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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1~18집 분석, 디스코그래피모바일에서 작성

바운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8.09.17 18:3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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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의 신작 [Hello]가 연일 화제다. ‘가왕’의 귀환에 대한 환영이니만큼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감탄하는 이 거대한 현상적 상황의 이면은 무엇일까 싶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건 어쩌면 존경할 만한 대상이 부재한 음악계의 현재를 우회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집단무의식의 발로일지도 모르겠다. 30년 넘는 시간 동안 오직 한 우물만 판 장인의 존재에 대한 경의. 그런 이유에서 우리는 지금 여기서 조용필이 남긴 자취를 한번쯤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 뮤지션인 그가 언젠가 스무 번째 앨범을 발표할 것에 대비하는 일로도 이만한 게 없을 테니 말이다.


1집 [창밖의 여자](1980)이 앨범에 관해 그 어떤 새로운 사실을 얘기하는 일이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 이 앨범이 ‘80년대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조용필 신화의 출발점이었으며 그 시대를 관통하는 동안 일관적으로 유지된 조용필 작품의 방법론적 청사진이었다는 것은 이미 숱하게 거론된 내용이니까 말이다. 그건 이 앨범이 갖는 상징성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그의 이름을 달고 나온 앨범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음에도 이 작품을 조용필 디스코그래피의 진정한 첫 번째 앨범으로 꼽는 이유는 단지 아티스트 자신이 그러길 원했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실제로 이 앨범은 이후 조용필이 보여주게 되는 음악적 활동의 양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리트머스다. 드라마틱한 발라드(‘창밖의 여자’), 뉴 웨이브 성향의 팝 록(‘단발머리’, ‘너무 짧아요’), 성인 취향의 트로트 팝(‘돌아와요 부산항에’, ‘잊혀진 사랑’), 민요와의 크로스오버(‘한오백년’) 등이 골고루 포진한 전략적인 구성만 봐도 그렇다. ‘완결성을 가진 작품으로서 앨범’의 가치를 희생하고 얻은 그 실용성은 사실, 여느 뮤지션의 음반이었다면 필시 약점으로 지적 받았을 방법론이다. 그럼에도 이 앨범이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근거는 아마 당대 음악계의 여건 아래서 그런 시도나마 제대로 수행해낼 수 있는 존재가 조용필이라는 독보적인 아티스트뿐이었다는 사실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요컨대, 이 작품은 전범으로서 조용필의 앨범을 육화한 결정체라고 할 만하다. (박은석)

2집 [祝福(촛불)](1980)힘든 시기를 겪고 발표한 조용필 1집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한국 대중음악사를 새롭게 쓴다. 당시 TV와 라디오에서 그의 노래는 끊이지 않는데 그 열기는 3개월 후 역사적인 카네기홀 공연으로 이어져 2집 앨범에 “미국 카네기홀 공연 기념음반”이라 적히게 된다. 그래서 2집을 카네기홀 실황작으로 오해하기도 하는데 사실은, 글자 그대로, 공연을 기념하는 조금은 급조된 앨범이다. 카네기홀 공연(6월), TBC 주최 ‘서울국제가요제’(11월, 금상과 열창상 수상) 등 수많은 스케줄로 그 해 12월에 선보인 2집은 절대적인 시간부족에 시달리게 된다. 그렇지만 ‘촛불’의 감각적이고 완성도 높은 연주력과 ‘한오백년’의 감동을 이어가는 처연한 보컬이 인상적인 ‘간양록’은 지금까지 조용필의 대표곡으로 사랑받고 있다. 그리고 가성을 적극적으로 구사한 동요 풍의 가요 ‘잊기로 했네’와 1집에도 실렸던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까지 듣고 나면 그의 폭넓은 해석력에 놀라고 만다. (김광현)

3집 [고추잠자리](1981)1976년 앨범에서 보여준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너무 짧아요’ 그리고 ‘창밖의 여자’와 ‘단발머리’의 간극을 과감히 앨범 전체로 밀어붙인 종합선물 같은 앨범으로, ‘80년대 내내 한쪽에는 중장년 층을, 한쪽에는 젊은 층을 흡수하려는 노력을 계속한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뒤 앨범들에 대한 테스터 마켓 같은 작품이다. ‘창밖의 여자’로 절규에 가까운 호소력을 트레이드 마크화시킨 조용필은 판소리 효과를 더한 ‘미워 미워 미워’와 ‘일편단심 민들레야’로 대표되는 A면에 트로트를 배치해 장년층 이상을, 전기기타가 전면에 깔리는 ‘여와 남,’ 베이스의 음색이 두드러지게 녹음된 ‘물망초’ 등을 포진시킨 B면은 청년 층을 겨냥하고 있다. 또한 더 어린 세대를 타깃으로 한 ‘오빠 생각’과 ‘고추잠자리’가 이후 ‘따오기’와 ‘못 찾겠다 꾀꼬리,’ ‘난 아니야,’ ‘나는 너 좋아’ 등으로 이어지는 곡들의 맨 앞에 서 있다.

앨범 최고의 곡은 ‘고추잠자리’로, 이후 펼쳐내는 음악성의 시작점이다. 어린 시절을 벗어나는 성장통, 혹은 불안한 미래의 모습을 고추잠자리의 맴도는 모습에 투영한 이 곡은 ‘잊을 수 없는 너,’ ‘여와 남’ 등의 곡에서와 같이 가성을 효과적으로 사용해 장르적으로 사이키델릭하고 프로그레시브 한 느낌을 냈다. 보컬의 진가를 드러낸 곡은 ‘강원도 아리랑’으로, 국악을 상당히 록적인 색채로 해석해 4집의 명곡 ‘자존심’을 예고한다. (현지운)

* 일편단심 민들레’는 납북된 남편을 30년간 기다린 한 할머니의 작사로 만든 곡이다.
* ‘님이여’란 곡은 조용필의 데뷔곡으로 미국 가수 바비 블랜드(Bobby Bland)의 \'Lead Me On\'이란 곡을 번안한 것이다.

4집 [못찾겠다 꾀꼬리](1982)이제 열아홉 고개에 접어든 조용필의 기나긴 음악역정에서 4집은 7집과 더불어 가히 기념비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서구의 뉴 웨이브를 독창적으로 해석해낸 7집이 조용필 중기를 대표하는 (어쩌면 디스코그래피 전체를 관통하는) 걸작이라면, 본 음반은 그가 왜 고유성을 유지하면서도 보편성의 맥락에 닿아 있는 아티스트인가를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징표라 할 수 있다. ‘못찾겠다 꾀꼬리’의 재기발랄함에 이어지는 ‘생명’에서의 장엄한 성찰, 한국 가요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어른들을 위한 동요’인 ‘난 아니야’와 토속적 리듬의 중핵을 끼얹은 ‘어른들만을 위한 록’인 ‘자존심’의 대칭 등 앨범의 거의 모든 요소들이 이 음반의 유일한 주인은 조용필임을 입증해내고 있다. 심지어 권혜경의 히트곡을 다시 부른 ‘산장의 여인’에서도 그러한 사실은 잘 드러나는데, 이 대목에 귀를 기울이면 그가 어떤 점에서 목소리만으로도 오리지널리티를 부여받을 수 있는 가수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하지만 단연코 팬들에게 앨범의 하이라이트는 불멸의 발라드 ‘비련’이다. 거대한 스케일의 속에서도 장황함의 덫을 거부하는 타이트한 진행과 뮤지컬을 보는 듯 웅장한 서사가 압권인 이 곡은 차후에 조용필의 발걸음이 어디로 움직일 것인지를 (자신도 모르는 채) 미리 제시했다는 점에서 사뭇 흥미롭다. (이경준)

5집 [친구여](1983)1980년의 1집 이후 거의 매년 음반을 발표하기 시작한 조용필의 다섯 번째 음반은 무엇보다 그의 다양한 음악적 관심과 역량이 만개한 음반이다. 이 음반에서 조용필은 한국적 성인가요와 로큰롤, 팝 발라드를 아우르는 폭넓은 음악적 바운더리와 트레이드 마크 같은 호소력 넘치는 열창으로 ‘친구여’, ‘나는 너 좋아’ 등의 다수의 히트곡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5집의 미덕은 널리 알려진 몇 곡의 노래에 국한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장르와 감성의 곡을 변화무쌍하면서도 수준 높게 생산해냈다는 것, 그것은 1983년 당시 당대의 어느 뮤지션도 해내지 못한 역할이었다. 특히 한국적이면서도 프로그레시브한 호흡이 배어있는 ‘한강’, ‘황진이’ 같은 곡은 조용필이 지향하는 한국적인 질감과 록적인 언어를 결합시킨 곡으로 조용필의 음악 역량을 대표하는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서정민갑)

6집 [눈물의 파티](1984)조용필에게 따라붙는 ‘국민가수’라는 호칭은 피상적으로 많은 세대를 아우르는 사랑을 받았다는 의미도 있지만, 이 작품처럼 한 장의 음반에 그 통일성보다 각각의 세대를 위한 트랙들을 배치시켰다는 점 역시도 해당한다. 전작들에 비한다면 성인취향, 즉 어덜트 컨템포러리 성향의 음반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내 입술에 그대 눈물’, ‘무정유정’과 같은 본격 트로트 넘버와 뉴 웨이브 성향의 ‘눈물의 파티’, 빅 히트곡 ‘비련’의 뒤를 잇는 호소력 강한 ‘차라리 학이 되리라’가 공존한다. 위대한 탄생의 구성에 큰 수술을 단행하여 음악적인 변모를 꾀한 5집에 비해 “한국가요 최초의 디지털 녹음방식”을 음반에 강조하며 음향에 비중을 높인 인상을 주지만 사운드에 있어서 특별한 점은 그렇게 와 닿지 않는다. 록 성향의 다음 음반 7집보다 이후의 8집과 더욱 연관성을 갖는다. (송명하)

7집 [여행을 떠나요](1985)조용필의 디스코그래피 중 이 앨범을 최고로 치는 팬들이 적지 않다. 그만큼 히트곡이 쏟아져 나왔고, 음악적으로도 조용필을 상징하는 ‘실험적 자세’를 잃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뉴웨이브를 도입한 ‘어제, 오늘, 그리고’와 ‘프리 마돈나’, 유재하가 작곡한 새로운 감성의 발라드 ‘사랑하기 때문에’, 조용필 가창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미지의 세계’ 등이 이를 증명해주는 곡들로 손꼽힌다. 이 외에 ‘여행을 떠나요’는 예능과 오디션 프로를 통해 끊임없이 소환되며 전국민적 애창가로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았다. 기존 팬들을 고려한 ‘눈물로 보이는 그대’와 ‘들꽃’ 같은 곡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지만, 그의 근간이 ‘록’에 있음을 다시금 확인시켜준, 조용필 음악 세계에서도 유달리 돋보이는 걸작. (배순탁)

8집 [허공](1985)언젠가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다시 몇 번이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시처럼 대사를 읊는 전반부 말고도 뜯어볼 구석이 많다는 것, 즉 “먹이를 찾아”로 시작하는 그 유명한 내레이션 이상으로 후반부 멜로디가 퍽 아름답다는 걸 깨달았던 때다. 언제 들어도 놀라운 노래다. 작사가 양인자가 신춘문예에 거듭 도전하고 낙방하던 시절 감격의 미래를 꿈꾸며 적어놓았던 과거의 당선 소감을 바탕으로, 예나 지금이나 실험적으로 느껴지는 서사적이고 미학적인 사운드 전개가 결합된 작품이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파격 말고도 8집은 헤아릴 구석이 많다. 히트곡 ‘허공’이 대표적이다. 그 밖에도 ‘바람이 전하는 말’과 ‘그 겨울의 찻집’은 보편 대중의 지지를, ‘얄미운 님아’는 민요 정서를 파고들었고, 덕분에 앨범은 균형잡힌 완성도와 세대불문의 반응을 동시에 얻었다. 이 모든 것은 양인자 김희갑 콤비의 팀워크 폭발로 이루어진 일이다. 그들은 히트곡 생산자였던 동시에, 비장해서 아름다운 앨범의 전반적인 흐름을 구축한 인물들이다. 한편 앨범에는 신중현과 더 맨 출신의 김기표도 기여한 바가 크다. 그가 만든 ‘내 마음 당신 곁으로’는 김정수, 민해경, 조관우가 해석하면서 거듭 회자됐다. (이민희)

9집 [’87 사랑과 인생과 나!](1987)이 앨범은 조용필이 2년간의 일본 활동을 마치고 돌아와 완성한 작품으로, 어쩌면 그의 디스코그래피 가운데 한 장 안에서 가장 다채로운 장르적 다변화를 시도했던 음반이라 할 수 있다. 일단 앨범의 첫 곡인 ‘마도요’와 ‘아하 그렇지’는 1980년대 서구 뉴웨이브와 일본에서 그 당시 유행했던 깔끔한 시티 록(City Rock) 타입의 곡들의 영향으로 완성되었지만, 한국 특유의 정서를 잃지 않았다. 물론 본인도 표절 문제로 곤혹을 치른 ‘청춘시대’에서는 과감히 당대 주류 헤비메틀의 속도감에 도전했다. ‘이별 뒤의 사랑’ 역시 당시 부활의 곡에도 밀리지 않는 정통적 블루스 하드 록 발라드 트랙이었으며, 앨범의 최대 히트곡인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라는 팝 발라드와 ‘타인’같은 가요 스탠다드, 가곡의 가요화에 도전한 ‘떠나가는 배’까지 그야말로 ‘음악적 시도의 백화점’이다. 그 결과 일관성 면에서는 당시 대중에게 조금 어리둥절함을 안겨주긴 했다. 그러나 최초로 자신의 기획사를 설립하고 해외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체득화하는 음악적 태도를 확립한 음반으로서 재평가 받아야 할 작품이다. (김성환)

10집 [모나리자 (제10집 Part. I)](1988)조용필의 10집은 잘 알려져 있듯 데뷔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연작 중 첫 번째 결과물이고, 그 스스로가 수록곡 모두를 작곡한 최초의 앨범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 외국 연주자들을 불러모아 공을 들인 흔적도 역력하다. 당시로서는 세련된 퓨전 록 사운드를 들려주면서 그의 변치 않는 위치를 증명해낸 앨범이라 할 만하다. 그런 점에서 이 음반을 조용필 디스코그래피의 베스트로 꼽는 이들도 다수 있다.

무엇보다 LP의 앞뒤면 첫 곡을 서울을 소재로 한 노래가 차지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그리고 이 두 노래의 색채는 사뭇 대조적이다. 88서울올림픽을 겨냥하여 마치 ‘건전가요’의 이미지를 풍기는 ‘서울 서울 서울’이 공공적이고도 밝은 면을 대변한다면, ‘서울 1987년’ 및 ‘회색의 도시’는 도시(또는 서울)의 어두운 면에 해당한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실린, 다소 안드로메다로 향하는 것 같은 ‘우주여행 x’는 어찌 보면 이 앨범의 밝은 축을 이루는 셈이다. 반면 4집(1982)의 ‘생명’과 마찬가지로 저명인사 전옥숙이 참여한 ‘서울 1987년’의 다소 엄숙한 가사는 합창 형식을 통해 한층 극적으로 들린다. 그러고 보면 애초의 LP 버전의 검은 색채 커버도(나중에 발표된 붉은 톤의 CD 커버와 달리) 의미심장하게 보인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것일까. 모든 곡들을 다 들은 후 ‘서울 서울 서울’을 다시 들으니 이 노래 역시 이상하게 쓸쓸하고 ‘역설적으로’ 들린다. 이는 아마도 명암의 극단적 특징이 모두 조용필 목소리에 함축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최지선)

11집 [Q (제10집 Part. II)] (1989)조용필 11집은 [제10집 Part. II]로 명명되어 있다. ‘80년대 내내 지속해온,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작곡 모음 1장과 외부 작곡가의 작품 1장을 반복하는 방식을 하나의 작품([제10집])의 I부와 II부로 녹여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 서울 서울’, ‘모나리자’ 등의 조용필 곡으로 채웠던 I부와 6개월의 간격을 두고 발표한 II부는 조용필과 좋은 호흡을 보였던 양인자-김희갑 콤비가 전곡을 맡았다. 또 하나의 히트곡 ‘Q’로 시작하는 앨범은 B면을 20분에 육박하는 대곡,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 한 곡으로 채우는 실험적 시도도 잊지 않았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한국적인 AOR(Adult Oriented Rock)이라 할 수 있겠는데, 다소 강렬한 록 중심의 I부와 대비되는 성인취향의 II부에 외려 과감한 20분짜리 곡을 배치한 것만 봐도 당시 조용필의 위상과 자신감을 읽을 수 있다. 다만 이 20분이 이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구성과 ‘생명’의 실험성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사실은 못내 아쉽다. 그렇지만 그 긴 곡을 조용필의 목소리만으로 지루하지 않게 엮어낸 능력만큼은 다시 들어도 탁월하다. (조일동)

12집 [’90-vol.1 : Sailing Sound](1990)‘80년대의 조용필은 확연히 상이한 장르들을 여과 없이 다루었고, 본인이 직접 음악을 주도했느냐 레이블의 요구를 수용했느냐에 따라 작품의 색깔이 달라졌다. 반면 ‘90년대의 조용필은 외부적인 요인이 앨범의 완성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철저하게 차단했다. 물론 이는 어느 한 순간에 확립된 것이 아니다. 조용필은 이미 ‘80년대 중반부터 세션과 녹음, 활동 방식에 이르기까지 이전과는 다른 지향점을 의식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완성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성과를 이끌어 낸 상태였기 때문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독자적인 노선을 구축할 수 있었다. 출발점이 된 12집의 경우 13집이나 14집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볍게 인식되지만 준비된 음악인의 관록과 절충적인 사운드, 조용필 팝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앨범이다. 또한 세련된 ‘90년대 가요 문법을 한발 앞서 제시했기 때문에 조용필의 전성기를 동시대에 경험하지 못한 세대라 할지라도 위화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앨범이다. (문정호)

13집 [The Dreams](1991)이 앨범은 19장에 이르는 그의 긴 디스코그래피 가운데 7집과 함께 비교적 가장 쉽게 눈에 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딜 가나 반짝이는 ‘추천’ 마크가 붙어있거나 볼드체로 강조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허투루 볼 일은 아니다. [The Dreams]는 여러 의미에서 조용필 음악인생의 중요한 기점에 놓여있는 앨범이기 때문이다. 12집으로 그가 설핏 내비쳤던, ‘80년대 떠들썩한 시기를 막 빠져 나온 뮤지션으로서의 재능과 욕심은 이 앨범에 이르러 비로소 만개한다. ‘꿈’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묶인 앨범의 노래들은 진성과 가성, 미성과 탁성을 오가는 조용필의 다채로운 목소리와 함께 장르에 매몰되지 않는 자유로움을 뽐낸다. 완벽주의 기질 아래 선택되고 조율된 세션들과 세련된 편곡/믹싱의 합 역시 들을 거리다. 조용필의 30년 넘는 음악인생 속 최근 가장 자주 접하게 되는 ‘혁신’ 혹은 ‘새로운 발견’이라는 단어는 우선 앨범에 붙어야 옳다. “내 음악은 한국적 록”이라는 스스로의 음악에 대한 설명을 부끄럽지 않게 만드는 한 장이다. (김윤하)

14집 [슬픈 베아트리체](1992)‘80년대 중반 이후 ‘90년대 음악시장이 급격한 변동이 맞기 전까지 그의 앨범들은 이전까지 선보인 스타일과 주제들을 음악적 욕구와 시장적 배려라는 기준 하에 뒤섞은 듯한 모양새를 보인다. 그가 경력을 시작했던 서양 대중음악의 문법에 대응한다면 이 두 가지 성격의 결합은 보통 록 기반의 어덜트 컨템퍼러리라는 개념으로 귀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용필이 40대에 진입하고 그가 더 이상 음악시장의 지배자 위치를 유지할 수도 없고 또 그것을 강요 받지도 않는 시점에서 앨범 내의 일관된 흐름을 잡아내기 시작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14집은 이러한 시도 중에서도 앨범 단위 전체를 볼 때 가장 주목할만한 내용물을 담고 있다. 14집은 트렌드에 대한 추구와 성인 취향의 접근을 찾아보기 힘든 수준의 황금비율로 조화한다. 그 결과는 \'슬픈 베아트리체\', \'이별의 인사\', \'고독한 Runner\' 등으로 이어지는 오프닝 만으로 증명되는 완성도이다. 본격적인 당대의 록 사운드는 (또는 랩을 끼얹는다던가) 10년이 지나면 그 시간만큼의 먼지가 앉을 수 있지만 아티스트 연륜과 경력, 스타일이 단단하게 결합하는 작품은 시간과 관계없는 가치를 지닌다. 조용필의 앨범에서 출몰하는 본격 성인가요에 놀라거나, \'한국형 대중음악\' 이라는 키워드에 거부감을 가진 젊은 세대의 음악 감상자라면, 반드시 앨범 단위에서 출발해야 할 후기 조용필의 역작이다. (서성덕)

15집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1994)조용필의 얼굴이 아니다. 15집 앨범에는 조용필 말고도 위대한 탄생의 멤버 다섯 명이 함께 앨범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 이 앨범은 \'조용필\'만의 앨범이 아니라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앨범임을 강조했다. 조용필뿐 아니라 (아직까지도 위대한 탄생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는) 최희선, 이태윤, 최태완 등이 골고루 곡 작업에 참여했다. 비록 이 앨범을 낼 즈음, ‘90년대 중반부터의 조용필은 그리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진 못했지만 오히려 음악은 더 건실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김건모가 장악하고 있는 브라운관에서 한 발 비켜서 더 원숙해진 조용필의 음악을 들려줬다. ‘80년대와는 다르게 일관된 \'성인 취향\'의 록 음악을 선보이며 약점으로 지적되곤 하던 \'앨범 아티스트\'로서의 모습도 공고히 했다. 하지만 이 앨범은 조용필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저조한 반응을 얻으며 \'잃어버린 앨범\'이 되고 말았다. (김학선)

16집 [Eternally] (1997)조용필은 훌륭한 음악인인가? 그렇다. 그의 곡들은 훌륭한가? 그런 곡들이 적지 않다. 그의 앨범들은 훌륭한가? 꼭 그렇진 않다. 마지막 문답은 폄하가 아니다. ‘90년대 이후 일부 고정 팬들의 숭배에 가까운 연구의 대상이 되었지만, 사실 조용필의 작품양식은 ‘새로운 기법의 응용과 고유한 감성의 조화’였고, 다르게 말하면 로커의 실험과 가요가수의 통속성이라는 양면성을 지녔다. [Eternally]는 이러한 상이한 면모들이 기계적으로 나열된 앨범이다. 키보드와 오케스트레이션을 강조하며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traits)처럼 세련된 팝-록을 완성하기도 하지만, 성인가요 풍의 곡들도 한 자리씩 차지한다.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다시 물어보자. 이 앨범은 훌륭한가? 그렇진 않다. 곡들은 훌륭한가? 그런 곡들도 없지 않다. 조용필은 훌륭한 음악인인가? 자격이 있다. (나도원)

17집 [Ambition](1998)‘Bounce’ 이전에 조용필의 마지막 히트곡을 ‘슬픈 베아트리체’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 노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가 한국 대중음악에 일대 지각변동을 불러온 1992년에 발매된 14집의 타이틀 곡이었다. 이후에도 조용필은 부지런하게 앨범을 공개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지만 이전과 다르게 그의 인기와 명성은 몰라보게 식어버렸다. 그 변혁의 시기에 조용필의 음악이 실리보다는 명분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즉, 어설프게 유행을 따라가기보다 대선배 뮤지션으로서 의연한 품새를 유지하면서 전통적인 방법론을 고수했다. 그로 인해 ‘가왕’으로서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 동안 과소평가된 측면도 없지 않았던 조용필의 음악인생이 재평가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Ambition]은 그처럼 조용필의 암흑기로 치부될 수 있는 역사가 자아 정체성 찾기의 완성으로 빛을 본 결과물이다. 무엇보다도 조용필이 직접 작곡한 ‘소망’과 ‘작은 천국’, ‘처음 느낀 사랑이야’가 앨범의 하이라이트를 형성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이태훈)

18집 [Over The Rainbow] (2003)지금 하나의 사회현상으로까지 이야기되고 있는 [Hello]의 전작인 [Over The Rainbow]는 조용필 개인으로서는 아내의 죽음과 데뷔 35주년이라는 시점과 맞물려 탄생하게 됐다. 이러한 음악 외적인 요소들이 앨범 작업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지는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가 자신의 디스코그래피에 부끄럽지 않은 출중한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것. 전과 비교해봤을 때 스케일이 큰 작풍들을 보여준다. ‘태양의 눈’, ‘도시의 오페라’에서는 록 오페라를 선사하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관현악단, 합창단과 함께 규모가 큰 사운드를 들려준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러한 시도들은 조용필의 노래를 받쳐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도’, ‘꽃이여’, ‘진(珍)’에서 청자의 가슴을 때리는 것은 풍성한 사운드를 뚫고 나오는 조용필의 목소리다. 18집은 조용필이 쉰을 넘긴 뒤 발표한 첫 앨범. 지천명(知天命)이라지만 뮤지션에게는 감이 떨어질 수 있는 나이다. 하지만 그는 감이 떨어지기는커녕 음악적 왕성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무게 있는 음악을 선보인 조용필이 10년 뒤 차기작에서 다시금 밝고 경쾌한 음악으로 돌아와 젊은 층까지 사로잡을 거라고 누가 예상했겠는가? 이순(耳順)을 넘긴 조용필이 내심 바랐던 것은 ‘군림하는 가왕’이 아니라 ‘사랑받는 가수’가 아니었을까? (권석정)

출처: http://music.daum.net/musicbar/musicbar/detail?board_id=4035        http://music.daum.net/musicbar/musicbar/detail?board_id=4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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