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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썰] 번역) IRON COMPANY <챕터 6(終)>

차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10.19 13: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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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적이 오더라도, 공학자들은 화기로서 그에 맞설 수 있습니다.


섬세하게 만들어진 장총의 저격이나, 소총 연대의 일제사격 같은, 제대로 배치된 화약 병기를 버텨낼 수 있는 존재는 거의 없지요.


허나 노련한 공학자마저 맞설 수 없는 것이 하나 존재합니다.


인간의 마음을 집어삼키는, 공포입니다.


공포가 병사들의 마음을 좀먹는다면, 올드 월드의 모든 화기가 있다 한들 승리하기에 충분하지 않을 겁니다.'




- 선임 공학자 루카스 그렌델.


눌른 공과대학에서의 연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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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가 고산지로 나아가며 날씨가 점점 더 추워지고 있었다.


헤르기히 주변의 평야가 초봄을 즐기고 있는 중에도, 산맥은 대리석처럼 단단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만년설은 그들 머리 위 높은 곳에 있었지만,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은 공기를 싸늘하게 식혔다.


사내들은 축축한 군복 때문에 벌벌 떨며, 이를 악물고 전진했다.


많은 이들이 병으로 쓰러졌다.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이 없었다.


아직 걸을 수 있는 이들은 조잡한 약을 처방받고 동료들에게 부축되었다.


열병이나 고산병에 걸려 쓰러진 불쌍한 이들은 뒤에 남겨졌다.


어떻게든 헤르기히로 돌아가거나, 야생에서 죽어갈 것이다.






중앙 산맥(*미테베르겐) 에 간신히 도달한 이들 주위로, 하얀 봉우리들이 우뚝 솟아 있었다.


군대는 고산지의 중심에 도착했고, 마구잡이로 깎인 회색 암반이 드러난 산기슭을 따라 도로가 오르락 내리락 했다.


몇 안되는 검은 소나무가 절벽에 뿌리를 박고 자라 나 있었다.


얇은 잿빛 풀들이 바람에 바스락거리며, 가장 심지 굳은 이들조차 불안하게 만들었다.






마그누스는 마치 수평선을 수놓은 높은 봉우리에게 홀리는 것 같았다.


산이 행군하는 대열을 엄숙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바위와 얼음으로 된 왕관을 쓴 산은 냉혹하고 무자비했다.


공기 중에 위협이 떠다니는 것 같았다.


바람이 거친 암반에 부딪혀 신음할 때마다, 마그누스는 마치 필멸자들이 들으면 안 될 악의에 찬 속삭임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숲에 대한 것 만큼이나 산에 대한 전설들도 많았다.


바위 밑을 갉아먹는 기이한 것들.


눈으로 뒤덮인 고산에, 인간이 알 수 없는 곳에, 고대의 짐승들이 살아간다는 건 잘 알려져 있었다.


강철 같은 비늘의 용이 얼어붙은 금더미 위에서 잠자고 있다거나.


사람 같은 털북숭이 괴물이 반짝이는 별을 향해 외로움으로 울부짖는다는 이야기였다.


마그누스는 그런 이야기를 믿지 않았었다.


하지만 깎아지른 산기슭을 바라보는 지금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머리가 혼란했다.


그는 이틀 동안이나 금주했고, 기분은 최악이었다.


이곳엔 분명 인간이 영영 모를 비밀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곳은 깊은 숲보다도 더욱 인간을 위한 곳이 아니었다.







앞에서 갑자기 들려온 고함소리가 그의 사색을 끊었다.


전방에서 무슨 일이 있는 듯 했다.


마그누스는 등자에서 몸을 뻗어 무슨 일인가 보려고 애썼다.


나팔이 울리고, 소총수 연대의 연대장들이 대열의 선두로 달려나갔다.


마그누스는 고삐를 돌리며 다른 이들을 바라보았다.


‘힐데브란트, 소르가드, 나와 함께 가지.’ 그가 말했다.


‘메시나와 헤르셸은 남아 있게. 금방 돌아오겠네.’







그는 말 옆구리를 두드려 앞으로 몰았다.


힐데브란트는 큼직한 짐말을 타고 그의 옆에 따라붙었다.


소르가드는 욕설을 내뱉으며 말을 따라잡으려 달리기 시작했다.


달려가는 내내 험악한 카잘리드가 들려왔다.







마그누스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연대장들과 합류했다.


전투 신호는 아니었기에, 병사들은 안심하며 길을 터 줬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샤른호르스트가 그의 연대장들을 군대 선두로 호출한 것이다.


보통 있는 일은 아니었기에 걱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말을 재빨리 몰았음에도 사천의 병력을 통과하는 데엔 시간이 좀 걸렸다.


마그누스와 다른 이들은 간신히 선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소르가드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잠시 뒤 도착했다.


아무도 감히 비웃지 못했지만.






군대는 북서쪽으로 나 있는 깎아지른 계곡 입구에 멈춰 있었다.


부드러운 민둥 절벽이 사발처럼 양 옆으로 솟아 있었다.


태양빛이 그림자에 가려 그 밑의 도로는 어둑했다.


초입의 수백 야드를 파악하기엔 어려웠으나, 암반의 굴곡을 보아하니 계곡은 몇 마일은 계속되는 듯 했다.






마그누스는 주의깊게 계곡을 바라봤다.


매복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양 옆의 절벽은 궁병 연대 전체가 숨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일단 계곡 안으로 들어서면, 군대는 속수무책일 것이다.


감히 계곡에 들어서려는 이들을 비웃듯 바람이 울어댔다.





‘이게 뭡니까?’ 마그누스가 철홀 기사단 선임 기사 크루거의 옆으로 말을 몰며 말했다.





‘정찰대가 돌아왔네.’ 기사가 엄숙하게 계곡을 응시하며 대꾸했다.


‘적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하지만 뭔가... 뭔가 다른 것이 있소.’






그는 기사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때 샤른호르스트가 수행원과 나타났고, 마그누스는 그에게 많은 것을 물어보고 싶었다.


그는 평소보다 더 언짢아 보였다.


차가운 공기와 황량한 바람이 그에게 정말 잘 어울렸다.






‘크루거, 코소프, 아이언블러드, 메클레트-라우스, 하로브그림, 할스바트.’ 그가 건조하게 말했다.


‘따라오게나. 봐야 할 게 있네.’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는 계곡을 향해 말을 달렸다.


호명된 지휘관들도 말을 몰아 그에게 따라붙었다.


대부분의 수행원들도 뒤를 따랐다.





‘자네들도 같이 가지.’ 아이언블러드가 힐데브란트와 드워프에게 말했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무슨 일인지 알아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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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재빨리 계곡의 그늘진 초입부로 말을 몰았다.


응달에 서자 기온이 더욱 떨어졌다.


싸늘한 대기 위로 솟아오른 절벽이 태양빛을 가려, 바람소리가 더욱 음산해졌다.


모든 것이 황량하고 무색해 보였다.


바위틈에 자라난 작은 나뭇가지들이 마귀할멈의 손가락처럼 허공을 더듬었다.


말굽이 다그닥거리는 소리 외엔 그저 적막했다.


마치 저승의 입구로 말을 달리는 기분이었다.





마그누스는 주의깊게 위를 살폈다.


움직임은 없었다.


정찰병들의 임무는 저격수나 궁병이 숨어있지 않은가 확인하는 것이었지만, 확신할 순 없었다.


그는 금방이라도 화살비가 내려올 거라 예상했다.






그들은 계속 나아갔다.


일 마일정도 달렸을 때, 소르가드가 악취를 맡았다.


‘그림니르의 수염이시여.’ 그가 혐오스럽다는 듯 침을 뱉었다.


‘슬레이어의 머리칼만큼이나 지독하군.’






마그누스는 잠시 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눈치챘다.


익숙한 냄새가 앞쪽의 계곡에서 풍겨왔다.


노병들에겐 시큼한 맥주와 땀 냄새만큼 익숙한 냄새.


죽음.


죽음의 냄새.


사방에서 풍겨오고 있었다.


그의 심장이 마구 쿵쾅거렸다.


그건 단 하나의 뜻이었다.






사내들은 계속 말을 달려 작은 언덕에 올라섰다.


그제야 샤른호르스트는 정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연대장들은 잿빛이 된 얼굴로 망연자실하게 앞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입을 떼지 않았다.


아무도 입을 뗄 필요가 없었다.


먼저 출정했던 군대를 찾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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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처럼 차디찬 계곡 바닥에, 시신들이 여기저기 엎어져 있었다.


갈색으로 말라비틀어진 핏자국이 바위 사이로 아로새겨졌다.


무기는 사방에 흩어져 돌 틈이나 땅에 묻혀 있었다.


호흘란트의 군기 하나가 여전히 서 있었고, 누더기가 된 연대기가 바람에 힘없이 흔들렸다.


루덴호프 백작의 휘장이 있을 자리엔 참수된 머리가 걸려 있었다.


음탕한 욕설들이 주변 바위에 휘갈겨져 쓰여있었다.






대다수의 시신들이 갑옷, 군화와 옷가지까지 약탈당한 상태였다.


몇몇은 머리가 없었다.


몇은 잔혹하게 토막나 마치 장난감처럼 여기저기 흩어졌다.


싸늘한 대기 덕에 시신들은 완전히 썩어 문드러지지 않았지만, 느리게나마 부패에 좀먹히면서 악취나는 공동묘지로 변해버렸다.


마그누스는 힐데브란트가 구토하지 않으려 옷으로 입을 가리는 것을 보았다.


소르가드는 악취에 코를 찌푸릴 뿐 여전히 무표정했다.






이렇게 된 거로군.


인간에게 죽임당했어.


마지막 한 명까지.






‘부하들이 이걸 보지 않았으면 하오.’ 샤른호르스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공포가 아닌 분노 때문이었다.


마그누스는 처음으로 그의 말에서 감정을 느꼈다.


‘요새로 가는 우회로를 찾아낼 거요.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낸 후에야 그렇겠지만.’





크루거는 냉정히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뻔하지 않소.’ 그가 말했다.


‘왜 꾸물거리시려는 겁니까?’





샤른호르스트는 마치 그러면 시신들이 되살아나기라도 하는 듯, 그 앞의 참혹한 광경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다시 살펴보시오. 선임 기사.’ 그가 싸늘하게 말했다.



‘얼마나 많은 전장에서 말을 달리셨었소?


이런 광경을 본 적 있소?


보이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도 보려고 하시오.’







마그누스는 크루거와 다른 일행과 함께 묵묵히 시신 더미를 바라보았다.


잠깐 보는 것조차 현기증이 났다.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비록 지금은 회색빛 피부와 푹 꺼진 눈의 몰골이었으나, 그들도 한때는 자신과 같은 피가 흐르는 인간이었다.


잠깐 동안 마그누스는 샤른호르스트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필요 이상으로 시신을 살피자 역겨운 분노가 치밀었다.


그리고 불연듯 무언가를 이해했다.






모든 시신이 호흘란트 군복을 입고 있었다.


첫 원정군은 두 번째 것보다 훨씬 조직적이었다.


용병들도 없었고, 다른 지방에서 팔려온 빈자들도 없었다.


마그누스가 참혹한 광경을 바라보자,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적군이 하나도 없었다.


모든 시신이 루덴호프의 군복을 입고 있었다.


마치 행군 중에 보이지 않는 적이 그들을 덮친 것처럼.







약간 거리가 있었으나, 마그누스는 죽은 이들의 얼굴에 남은 공포와 경악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전장은 본 적이 없었다.


가장 극악무도한 일방적 학살에서도, 양군 모두 몇 명이나마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게 당연했다.


이곳은 마치 바람이 죽음을 불러온 것처럼 보였다.


심장이 다시 쿵쾅거렸다.


그가 본 것 중 가장 조용한 공포였다.


그는 손을 뻗어 수통을 집어들었다.


비어 있었다.


만약 산 자체가 군대를 집어삼켰다면,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모르그람가르의 외벽에 총 한 발 쏴보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산봉우리에 뭔가 저항할 수 없는 것이 웅크리고 있었다.


눈 앞에 있는 시신들처럼 그들은 죽은 목숨이었다.






마그누스는 다른 이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있음을 눈치챘다.


불안한 전율이 연대장들 사이로 흘러갔다.


크루거의 수행원 하나는 연신 헛구역질을 해 댔다.




‘본분을 잊지 마시오. 제군들.’ 샤른호르스트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모두 호흘란트의 자랑스러운 이들이었소. 장례식도, 축복도 없이 차가운 산 속에 묻힐 이들이 아니었는데.’





그는 양 옆의 부하들을 바라보곤 얼굴을 찌푸렸다.



‘이 일이 초자연적인 악령이나 원혼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마시오.


이들은 다른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총알과 날붙이에 죽었소.


전장이 수습된 거요.


우리의 사기를 꺾어 놓으려는 게지.


놈들에게 휘둘리지 마시오.


제군들은 제국의 병사들이오.


용기를 가지시오.’







마그누스는 샤른호르스트 덕에 정신을 차렸다.


물론, 일어난 일은 그대로였지만.


지독한 악취와 울부짖는 바람이 그를 괴롭혔다.


그는 파멸과 절망의 끈질긴 유혹을 뿌리치려 고개를 저었다.









‘즐거운 일은 아닐거요.’ 시신을 바라보며 장군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이지.


저 아래엔 우리에게 쓸 만한 단서들이 있을 거요.


한 시간 드리겠소.


시신들 사이로 걸으시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시오.


다른 길을 찾아 보시오.


무슨 일이 있었던지 간에, 같은 실수를 해선 안 되오.'







마그누스는 힐데브란트와 눈짓을 교환했다.


덩치는 천천히 썩어가는 시신 사이를 헤집기 싫어 보였다.


마그누스는 장군의 생각에 그닥 감명받지 않았다.


연대장들은 엉망이 된 시신을 바라보며 망설이고 있었다.






‘약해빠진 새끼들.’ 소르가드가 도끼를 풀면서 중얼거렸다.


그는 전장을 향해 언덕을 쿵쿵 내려갔다.


다른 이들도 수치심에 움직이기 충분했다.


마그누스와 힐데브란트는 창백한 얼굴로 한숨을 쉬고는, 드워프를 따라 악취나는 무덤으로 걸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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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성화를 본 적 있는데.’ 힐데브란트가 얼굴에 두건을 올리며 말했다.


부르트바트모르 성당에서 말야. 사후 세계를 묘사한 거였지.’






‘알만하군.’ 마그누스가 대답했다.


그는 고개를 돌릴 때마다 유리알 같은 죽은 자의 눈과 마주쳤다.


아직 눈이 남아있는 자 말이지.


까마귀들이 눈구멍에서 분주히 푸득거렸다.


썩은 살가죽엔 쪼아먹은 자국이 무수히 남아 있었다.


정말 지독한 악취였다.







‘우리에게 대체 뭘 기대하는 거지?’ 힐데브란트가 부패한 시신을 헤치며 궁시렁거렸다.


‘시신은 몇 주는 됐다고. 전장은 수습되었고.’





마그누스는 으쓱하며 양 옆으로 솟은 절벽을 바라보았다.


‘매복당했군,’ 그가 음울하게 말했다.



‘일제사격 한 번이면 대혼란에 빠졌을 거야.


계곡의 양 끝을 막으면, 손쉬운 학살일 뿐이지.’






‘왜 우리에게도 매복하려 들지 않았을까?’ 그가 마그누스를 따라 절벽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마그누스는 주변의 독한 공기를 마시지 않으려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소르가드의 경고를 떠올렸다.


그들은 밤중이나 야영지를 걷어올릴 때 들이닥칠 것이다.


우리들이 취약할 때.







‘예상했던 것보다 사상자가 많았을지도.’ 그가 공허하게 말했다.



‘하지만 난 우리 정찰병들을 믿지 않네.


뭔가 잘못되었어.


놈들은 우릴 감시하고 있을 거야.


아니면 난 그린스킨일세.’






힐데브란트는 대답 없이 바닥에 흩어진 칼을 툭툭 찼다.


두 사람은 군대였던 폐허의, 시체더미에 서 있었다.






‘죽음 말고는 아무것도 없구만.’ 그가 씁쓸하게 말했다.


그의 큼직한 얼굴엔 슬픔이 보였다.


마그누스는 시신에서 눈을 떼고 힐데브란트를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덩치는 상태가 안 좋았다.


추락이 그의 정신을 쏙 빼놓았을 것이다.


이 부패의 풍년이 더욱 부채질하고 있었다.


그를 데려오는 게 아니었을지도 몰랐다.


그는 예전같지 않았다.







마그누스가 그를 언덕으로 돌려보내려 할 때, 소르가드가 크게 고함을 질렀다.


두 사내는 서둘러 달려갔다.


구역질을 하던 다른 이들과는 달리 소르가드는 시신 사이를 열심히 뒤졌다.


남아 있는 장구류엔 모두 탄흔이 있었다.


가치 있는 물건은 모두 약탈당했지만, 승리의 규모에 비해 방어자들의 무기는 그대로 버려졌었다.


분명 반란군은 창과 검이 더 이상 필요없었다.






‘뭔가 찾았네.’ 드워프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소르가드는 금속 쪼가리를 내밀었다.


오 인치 정도의 길이에 S자로 굽이져 있었고,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그는 그걸 마그누스에게 건넸다.





‘부싯깃이잖아.’ 아이언블러드가 그것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했다.


불씨를 일으키는 장치로, 총기의 화약을 격발시키는 용도였다.






소르가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그가 말했다.



‘단 하나 남은 사격의 파편이지.


누가 이곳을 수습했는지는 몰라도 훌륭히 해냈네.


드워프의 눈을 가졌을 지도 모르겠군. 아무것도 남은 게 없네.


아무것도. 마치 여기 아무도 없었던 것 같군.’









‘이것만 빼고는.’ 마그누스가 생각에 잠기며 말했다.


그는 조끼에서 단안경을 꺼내 오른눈에 썼다.


그는 조각을 가까이 당겨 유심히 살폈다.


부품은 익숙했지만, 낯설기도 했다.


총의 나머지 부품과 어떻게 맞물렸는지 쉽게 알 수 있었지만, 보편적인 제국 무기의 양식보다 더 각져있었다.


분명히 제국 북부 물건은 아니었다.


호흘란트 장총은 특색있는 총기장이들의 공정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에서 배운 것과 미묘한 차이가 있었지만, 어쩌면 눌른에서 왔을지도.


부싯깃은 소총수 연대의 어떤 총과도 호환되지 않을 듯 했다.


너무 크고 이상한 모양이었다.









마그누스는 확신 없이 머뭇거렸다.


‘처음 보는 거요.’ 그가 조각을 불빛에 비추며 단안경을 접었다.


‘한때, 부품을 보기만 하면 그게 올드 월드 어디서 왔는지 맞출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아닌가 보군.


허나 이건 완전히 처음 보는 부품이오.


처음 보는 공정인 건 당연하고. 이런 건 본 적이 없소.’





힐데브란트는 부싯깃을 잡아들고는 이리저리 살펴봤다. 소르가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문해 보게, 아이언블러드.’ 드워프가 말했다.


‘우리 양 옆의 절벽은 높아. 아주 높지.


자네의 소총수들이 저 거리에서 표적을 명중시킬 수 있는가?


만일 절벽에서 매복 공격이 쏟아졌다면, 놈들의 총은 아주 장거리용이라는 말일세.


어떤 움기 무기도 그런 성능을 내진 못해.’







마그누스는 눈을 가늘게 떠 거리를 쟀다.


드워프가 맞는 것 같았다.


저 거리에서 발포했다면 사거리가 아주 좋은 화기일 터였다.


걱정될 정도였다.








‘또 한가지.’ 소르가드가 부품 조각을 힐데브란트에게서 뺏으며 말했다.



‘설계에 드워프가 연관된 것 같네, 아니면 내 수염을 밀지.


자네 종족은 무언가를 이렇게 깎아내지 못해. 그럴 도구가 없으니까.


여기 이 귀퉁이를 보게, 못이 고정된 곳 보이나?


이건 다위의 설계야.


아니면 손에 돌빵을 지지겠네.’









마그누스는 다시 살펴보았다.


그는 드워프 공정의 전문가는 아니었으나, 소르가드가 옳았다.


땅딸보 친구들의 새김이 보였다.


품질도 그렇고.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 산맥에도 드워프들이 거주하오?’






‘제국 어디에나 드워프는 있지.’ 소르가드가 멸시하듯 말했다.


‘정착지가 있냐고? 물론 없네.


이 산엔 아무 가치도 없어.


무엇보다 우리 종족은 자네들 싸움에 관여하지 않네.


동쪽에서 청산해야 할 원한이 차고 넘치는데 왜 아나-로우이자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나?






소르가드는 부싯깃을 그의 허리띠 주머니에 조심스레 집어넣었다.


‘안 바치지.’ 그가 말했다.


‘만일 드워프가 연관되어 있다 해도 소수일 걸세. 고용된 대장장이들 정도겠지.’





소르가드는 대답하면서 마그누스를 바라보지 않았다.


아이언블러드는 그가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말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를 추궁해볼까 생각도 했으나, 곧 그만두었다.


만약 소르가드가 뭔가를 비밀삼는다면, 꼬드긴다고 말할 리가 없었다.


때가 되면 말하게 될 것이다.





‘이제야 알겠소.’ 마그누스가 체념하듯 말했다.



‘놈들은 훌륭한 화기를 가지고 있군.


고유한 양식의 화기를. 마음에 들지 않아.


사거리에 대해서는 당신이 옳소.


우리 종족에겐 그럴 솜씨가 없지.


샤른호르스트에게 보고하겠소.’






‘별로 기분 좋아하진 않을 텐데.’ 힐데브란트가 대꾸했다.





‘그가 기분 좋은걸 본 적 있나?’ 마그누스가 말했다.


‘내가 직접 보고하지. 정찰대에 경고를 전해야 해.’





마그누스는 참혹한 폐허를 바라보았다.


적들이 어떤 화기를 가지고 있던, 끔찍한 파괴를 불러왔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놈들도 실수를 해.’ 그가 부싯깃을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모든 흔적을 지우지 못했어. 놈들도 실수를 해.’




중얼거리면서도 마그누스는 스스로를 믿지 못했다.


숨어있는 적에 대해 알아갈수록, 공포가 그를 좀먹었다.


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걸까?


자신들에게 고통을 주려는 걸까?







야전 전에 충분히 군대의 힘을 빼놓으려는 건가?


속이 울렁거렸다.


죽음의 냄새가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가지.’ 마그누스가 소르가드와 힐데브란트에게 말했다.



‘돌아가야 하네. 이 전장은 역겹군.


행군하면서 더 생각해 보세나.


어쩌면 메시나가 알 지도 모르겠어 – 틸레아 양식일지도 몰라.’






소르가드는 거칠게 고개를 끄덕였고, 셋은 엉망이 된 시신의 숲을 헤치며 언덕으로 향했다.


그들 머리 위 멀리서 싸늘한 바람이 울어댔다.


암석들 자체가 음침하고 적의를 품은 것 같았다.


여긴 저주받은 곳이다.


죽은 자들의 계곡을 빨리 벗어나는 게 현명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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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길이 막히면서, 군대는 우회로를 택해야 했다.


대학살이 벌어진 곳은 모르그람가르에서 하루 정도 거리였으나, 마그누스는 우회로는 최소 두 배는 더 걸릴 것이라고 계산했다.


종착지가 보이지 않자, 병사들은 반항적인 불만을 품었다.


끝없는 추위와 부실한 식단, 우유부단한 결정이 제 역할을 한 것이다.


사소한 이유로 쌈박질이 벌어졌다.


부사관들의 얼차려는 배로 늘었고, 하극상에 대한 처벌로 채찍을 맞는 병사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마그누스가 종군했던 모든 원정에서 그랬던 것처럼, 오랫동안 전투가 없을수록 군기는 점점 흐트러졌다.





샤른호르스트가 불온한 사태를 알고 있는지 불확실했다.


그들은 여전히 가혹하게 전진하고 있었다.


크루거와 철홀 기사들은 행군하는 연대들 옆에서 이 원정은 황제 폐하의 영광이라 독려하며 말을 몰았다.


곧 선임 기사와 부하들은 귀족들과는 닮은 점 없던 보병들에게 증오받게 됐다.


대열의 후방에서 마차가 굼벵이처럼 나아갔다.


마부들이 욕설과 채찍을 퍼부어도 가엾은 짐승에겐 그게 최선이었다.


몇 마리는 혹사당해 쓰러져 버렸다.


회생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말들은 목이 그어져 늑대들 먹이가 되었다.


이제 대형 화포들을 끌 여분의 말이 없었다.


그마저도 쓰러진다면, 포병들은 기사들에게 징발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쉽지 않을 테지.







땅거미가 졌다.


북쪽 지평선 멀리에서, 기묘한 뭔가가 낮게 날아가고 있었다.


아마 새겠지. 하지만 그렇다기엔 너무 크고 박쥐같은 날개가 달렸었다.


빛이 사라지면서 그것도 시야에서 사라졌다.




샤른호르스트의 병사들은 돌무더기로 막힌 길목을 치워내고는 헤르기히보다 수백 피트는 높이 있는 공터로 들어섰다.


돌투성이에 큰 균열이 난 평야였다.


거의 자라진 않았지만, 이끼가 바위의 아래쪽을 덮고 있었다.


비바람이 울부짖으면서 병사들을 후려치고, 군기를 마구 뒤흔들었다.


행군을 멈추고 야영지를 꾸리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계급, 배치, 보초 순번도 까먹고 모두가 기진맥진해 드러누웠다.


마지막 마차를 끌어올리자, 돌무더기 위에 모닥불이 타올랐고, 묽은 귀리죽이 양철 식기 위로 흘러내렸다.


어둠이 다가왔고, 그림자가 드리웠다.





마그누스와 공학자들은 늘 그렇듯이 후미에서 바빴다.


소총수 연대가 포병 마차를 인계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메시나와 헤르셸은 필요에 따라 위협하거나, 격려하면서 그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밤이 되기 전에 일을 마쳐야 했지만, 주린 배와 졸린 잠 외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귀리죽은 물보다 약간 진했지만, 최소한 뜨끈했다.





마그누스는 피로가 뼈에 사무치는 것을 느끼며 해가 서쪽으로 저무는 것을 바라보았다.


술을 마신 지 며칠이나 지났다.


에티크 부인의 지저분한 하숙집조차 이 황야에 비하면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거품이 이는 맥주잔을 바라보는 상상을 하며 군침을 흘렸다.


한때 그건 너무 흔하게 즐겼던 쾌락이었지만, 지금은 꿈에서나 그릴 것이었다.


잠시동안 그는 지휘의 부담, 마부들의 불평, 화기의 상태에 대한 걱정을 잊어버리고 적당히 쓰고 맥아 내음이 풍기는 맥주를 두툼한 거품과 함께 한 모금 홀짝이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마그누스는 눈을 감고는 말고삐를 느슨하게 풀었다.


그의 손가락이 수통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그때 첫 번째 총성이 울렸다.


‘엎드려!’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야영지는 아수라장이 됐다.


사내들이 무기를 찾아 헤맸다.


모닥불이 꺼졌다. 귀리죽이 바닥에 쏟아졌다.


몇몇 이들은 바닥에 널브러져 움직임이 없었다.


잘 조준된 사격이었다.





마그누스는 말에서 다급히 내렸다.


그는 다른 이들이 어디 있는지 보려고 사방을 훑었다.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다.


좆 됐군.


병사들은 노출되어 있었고, 광원이 거의 없었다.


매복한 저격수들을 찾아내기 어려웠다.




마그누스는 몸을 숙이고 가장 가까운 소총수들에게 달려갔다.


많은 이들이 쓰러져 있었다.


나머지는 가죽 총집에서 총을 꺼내 미친 듯 부싯돌을 심지에 긁어댔다.


‘침착해라!’ 마그누스가 외쳤다.


‘훈련받은 걸 기억해. 놈들이 다시 사격할 때까지 잠깐 틈이 있다. 총을 장전하고 내 신호를 기다려.’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어둠 속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화약의 소음이 메아리쳤다.


마그누스의 왼편에 있던 사내가 눈을 부여잡고는 비명을 질렀다.


그는 상처에서 피를 뿜어내며 이리저리 굴렀다.


마그누스는 공포에 질려 몸을 다시 숙였다.




‘불가능해.’ 그가 거칠게 숨을 쉬었다.


‘누구도 저렇게 빠르게 장전할 순 없어. 매복병이 몇이나 되는거지?’





그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는 소총수들에게 돌아섰다.


‘전열을 갖춰라!’ 그가 쓰러진 사수의 총을 집어들며 말했다. ‘내 신호를 기다려!’






그의 주변에 있던 병사들은 재빨리 총을 세우고, 화약을 털어넣고는, 꼬질대로 쑤셔댔다.


그들은 마차 대열 멀리에서 엉성한 전열을 만들었다.


야영지의 다른 곳에서도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람들 사이에서 고함치며 명령하는 소리와 고통의 울부짖음이 퍼져나갔다.


무질서의 소음이었다.


난장판이군.





마그누스는 총알을 장전하고는, 심지에 불이 붙은 것을 확인하고 총을 견착했다.


운이 좋았다. 진짜배기 호흘란트 장총이었다.


조준한 대로 발사될 것이다.


총 들어!’ 그가 소리질렀다.


양 옆에서 총구가 들려 화망을 만들었다.


하지만 너무, 너무 느렸다.




조준할 만한 게 없었다.


볼 수가 없었으니.


사격은 야영지 경계 너머 어둠 속에서 날아온 것이었다.


눈먼 사격이라도 해야 했다.


무언가를 맞춘다면 그것이야말로 기적일 것이다.




‘발사!’ 마그누스가 외쳤다.




부싯깃이 내리쳐지자 화약이 화염과 함께 격발되었다.


찰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일제사격이 어둠을 향해 날아갔다.


화약이 타는 연기가 야영지로 흩뿌려졌다.


야영지 곳곳에서 비슷한 소리가 들려왔다.


방어자들은 서서히 대응하고 있었다.


마그누스는 놈들은 뭐라도 보이는지 궁금했다.





‘재장전!’ 그는 시간이 핵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몸을 낮게 숙였다. 심지가 꺼지고 화약 접시가 노출되었다.


그는 가죽 주머니에서 강철 탄환을 손바닥에 쏟았고, 화약을 재고 한 발을 넣은 뒤 꼬질대로 마구 쑤셨다.


까다롭고 위험한 작업이었다.


만약 뭔가 약실에 부딪힌다면, 폭발해 불구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았다.




마그누스는 한쪽 무릎을 세웠다.


‘빨리 해라, 병신들아!’ 그가 으르렁거렸다.


소총수들은 앞이 보이질 않자 더듬거리면서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었다.


학살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는 계곡에 누워 있던 잿빛 얼굴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승산이 없었을 것이다.


‘지그마께 저주받을, 총 장전해!’





멀리서 섬광이 번쩍였다.


마그누스는 몸을 피했다.


일제사격이 야영지를 다시 강타했다.


병사들이 낙엽처럼 쓰러졌다.


총알이 가죽을 찢고 강철에 튕겼다.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이 다시 터져나왔다.


전열이 동요하고 있었다.


그들 왼편에서는 방어자들이 무너졌고, 병사들은 패주하고 있었다.


마그누스는 몸을 숙이며 엎드렸다.


모르의 이름으로, 어떻게 그렇게 빨리 장전할 수 있는 걸까?


공격자들은 벌써 묵직한 세 번의 일제사격을 발사했으나, 방어자들은 한 번이 고작이었다.






‘총을 들어라!’ 그가 고함쳤다.


‘섬광을 조준해!’




의미없는 조언이었다.


그들은 무언가를 맞히길 바라며 눈먼 총알을 날릴 것이다.


적들은 그런 걱정이 없었다.


어디를 조준할지 알았고, 목표물은 컸다.


모든 일제사격이 무언가를 맞히긴 할 것이다.


어둠은 그들의 동맹이었다.




소총수들은 서툴고 더디게 사격 자세를 취했다.


수가 더 줄어들었다.


몇몇 사수의 심지는 불이 꺼졌고, 몇은 총이 폭발했으며, 많은 이들이 피를 뿌리며 돌바닥에 엎어졌다.


‘발사!’ 마그누스가 외쳤다.





총이 다시 찰칵 소리와 비명을 지르며, 탄환을 어둠 속으로 날려보냈다.


뭘 맞췄는지도 알지 못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기병대는 어디에 있지?


정찰병들은 왜 그 지역을 확보하지 못했지?


‘재장전!’ 마그누스가 다 쉬어버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의 떨리는 손가락이 탄환을 쥐었다. 총열은 뜨거웠고, 화약의 짙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는 심하게 떨며 몸을 숙였다.


이 병신들이 총을 쏘는걸 보면, 머지않아 우린...





다시 섬광이 번쩍였고, 더 많은 총알이 그의 머리 위를 스쳐갔다.


다시 많은 병사들이 피격당해 비명을 질러댔다.


믿을 수 없는 사격 횟수였다.


공격자가 몇인 거지?


전진하는 중인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지?


아무도 대답할 수 없었다.


완전히 궁지에 몰렸다.


그들은 사냥당하는 중이었다.









마침내, 마그누스는 나팔 소리를 들었다.


누군가 지휘를 시작했다. 전진 명령이 떨어졌다.


적에게 싸움을 거는 것 외엔 선택지가 없었다.


횃불이 급히 켜지자, 마그누스는 사격이 날아온 곳으로 기사들이 천둥같이 돌격하는 것을 보았다.


크루거는 분노에 찬 함성을 내지르며 말을 달리고 있었다.


어두운 곳에서는 아주 위험한 전술이었지만, 유효한 전술이었다.


유일한 전술이었고.


‘총을 들어라!’ 마그누스가 가슴께에 총을 올리며 말했다.


‘나를 따르라!’





마침내 병사들은 공격할 방향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분노의 함성을 내지르며 돌바닥을 가로질러 일제히 돌격했다.


마그누스는 눈을 크게 뜨고는 진땀을 흘리며 당장이라도 총성과 바람 가르는 소리가 날까 걱정했다.


그는 지그마에게 올리는 짧은 기도를 속삭였다.


지금은 행운, 즉 은혜가 그가 바랄 수 있는 전부였다.


사방이 지독하게 어두워 대치에 비친 모든 형상이 적군처럼 보였다.


마그누스의 심장이 쿵쾅쿵쾅 울려대고, 폐가 신음했다.


마침내 전투가 벌어졌다.




그들은 계속 돌격했다.


돌아오는 총성은 없었다.


나팔이 다시 울렸다.


몇몇 기사들은 너무 앞서가서 뒤로 돌아왔다.


허공이 방어자들의 함성과 전투 구호로 가득찼으나, 총성은 돌아오지 않았다.


마치 적이 없었다는 듯이.










싸늘한 예감이 마그누스의 뱃속을 헤집었다.


그들은 유인당하고 있었다.


저격수들은 이미 이미 철수했을 것이다.


이건 함정이었다.


‘멈춰!’ 그가 손을 흔들며 소리질렀다.


하지만 그 주변의 사람들은 피를 보고파 앞으로 계속 달려갔다.




마침내, 총소리가 다시 울렸다.


총성은 더 먼 곳에서 들려왔다.


마그누스는 땅으로 몸을 던졌다.


뜨거운 피가 그의 온몸에 튀었다.


오른편에 있던 소총수는 돌바닥에 엎어져 찢어진 배를 그러모으면서 돼지처럼 꽥꽥거렸다.





마그누스는 열불을 내며 몸을 굴렀다.


바보같이 놀아난 것이다.


저격수 교범에서 가장 케케묵은 전술이었다.


한방 날리고, 후퇴.


한방 또 날리고, 후퇴.


방어자들은 보이지 않는 적들에게 포위되었다.


해가 완전히 지면서, 양측 모두 사격은 불가능했다.


유일한 희망은 대열을 유지하고, 화망을 굳히는 것이었다.






‘내게 집결하라!’ 마그누스가 일어서며 으르렁거렸다.


위험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림자로 덤벼드는 것을 멈추고 전열을 유지해야만 했다.


‘대열을 갖춰라! 호흘란트의 병사들이여, 집결하라!’






살아남은 이들은 그의 외침에 응했다.


곧 그의 주변으로 십수 명이 집결했다.


어둑한 불빛에 비친 얼굴들엔 분노가 서려 있었다.


‘총 들고 섬광을 조준해라!’ 마그누스가 그들을 고양시키려 소리질렀다.


‘내 명령에 발사하고, 후퇴한다. 사방천지가 피바다잖아, 씨발.’





병사들은 자세를 잡았고, 장총들이 겨눠졌다.


마그누스의 지시에 따라 전열에서 불꽃이 튀었다.


총성이 다시 어둠 속을 헤집었다.


무엇에 맞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후퇴!’ 마그누스가 가장 가까운 소총수를 잡아끌면서 말했다.


‘허깨비를 쫓지 마라! 대열을 유지해!’






나머지 군대도 자츰자츰 같은 전술을 행했다.


소총수들은 전열을 굳히고 한 발짝씩 후퇴했다.


간간히 총성이 방어자들의 전열에서부터 어두운 허공을 찢었다.


숨은 저격수들은 사격을 중지했다.


놈들은 마치 죽음의 그림자처럼,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의 화기도 암흑 속에서는 쓸모없었다.


밤의 어딘가에서 기사들은 놈들을 쫓아 말을 달리고 있을 것이다.





‘지그마의 어머니시여.’ 마그누스가 혐오감으로 허탈하게 한숨을 뱉었다.


그와 병사들은 야영지 주변으로 후퇴했다.


사방에 몸뚱이들이 나뒹굴었다.


몇은 고통에 신음하면서 힘없이 꿈틀거렸다.


대부분은 주변의 바위처럼 조용하고 싸늘했다.


끔찍한 피해였다.





자츰 전투의 소리가 옅어졌다.


샤른호르스트의 장교들은 공격자가 철수했다는 것을 깨닫고, 소모품을 아끼려 병사들을 제지했다.


어둠 속에서 놈들을 쫓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처음부터 공격자들은 매복한 후 후퇴할 요량이었을 것이다.


방어자들은 전략 열세, 기동력 열세, 화력 열세였다.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마그누스는 혹시나 해서 총을 장전하고는, 그루터기에 풀썩 주저앉았다.


어둠 속에서 사격이 돌아오진 않았다.


소총수들은 그의 주위에서 전열을 지킬지, 계속 발포해야 할지 머뭇거리고 있었다.


마그누스는 그들을 무시했다.


그들은 이 일에서 배워야 할 것이다.


아침이 오기 전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짙어지는 어둠 속에서 한 사내가 마그누스에게 다가왔다.


메시나였다.


그의 손엔 아직도 연기가 나는 권총이 들려 있었다.


그의 눈에서 분노가 일렁거렸다.


‘정찰병 씨발것들은 어디서 뭘 한거야?’ 그가 침을 뱉었다.


‘환상이랑 싸우는 줄 알았네.’






마그누스는 피곤하게 그를 올려다봤다.


화낼 만 했다.


‘기사들이 몇 놈을 잡을지도 모르네.’ 진심은 아니었으나, 그가 말했다.


‘이렇게 어두워선 추격할 수도 없지.’






그는 소총수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여전히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독한 총격전으로 심신에 충격을 받은 듯 했다.


‘재장전하고 사격 준비가 되었나 확인하게.’ 마그누스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순찰대를 조직하고, 야영지 경계에 보초를 세워야겠네.’




마그누스는 의미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놈들은 오늘 밤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병력 열세를 기습으로 메꿨다.


파괴적인 전술이었다.


그는 땅에 침을 뱉고는, 야영지 중앙으로 걸어갔다.


주위에서 병사들이 횃불을 들고 제자리로 달려가고 있었다.


이미 늦었지.


존나게 늦었지.




‘어디 가?’ 메시나가 격분한 표정으로 물었다.


마그누스는 그를 돌아봤다.


일렁이는 불빛이 그의 주름진 얼굴을 비췄다.




‘샤른호르스트에게.’ 그가 낮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직도 적절한 총기 전술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똥대가리 자식일세.’






마그누스는 장군의 천막으로 계속 걸어갔다.


기분이 우울했다.


주변은 온통 죽은 자들과 죽어가는 자들의 신음소리로 가득했다.


첫 번째 교전이 오고갔다.


그들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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