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내용: 더 이상 그린스킨이 문제가 아니었다. 샬롱 숲에서 모습을 드러낸 비스트맨 무리들이 새로운 위협으로 부상했다. 비스트맨들은 대규모 교전은 피하고 오직 약한 마을들을 우선적으로 파괴하기 시작한다. 보르들로 전역에서 파괴된 마을들이 수없이 생겨난다. 칼라르와 바스통의 기사들은 파괴된 마을에 도착한다. 그리고 제국 대사 디터 베슐러는 농노들이 도망치지 않은 것에 의구심을 표한다

'어째서 이 사람들은 도망치지 않은 것인가요?' 디터 베슐러가 말했다. 잔혹한 학살의 현장을 둘러보는 그의 이국적인 억양이 또박또박 말했다. 늘 그렇듯, 제국 군인은 티 없이 깨끗한 모습이었다. 그의 검은 갑주는 광택이 났고, 그의 수염은 조심스레 기름이 발라져 위로 향하고 있었다.

'도망치면 무법자가 될텐데요?' 칼라르가 말했다. 그는 진흙에 얼굴을 처박은 남성의 시신을 혐오감에 찬 채로 바라봤다. 그의 창백하고 생기없는 손에는 낫이 들려있었다. 남성의 뒷머리는 마치 견과류처럼 열려있었다. 그리고 칼라르는 남성의 척추를 가른 등 뒤의 상처를 볼 수 있었다. 등에 난 상처로 보아 아마 도망치려고 했던 게 틀림없었다.

농노들은 명예를 이해하지 못했다. 칼라르는 경멸과 연민을 품은 채로 생각했다. 칼라르는 하층민들로부터 기대할 건 별로 없지만, 남성이 적들과 맞서지 않고 명예롭지 않게 도망쳤다는 사실은 그를 화나게 만들었다. 물론 칼라르는 적들에게도 명예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디터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는 혼란스러워 하는 얼굴을 몽타카다스 남작에게 보냈다.

'평민들은 본인들이 묶인 땅을 영주의 허락없이 떠나는 것이 금지됐습니다' 남작이 말했다. 그의 커다랗고 수염난 얼굴은 진지했다.

'그렇군요' 디터가 말했다.

'참으로 슬픈 날입니다. 황제께서 오늘날의 비극을 알게 된다면 아주 슬퍼하실 겁니다. 제국의 대사로써, 브레토니아 백성들에게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딱딱하게 절하며 디터가 말했다.

'브레토니아는 대사의 자애로운 말에 감사를 표하오' 남작이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하필 이런 비극적인 시대에 우리들의 아름다운 땅에 방문하신 것에 사과드릴 수 밖에 없겠군요. 그럼 전 잠시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디터'

'이들은 농노에 불과해, 제국인' 남작이 군타르와 대화하기 위해 사라지자 베르텔리스가 경멸감을 품은 채로 말했다.

'이들도 당신과 나와 같은 사람들이오' 디터는 외교관이었다. 그리고 그의 표정에선 감정을 찾아볼 수 없었고, 그의 말은 상대방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스러웠지만, 칼라르는 디터가 베르텔리스의 말에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혀 아니야' 베르텔리스가 말했다.

'이놈들은 종 자체가 전혀 다른 놈들이지. 오직 섬기기 위해 태어난 버러지들에 불과해'

'당신과 나 같은 이들은 출신 성분 때문에 그러한 특권을 가지게 된 것 뿐이오'

'하!' 베르텔리스가 코웃음을쳤다.

'때론 난 농노들의 단순한 삶이 부러워. 놈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행운인지 모르거든'

'오?' 디터가 차갑게 말했다.

'어찌 그렇소?'

'놈들은 살아갈 집과 먹을 음식들이 있어 . 놈들은 정치와는 상관없이 본인들이 원하는 대로 결혼할 수 있지. 그리고 영주가 놈들을 안전히 보호해주고 말이야. 농노들은 세상에 걱정할 일도, 책임도 없어. 농노들은 일하고, 먹고, 자고, 용두질이나 할 뿐이지. 내가 보기엔 나쁘지 않은 삶 같은데'

디터는 그의 주변에 널린 시체들을 살펴봤다. 농노들 모두 기아로 허덕인 듯한 모습이었고, 영양실조와 근친상간의 흔적은 충격적일 정도였다.

'그렇군. 참으로 운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