 '부서진 신이 재조립되는 것' 임.

그들의 숙적인 사르킥 숭배는, 비록 원시적이고 야만적으로 보일 지라도, '신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가 스스로 발전하고 강해질 것이다'라는, 뒤틀렸으나마 인간 승리의 의지를 보여주는 요주의 단체라면, 부서진 신의 교단은 하이테크적으로 보일 지라도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신에 매달려 있다는. 그런 아이러니라는 설정을 생각해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